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1407호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에 대한 비평 글을 적었습니다. 처음 이 영화의 비평 글을 써달라는 연락을 받았을 땐, 솔직히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습니다. 물론 <가오갤3>를 눈물을 흘릴 정도로 무척이나 재밌게 본 것은 맞는데요. 심지어 별점도 8점이나 줬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를 두고 ‘영화란 무엇인가’, ‘무엇이 좋은 영화인가’를 따지는 성격의 글을 쓴다고 했을 땐 마땅한 흥미로운 주제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애초에 주젯거리가 생각났다고 해도, 마블 영화에 그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감이 들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고민되었던 것은, 마블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가오갤3>라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는 말 그대로 물리적인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약간의 스포가 있습니다.) 예컨대 영화의 주인공 퀼이 우주에서 돌처럼 굳어가다 여태까지 악당 역할을 했던 아담에 의해 극적으로 살아나는 장면이 더 뜨겁게 느껴지는 까닭을 ‘전편을 보지 않은’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해선, <가오갤2>에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던 욘두의 모습까지를 덧붙여 이야기해야 할 것인데, 문제는 그걸로도 여전히 충분치 않을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욘두와 퀼의 길고 긴 사연을 추가로 말해야 될지도 모르구요. 아니 이것이 반드시 설명되어야만, 극 후반 사랑으로 감화되는 아담이라는 캐릭터의 상징성이 제대로 전달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말 이걸로 충분한 것일까요? 애초에 은하계 어딘가에서 지구인과 외계인, 그리고 말하는 동물들이 뒤섞여 영어로 된 농담을 주고받고 있다는 이 세계의 설정 자체를 처음 접한 사람에겐, 대체 어디서부터 이 영화의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요. <가오갤3>라는 영화를 얘기하는 것은 왜 이렇게 곤란한 일인 것일까요. 아니 영화를 얘기하는 일은 왜 곤란함을 동반하는 것일까요. 이럴 땐 차라리 그루트처럼 “아이 엠 그루트”라는 말로, 하고 싶은 모든 말을 퉁쳐 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렇다면 아예 그 심정을 그대로 적어보면 어떨까, 하는 심정을 이번 글에 적어보았습니다. 말하자면 이 글은 저의 곤란함에 관한 글입니다. 개인적으론 <가오갤3>를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제대로 즐겼지만, 이 감동을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하려면 어떤 단어들을 나열해야 하는 건지 막막한 한 관객의 곤란함. 이어지는 글의 전문은 씨네21 1407호에서 확인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씨네21 웹사이트 공개 시점에 맞춰, 원데이원무비에 링크를 첨부할 예정입니다.)


… 글 내용 일부 첨부


가오갤을 떠나는 또 한 명의 사람이 있다. 바로 모든 가오갤 시리즈의 연출/각본을 담당했으나 이제는 다른 함선의 캡틴이 되어버린 감독 제임스 건이다. 감독이 바뀌는 인기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에, 캡틴이 교체되는 영화 속 서사가 이토록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사례가 앞으로의 영화 역사상 다시 한번 반복될 수 있을까. 이처럼 <가오갤3>의 감동을 얘기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또 하나의 추가 설명(들)이 필요할 것이고, 나를 포함한 누군가는 계속해서 곤란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로켓(브래들리 쿠퍼)이 퀼에게 MP3 플레이어를 건네받는 것이 왜 감동적이냐면. 크래글린(숀 건)이 각성하는 순간에 욘두가 건네는 말이 어디서 나왔던 것이냐면. 쿠키영상에서 로켓이 재생한 노래 ‘Come and Get Your Love’가 어디서 시작된 것이냐면…. 이 언어를 알아듣는 사람들은 그동안 멤버들이 보여줬던 끈끈한 사랑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 말들이 그저 “나는 그루트입니다.” 정도의 무의미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후반부에 시리즈 내내 “아이 엠 그루트”라는 소리만 냈었던 그루트가 “다들 사랑해(I love you guys.)”라는 말을 하는 것은 꽤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에 관해 많은 관객들이 이미 감동적인 해석을 내놓은 것 같기는 하다. 극 중에서 그루트의 언어는 그루트와 긴밀한 유대를 쌓은 멤버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다는 설정을 갖고 있는데, 마지막에 그루트의 말이 들렸다는 것은 이제 그 언어를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친밀해졌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그 대사를 들은 순간 큰 감동을 받기는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번역하지 않으면 소통이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걸 감독이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져 슬펐다. 이런 나 역시 언젠간 MCU를 떠날 날이 오게 될 것일까. 우주를 떠나 지구에서의 새 삶을 시작한 퀼은 행복할 수 있을까. 자신과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을 만나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지난주 일요일에는 넷플연가에서 진행하고 있는 영화 모임 [칸 영화제가 사랑한 영화들 - 황금종려상 수상작들 비교해보기]의 마지막 시간을 진행하였습니다. 제가 마련한 이날의 주제는 ‘사랑이 시급한 이들을 위하여’였고, 다르덴 형제 감독의 <로제타>와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두 영화를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두 영화를 선정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습니다.


“모든 영화는 결국 사랑에 관한 영화입니다. 감독이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주인공을 사랑하지 않으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영화에선 감독이 주인공을 더 사랑하기 위해, 계속해서 더 큰 시련을 내리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위기에 처한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며,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영화들을 떠올려봅니다.”


제가 모든 영화는 결국 사랑 영화라고 생각하게 된 건 꽤 오래된 일입니다. 꼭 로맨스 같은 ‘사랑 영화’가 아니더라도, 위에 적은 것처럼 감독이 주인공을 사랑하지 않으면 영화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기에, 영화엔 어쩔 수 없이 사랑이 배어 나오기 마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감독이 주인공을 악마로 상정하고 고발하는 영화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 인물에 관심을 갖고, 그 인물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마음을 상상해보는 행위는 넓은 의미로서의 사랑에 포함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날 저는 한 참석자로부터 예상치 못한 질문 하나를 받았습니다. 소개 글에 쓴 어떤 표현에 관한 질문이었는데요. 그건 바로 “감독이 주인공을 더 사랑하기 위해, 계속해서 더 큰 시련을 내리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라는 표현이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표현은 물론 겉으로만 봤을 땐 이상한 말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사랑하는데, 왜 예뻐해 주기도 모자란 시간에 시련을 내린다는 것일까.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비록 너무 오래전에 쓴 소개 글이라 왜 그렇게 썼는지 떠올리는데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요.


우리에게 가끔 힘든 일이 닥쳐올 때 이런 얘기를 하잖아요. “신은 인간에게 딱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내린다.” 저는 물론 신의 존재를 믿진 않지만 이 말만큼은 믿어요. 죽지 않을 정도의 시련은 우리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것이라는 걸요. 당연히 애초에 시련이 없으면 좋겠지만, 이미 일어난 시련은 어쩔 수 없는 것이잖아요.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은 거예요. 우리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신이 있다고요. 그런 상상을 하며 버티면 좀 더 이겨내기 수월할 거니까요. 마찬가지로 영화감독도 주인공을 좀 더 주인공답게 하기 위해. 엄청난 시련을 훌륭하게 극복한 멋진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하여 주인공을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로 하여금 주인공을 완전히 사랑하게 만들어버리기 위해 시련을 내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신인 것이니까요.


또 다른 세계에선 어떤 신들이 어떤 방법으로 자신이 창조한 세계와 주인공을 사랑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저는 7월 8일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영화 모임에서 이 방법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볼 예정입니다.

<가오갤3>의 메인 주제가라고 할 수 있는 레드본의 노래 ‘Come And Get Your Love’의 표현을 빌려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이 자리에 오셔서 사랑(의 방법)을 챙겨 가시라구요. 홍보 글을 쓰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홍보로 마무리하게 되었네요. 읽어주신 김에 모임 상세 페이지도 한 번 구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참고로 새 모임에서 함께 이야기할 영화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스터>(폴 토마스 앤더슨, 2012) <멜랑콜리아>(라스 폰 트리에, 2011)

<그랜 토리노>(클린트 이스트우드, 2009) <폭스캐처>(베넷 밀러, 2014)

<쓰리 빌보드>(마틴 맥도나, 2017) <재키>(파블로 라라인, 2016)

<산책하는 침략자>(구로사와 기요시, 2017) <5일의 마중>(장이머우, 2014)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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