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 할 건 장소가 아니라 패턴이에요

메이트, 저는 지난주에 제주도로 명상 수행을 다녀왔어요. 사실 요즘 집에서는 명상이 잘 안되었어요. 집중하려고 해도 해야 할 일들 생각에 망상과 들뜸이 일어나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게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제주에서는 신기하게 바로 마음이 가라앉고 훨씬 더 깊은 명상이 가능하더라고요. 바뀐 건 환경밖에 없는데 몇 달 동안 들떠 있던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았죠.


생각해 보면 익숙한 곳을 벗어나서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은 무언가를 돌파하는 원동력이 되어줄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어디론가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생각이 막혀 있을 때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는 것만으로도 막혔던 지점이 풀리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오늘 밑미레터에서는 왜 익숙한 곳을 떠났을 때 변화가 찾아오기 쉬운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그럼 오늘 밑미레터를 시작해 볼까요?

우리는 익숙한 신호에 반응하며 살고 있어요

오늘 아침 눈을 떠서 지금 이 레터를 읽기까지, 내가 '이렇게 하자'고 분명히 선택한 순간은 몇 번이나 있었을까요? 알람을 끄고, 휴대폰을 확인하고, 씻고, 옷을 입고, 아침을 먹는 동안 우리는 대부분 별다른 생각 없이 움직여요. 우리가 하는 행동의 대부분은 사실 의식의 바깥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고 있죠. 


이게 가능한 건 우리 삶의 대부분이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일을 하면서 오토파일럿 모드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오토파일럿 모드가 돌아갈 때 우리는 의식적으로 깨어 있지 않아도 별문제 없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어요.


특히 익숙한 공간에는 우리를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게 하는 신호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안내판처럼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 신호들을 그저 따르면서 늘 하던 패턴을 반복하며 살아가요. 내가 늘 하던 패턴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죠.


익숙한 신호를 벗어날 때 무엇이 달라질까

낯선 곳으로 떠나는 행위는 우리를 오토파일럿 모드로 움직이게 만드는 많은 신호들로부터 억지로 분리하게 만들어 줘요. 여행지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지, 어디에 갈지, 무엇을 할지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야 해요. 나를 아는 사람들이 곁에 없으니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서도 잠시 자유로워지죠. 처음엔 조금 어색하고 피곤하기도 해요. 그동안 무의식이 대신 해주던 일들을 이제 의식이 직접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바로 그 어색함 속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질문 하나가 깨어나요.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지?' 익숙한 곳에서는 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었어요. 하루가 이미 정해진 순서대로 흘러갔으니까요. 하지만 신호가 사라지면 자동으로 돌아가던 패턴이 잠시 멈추고, 그 자리에 작은 틈이 생겨요. 그 틈에서 우리는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하는 사람이 돼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고민도 해보고, 오래 붙잡고 있던 고민이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이기도 하고, 때때로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죠. 늘 같은 생각으로 끌어당기던 신호들이 보이지 않으니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펼쳐지는 거죠.

단순히 떠나는 것만으로는 바뀌지 않아요

물론 떠난다고 해서 저절로 오토파일럿 모드에서 벗어나게 되는 건 아니에요. 인터넷과 SNS,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세상에서는 물리적으로 새로운 공간에 간다고 해도 익숙한 신호들이 손바닥 안에서 우리를 따라오거든요. 바닷가에 앉아 있어도 회사 단톡방 알림은 울리고, 낯선 숙소에서 눈을 떠도 집에서처럼 습관적으로 SNS 피드를 내리게 되죠. 몸은 떠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익숙한 신호에 붙들려 있는 거예요.


게다가 요즘의 여행지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신호들로 가득해요. SNS에서 본 핫플레이스, 별점 높은 맛집, '여기서 찍어야 한다'는 포토존, 누군가 정리해 둔 2박 3일 추천 코스까지. 우리는 낯선 곳에 가서도 누군가 세워 둔 심호를 따라 움직이곤 해요. 줄을 서라는 신호에 줄을 서고, 사라는 신호에 지갑을 열고, 찍으라는 신호에 카메라를 드는 거죠. 익숙한 신호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다른 신호로 갈아탔을 뿐 오토파일럿 모드는 그대로 켜져 있는 셈인 거죠. 


진짜 변화는 떠남이 아니라 패턴을 벗어나는 순간 시작돼요

결국 우리를 깨어나게 하는 건 낯선 곳으로 떠나는 행위가 아니라 반복되는 패턴을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틈이에요. 그리고 이 틈은 꼭 멀리 떠나야만 생기는 건 아니죠.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는 어떻게 패턴을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가 나와요. 영화의 주인공인 에블린은 세탁소를 운영하며 세금 문제에 시달리는 평범한 중년 여성이에요.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수많은 평행 우주 속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또 다른 자신들과 연결되죠. 흥미로운 건 다른 우주로 넘어가는 방법이에요. 영화에서는 이를 '버스 점프'라고 부르는데,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엉뚱한 행동을 해야 해요. 신발을 좌우 바꿔 신는 것처럼요. 그리고 일어날 법하지 않은 행동일수록 더 먼 우주로 넘어갈 수 있죠.


영화 속 설정이지만, 우리 삶에도 꽤 그대로 들어맞는 이야기예요. 우리를 지금의 우주에 붙잡아 두는 건 늘 하던 패턴이거든요. 익숙한 신호에 익숙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동안, 우리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아가니까요. 그런데 패턴에서 벗어난 작은 행동 하나는 오토파일럿 모드를 멈추고 그 자리에 틈을 만들어요. 그 틈 사이로 우리가 미처 살아 보지 못한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하죠. 


그러니 이번 주에는 나만의 작은 버스 점프를 시도해 보세요. 거창할 필요는 없어요. 한 번도 시켜 보지 않은 메뉴를 주문하거나, 늘 앉던 자리 대신 다른 자리에 앉아 보거나,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동료에게 먼저 말을 걸어 보는 작은 것들로 시작해 볼 수 있어요. 그 작은 패턴에서 벗어난 작은 엉뚱함이 오토파일럿 모드로 흘러가던 하루에 틈을 만들고, 좀 더 의식적인 삶으로 이끌어 줄 수 있을 테니까요. 

🍊나누고 싶은 좋은 것들을 함께 나눠요!

매주 밑미레터 메이트분들이 보내주시는 추천템을 소개합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책이나 장소, 영화, 혹은 이런저런 추천템을 보내주시면 이 코너를 통해서 좋은 건 같이 나눠요!   

영화 <모아나2> : 가족애와 우정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나이는 꽤 많이 먹었지만, 가끔은 이런 아주 기본적인 무해함에 마음의 여유를 되찾곤 하는 것 같아요. by 쏘보쏭쏭 
이 말이 와닿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남겨봐요. 저는 큰 상실을 겪은 후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에 좀 가벼워졌어요. '내가 도깨비도 아니고, 생사에 관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게 당연하다.' 무거운 주제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길 바라며. by 에이미 
영화 룩백, 두말하지 않습니다. 추천드립니다. 
스페인어요!! Poco a poco se va lejos 조금씩 가다보면 멀리간다. 천리길도 한걸음씩 꾸준히 함께하고싶어요 by 레이첼 
평일도 인생이니까-김신지 요즘 읽는 책인데 공감가는 구절이 정말 많아요 by 우찡 
어드민 나이트, 각할모 라는 개념을 좋아합니다. 모여서 본인의 잔업을 각자 해내는 모임인데 혼자 있을 땐 퍼지고 하기 싫지만 모여서 다들 본인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동기부여도 되고 할 일도 하게 되는 점이 좋았답니다

메이트들과 나누고 싶은 것 & 밑미레터 피드백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모아나의 고민

"저는 모성애가 없는 걸까요?"

6세, 4세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입니다. 남편과 친정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으며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제 자신을 보면서 ‘나는 모성애가 없는 걸까’, ‘나는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회사 일로 지치거나 집안이 엉망인 날이면 제 감정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아이들의 사소한 행동에도 지나치게 화를 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잠든 뒤에는 그런 제 모습이 너무 후회되고 괴롭습니다.

얼마 전에는 퇴근하자마자 아이들을 위해 저녁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6세 아이가 “라면 먹고 싶다”, “밥이랑 김치만 마음에 든다”면서 반찬 투정을 했습니다. 회사에서 지쳐서 퇴근한 데다, 힘들지만 아이들을 먹이려고 식사를 차렸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순간 화가 치밀었습니다. 결국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차려놓은 밥을 그대로 가져다 버렸습니다. 아이는 잠들기 전까지 계속 기가 죽어 있었고, 저도 그 모습을 보면서 미안하고 안쓰러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도 화가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양치질이나 옷 갈아입기처럼 무언가를 시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에 하지 않고 “잠깐만, 이것만 하고”라며 미루거나 밍기적거리는 모습을 보면 순간적으로 너무 화가 납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린 만큼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그 순간에는 제 감정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멀리 출퇴근하고 있고, 집안일도 오히려 저보다 더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저 역시 평소에는 남편과 친정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회사가 바쁜 시기라, 야근이 연이어 이어져 남편이 없는 저녁 시간에 혼자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너무 괴롭고 버겁게 느껴집니다.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치우고, 양치시키고, 재우는 그 일련의 과정이 하나하나 너무 힘들게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제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럽고, 잘 자라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막상 제가 지쳐 있는 순간에는 아이들보다 제 감정이 먼저가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 ‘나는 왜 다른 엄마들처럼 참지 못할까’, ‘나는 정말 모성애가 없는 걸까’, ‘좋은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남편과 친정의 도움을 받고 있으면서도 힘들다고 느끼는 제가 너무 이기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음먹는다고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좋은 엄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제 감정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요. 그리고 제가 정말 모성애가 부족한 것일까요?

밑미 메이트 재은의 답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육아가 힘든 마음은 얼마든지 함께 있을 수 있어요.”

평소와 전혀 다른 선택 해보기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순간을 늘 하던 방식대로, 별생각 없이 반복하며 살아가요. 이번 주에는 무의식적으로 반복했던 하루에 작은 변화를 만들어 보세요. 하루에 한 번,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작은 행동을 해보는 거예요. 안 가 본 길로 걸어보거나, 한 번도 시켜 보지 않은 메뉴를 고르고, 평소라면 입지 않을 옷은 입는 것처럼 사소해도 괜찮아요. 패턴에서 벗어난 작은 선택이 우리를 좀 더 의식적인 삶으로 이끌어 줄 수 있을 테니까요.

🌳 나이가 들며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해졌어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를 가꾸며 이제 예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때때로 예전의 나처럼 자신감이 없고, 의지가 약한 모습이 튀어나오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내가 또 과거를 반복하고 있구나, 하며 자책하곤 했는데 오늘 밑미레터를 읽으며 그 모습조차 결국 나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좋은 위로 받고 갑니다! 
🧡 엉켜있는 제 마음을 잘 풀어준 느낌입니다..ㅠㅠ 집을 돌보듯 내 마음의 집도 돌보는 시간, 사실 알면서도 외면하고 덮어두기만 했는데 이제야 직면하고 제대로 바라보고 싶어졌어요!
💌 2주 간, 그러니까 두 번이나 메일이 누락돼서 지난레터 보기 눌러서 읽었어요ㅠㅠ 저만 그런가요? 스팸메일함도 꼼꼼히 다 확인했는데 없네요.. 월요일마다 온다는 걸 알기에 찾아서라도 읽고 있습니다! 
💕 항상 제 마음 속을 들여다 보고 쓰신 것처럼 지금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한 레터를 보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 요즘 회사 일로 인해 마음이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된 기분을 거의 1개월 간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와중에 오늘 밑미레터를 읽고 생각을 좀 달리해보기로 했어요. 지금 이 지옥같이 힘든 시기를 힘들게만 보는 게 아니라, 내 인생 전체를 놓고 바라보며 장애물을 바라보는 법과 그를 대처하고 해결하는 '연습'을 하는 태도로요. 상황을 이렇게 바라보니 조금은 주도적으로 이 힘듦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생기네요. 밑미레터 너무 고마워요 😀 
☘️ 예전에 좋아했던 산문인 이규보의 이옥설이 떠올랐습니다. 감사합니다.
👍🏼 꼬박꼬박 챙겨보지는 못하지만 일하다 힘들때 메일함에 밑미레터가 와있으면 마음에 작은 힘이 되어요. 그날의 글에 따라서 큰 힘이 되는 날도 있구요. 부드럽고 좋은 말로 많은 이들에게 비타민 같은 레터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주 저의 마음을 환기할 수 있는 밑미레터 너무좋아요 회사친구들에게 밑미레터 공유했어요!
😍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 충분한 잠, 제때 챙겨 먹는 밥, 나를 위해 보내는 고요한 시간,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친밀한 관계 같은 것들>이 나를 지탱해주고있음을 다시금 느끼게되었어요.+이렇듯 소중한 밑미레터가 있기에 하루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할수있었어요.잠을 못자서 넘 힘들었는데 잘 쉬다갑니다^^
🌿 집과 마음이 비슷하다는 내용을 한 번 얘기하고 같은 내용을 몇 문단에 걸쳐서 단어만 살짝 바꿔서 반복해 늘어놓는 걸 보고 스크롤을 내리면서 '내가 계속 같은 곳을 읽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량을 채우기 위해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내용이 없다면 짧게 쓰셔도 좋을 거 같아요!

오늘 레터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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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진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눈을 갖는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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