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과 재원의 대화

☕️ 어색한 사이

어쩌면 조금 다른 사람들의
색깔있는 대화



<어색한 사이>는 모어데즈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단체가 협업해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페미니즘이 낯선 사람을 추천받아 페미니즘 활동가가 직접 만나러 갔어요. 어색한 사이, 차를 마시며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요? <어색한 사이>는 어느 금요일 깜짝 레터로 찾아옵니다.


이번 레터에선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단체 한 활동가와 사려 깊은 배려심을 가진 재원님(가명)의 대화를 전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고

단정 짓는 건

오만이 아닐까요?”

☕️ 이 자리에 나오게 된 이유



한   자기소개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재원   저는 재원라고 하고요. AI 벤처 스타트업에서 연구원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가 게시글을 인스타로 포워딩 해 주더라고요. 그거를 보고 신청을 하게 됐습니다.

한   근데 아무리 애인이 보내줘도 안 할 수도 있잖아요.

재원   평소에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의 실체가 전부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 왔어요.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지 않고 단정 짓는 거는 좀 오만이 아닐까 싶어서 좋은 기회도 있고 하니까 한번 알아보자 싶어서 신청하게 됐죠.

한   그럼 애인 분과 이런 이야기를 예전에도 해보신 적 있으세요? 


재원   저는 내가 생각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지금은 맞을 수 있겠으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때로 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생각하고 보는 것과 다른 사람과는 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애인과는 이 활동이나 페미니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본 적이 없어요.

한   저는 완전 문과거든요. 그래서 이공계열 분들을 만난 적이 별로 없었는데 되게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비판의 가능성에 열려있고 내가 틀렸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 생각보다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그러면 재원님께서 생각하시는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좀 궁금해요.

재원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에 깔려 있는 여성에 대한 좋지 않은 시각들 그리고 여성의 활동에 대한 제약 그런 거를 타파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주변에서 들리는 페미니즘은 제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때가 좀 있죠. 방법에 있어서도 굳이 저런 방법 말고도 좋은 방법이 많고 사람들을 설득시키고자 한다면 다른 선택이 좋을 것 같은데 왜 저렇게 할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한   그러면 이런 궁금증이나 문제점 같은 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더 있으실까요?

재원   거의 없죠. 갑자기 직장에서 “그거 알아?” 이렇게 할 수 없잖아요. 야근을 많이 하더니 미쳤나 하는 이런 소리 듣겠죠. (웃음) 제 주변에 남성분들이 많아요. 그 사이에서는 정치적 견해나 이슈를 잘 밝히지 않는데, 더 뜨거운 감자인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꺼내기는 굉장히 어렵죠.



“저의 무지가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까요”

☕️ 가까운 사이에서도 페미니즘을 이야기하지 못했던 이유



한   혹시 애인이나 주변 분들과도 이런 이야기를 안 하게 되신 이유나 계기가 있을까요?

재원   일단은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랑 제가 현재 관찰하고 있는 것하고 거리가 있기도 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과 알고 있는 사실이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이 상태에서 얘기하는 게 애매하다고 생각했어요. 저의 무지로 하여금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상대의 정보에 압도당해서 내가 생각하거나 정리하고 있는 것들이 되게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이 되는 상황이랄까요. 내가 모르는 걸 저 사람이 알 수도 있고 반대일 수도 있죠. 이 불균형에서 서로 토론이 되면 좋죠. 근데 막상 그게 쉽지가 않다 보니… 그래서 제가 그래서 이런 이야기 나누는 거를 피해 왔던 것 같아요.

한    저도 너무 가까운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싸우게 되더라고요. 감정이 격해지는 것도 있고. 오히려 한 번 보고 말 사람한테 마음이 더 열리기도 하는 것 같아요. 여행지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쓸데없는 얘기도 하는 것처럼요. 어쩌면 면 이런 시간과 자리가 우리한테 더 필요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드네요.



“왜 그렇게 강하고 세게

이야기하나요?”

☕️ 궁금하고 헷갈렸던 페미니즘 이야기



한   평소 페미니즘에 대해서 들었던 것 중에 ‘이거 왜 그러는 거야’,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 하는 게 있으면 제가 아는 선에서 같이 한번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재원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 일부, 더 큰 목소리를 내시는 분 중에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뜨거운 이슈를 가지고 강하고 자극적이게 얘기를 하는 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운동을 하자는 그 본질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개척하기에 어렵지 않나 해서 그게 좀 저는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한   사실 저도 가장 고민인 게 그거였어요. 강렬하고 자극적인 게 사람들한테 많이 보이잖아요. 그런 모습들이 보일 때마다 이런 게 자꾸 더 많이 이렇게 보이는 것 같다는 속상한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주변에 이야기할 때는 사실 모든 운동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정규 분포표를 보면 양극단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운데 있죠. 운동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근데 이 스펙트럼 안에서 사회가 주목하고 조명하는 건 가운데가 아니라 항상 가장 핫한 것을 이렇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나 흐름이나 대부분의 생각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말씀드리면서 동시에 그래서 우리가 운동을 바라볼 때 다양한 부류가 있고 일부만 보면서 비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해요.

 

재원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기도 한 게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가치관을 지향해서 활동하는 게 아니기도 하니까요. 다름도 인정해야죠. 

 

한   그게 민주주의죠. 그리고 개인적으로 제 주변 친구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나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왜 이렇게 뾰족하게 얘기하지? 근데 걔네들은 이미 같은 질문을 한 3만 번쯤 들은 거예요. 그러니까 “네가 좀 알아봐”라고 뾰족하게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는 싸우기도 많이 싸웠는데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사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페미니즘 이슈를 다 알 수는 없잖아요. 근데 그걸 계속 대답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건 꽤 스트레스받는 일이었겠다고 이제는 좀 해석할 수 있게 됐어요. 

 

재원   이제는 그냥 그렇게 좀 받아들이게 됐어요. 말씀하셨다시피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서로 얘기하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니까. 뾰족하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이런 사람들이 다수가 아닌 것에 안도하고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요.

 


“경찰 뽑을 때,

남녀 공동으로

체력 검정하는 거요”

☕️ 차이를 둘러싸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한  또 혹시 이건 좀 이해가 안 가더라 하시는 거 있으실까요?

재원  지금 떠오르는 건 경찰 뽑을 때, 남녀 공동으로 체력 검정 하는거요. 제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예전에는 왜 그렇게 안 했을까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어요.

한   그게 아직 페미니즘 영역에서도 논쟁이 많아요. 이분법적으로 아주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우리 차이 없어”가 있고 또 “우리가 차이 있어 근데 이 차이를 인정하고 이야기해야 해”라고 말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진실은 이 둘 사이 어딘가쯤에 있겠지 정도로 생각하거든요. 애 낳고 못 낳는 것 같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차이도 있는데 그걸 가지고 어떤 능력이나 어떤 역할의 차이로까지 두는 것이 맞냐 그르냐에 대한 논쟁인 것 같아요. 여경이나 여군과 관련해서 그 역할의 차이를 두는 것이 과연 정말 그렇게까지 필요한가에 회의적인 입장인 것 같아요. 인간의 능력과 특성은 개인마다 다르니 여성과 남성으로 뚝 잘라서 다르게 하는 게 아니라 능력 있는 모두가 선택할 수 있게끔 하고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차이가 있다면 저는 이 차이는 사회의 합의와 발전 그리고 과학으로 보완할 수 있다 주의에요. 삼단봉이나 총이 그래서 있는 거잖아요?

재원   처음부터 기준을 두고 남자든 여자든 그 기준을 넘어야 한다는 식으로 그렇게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이 드네요. 그런 식으로 접근했으면 우리 사회가 더 매끄럽게 돌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한   그래서 지금은 되게 실무적으로 바뀌었더라고요. 오르내리기, 담 넘기, 마네킹 이렇게 옮기기. 이렇게 했을 때 공정함에 대한 우리의 기대도 만족하고 차별을 하는 것 같다는 것에 대한 감각도 좀 내려갈 수 있는 것 같아서 저는 지금의 변화는 좀 좋은 것 같아요.

 

재원   그런 식으로 바꿔 나가면 좀 더 평등하고 또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해요.

한   저도 일단 그래서 터놓고 섞어야 된다 주의자거든요. 제가 군대에 강의를 가요. 부사관, 장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데 예전에는 여성들이 거의 없었잖아요. 지금은 한 10% 정도 됐거든요. 그러니까 여성 군인들이 전방으로 배치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예전에는 전방에 여자 화장실 자체가 없었어요.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거죠. 근데 이제 여성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준비하고 또 섞이면서 알게 되는 거예요. ‘여성들이 저럴 줄 알았는데 이러네 여성들이 다 이럴 줄 알았는데 저렇게 하네.’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습득하게 되니까 갈등도 당연히 생기죠. 처음에는 그런 것들을 조율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변화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필요한 것 같아요.

재원   초반에 갈등은 없을 수 없죠. 뭐든지 처음 하는 것에 있어서 잡음이 없는 것도 그거 나름대로 이상한 거니까



“울지 않는다?

무의식중에 깔려 있어요”

☕️ 남성들의 감정 표현에 대해서



한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남성이시잖아요. 남성성이나 남자다움에 대한 고민이나 어려움은 없으셨을까요?

재원  예를 들면 울지 않는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긴 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좀 사회에서 굵어가고 사람의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이 당연한 거니까, 남성이기 때문에 감정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있지는 않았어요.

한   근데 그게 무의식중에 깔려 있는 게 제가 슬픈데 눈물이 안 나는 거예요. 충분히 슬퍼할 만한 상황인데 왜 그런건지를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알아차리게 됐던 것 같아요. 내가 너무 울어버릇하지 않아서 이제 우는 법을 잃어버린 건 아니었을까. 


재원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어요.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도 어떻게 보면 그 상황에 대한 방어기제가 아닐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게 너무 되게 큰 거예요. 그게 감정 표현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상실에 대한 황망함으로 다가왔어요. 그게 굉장히 고통스러워서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에 당시에는 좀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눈물이 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한   저는 어렸을 때 감정의 기복도 컸거든요. 눈물도 많이 흘리고. 이사도 많이 다니면서 전학 갈 때마다 힘들고 슬퍼했는데 그런 것을 숨겨 버릇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제가 되게 무뚝뚝해져 있는 거예요. 그게 한편으로는 좋기도 했어요. 감정 기복이 있으면 쉽지 않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고. 그래서 이렇게 변한 게 좋았는데 한 번은 사랑하는 친구랑 이별했는데 집에 와서 세면대에 물을 틀어 놓고 혼자 울고 있는 거예요. 혼자 살고 있는데 왜 이러지 이런 생각도 들고 결국 이렇게 고장 난 것들이 나를 힘들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나중에 좀 했던 것 같아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개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사회 운동이거나 페미니즘이거나 성평등과 관련한 목소리라고 저는 생각해요.



“친구들과

목적 없는 전화,

한 적 있나요?”

☕️ 남성들 사이의 관계와 돌봄



한    재원 님께서는 요새 하고 계신 고민이나 이런 건 없으세요?

재원   친구 관계를 둘러싼 고민이 있어요. 1월 초에 친구들하고 한 3박 4일 정도 여행을 갔는데 근데 예전만큼 그렇게 재밌지가 않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막 재미있지도 않고 사이가 서먹해진 느낌. 얘기하는 콘텐츠도 그렇고 뭔가 분위기도 예전 같지가 않더라고요.

한    생애 주기가 변하니까 그런 것도 있는 것 같긴 하거든요. 근데 제 여성 애인이 이 생애 주기를 겪은 친구예요. 당연히 비슷한 경험을 했죠. 애들이 생기고 결혼하고 멀어지고. 그래도 새로운 관계를 잘 만들거나 새로운 사람들과 연락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는 스타일이더라고요. 그런데 전 잘 연락 안 하거든요. 상상만 해도 낯간지러운 느낌이에요. 친구한테 용건없는 전화해 보신 적 있으세요? 저는 돌이켜 보니까 거의 없는 거예요. 늘 어떤 목적이 있었어요. 언제 보자 아니면 게임하자. 많은 남성들이 목적이 있으면 만나는데 목적이 없으면 만나지 않는다는 거에요. 저는 요새 개인 인생 프로젝트가 친구의 더 저변을 더 넓혀보자는 거예요.

재원   근데 정말 친했던 친구들하고도 멀어졌다고 느끼는데 다른 사람들하고는 어떻게 될까요?

한   맞아요. 어차피 붙잡아도 떠날 사람은 떠나긴 떠나는데 최소한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 목적이거든요. 왜 자꾸 우리가 멀어질까를 생각하면 남성 친구들 사이에 그 공통 주제가 많지 않은 것 같다는 고민을 개인적으로 했어요. 맨날 하는 이야기가 옛날얘기, 군대나 주식 또는 건강 얘기 정도예요. 그래서 취미 생활이 필요하고 더 중요해질 거고 서로를 돌봐주고 챙겨주는 거 생각보다 더 중요해, 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요새 친구들 만날 때 먹을 거라도 나눠준다던가 뭐 선물이라도 좀 준비해요. 저희 여자친구들 모임을 가보면 항상 먹을 게 많더라고요.



“채용 질문에

임신 예정을 묻는 게 있더라고요”

☕️ 부당한 일에 목소리 낸 경험



재원   제가 회사에서 연구 개발과 함께 인사 쪽을 총괄하고 있거든요. 여성분을 채용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질문지에 임신 예정인지를 묻는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거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갈등이 있었던 적이 꽤 있어요. 이거는 직무하고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 아닐뿐더러 물어보는 것 자체가 아주 문제잖아요. 그런데 이거를 굳이 넣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분이 있더라고요. 이거를 어떻게 하면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이한   너무 현실적인 고민이네요. 스타트업이나 많은 기업들에서 고민하는 주제인 것 같아요. 한 명이 육아휴직을 쓴다든가 출산 휴가를 갔을 때 그 일 부담을 어떻게 하지에 대해서 다들 고민이 많잖아요.

재원   그나마 다행인 거는 제가 사번이 1번이거든요. 그래서 비공식적으로 근로자 대표니까 다음 회의할 때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취업 규칙이라든지 사내 내규, 인사 규정이라든가 그런 것들에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했어요. 근데 이제 만들어는 놨는데, 어쨌든 간에 이걸 쓰는 건 사람이잖아요. 진짜 어떻게 하면 변화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이 취업 규칙에 있는 내용이 내규로 들어가게 되고 이게 나중에 다른 온보딩 되는 자료에도 들어가나 봐요. 육아휴직이나 출산 휴가와 관련한 내용은 복지혜택 중에서도 가장 잘 보이는 데다가 배치를 해놨어요.

이한   이런 이야기가 너무 하고 중요한 것 같아요. 이렇게 고민을 하는 분이 있어야 조직 안에서 이  이야기를 더 꺼낼 수 있는 분위기나 문화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분명 각자의 자리에서 이런 것에 대해서 관심을 이야기하거나 실천하고 계신 게 있는데 다들 되게 겸손하세요. 이건 좀 드러내고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도 애인 분과 함께 나눠보셔도 되게 좋은 주제일 것 같은데요? 더 잘 공감하거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재원  안 그래도 이야기하면서 이런 얘기를 같이 해봐야지 라고 생각했어요. 이 자리가 어떻게 또 그렇게 또 이어지게 되면 좋겠네요.



“롤모델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 여성들이 느끼는 차별의 감각 앞에서



이한   제 주변에서 많은 여성 친구들 고민이 그거였어요. 롤모델이 없다. 사실 마흔 정도면 회사에서 허리잖아요. 근데 이제 보고 배울 수 있는 50대 혹은 이제 40대 중후반의 선배가 있어야 나도 커리어를 쌓는데 그게 안 되니까 거기에서 많이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재원   보고 배울 수 있을 만한 롤모델이 회사에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들이 남을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회사에도 이득이에요. 요즘 리텐션이라고 사람이 회사를 떠나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는지를 꼭 보거든요. 회사 입장에서도 좋은 사람이 더 오래 남아 있는 게 좋잖아요. 그런 구조를 만드는 거죠.

이한   기업 입장에서 좋은 게 있다면 선택하는 게 기업의 생리잖아요. 그렇다면 그걸 기업에만 맡길 게 아니라 나라에서 조금 더 육아휴직을 잘 주고 육아휴직에 따른 수당도 회사에 더 빵빵하게 챙겨줄 수 있도록 하면 좋지 않을까 해요. 제 주변에는 작게 3~4명이 일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 친구들은 여성을 뽑아요. 왜냐하면 여성을 많이 뽑으면 여성 기업 대상 지원받을 수 있거든요. 그 안에서 육아휴직, 출산 휴가 쓰는 직원도 생기겠지만 그럼 또 거기에 여성들을 뽑게 되고 선순환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정말로 출산율을 0을 찍을 게 아니라면 이런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재원   정책이라는 것은 국민이 선택한 선출직 권력이잖아요. 그 사람 귀에 들어가려면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게 만들어야겠죠.

이한   맞아요. 그래서 여성운동에서 세력화, 조직화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아시겠지만,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규합하는 게 쉽지 않죠 (웃음)



“페미니즘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경험 같아요”

☕️ 주변을 이해하고 세계관을 넓히기 위해



이한   혹시 저희가 조금 더 했으면 좋겠는 활동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재원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은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하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잖아요. 저는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게 ‘여성 이야기구나’하는 벽이 있다고 느껴요. 근데 여성의 이야기가 여성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잖아요. 한 사람으로서 인본주의적인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그래서 보편적인 남성들한테 페미니즘의 이야기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하는 것으로 전달되면 좋지 않을까 해요.

이한   페미니즘 운동에서도 페미니즘 고수파가 있어서 이 명칭과 언어를 써야 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건 그냥 용어가 아니라 역사성이 있는 말이니까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죠. 근데 우리끼리만 아는 건 약하니까 저변을 넓히는 활동을 해야 해.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죠. 저희도 이 두 지점을 왔다갔다 해요. 저희가 단체명에 ‘페미니즘’을 넣는 건 전자의 마음인 거고 또 ‘애증’이나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뷰티 세미나’ 같은 모임 활동을 여는 건 저변을 넓히고 싶은 마음이었죠. 근데 어쨌든 저는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인권 지키자. 차별하지 말자.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폭력을 저지르지 말자.

재원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어떤 인식과 사고를 바꿀 수 있는 것을 조금씩 스며들게 하는 그런 것도 필요하고 한편으로는 강력한 단어 역동성을 가진 그런 키워드, 문제들을 가지고 한 번에 때릴 수 있는 그런 것도 필요하죠. 적재적소에 잘 쓰는 그런 지혜가 필요할 것 같아요.

이한   맨날 하는 이야기지만 이게 하루이틀 만에 바뀌는 거 아니잖아요. 10년, 100년 계속 해야 하니까 오래오래 길게 해야죠. 


재원   오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많이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한   감사합니다. 저는 페미니즘 이슈가 하나의 언어가 늘어나는 거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젠더라는 언어가 하나 더 생기면 주변에 있는 애인, 가족, 동료를 이해할 수 있고 세계관도 넓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계속 관심 많이 가져주세요!



💬 한의 코멘트

재원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흥미로웠던 지점 중의 하나는 많은 분들이 너무 가까운 사이라서 더욱 이런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한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막상 제가 재원님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는 애인 분과 대화를 나눠보면 훨씬 더 깊은 소통이 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실제로 대화하다가 이 주제의 이야기를 애인분과도 함께 나눠보면 어떨지 제안드렸을 때 되게 기뻐하시기도 했었고요. 대화하고 지금 꽤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두 분이 어떤 대화를 나누셨는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또 어쩌면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도와줄 시간이나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도 계속 조금씩 그 기회를 넓혀 나가 봐야겠어요!



💬 무수의 코멘트

재원님이 조직에서 채용에 관한 부당한 질문에 대해 문제제기한 지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주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페미니즘과 여전히 존재하는 거리감이 저에겐 신선하기도 했네요. 한 존재의 복잡다단함과 다채로움을 느껴요. 재원님은 페미니즘이 ‘여성 이야기’라고 느끼며 벽을 마주한다고 하면서도, 여성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이야기로 전달되면 좋지 않을까 말했어요. 제가 바라는 것 역시 그것인데요. 한편 젠더차별과 폭력에 대해 젠더를 언급하지 않고 말하기는 가능한가? 어디까지 가닿을 수 있나 질문이 들어요. 이 물음을 같이 품고 마주해주길 진심으로 바라요. 거칠고 뾰족하게 여성이라는 젠더가 앞에 있더라도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닌 한 존재의 고통이 담긴 이야기라 읽어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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