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고단한 10년을 뒤로하고
세월호 참사 때, 구명조끼로 서로를 묶은 채 발견돼 물 위로 올라왔던 학생들을 기억하시나요?

이 학생들을 뭍으로 끌어올린 잠수사가 지난 9월 2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빈소는 11월에야 차려졌는데,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오늘은 그의 부고를 전합니다.
"이젠 아이들이 당신을 지켜 주길"
2024. 11. 4. 이예슬·배시은 기자
"아이고, 내 새끼 불쌍해라! 우린 어떡하니…."

경기 화성시 함백산장례식장 1층에 차려진 세월호 민간잠수사 고 한재명씨(49)의 빈소에 4일 오전 7시쯤 통곡소리가 흘렀다. 백발 노모가 쓰러질 듯 벽에 기대어 오열하는 모습에 담담히 빈소를 지키던 다른 유족들도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훔쳤다.

"제발 좋은 곳으로 가라." 전날부터 빈소를 지킨 동료 잠수사들도 한씨에게 마지막 절을 올렸다. 이들은 한씨의 영정 앞에서 쉽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제는 편히 쉬어."

한씨 유해는 4일 함백산추모공원에 안치됐다. 동료 잠수사들이 한씨의 관을 화장장으로 옮기며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화장장에 다다르자 한씨의 아내가 쓰러지듯 관을 껴안고 흐느꼈다.
고 한재명 잠수사. 2014년 세월호 참사 실종자 수색에 참여했고 지난 9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4.16연대 웹사이트 갈무리
한씨의 죽음이 안타까움을 더한 건 그가 먼 타국에서 숨지고도 한달여 동안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타국에 머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한씨는 지난 7월 23일 이라크 공사 현장으로 출국했다. 세월호 잠수구조 작업으로 앓게 된 정신적 고통과 골괴사(혈액 공급이 되지 않아 뼈조직이 죽어가는 질환)로 잠수사 일을 그만뒀지만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그를 다시 잠수작업이 필요한 공사현장으로 가게 했다.

하지만 다시 마주한 바다는 그를 영영 데려가 버렸다. 한씨는 이라크에서 첫 잠수를 한 지 약 두달 뒤인 지난 9월 25일 숨졌다. 공사업체 측은 "한씨가 잠수를 마치고 올라온 뒤 쓰러져 사망했다"고 유족에게 설명했다고 한다.

황망한 소식을 접한 아내가 홀로 이라크로 가서 남편의 시신을 확인했다. 그러나 한씨는 한국으로 바로 돌아오지 못했다. 현지 사정으로 인해 한씨의 시신은 한달여 늦어진 끝에 돌아왔고 지난 2일 빈소가 차려졌다.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부근 사고 해상에서 2014년 4월 17일 해경과 해군이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김영민 기자
한사코 갔다, 참사현장에

2014년 세월호 참사는 한씨 인생의 항로를 바꾼 사건이었다. 민간잠수사였던 그는 참사 소식을 듣자마자 현장으로 뛰어갔다. 당시 서른아홉, 결혼을 한 달 앞둔 늦깎이 예비신랑이었다. "가지 말라"는 신부의 호소를 뒤로 하고 맹골수도로 뛰어들었다.

한씨는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 같은 교복을 입은 한 반 친구들의 시신을 직접 건져올렸다. 그 중엔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구명조끼 끈으로 서로를 묶은 아이들도 있었다. 세월호 잠수사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 <나는 세월호 잠수사다>에서 한씨는 "묶인 끈을 잘라낼 때마다 생이별을 시키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지난 4월 참사가 10년을 맞았지만 한씨는 여전히 세월호를 떠나지 못했다고 한다.

동료들은 한씨가 10년 전 그 날들을 잊지 못하고 괴로워했다고 전했다. 실종자 수습을 함께 했던 동료 A씨는 "한씨도 저도 서로 엮인 시신들을 풀어 안고 나올 때가 가장 힘들었다"며 "술을 마시면 한씨가 그때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세월호 잠수사 황병주씨(65)는 "반년 전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도 아직 많이 힘들다고 얘기했었다"고 했다.
지난 4월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식’이 열렸다. 한수빈 기자
세월호 참사를 넘어왔지만 현실의 삶은 더 고달팠다. 잠수사 일을 그만두고 참치집을 운영하는 등 생계를 위해 여러 일을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A씨는 "이라크로 가기 전에도 잠깐씩 국내에서 잠수사 일을 했다"며 "국내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보니 생계를 위해 해외로 나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동료 잠수사들은 "여전히 세월호 잠수사는 국내에서 일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잠수병이나 트라우마 등 10년 전 세월호에서 입은 상흔은 일자리에서 환영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한씨는 '잘 살아보자'는 의지가 강했다. A씨는 "한씨가 참치집을 할 때도 정말 열심히 하고 뭐든지 열심히 했다"며 "정신과 입원 치료도 받고 살아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빈소를 찾은 이들은 생전 한씨의 따뜻함과 책임감을 떠올리며 명복을 빌었다. 황씨는 "여리고 따뜻한 사람이었고 나를 잘 따라주는 동생이었다"며 "이제는 고통받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A씨는 "세월호 구조·수습 당시 힘들어 하면서도 다이빙을 할 때면 습관처럼 '아이들이 저를 지켜주겠죠. 뭐'라고 말하곤 했다"며 "너무 고생했으니 거기서는 편했으면 한다"고 했다.

한씨 등 세월호 잠수사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로그북>의 복진오 감독은 '한씨는 어떤 사람이었냐'는 질문에 아무 말 없이 한씨가 실종자를 수습할 당시 적은 일기를 보여줬다.
고 한재명씨가 세월호 실종자 수습 당시 적었던 일기. 복진오 감독 제공.
일기에는 피맺힌 심정으로 자신의 입을 바라보는 유족에게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야 하는 괴로움이 담겨있었다. "저편에 열 명 돼 보이는 실종자 가족이 보인다.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들의 충혈된 애타는 눈빛을 보니 내 눈시울도 젖어온다. 어찌 얘기를 해야 될런지." 이제 한씨는 현실의 아픔을 뒤로 하고 다시 바다로, 아이들 곁으로 돌아갔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민간 잠수사들은 세월호 참사 당시, '전원구조' 보도가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사적 연락망을 가동합니다. 가야 할 의무는 없었지만 너도나도 모입니다.

현장에 가보니 작업은 '구조'가 아니라 이미 '시신 인양'입니다. 잠수사들은 현장 상황이 너무 다급하다며 아는 잠수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유족들의 눈빛을 보면 안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해경들은 자신들도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걸 안다면서도 다칠 경우 치료비는 국가에서 다 지원할 테니 들어가 달라고 했다." (배상웅 잠수사의 )

이들이 이후 10년 간 겪은 일은 국가가 '의인'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수색 작업 중 고 이광욱 잠수사가 숨지자, 검찰은 엉뚱하게도 민간 잠수사 가운데 선임이던 공우영씨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작업의 지휘 책임은 해양경찰에 있는데도요.

'무죄'라는 법원의 최종 판결(2017년 1월)때까지 공 잠수사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벗으려 애써야 했습니다. 

2016년 6월 17일에는 세월호 진상 규명에 앞장선 고 김관홍 잠수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잠수병을 얻어 생계가 곤란해져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잇던 중이었어요.

잠수사들은 작업 현장에서 얻은 몸과 마음의 병을 평생 가져가야 합니다. 하지만 국가의 지원은 불충분했어요. 어렵게 지원 제도를 만들었지만 문턱은 높았고, 시간이 지나며 되레 높아지기도 했어요.

한재명 잠수사가 앓던 골괴사는 세월호 작업 참여 잠수사들에게서 흔한 중병입니다. 고압 환경에서 오래 일하다 뼈에 피가 안 통해 생기는 질환이에요. 

한재명 잠수사의 지난 3월 인터뷰를 보면, 2023년 3월부터 정부의 치료비 지원이 끊겼다고 합니다.

올해 4월 경향신문 인터뷰를 보면, 다른 잠수사들도 제대로 지원을 못 받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세월호는 산업 현장이 아니다"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아서 인정이 불가하다"고 했답니다.

그럼에도 잠수사들은 세월호 작업에 참여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시 선택의 순간이 와도 같은 결정을 할 거라고요.

이제는 물어볼 수 없게 됐지만, 한재명 잠수사도 같은 답을 하지 않았을까요. 참사 이후 그는 차에 항상 수상구조 장비를 가지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태원 참사 후에는 심장 제세동기까지 구매했대요.

이제라도 정부가 사람을 구하다 몸과 마음을 다친 잠수사들을 제대로 지원하기를 바랍니다. 고 한재명 잠수사님의 안식을 기원합니다. 
1.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실종자 구조·수습 작업을 했던 민간잠수사 한재명씨가 지난 9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49세.
2. 세월호 현장에서 얻은 중병으로 국내서 생계를 잇기 어려웠던 그는 이라크의 산업 현장에 가서 일을 하다 숨을 거뒀다.
3. 의지와 책임감이 강하고 따뜻한 사람. 잘 아는 이들은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한다고 밝혔습니다. 금투세를 전제로 증권거래세율도 깎아주기로 했는데, 세수는 괜찮은 걸까요?
이번엔 '히든 해리스'입니다. 박빙의 미국 대선 결과를 좌우할 이 그룹은 어떤 이들일까요? 민주당이 이 그룹을 겨냥해 만든 광고도 흥미롭습니다.
웃음이 터지느냐, 불쾌감만 남느냐. 코미디의 성패를 가르는 '한끗 차이'는 어디서 나는 걸까요. <코미디 리벤지>의 권해봄 PD에게 물었더니 'OO의 미학'이라고 답했다네요.
국내 최초로 온라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노동조합이 출범했습니다. 출범식도 화상회의로 열었어요. 조합비는 '월 5000원 이상'. 누구나 익명으로 가입할 수 있답니다.
정년 연장하면 청년은요?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내년에 20%를 돌파할 것으로 점쳐집니다. 노인들은 일을 내려놓고 편히 노후를 즐기고 있을까요? 노인 5명 중 2명이 그렇지 못합니다. 2020년 기준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평균인 14.2%보다 3배 가까이 높습니다.

노인 빈곤을 줄이는 방법으로 '정년 연장' '계속 고용'이 거론됩니다. 현행법상 정년은 60세인데요, 이를 63~65세까지 늘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어요. 더 오래 일하면서 소득을 보전하게 해 노인 부양에 드는 공적 재정 부담을 줄이려는 것이죠.

갑론을박이 오갑니다. 정년제가 보장되는 대기업 등 일부 사업장에만 적용돼 노인 빈곤율이 줄어들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고, 청년 채용에 악영향을 끼칠 거라는 우려도 있어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이와 관련한 논의를 내년 초에 마무리 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독자님 의견은 어떠신가요? 정년은 몇 살이어야 할까요? 또, 독자님은 언제까지 일하고 싶으신가요? 11월12일 점선면Deep은 정년 연장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루겠습니다.
📬 객관성을 마치 모든 판단과 정치적 가치가 표백된 상태, 완전한 가치중립의 상태로 상정하고 그게 가능한 것처럼 여기거나 추구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객관성이라는 게 가능한 지도 모르겠고 또 그게 저널리즘의 품질과 상관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 언론은 달리 지지 후보를 언급하지 않는데 지금까지 그게 저널리즘 품질이나 기사 품질 상관관계가 있었을까 싶네요. 그런 허수아비같은 객관성을 좇을 바에야, 차라리 독자에게 과감하게 비판적 질문을 던지고 또 언제든지 논쟁할 준비가 된 상태로 독자를 대하는 게 더 언론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WP의 이번 일이 단순히 대선용으로 끝날 게 아니라 추구해야 할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한국은 어디에 있는지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y21님)

📬 언론의 신뢰 혹은 기대를 저버리게 만드는 사주의 결정에 불매와 사직으로 대응한다해도 사실 대부분 사주들은 타격을 입지 않습니다. 그들 대부분에게 언론은 트로피일 뿐 주요 사업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더 취향에 맞는 언론인과 기사들로 리빌딩할 기회지요. 우리나라도 이런 문제들에 너무 쉽게 거부운동으로 치닫는 것 같습니다. 거부운동은 쉽고 빠르게 반응이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떨까요. 오히려 베이조스의 결정을 받아들인 경영진을 비판하고, 베이조스를 비판하는 기사를 싣는 기자를 응원하는 방향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 가장 큰 방향성은 오히려 구독률을 증가시켜 베이조스가 없어도 된다라는 시그널을 보여주는 것일 테고요. (익명의 독자님)

📬 자신이 있기 때문에 사설에 지지하는 후보를 실을 수 있는 그 문화가 부러웠습니다. 교사로서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정치적 의견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한국 현실이 아쉽습니다. (위풍당당 그녀님)

📬 권력자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작든 크든)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합니다. 민주주의는 정말 지키기 어렵네요. (마고님)
📝 지난 점선면Lite <🤐 점선면은 사실…지지합니다>를 읽고 보내주신 독자님들의 이야기입니다. '언제든지 논쟁할 준비가 된 상태로 독자를 대하는 게 더 언론답다는 생각이 든다'는 독자님의 말씀이 유독 마음에 깊이 남네요. 자신감 가지고 쓸 수 있도록 정진하는 점선면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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