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시린 계절이 빠르게 찾아오고 있어요. 벌써 장식한 트리를 꺼내놓거나 슈톨렌을 홍보하는 가게들이 많네요. 국화빵 트럭이 종종 보일 때쯤 서점에서 “올해의 책” 투표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계시죠? 알라딘 올해의 책 인문‧교양 분야에 세 권의 오월의봄 책이 후보로 선정되었어요.

노동계급 세계사(워킹클래스히스토리 지음, 유강은 옮김)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앨리슨 케이퍼 지음, 이명훈 옮김)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모하메드 아부엘레일 라셰드 지음, 송승연유기훈 옮김)

한 해를 돌아보는 여러분의 기억 속에 오월의봄 책이 쏙쏙 끼워져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레터에는 산책자가 ‘왜 지금 『감정의 문화정치』를 읽어야 하는지’에 관한 글을 남겼고요. 만두맨이 ‘ㅁㅂ’과 함께 다녀온 행사 기록을 담았어요. 곧 출간되는 루이 알튀세르의 『역사에 관한 글들』도 짧게 소개합니다. 참, ‘ㅁㅂ’이 무어냐고요? 아래에서 확인해주세요! 😊⏬

『감정의 문화정치』, 왜 읽어야 할까요?
  🚶‍♂️ 산책자

이스라엘은 어떻게 팔레스타인을 학살하는가

어느 날 산에 갔는데 갑자기 내 앞에 곰이 나타났다고 상상해봅시다. 어떤 감정이 느껴질까요? 공포, 무서움 같은 감정과 함께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겠지요. 하지만 이때 느낀 ‘공포’라는 감정과 ‘도망가야 한다’는 행동은 어떻게 내 안에 형성됐을까요?

『감정의 문화정치』의 지은이 사라 아메드는 우리가 곰을 보고 ‘공포’를 느끼고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문화의 역사와 기억이 우리에게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공포’라는 감정은 원래 곰에게도, 곰을 본 나에게도 내재해 있는 게 아니라 역사적 기억이 그런 감정을 품게 했다는 거죠. 하지만 사실 곰은 ‘그 자체로’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무서운 대상입니다. 곰과 접촉한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수도 있으니까요.

‘곰’ 대신 다른 대상을 한번 적용해봅시다. 그 자리에 흑인, 여성,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동성애자, 팔레스타인 사람 등을 적용해보면 이 대상들은 누군가에게 ‘증오’ ‘공포’ ‘고통’, ‘수치심’ 같은 감정을 일으키게 될 겁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이 그 대상이 되기 쉽지요.

사라 아메드는 이것이 ‘감정의 문화정치’가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증오, 공포, 혐오감, 수치심 등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킨 원인을 사회적 소수자에게서 찾게 만든다고요. 여기에서 이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는 지배 집단은 보이지 않죠. 약자들을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하고는 뒤로 빠지지요. 사라 아메드는 이 때문에 감정의 문화정치가 폭력의 역사와 권력구조를 은폐하고 이 사회의 변화를 막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지금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무차별 살육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도 분명 감정의 문화정치가 작동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극우파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혐오 감정을 퍼뜨리고 이를 자신들의 정권 유지에 활용하죠. 모든 부정적 사태는 팔레스타인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선전하면서요.

 

✓ 세월호이태원 참사, 국가는 어디에?

『감정의 문화정치』를 읽으면 세월호‧이태원 참사에 왜 국가가 보이지 않는지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국가는 왜 책임을 지지 않는 걸까요? 왜 가해자는 보이지 않을까요?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국가가 슬픔에 잠겨 있다’는 말이 들립니다. 이 말을 함과 동시에 국가는 고통받는 몸으로, 상처 입은 대상이 됩니다. 국가가 피해자들의 고통의 자리를 꿰차는 거지요. 국가가 슬퍼하니 너희는 그만 슬퍼해도 된다고 말하며 피해자들과 국민이 슬퍼할 겨를을 주지 않죠. 국가는 ‘우리’가 저지른 일이 아님을, 그래서 ‘사과’할 일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사고’가 아니냐면서요. 피해자들의 고통은 국가의 슬픔에 묻혀 어느새 ‘개인적인 것’으로 변해버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국가는 책임을 지지 않았고, 가해자는 드러나지 않았으며, 우리 사회구조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요. 사라 아메드는 책에서 삶의 터전을 빼앗긴 호주 원주민들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국가가 어떻게 원주민들의 고통을 삭제하고 망각하는지 보여줍니다.

 

✓ 왜 사회는 이다지도 변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왜 이다지도 바뀌지 않을까요? 『감정의 문화정치』를 읽으면 이에 대한 답이 나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도요. 그 답이 궁금하시지요? 꼭 책을 읽어보시고, 그 답을 찾으시면 좋겠습니다. 지면 관계상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옮긴이 시우님의 말을 끝으로 이만 줄입니다. “이 책이 규범적인 각본과 불화하는 이들에게, 살아낼 수 없는 것을 살아내는 이들에게, 변화를 향한 설렘을 간직하는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픈 몸, 행사에 가다
🥟만두맨

2023년 10월 22일
계단을 잘못 디뎌 발목을 접질렀다. 정형외과에서 인대 파열이라는 진단과 함께 반깁스와 목발을 4주간 써야 한다는 처방을 받았다. 문제는 이 주부터 한 주에 한 번씩 빠지기 어려운(빼고 싶지 않은) 행사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인데, 절뚝이며 신세 지며 참여한 몇 가지 행사를 사적으로 기록했다.  

📍2023년 10월 25일

지난 두어 달, 『이것도 제 삶입니다』라는 책을 이날에 맞춰 출간하기 위해 매달려왔다. 이날은 다큐멘터리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의 개봉일이자 개봉 기념 GV가 열리는 날이었고, 이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 책의 저자인 박채영 선생님이기 때문에.

책 작업에 큰 도움을 주신 김보람 감독님,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책에도 주요하게 등장하는 박채영 선생님의 어머니인 박상옥 선생님까지 모두 모이는 데다가, 영화 관객들께도 책을 알릴 수 있는 자리여서 당연히 인사를 드리러 가야 마땅했으나, 다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조금 망설이긴 했다.

심지어 오른발을 다쳐서 운전도 할 수 없었고, 목발 보행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게다가 저녁 행사가 끝나고 파주 집까지는 또 어떻게 간단 말인가. 행사에 동행하는 마케터 모래가 나를 집까지 옮겨(?)준다고 했지만, 모래의 집도 서울인 터라 ‘민폐’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모두가 뜯어말릴 만한 상황. 그런데… 다른 책도 아니고 질병서사를 담은 책을 내고 가는 행산데, 아파서 민폐라는 이유로 안 가는 건 너무 언피시(?)한 거 아닌가? 모…모래, 정말 미안하지만… 신세 좀 집시다!!!

(좌) '두 사람을 위한 식탁' GV 현장,  (우) 행사는 잘 마쳤으나 아이파크몰 주차장 미로에 갇혀 30분 넘게 헤매는 길

📍2023년 11월 3일

오월의봄 구성원 모두(안식휴가 중인 ‘캠퍼’ 포함)가 모이는 자리였다. 『우리에겐 비빌 언덕이 필요해』의 저자, ‘’의 대표 최정은 선생님이 식사를 준비해주시겠노라 초대해주신 귀한 자리. 책의 담당자인 편독자의 차에 실려온 후 내려져(?) 목발을 짚고 사진으로만 봤던 ‘비덕 살롱’에 들어섰다.  

이미 그 안의 공기에는 맛있는 분자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모두 모여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선생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 보이는 주방과 아름다운 집기들을 살피며 수다를 떨고 있자니 얼마 후 선생님이 직접 옻칠하신 소반 위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아름다운 밥상이 차려졌다.

모든 메뉴는 비건식이었다. 괜히 비건인 구성원이 마음을 쓸까 고려해 비건/비(非)비건의 구분 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메뉴로 구성해주셨다. 연근 단감 샐러드, 들깨 부추 조랭이떡 볶음, 빵가루를 입힌 애호박전, 오이지무침, 고추장 매실장아찌, 총각무 김치, 채소구이(여기서 압권은 육즙을 살린 양송이였다), 시금치 톳 된장국, 오분도미 현미밥. 그리고 모든 반찬은 다 각기 다른 접시에 아름답게 담겨 나왔더랬다(후식으로는 금귤정과를 내주셨는데, 선생님, 이거 보석 아닌가요…? 아까워서 못 먹겠다 싶었던 마음이 무색하게 입안에서 터지는 상큼함에 계속 이어 먹고 말았다).  

누군가에게 이런 ‘대접’을 받아본 게 언제였을까? 70년간 ‘윙’을 이어온 힘은 이런 것이었을까. 이런 음식을 먹고 나면 뒷배가 생긴 기분일 거야. 서로가 서로의 ‘비빌 언덕’이 되어줄 힘은 이런 데서 나오겠지. 동료들의 차에 실려 오가고, 누군가가 마음을 다해서 꾸려준 밥을 먹고, 단단히 신세를 지고 났더니 목발을 짚는 팔에 힘이 실리는 걸 느꼈다.

(좌) 아름다운 소반 위의 푸짐한 음식들 ,  (우) 보석 같은 금귤정과와 차

📍2023년 11월 9일

발목 부상 3주 차, 이번의 일정은 『어쩌다 유교걸』의 북토크였다. 장소는 망원동의 독립서점 ‘이후북스’, 위험 요인은 날씨. 파주 사무실에서 출발하기 직전 비가 오기 시작해 당황했으나(양손에 목발을 짚으면 우산은 어떻게 쓰지?), 다행히 망원동에 도착했을 땐 비가 그쳤다.

‘음양’을 새롭게 독해낼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던 흥미로운 북토크의 마무리에, 간단한 저자 사인회가 있었다. 선생님이 독자들께 무슨 글귀를 써드릴지 궁금했는데, 유교걸답게, 선생님은 귀여운 책 읽는 고양이 도장과 함께 “충서(忠恕)와 함께하는 나날”을 기원해주셨다. 자기 진실성과 상호성이라니. 목발을 짚고 절뚝이며 의탁하며 살아온 지난 3주가 겹치는 순간이었다.

북토크가 끝나고 늦은 밤 또다시 나를 집까지 실어다준 모래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호박고구마 한 상자를 보냈다. 집중적으로 주변에 신세를 진 건 더 갚을 날이 있을 터다. 도움도 잘 받는 연습이 필요하고, 잘 갚는 건 말할 것도 없겠으나 ‘구멍’을 메우는 다른 방법은 실상 없다는 걸 절절히 깨닫는 요즘이다.      

(좌) 『어쩌다 유교걸』 북토크를 준비하며 나란히 앉은 만두맨과 김고은 선생님 ,  (우) 모래에게 잘 전달된 ‘호구마’

역사에 관한 글들: 비-역사의 조건으로부터 역사의 조건으로』

루이 알튀세르 지음 배세진·이찬선 옮김 진태원 해제 

인간의 역사는 어떠한 조건에서 존재하는가?”

 

굳게 닫힌 서랍 속에서

다시 꺼내진 유고들이 보여주는 역사, 그리고 비-역사의 조건

 

역사의 가능 조건들을 그 마지막 피난처까지 밀어붙인

알튀세르의 비-역사적, 비-현재적 사유의 궤적들


“이론적, 정치적 등등의 우리가 알 수 없는 무수한 이유들로 인해 결과들로 태어나지 못하고 유산되어 그의 서랍 속으로 들어갔던,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비-역사를 이루는 텍스트들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일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그것이 알튀세르는 물론 우리 자신에 대한 인정의 형태가 아닌, 비-역사적 조건들로부터 역사의 조건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시대착오적인 여행일 것이며,

이를 통해 역설적이게도 알튀세르의 현재성이 증명될 것이다.”

ㅡ「옮긴이의 말」 중에서


『망설이는 사랑』 북클럽 '사랑이라는 치열한 일'
with 안희제 작가
  
안희제 저자와 함께하는 『망설이는 사랑』 북클럽이 열립니다. 이번에는 소규모의 형태 북클럽으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북토크보다는 조금 더 서로의 이야기를 긴밀히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일까?’라는 주제로 각자가 경험한 ‘망설이는 사랑’을 나누고, 사랑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인지, 다른 사람의 언어로 만나는 사랑이란 무엇인지 이야기를 보태주실 독자분들을 기다립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일지도 몰라요!

일시: 2023년 11월 16일(목) 오후 7시
장소: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플랫폼P 2층 소강의실
인원: 12명
참가비: 10,000원
참가 신청: 입금 후 구글폼 작성(아래 북토크 신청 버튼 클릭!)
입금 계좌: 국민은행 657401-04-012406 박재영

*참여자분들께는 오월의봄에서 북클럽 사전 질문지(링크)를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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