Vol 4. 노가리 클럽 : 나를 잊지 말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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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신기한 단어입니다. 과거를 가리킴과 동시에 미래를 기약하고 있으니까요. 살면서 만난 수많은 작품들을 기억의 관점에서 나눠 봅니다.
어떤 이야기는 충만한 즐거움을 안겨준 뒤,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깨끗하게 잊혀집니다. 훌륭하게 시간을 죽인 공모자로 제목만 머릿속에 남죠. 호상입니다. (너무 냉정한가요?)
어떤 문장은 별 생각 없이 스쳐지난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말이 이런 뜻이었을까?’ 새삼스럽게 씹고 뜯고 맛보며 있는 줄 몰랐던 깊이를 느끼게 되죠. 만난 당시에는 내가 깜냥이 안 돼서 못 느꼈던 감상이 시차를 두고 따라오는 겁니다.
그리고 ‘기억할 거야’ 다짐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이 울림을 쉽게 흘려보내지 않고, 서랍에 고이 넣어 두었다가 꼭 다시 꺼내보겠다고 약속하게 되는 이야기들이요.
오늘은 노가리클럽이 마음을 다해 잊지 않기로 한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한 순간에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나의 최애가, 자기만의 세계를 찾아 훌훌 날아간 것이라 믿고 싶어지는 <윤시내가 사라졌다>, 시청률보다는 작품이 보여준 기발함과 참신함이 더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길 바라는 <구경이>, 여전히 상실의 오월을 건너고 있는 남겨진 이들을 위한 러브 레터 <오월의 청춘>이 그 주인공입니다.
여러분이 잊지 않고 몇 번이고 꺼내 보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노가리 클럽 네 번째 영업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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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 최애가 콘서트 당일 잠적해버린다면?
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 by. 희
지난 달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이미 끝나버린 독립영화제에서 잠깐 상영한 후 그 어떤 극장에서도,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오픈되지 않아, 다시 보고 싶어도 영영 볼 수 없는 영화’를 영업하는 극악무도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히 가장 재밌게 본 영화가 6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들고 왔습니다. 바로 이주영 배우와 오민애 배우가 주연을 맡은 김진화 감독의 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 입니다.
영화는 유명 가수 윤시내 씨가 콘서트 당일 돌연 잠적을 하면서 시작됩니다. 가수의 유명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오민애 분)’는 무대에 설 자리가 사라지고, 윤시내를 찾아 떠나게 됩니다. 이름만 들어도 벌써 웃기죠? 심지어 연시내는 윤시내를 찾기 위해 다른 이미테이션 가수들을 수소문하는 데요, ‘윤신애’, ‘운시내’, ‘가시내’ 등 줄줄이 등장하는 이름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빙글빙글 웃음이 납니다.
연시내의 딸 ‘장하다(이주영 분)’는 인터넷 방송 BJ로, 별풍선을 받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트월킹 추는 것을 서슴지 않는 인물입니다. 라이브방송 도중 우연히 하다의 방에 들어온 연시내의 모습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버리고, ‘윤시내가 왜 장하다의 집에 있냐’며 인터넷이 발칵 뒤집히죠. 소위 말해 ‘떡상각’을 본 하다는 윤시내를 찾기 위한 엄마의 여정을 몰래 인터넷 라이브 방송으로 송출해버립니다.
과연 이 둘의 여정이 어떻게 끝날지, 윤시내는 찾을 수 있을지, (당일 콘서트 표 구매자들은 과연 환불을 받았을지,) 썩 궁금하지 않고 예상이 되더라도, 추천하고 싶은 영화예요. 사실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관계에서 주고받는 ‘진심’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가장 가깝지만 가장 어려운 관계가 모녀 사이라고 생각해요. 우연히 마주친 낯선 이에게는 쉽게 내보이는 진심을, 엄마에겐 터놓기 어렵죠. 딸에게 모든 진심을 내비칠 수 없는 건 엄마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고맙고 미안하면 원래 화를 내요? 인생을 좀 단순하게 살아봐요.
고마우면 고맙다고 하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말해요. 하다 씨 지금, 엄마 무지 걱정 되잖아요. 그럼 그냥 걱정된다고 말해요.” (엄마를 향한 걱정을 짜증으로 표현하는 하다에게, 운시내의 대사 중)
등장하는 인물이 모두 입체적이고 각자의 사연이 있어서, 누구나 각자의 문을 열고 영화 속으로 들어올 수 있어요. 가식과 거짓으로 점철된 일상을 보내는 것 같아 괴롭거나, 모녀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거나, 실패를 겪었거나, 지금 하는 일에 고민이 있다면 6월엔 윤시내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 동참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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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가 상을 못 받았다고? 의심스러운데
드라마 <구경이> by. 윻
연말이면 SNS에서 유행하는 나만의 시상식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한 해를 마무리하며 1년을 돌아보는 의미도 좋지만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가 덧대진 참신한 수상 부문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올해의 책'처럼 평이한 것부터 '올해의 귀여움'이나 '올해의 구름'처럼 읽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는 것까지 다양한 수상 부문이 있죠. 사실 좋아하는 게 너무 많은 저는 가장 어려운 것이 '가장', '최고의' 등을 꼽는 것이라 회피하는 편이긴 합니다만, 그런 저라도 '올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붙으면 한껏 신중해지면서 진지하게 임하게 되더라고요. 너무 좋아서 호들갑을 떨던것 이었음에도 '정말? 1년을 통틀어 최고라고?' 자문하며 엄중한 잣대를 들이미는 제 모습이 제법 냉정해 스스로도 낯을 가릴 정도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 윻 어워드 올해의 드라마 부문은 사상 초유의 공동 수상도 점쳐졌을 만큼 세 작품이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였는데요. 최종 선정작은 언제고 이 뉴스레터를 통해 소개할 기회가 있을 듯해 잠시 아껴 두고, 수상을 놓친 후보들을 소개해드리자면 하나는 지난 뉴스레터에서 슬이 소개한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오늘 소개할 JTBC 드라마 <구경이>입니다.
사실 이 두 작품이 놓친 건 2021 윻 어워드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5월 6일 열린 58회 백상예술대상에서도 별로 상 복이 없었거든요. <구경이>의 매력이 안방 시청자들을 모두 매료시키기엔 어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작품성 하나만큼은 이견이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구경이>가 TV 부문 여자 신인 연기상 말고 아무 상도 타지 못한걸 보고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김혜준 배우는 신인도 아닌데 말이죠(의심스럽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노가리는 새삼스럽지만 저희 구독자분들 중 아직 구경이를 못 보신 분들에게 이 작품을 제대로 영업해보고자 준비했습니다.
<구경이>는 게임과 술이 세상의 전부인 경찰 출신 보험조사관 구경이(이영애 분)가, 완벽하게 사고로 위장된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을 파헤치는 코믹 탐정극입니다. 과거의 상처 때문에 세상을 등지고, 자신만의 세상에 틀어박혀 지내는 전직 경찰 주인공…까지 보고 ‘앗, 벌써 식상하다…’라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걸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영애 배우가 연기를 한다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지죠.
이름 자체로 우리 사회 안에서 어떤 상징성을 갖는 이영애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구경이는 배우가 가진 원래의 이미지와 캐릭터가 가진 이미지의 간극을 통해 전혀 식상하지 않은 반가운 ‘이상함’을 만들어냅니다. 여기에 ‘비릿한 웃음’ 따위는 지을 줄도, 지을 필요도 못 느끼는 ‘해맑은’ 여성 살인마 송이경(김혜준 분)이 구경이의 대척점에서 극의 긴장감을 더하죠. 물론 그 외에도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지만 그걸 모두 이야기하려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뿐더러 주어진 분량 안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드라마가 가장 좋은 점은 무엇보다도 새로움과 동시대성입니다. 끊임없이 *제 4의 벽을 허물며 말을 거는 등장인물들은 시청자를 당황스럽게 하고, 게임이나 코믹북, 애니메이션에서나 봤을 법한 그래픽과 CG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화면 구성과 안성맞춤인 음악은 매 화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죠. 거기에 N번방 사건부터 디지털 성범죄, 불법 카메라, 여성 혐오 범죄 등 지금 우리가 이야기를 멈춰선 안 되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합니다. 이게 한 작품에서 가능하냐고요? 가능하더라고요.
이 글을 쓰며, 구경이의 장르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됐는데요. 무려 ‘하드보일드 코믹 탐정극’입니다. 이 얼렁뚱땅 장르 소개가 딱 맞는 드라마라니,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심지어 마지막화에는 엄청난 까메오도 등장한답니다! 이래도 안 궁금하신가요?! …의심스러운데…?
*연극에서 무대와 객석 사이에 존재하는 가상의 벽을 뜻하는 말로, 프랑스의 계몽주의자인 드니 디드로가 주창해 사실주의 연극의 기반이 된 개념. 극이 진행되는 동안 이 벽을 사이에 둔 관객과 배우는 서로 간섭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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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을 아는 이야기를 봐야 하는 이유
드라마 <오월의 청춘> by. 슬
우리의 삶은 대체로 리얼리즘(만)이 강조되는 밍밍한 다큐입니다. 가아끔 추태를 동반한 시트콤이 되기도 하죠. 누군가의 동작 하나에도 자체 슬로우가 걸리는 로맨틱 코미디나 격정 멜로를 찍는 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귀한 순간이죠. 심상찮은 심장 소리를 인지한 뇌는 그야말로 풀가동을 해 그 장면을 사진처럼 찍어둡니다. 도로 위로 부서지던 햇살과 공기 속에서 흩날리던 꽃가루, 만물이 깨어나는 듯한 냄새까지 떠오르게 하는 최첨단 사진을요.
그해 오월, 명희(고민시 분)와 희태(이도현 분)에게는 그런 장면이 유독 많았을 겁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로맨틱 코미디의 전통을 훌륭하게 따르고 있어요. 독일 가는 비행기 표가 필요한 명희가 친구 수련의 대타로 맞선에 나가면서 희태를 만나게 됩니다. 떼어내려는 여자와 다가가려는 남자의 밀고 당기기가 시작되죠.
1980년의 로맨스는 마음을 살살 간질이는 구석이 있더군요. 함께 의자에 앉아 풀벌레 소리를 듣는다든가, 헤어지는 길에 서로를 기억하기 위해 귀걸이와 넥타이를 교환한다든가. 아마 ‘그 오월이, 여느 때처럼 볕 좋은 오월이었더라면’ 두 사람은 먼 훗날 그날의 온도와 습도가 어땠는지까지 자식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양말을 뒤집어 벗어두는 등의 사소한 문제로 투닥거리면서요.
하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압니다. 80년 오월의 광주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들의 장르가 비극으로 바뀌어버릴 것이란 사실을요.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이 ‘if~’로 시작하지만, <오월의 청춘>은 유독 ‘그러지 않았더라면’을 되뇌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동시에 여전히 밀물에서 헤엄치고 있는 남겨진 이들에게 그 모든 가정과 후회 역시 당신의 사랑이라고, 그러니 끊임없이 그해 오월로 떠내려가더라도 다시 만나는 날까지 잘 살아내야 한다고 말하는 사려 깊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결말을 다 아는 이야기, 마음만 아플 뿐인데 왜 봐야 하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이 그토록 허무하게 부서져 버린 것을 잊어선 안 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삶이 비극이길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남의 비극에는 곧잘 무뎌지죠.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드니까요. 비극을 그저 ‘소비’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그 무거움에 진심으로 공감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아요. 그때 누군가의 세심한 시선을 빌린다면 조금 수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지나간 시대의 비극이라고 흘려보내기엔 책임지지 않은 자들과 규명하지 못한 것들이 여전히 많은 까닭입니다. 지난 12일, 5·18조사위는 발포 최고 명령자와 70여 명에 이르는 행방불명자들의 신원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 사건 46건 역시 아직 조사 중이라고 해요. 42년이 지난 지금도, 80년 오월 광주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월의 청춘>을 통해 우리가 수많은 명희와 희태의 삶에 대해 감히 상상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너무 멀지 않은 날에 그해 오월의 이야기가 완전히 매듭지어지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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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입엔영
금사빠를 금사식하게 만든 허위매물 by. 희
이정은 배우의 팬이다 보니, 첫화부터 은희(이정은 분) 캐릭터를 보고 섣부르게 인생드라마가 될 거라 예견했습니다. 하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남은 건 주름잡힌 미간 뿐이더군요. 미성년자의 임신을 단순히 드라마 소재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로 바라봤다면, 이렇게 무책임하게 그릴 순 없죠. 누구보다도 당황스러울 당사자에게 임신중지의 죄책감을 씌워주는 촘촘한 프레임에 구역질이 나올 지경입니다. 원치않는, 준비되지 않은, 축복이 아닌, 계획없이 들이닥친 임신이 여성에게 어떤 의미인지 절절히 깨닫길 바라며, 영화 <십개월의 미래>를 대신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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