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와 인권연구소 김사강 연구위원 기고 🌱 오늘의 키워드
#이주민 #아동/청소년 #연구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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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이나 식당에서 외국인 점원을 마주치는 일은 더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죠.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이 24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이는 20년 전과 비교하면 3배 이상 증가한 수치인데요.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제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이주배경 청소년들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이 되었다는 사실이에요. 이들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우리와 같은 학교에 다니며, 같은 문화와 추억을 공유하며 자랐지만, 여전히 ‘외국인’ 또는 ‘미등록 체류자’라는 신분의 벽 앞에 서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이주아동의 권리 보장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해 온 김사강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것 같은 순간도 있었지만, 끈질긴 노력 끝에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낸 과정이 담겨있어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서 동료들과 함께 이뤄낸 성과들,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권 보장 캠페인까지...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포용해야 할 새로운 구성원들에 대한 통찰은 물론, 지난한 사회 변화를 위해 필요한 전략과 지속 가능한 활동의 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도 얻으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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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이주아동을 만나다
제가 처음 미등록 이주아동들을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인 2006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에 오랫동안 체류한 이주노동자들에 관한 논문을 쓰기 위해 경기도 안양에 있는 한 이주노동자 인권 단체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하며 참여 관찰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단신으로 한국으로 건너와 일을 하면서 본국의 가족들에게 번 돈을 송금하고 있을 거라는 저의 예상과는 달리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체류자격이 없는 미등록 신분이었고, 따라서 아이들도 미등록 상태에 있었습니다.
태어난 지 100일도 채 되지 않았던 아스라, 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제이미와 두 동생, 중학생 사춘기 소년이었던 태완을 그때 만났습니다. 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가 태어날 때, 돌잔치를 할 때, 아파서 병원에 갈 때, 함께 있어 주었습니다. 한 일 년을 그렇게 지내다가 부모들에게 인터뷰를 부탁했습니다. 왜 자기들을 인터뷰하려는 거냐는 부모들의 질문에 저는 논문을 쓰기 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논문이 뭔데요?” “논문은 책 같은 거예요.” “그럼 그 책이 나오면 뭐가 달라져요? 우리 애들 비자 받을 수 있어요? 건강보험 가입할 수 있어요?” 그렇게 묻는 이들에게 저는 제가 책을 쓴다고 바로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나중에라도 꼭 그렇게 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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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에서 만났던 미등록 이주아동, 제이미와 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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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에서 활동가로
아이들을 뒤로한 채 학교로 돌아갔지만, 논문을 쓰는 내내 제 머릿속에서는 이주노동자 부모들과 한 약속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논문을 마치고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도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삶은 여전했습니다. 체류자격이 없어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에 떨어야 한다는 것도, 건강보험이 없어 병원에 갈 때마다 병원비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도 그대로였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연구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2011년, 부산에 있는 이주와 인권연구소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이주와 인권연구소는 이주민의 인권을 위한 조사·연구와 제도개선 활동을 병행하는 유일한 NGO 연구소입니다.
연구소에서 제가 처음 맡게 된 프로젝트는 부산·경남 지역 미등록 이주민 건강권 실태조사였습니다. 설문조사를 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또다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미등록 이주민들을 만났습니다. 부모가 미등록이라고 태어난 아이의 출생신고도 받아주지 않는 대사관들, 종일 토하고 설사하다 축 늘어진 아이를 둘러업고 응급실에 뛰어가도 보증금부터 요구하는 병원들, 아무리 정부 지침이 있다고 설명해도 미등록 이주아동은 받아줄 수 없다는 어린이집과 학교들. 미등록 이주아동의 상황은 5년 전과 똑같은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안 좋아진 것 같았습니다.
그 사이 정책의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육부는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서 미등록 이주아동의 초·중학교 편입학을 법적으로 허용했습니다. 법무부는 2010년 ‘“불법체류” 아동의 학습권 지원 방안’이라는 지침을 발표해 초·중학교에 재학 중인 미등록 이주아동과 그 부모에 대해 단속과 추방을 유예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추방을 유예하기로 한 것일 뿐 체류자격을 부여하기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계속해서 미등록으로 살아야 하는 사실은 변함없었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그나마 단속·추방 유예 조치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실제로 2012년 10월,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한 미등록 이주아동이 출입국에 단속되어 나흘 만에 강제 추방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반인권적인 아동의 강제추방을 규탄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지자 법무부는 2013년 11월, ‘“불법체류” 아동의 학습권 지원 방안’의 대상을 고교 재학생까지로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했습니다. 한국에서 초·중·고교를 다니며 교육받은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졸업과 동시에 강제퇴거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그대로였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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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에 강제 퇴거한 민우 이야기, 재능기부 by 박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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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제정을 위한 노력과 좌절
고교 1학년 학생의 강제퇴거를 계기로 저는 그 무렵 진행되고 있던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 제정을 위한 활동에 합류했습니다. 아동단체, 이주단체, 공익변호사 단체가 뜻을 모아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 제정 추진 네트워크(이하 법 제정 추진 네트워크)’를 구성했고, 함께 법률안을 가다듬었습니다. 이주민 최초로 국회의원이 된 이자스민 의원이 법률안을 대표 발의해달라는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2014년 12월 18일, 세계이주민의 날을 맞아 이자스민 의원을 비롯한 23명의 의원이 공동으로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을 발의했습니다.
법안에는 이주아동의 출생등록권, 교육권, 건강권, 보육권, 보호권은 물론 강제퇴거로부터의 보호 및 특별체류자격 부여에 관한 조항까지 담겼습니다. 저는 법 제정 추진 네트워크 활동가들과 함께 법안 통과를 위해 국회의원들과 토론회와 간담회를 진행했고, 국회에서 기획전시전을 개최하고, 법안을 발의한 의원실에 현판을 전달하고, 정책 브리프를 만들어 배포하고, 입법촉구서를 발송하는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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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0일 세계인의 날을 기념해 개최한“이주아동에게 차별없는 세상을” 기획전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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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이 넘도록 한 달에 절반 이상을 서울에 머물며 법 제정 추진 네트워크 회의와 대국회 활동에 적극 참여했음에도 입법을 위한 단계를 하나씩 밟아 올라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법무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들이 반대 의견을 밝혔을 뿐 아니라, 반이주민·반다문화를 표방하는 보수단체들도 이주아동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법안 발의 의원실에 항의 전화를 해댔기 때문입니다.
국적이나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모든 아동의 인권을 차별 없이 보장해야 한다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는 너무 작았던 반면, ‘국민’이 먼저고 ‘국민’만이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유권자인 ‘국민’의 이름으로 국회의원들을 압박했습니다. 법제사법위원회의 전문위원이 보고서를 통해 법 제정 이전에 사회적 합의나 국민적인 공감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은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19대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되었습니다. 허탈한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른 저는 법 제정 추진 네트워크를 함께 했던 활동가들과, 예전부터 이주아동의 인권 옹호 활동에 헌신했던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새롭게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기본권 향상을 위한 네트워크(이하 이주아동 네트워크)’를 꾸려 새로운 방식의 활동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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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청소년의 단속
새롭게 꾸려진 이주아동 네트워크는 이주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포괄적인 기본법의 제정이 효과적인 전략이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이주아동의 권리를 하나씩 보장할 수 있는 제도의 개선과 개별법의 개정에 집중해보기로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는 것은 물론 아동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이주아동들의 이야기가 언론에 실리도록 하는 활동도 해나갔습니다. 제도의 개선이나 법률의 제·개정을 위해서는 우호적인 여론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주아동에게도 내국인 아동과 같은 보호와 지원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인식은 쉽게 확산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권 보장은, 한국에서 태어난 것 또는 한국으로 이주한 것이 아동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전제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납득시키기 어려운 주제였습니다. 미등록 체류를 “불법체류”라고 부르며 범죄시하는 분위기에서 아이들에게 미등록 체류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2017년 4월, 페버라는 이름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일하던 공장에서 단속되어 외국인보호소에 갇히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페버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친 18세 청소년이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여 만에 출입국에 단속된 것이었습니다. 페버를 위해 이주아동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던 공익변호사들이 나섰습니다. 관할 출입국이 내린 강제퇴거명령과 보호명령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1년 정도 걸린 재판 끝에 페버에게 내려진 강제퇴거명령과 보호명령을 취소하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강제퇴거명령 취소 소송의 첫 승소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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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졸업 직후 단속되어 외국인보호소에 갇힌 18세 청소년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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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판결문은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무조건적인 강제퇴거가 가진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다음과 같이 판시했습니다. “이 사건 원고와 같이 적법하게 대한민국에서 출생하였다가 그 부모가 체류자격을 상실함으로써 체류자격을 잃게 된 사람에 대한 인권적·인도적·경제적 관점에서의 전향적 접근이 필요하다”, “원고와 같이 대한민국에서 출생하여 현재까지 사실상 오직 대한민국만을 그 지역적·사회적 터전으로 삼아 살아 온 사람을 무작정 다른 나라로 나가라고 내쫓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생존권을 보장하여야 할 문명국가의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 “대한민국은 국내에 사회적 기반을 형성한 원고로 하여금 인간다운 삶을 누리며 국내에 체류할 수 있도록 그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12년의 정규교육과정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성장한 원고를 이제 와서 내보내는 것은 그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 노력을 고려할 때 [국가적인] 큰 손실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정부가 원고와 같은 사안에서 국적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만들 필요성이 크다.”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어온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강제퇴거가 사실 “문명국가의 헌법 정신에 어긋난” 것이며, 이런 아동들에게 국내 체류를 허용하는 것은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라는 것을 분명히 한 판결문은 저희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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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다시 만난 아이들
페버 사건을 계기로 저와 이주아동 네트워크 활동가들은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권 보장이라는 난제를 풀어나갈 방법을 좀 더 적극 모색해보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모든 미등록 이주아동이 단속될 때마다 소송을 통해 강제퇴거를 막을 수 없으리라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렇다면 미등록 이주아동이 체류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했고, 그 시작은 페버처럼 살아온 이주아동들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이주아동 네트워크 활동가들은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한국에 어렸을 때 입국해 최소한 10년 이상 거주한 이주아동들과 그 부모들을 찾아다니며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권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저도 13년 전 안양에서 만났던 이주아동들의 거취를 수소문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제이미네 세 자매는 이미 한국을 떠난 뒤였습니다. 하지만 아기였던 아스라는 중학생이 되어 전라북도 정읍에 살고 있고, 그 사이에 동생도 셋이나 생겼다고 했습니다. 중학생이던 태완은 여전히 경기도 군포에서 살고 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공장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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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태어난 지 100일 되던 날 아스라와 부모 / (오)중학생이 되어 다시 만난 아스라와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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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여름 정읍에서 만난 아스라는 당연히 저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어렸을 때 안양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니 마음을 조금 여는 것 같았습니다. 아스라에게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건 문제가 없지만 체류자격이 없어서 제주도 수학여행은 가지 못한다는 얘기, 자원봉사 점수를 입력해야 하는데 자원봉사포털에 가입할 수 없어서 일일이 손으로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는 얘기, 본인 인증을 하지 못해서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표를 예매하지 못한다는 얘기, 건강보험이 없으니까 병원에 갈 때마다 돈이 많이 나와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얘기 등을 담담히 털어놓았습니다. 장래 희망은 있지만 아마도 대학에는 가지 못하겠지요 하면서 조심스레 묻기도 했습니다.
태완은 군포로 찾아간 저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인터뷰 같은 걸 해서 뭐하냐고 하는 태완에게 그러면 그냥 밥이나 먹자고 했습니다. 스물일곱이 된 태완과 식당에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태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한 전자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경력이 7년이 넘다 보니 팀장급이 할 일을 하고 있지만 승진도 월급 인상도 없다고 했습니다. 외국인인데다 미등록이고, 대학을 졸업한 것도 아니고,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지 않겠냐는 말에는 씁쓸함이 묻어났습니다. 혹시라도 시비에 휘말렸다가 경찰에 붙들려 쫓겨날까 봐 웬만해서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냥 집과 회사만 쳇바퀴처럼 오갈 뿐 다른 일은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고도 했습니다. 다시 만난 아이들에게 저는 한 없이 미안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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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진정과 권고로 나온 법무부의 체류자격 부여 방안
2019년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권 실태조사>를 통해 저를 포함한 이주아동 네트워크 활동가들은 국내에서 오랫동안 미등록으로 살면서 성장해온 25명의 아동·청소년·청년들을 만났습니다. 그 결과를 보고서로 정리하면서 그중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두 명의 청소년들을 대리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기로 했습니다.
곧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두 아이는 졸업 후 페버처럼 단속되거나 태완처럼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될 터였습니다. 진정 사건을 검토한 국가인권위원회는 2020년 3월, 법무부 장관에게 진정을 제기한 당사자들과 같은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해 적정한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라는 권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미등록 이주아동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 제작을 후원하고,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권 실태조사>에 참여한 아이들과 부모들 일부를 다시 만나 이야기를 정리한 단행본 <있지만 없는 아이들>의 출판을 지원하는 등 법무부가 권고를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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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국가인권위원회 제작 후원 <미등록 이주아동과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다> 영상 캡쳐 / (오)<있지만 없는 아이들>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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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21년 4월, 법무부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해 ‘국내 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이하 구제대책)’을 발표합니다. 국내에서 태어나 15년 이상 체류한 미등록 이주아동 가운데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하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2006년에 한국에서 태어나 만 15세가 된 아스라는 체류자격을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몽골에서 태어나 다섯 살에 한국으로 이주한 태완은 22년도 넘게 한국에서 살았지만 신청 자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구제대책 발표 후 미등록 이주아동 가정에는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태완처럼 국내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 국내에서 태어났지만 아직 15세가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구제대책은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또, 체류자격을 신청하기 위해 부모가 내야 하는 최대 1,800만 원의 범칙금도 체류자격 신청을 가로막는 장벽이었습니다. 저희는 법무부를 만나 구제대책 요건 완화를 요구했습니다.
일 년여의 설득 끝에 2022년 1월, 법무부는 구제대책을 일부 개선한 ‘국내 장기체류 아동 교육권 보장을 위한 체류자격 부여 방안(이하 구제대책 개선안)’을 발표했습니다. 국내에서 태어나지 않아도 6~7년 이상 체류했다면 체류자격을 신청할 수 있게 했고, 부모에 대한 범칙금도 가정 형편에 따라 감경하겠다고 했습니다.
2021년 구제대책 발표 후 약 9개월 동안 체류자격을 신청한 미등록 이주아동은 42명에 불과했지만, 2022년 구제대책 개선안 이후 신청자의 숫자는 크게 늘었습니다. 구제대책으로 체류자격을 부여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몽골로 자진출국 했던 태완도 다시 한국에 돌아와 개선된 구제대책을 통해 체류자격을 받았습니다. 2024년 8월, 구제대책 개선안을 통해 체류자격을 받은 이주아동·청소년, 청년의 숫자는 920명이었고, 12월에는 그 수가 1,000명이 넘었습니다. 그럼 이제 된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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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대책의 연장을 위해 당사자들과 함께 시작한 캠페인
법무부의 구제대책은 처음부터 ‘한시적’이라는 전제를 못 박고 있었습니다. 2021년에 발표된 구제대책은 2025년 2월 28일까지 시행하겠다고 했었고, 2022년의 구제대책 개선안은 2025년 3월 31일을 종료일로 정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를 비롯한 이주아동 네트워크 활동가들은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2024년 말까지 체류자격을 받은 1,000여 명이라는 사람 수가 많다면 많겠지만, 전체 미등록 이주아동의 규모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교육부의 발표로는 외국인등록번호 없이 학적을 생성해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이주아동이 3,200명가량 됩니다. 법무부가 집계하는 19세 이하 미등록 이주민은 2023년 말 기준 6,000명이 넘습니다. 이주아동 네트워크에서 추산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청년의 숫자는 최소 10,000명에서 최대 20,000명입니다. 지난 4년간 아무리 많이 잡아도 30%, 어쩌면 채 10%도 되지 않는 아이들만 체류자격을 갖게 되었을 뿐입니다. 구제대책이 있는지도 모르거나, 알지만 조건이 맞지 않거나, 아니면 부모가 범칙금을 낼 형편이 되지 못하는 아이들은 여전히 미등록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부모가 체류자격을 잃는 바람에 미등록으로 체류하게 되는 아이들은 계속해서 생길 것입니다. 구제대책이 올해 3월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2024년 10월부터 저희는 행복나눔재단으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아 구제대책 개선안의 종료를 저지하고, 체류자격 부여 방안의 상시적 제도화를 위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국회토론회와 법무부 간담회, 기자회견과 온·오프라인 서명운동을 기획하면서, 이주아동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동영상으로 찍어 캠페인 페이지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저는 한 달 동안 전국을 다니면서 여섯 명의 이주아동·청소년·청년들을 만났습니다. 축구선수를 꿈꾸는 고등학교 3학년생 엘빈, 배우가 되고 싶어서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신입생이 된 기프트, 공부가 재미있어 대학원까지 진학하고 싶다는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2학년 블레싱, 이미 부천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전북 김제에 있는 자동차 회사의 연구원으로 취직한 태완. 이 네 명은 법무부의 구제대책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이들이었습니다. 광주에서 대구로 이사하면서 전학을 받아주지 않는 학교들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을 끝으로 학교를 중퇴하게 된 21살 무비나도 만났습니다. 다행히 작년 11월 무비나는 다시 고등학교에 지원했고, 올해 3월 입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바로 체류자격을 신청하기로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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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을 위한 동영상 촬영에 응해준 여섯 명의 이주아동·청소년·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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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은진은 미국에서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살았던 한국인이었습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미등록 이주아동들과 마찬가지로 초·중·고등학교는 다닐 수 있었지만 대학은 갈 수 없었습니다. 은진은 미국에 있는 다른 미등록 청소년들과 함께 DREAM(Development, Relief, and Education for Alien Minors) 법안 통과를 위한 활동에 뛰어들었고, 마침내 2012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오바마가 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라는 행정명령을 발표하게 하였습니다. DACA 덕분에 학업과 취업이 가능해진 은진은 대학에 진학해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차례로 취득한 뒤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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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US DREAM, 우리가 꿈꿀 수 있도록
인터뷰 영상을 찍고 나서 아이들과 저는 캠페인의 제목을 <LET US DREAM>으로 정했습니다. 영상을 찍으면서 제가 만난 엘빈, 기프트, 블레싱, 무비나, 태완 그리고 은진. 그들 모두는 미등록 이주아동이었지만 꿈이 있었고, 본인이 교육받고 성장한 곳에서 그 꿈을 키울 수 있게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기회를 갖게 되었을 때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상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래서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성장한 이들의 삶과 꿈을 이해하게 된다면, 많은 사람이 아직 그 기회를 갖지 못한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지금 이곳에서 꿈을 꾸고 키워나갈 수 있게 응원해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2024년 11월에는 이주아동 당사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LET US DREAM 캠페인의 참여를 호소하며 기자회견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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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6일에 열린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권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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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 페이지의 공개를 앞두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2024년 11월 8일, 저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주아동으로 만났지만 이제는 친구가 된, 제가 이 일을 하는 이유였던 태완이 산재 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태완이 일하던 전북 김제로 내려가, 회사로부터 책임을 통감하는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태완의 시신을 고향인 경기도 군포로 데려와 장례를 치르기까지 38일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태완이 체류자격을 받고, 외국인등록을 하고, 영주권을 따고, 마침내 귀화해서 ‘태완’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주민등록증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 저는 태완 곁에서 함께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태완이 떠나고 난 뒤 저는 무엇을 바라보고 활동해야 할지 마음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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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5일, 전북 김제에 있는 태완의 회사 앞에서 열린 규탄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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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태완과 마지막으로 찍었던 인터뷰 영상이 떠올랐습니다. “구제대책을 알고 나서 처음으로 희망이 보였다”고 말했던 태완은 본인처럼 미등록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동생들, 후배들을 위해 구제대책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태완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한 약속을 이제, 태완은 이루지 못한 그 꿈을 태완 보다 어린 친구들이 이룰 수 있게 돕는 것으로 지키려고 합니다.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나고 자라고 교육받은 이 땅에서 미래를 꿈꾸고 그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LET US DREAM 캠페인에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링크를 눌러 아이들의 인터뷰 영상도 보시고, 서명에 참여해주십시오. 국민의 여론을 수렴해 구제대책의 연장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법무부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미등록 이주아동들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결국, 변화를 만드는 것은 평범한 사회 구성원인 우리 모두의 참여와 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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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 15년째 이주민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인권 옹호 활동을 펼치는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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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블토크 독자 의견함
구독자 분들의 한 마디를 통해 더 나은 콘텐츠를 만들고 있답니다!😉
“너희가 지금 얘기하는 게 세상에 없어. 그런 거 가능하지 않아.”
이 부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마 지금 그런 세상이 없기 때문에, 동물해방물결이라는 단체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그런 세상이 없다면, 만들면 되는 거니까요.
💬 지금은 그런 세상이 없다면, 만들면 되는 거라는 구독자 님의 한 마디가 눈에 들어왔어요.
이렇게 조금씩 혁신을 만드는 분들과 구독자 님처럼 혁신을 응원하는 분들로 인해 사회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것 같아요.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by. 에디터 성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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