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에디터 나비입니다. 최근 전남 고흥을 다녀왔어요.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좋은 사람들도 만났는데 유난히 슬프기도 했어요. 고통은 견딜 수 있는 만큼 주어진다는데 정말 그런 것인지 의문이 들었어요. 버거운 생의 짐을 홀로 짊어진 이들과 그들의 아프고 아름다운 소록도 이야기를 전해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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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반도 끝자락에 소록대교 따라
녹동항은 바다정원, 장어거리, 핫한 카페가 모여 있어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들르는 고흥의 명소입니다. 녹동항 방파제 끝에는 두 개의 등대가 견우와 직녀처럼 마주 서 있고, 그 뒤로 소록대교가 오작교 마냥 넘실대요. 일몰 무렵 풍경이 참 아름답습니다. 소록대교를 따라가면 바로 소록도에 닿습니다. 녹동항에서도 보일만큼 아주 가깝지요. 소록도는 아름답지만 쉽게 아름답다 말하기 주저하게 되고, 소록도는 가깝지만 마음의 거리는 결코 가깝지 않습니다. 그 안에 담긴 애한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곳을 향합니다. 사랑은 아는 만큼 커지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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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지 않아요?!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가 머물렀던 아니 정확히는 갇혀 지낸 곳으로 우리나라 역사에 비극과 슬픔의 공간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소록대교의 개통에서도 알 수 있듯 이제는 다크·헤리티지 투어리즘으로도 조명받아 매해 수많은 사람이 소록도를 찾고 있습니다. 소록도를 간다고 할 때 주변에서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무섭지 않아?' 저도 들었던 얘기거든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록도는 절대 위험한 섬도, 무서운 섬도 아닙니다. 한센병은 치료가 가능하고, 발병률도 낮으며, 전염력도 아주아주 약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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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균이란
호흡기나 피부를 통해 침입한 한센균(Mycobacterium leprae)에 의하여 발병되는 만성감염성 질환으로 피부와 말초신경에 주 병변을 일으키는 면역학적 질환이다. 1873년 노르웨이의 한센(G. A.Hansen)에 의해 발견된 나균(leprae)은 마이코박테리움에 속하는 향산성 간균이다. 한센병은 약물로 치료가 되는 감염병으로 한센병 자체에 대한 치료와 한센병에 의한 후유증에 대한 치료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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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안돼요. 치료 돼요
한센병은 결핵균과 비슷하지만 감염률은 결핵에 비해 매우 낮고, 나균에 대한 면역 기능이 약한 경우만 한센병이 발생한다. 병에 걸렸더라도 2주~2개월 정도 약을 먹으면 타인에게 병을 옮기지 않으며, 대개 5년~ 20년 정도 꾸준히 약을 먹으면 완치된다. 요즘은 의학의 발달로 한센병에 의해 장애가 발생되는 일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소록도 입원자들도 한센병 후유증에 대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_국립소록도병원 '한센정보' 일부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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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 국립소록도병원
소록도는 섬 전체가 국유지로 국립소록도병원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몇 년동안 일반인의 방문을 금하다가 지난 2월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 소록도 중앙공원 등을 개방했습니다. 국립소록도병원은 국내 유일무이한 한센병 전문병원으로 한센병을 앓고 있거나, 앓았던 이들의 치료와 재활, 사회 복귀를 돕고 있어요. 병원 직원과 주민들이 사는 마을 공간은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고, 사진 촬영도 금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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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천국을 위해 나는 지옥에 산다
1933년~1942년 소록도 4대 원장으로 재직한 스오 원장은 환자 위안장으로 쓰인 산책지를 대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을 세우고, 공원 주변에는 벽돌공장을 지었습니다. 주민(한센인)들은 성하지 않은 몸으로 밤낮 벽돌을 굽고 다시 관사, 식량창고, 감시실 등을 짓는 데 동원되었지요. 원장에게 대들면 감시실에 갇혔고, 나온 뒤에는 아이를 가질 수 없도록 단종을 거행했어요. 소록도에서 죽은 한센인은 검시실에서 해부를 당한 뒤 화장당했습니다. 소록도 중앙공원의 붉은 벽돌 건물에 고스란히 남은 역사는 차마 마주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 아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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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의 첫인상은 아름답다는 것이었어요. 한센인 주민들을 가둬둔 섬이 아름답다니 의아했죠. 당시 일본은 문명 일등국을 내세우며 한센병(환자)을 잘 다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를 상징하는 것이 소록도 중앙공원이에요. 근사한 휴양림처럼 보이는 공원은 수려한 정원수와 기암괴석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작은 돌 하나까지 주민들의 피와 땀이 배어있어 눈길 닿는 곳마다 먹먹합니다. 맨손으로 어른 키만한 반석을 옮겨야 했고, 돌에서 손이라도 뗄라치면 매질이 이어졌지요. 내 목숨이 내 목숨 같지 않았던 삶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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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곳에서 쏜 화살
소록도의 절망은 타국의 사람들에서만 비롯되지 않았어요. 광복 이후 자치권을 요구하던 주민 84명이 병원(소록도갱생원) 직원에 의해 학살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뒤인 지난 2001년 유골발굴 작업이 실시되며, 소록도 해안 산책로에는 '애한의 추모비'가 건립되었습니다. 혹시 기억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오마도 간척사업'이요. 1960년대 초 토지와 농토를 약속받고 오마도 간척사업에 온몸으로 뛰어든 소록도 주민들은 정치, 편견에 휘말려 모든 노력이 물거품 되는 결말을 맞봐야 했습니다. 저는 이 사건에서 가장 큰 울분을 느꼈어요. 내 나라, 내 이웃에게 배신당한 것과 다름없었을 테니까요. 성치 않은 몸으로 바다에 돌덩이를 날라 길을 냈던 소록도 주민들의 흑백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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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인 소식을 전해드리자면,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에 따라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위 일련의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조사로 6462명의 피해자를 확인, 지원에 나선 것입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물론 일본 정부의 피해보상에 관한 법 개정도 이뤄져 지난 2021년 4월부터 한센인 가족보상 청구가 진행되고 있고요.
이 세상에 그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란 없지요. 너와 나의 아픔에 기꺼이 공감하는 소록도 여정을 떠나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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