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긴 시간이 지났더라도, 그 가치가 현재에도 유효한 작품들을 두고 우리는 고전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떨까요. 물론 모든 이가 동의할 고전영화는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절대적으로 우월한 무언가는 존재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오늘의 레터에서는 ‘고전’으로 분류될법한 영화의 조건을 감히 제시해보려 합니다. ✔ 그리고 (어쩌면 사심이 담긴) 영화 제안도 함께요. 🙄

고전은 재활용됩니다. ♻️ 시리즈로 만들어지거나, 높은 팬심을 사 누군가에 의해 오마주 되는 방식을 통해서요. 반복적으로 세상에 등장한다는 건 곧 시대를 초월하는 공감의 가능성 때문이겠지요. 뿐만 아니라 ‘고전 100선’과 같은 시리즈에서 종종 반가운 얼굴들이 발견되는 걸 보면 좋은 고전 영화는 긴 시간 활동할 역량이 있는 배우를 발굴해냅니다.

오늘 소개드릴 김기영 감독의 하녀 연작은 이 모든 조건들을 충족하는데요, <하녀(1960)>-<화녀(1971)>-<화녀 82(1982)>로 이어지는 시리즈는 동일한 내러티브를 시대에 따라 변형했습니다. 계급적 문제를 다루는 ‘부인-하녀’의 구도, 그리고 가부장적 권위를 상실하고 끌려다니는 남편을 둘러싼 서사는 각 시대별 한국사회의 ‘중산층’이라는 개념에 질문을 던집니다. 🧐 영화를 통해 감독은 ‘중산층’이라는 개념이 어떤 이유로 호출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줘요. 1960년대 전쟁 이후 가난 공동체의 유토피아적 대안으로써 ‘중산층’, 1970년대 압축적 근대화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중산층’, 그리고 1980년대 안정적으로 확립된 ‘중산층’의 개념은 모두 ‘하녀’라는 외부인에 의해 균열되고 붕괴됩니다. 🌬 이렇듯 감독은 자신이 만든 <하녀>를 장장 20년 동안 변형하며 동시대의 공감을 샀어요. 뿐만 아니라 김기영 감독은 🔗우리나라 영화 대스타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인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화녀(1971)>에서는 윤여정 배우를 발굴하기도 했고요.

어떤가요, 이 정도면 엄격한 ‘고전’의 기준에 통과시켜줄 법하지 않나요? 🤓 만약 김기영 감독이 현시대에 살아있었다면... 봉준호 대신 오스카에 가고 우리는 한국영화사뿐만 아니라 세계영화사에서 그를 찾아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곡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샘플링된 노래입니다. 노래 중반에 등장하는 드럼 솔로가 샘플링의 주인공인데요. 🥁 무려 5936회 샘플링되었고, 오아시스나 레이디 가가 같은, 내노라 하는 팝스타들도 이 노래의 비트 위에서 자신의 노래들을 만들어냈답니다. 노래를 틀자마자 흥겹게 몸을 흔들어야 할 것 같고, 고개가 자동으로 끄덕여질 겁니다. 그러다 흘러나오는 드럼 비트를 듣는다면, 또다시 데자뷰를 느끼실 거고요.

이 노래는 ‘Amen Break’라고도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1980년대 미국 힙합과 1990년대 영국 댄스 음악에 특히 많이 샘플링 되어, 드럼 비트 계의 고전이 되었죠. 하지만 그 명성만큼 드리워진 그림자도 큽니다. 충격적이게도, 원작자들은 로열티를 단 한푼도 받지 못했어요. 심지어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 드럼 라인을 직접 연주한 그레고리 콜먼은 가난한 노숙자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했답니다. 😨

최근에는 원작자에게 로열티를 지급하는 것이 관례가 되는 등, 샘플링에 관련된 저작권 인식이 개선되긴 했어요. 동시에 '샘플링은 표절인가?'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기도 하지만요. 샘플링이 음악계와 사람들의 귀를 더욱 풍성하게 해준 것도, 고전을 오랫동안 숨쉴 수 있게 해준 것도 사실이지만, 그 너머의 씁쓸함은 도저히 지울 수가 없네요.

님은 문화생활을 즐기러 오랜만에 극장에 갔습니다. 무대 위에 선 인물이 갑자기 우산을 들고 춤을 추니 관객들 몇몇이 웃음을 터뜨립니다. 또 냅다 “크리스틴!”을 외치니 모두가 박장대소를 해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인 걸까요. 어리둥절했던 님은 영문도 오른 채 멀뚱히 보다가 터덜터덜 극장을 나와야 했습니다. 역시 공연은 나랑 안 맞아, 생각하면서요. 💢

님은 왜 함께 웃지 못했던 걸까요? 감히 짐작해보자면, 배우가 한 동작이 잘 알려진 고전 작품을 떠올리게 한 모양이에요. 웃음을 터뜨렸던 관객들은 이렇게 감탄했을 거예요. “이걸 여기에서 쓴다고? 포스트모더니즘적이군!” 쏟아지는 박수갈채와 함께, 창작자에게는 예술계에서 이 작품을 기꺼이 인정해주겠다는 흡족한 칭찬까지 건네 집니다. 👍

포스트모더니즘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향으로, 철학, 건축, 문화 등 전반에 걸친 새로운 패러다임이에요.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된 이후, 문화예술 작품에서는 고전을 인용하면서 적극 활용하는 방식을 취하곤 합니다. 재등장한 고전은 새롭게 가공되고, 작품은 덕분에 서사의 층위를 풍부하게 만들죠. 그러면서 고전의 권위와 전통적 가치는 흔들리고 동시대 작품과의 경계는 모호해져요. 앞서 님이 보러 가신 <썸씽로튼>을 비롯해, 요즘 우리가 보고 있는 많은 작품들이 ‘포스트모더니즘’스러운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뮤지컬 <썸씽로튼>은 한 넘버 안에서 <사랑은 비를 타고>, <시카고>, <사운드 오브 뮤직>, <캣츠> 등 수많은 명작을 패러디해요. 현재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물론이고 철학자 니체나 비트겐슈타인, 하다 못해 영국의 시인 필립 라킨과 A. E. 하우스만까지 언급하죠. 이처럼 동시대 예술 작품에서 고전 인용은 흔하게 이루어지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합니다. 앞으로 작품을 보다가 필이 짜르르- 오는 순간 한 번 외쳐보는 것도 좋겠네요. “이것 참, 포스트모더니즘적이군!” 👏

친절하고 다양한 부록도 주목할 만 합니다. 책에 수록된 작가의 배경지식이나 작품 비평은 더욱 입체적인 독서를 하게 하거든요. 뿐만 아니라, 낯선 선박 용어들로 출항할 때 어려움이 있을 독자를 위해 <배의 구조와 항해에 대해 알아둘 것>이라는 매뉴얼을 만들어 동화 속 선박의 삽화와 세세한 용어들을 설명해줘요. ⛵ 이야기에 등장하는 상상 속 동물들의 이름을 정리해서 등장인물이 데면데면할 독자들의 낯가림을 줄여주기도 하고요.

당장 어제 친구와 나눴던 대화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이야기 포화 상태인 세상에서 특정 이야기가 한 세기 넘도록 전승된다는 것은 벅찬 일입니다. 어쩌면, 100년 전 작가가 쓴 글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만으로 우린 의미 있는 대화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대화가 가능하게 한 데에는 작가와 독자를 매개한 시공사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시대 착오적인 언어를 수정하거나, 친절한 부록을 덧붙이는 이들의 마음 따뜻한 노력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네요. 고마워요! 덕분에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고전을 읽어요! 🤓

• 다다단 👤 ) 제목 처음 봤을 때 음? 했다가 이내 그 유명한 밤 샌 사람과 일찍 일어난 사람 짤이란 걸 깨닫고 아하~ 했어요! 저는 도파민 중독에 인터넷인간이라서 밈에 익숙하지만 어쩌면 약간 진입장벽이 있진 않을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다다레터를 구독하는 사람들이라면 일정수준의 밈 지식도 있겠거니... 싶더라구요... 그래도 레터 어딘가에는 제목을 설명해주는 공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 다다팀 💌 ) 헉! 인터넷 인간으로만 구성된 다다팀이 미처 생각 못한 부분이었네요..! 말씀 주신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 논의해보겠숩니당! 소중한 의견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