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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핑이 좋아서! |  박찬은

당신만의 냄비 뚜껑은 무엇입니까(Feat. Fire fighter)

‘국내 최고의 아웃도어 캠핑 성지에서의 잊지 못할 하룻밤’.


파란 불 동시 신호에 가슴이 뛸 정도로 운전 초보였던 내가 여럿을 태우고 가평 자라섬까지 떠나게 만든 한 줄의 카피였다. 캠핑과 뮤직 페스티벌의 꿀조합. 소위 ‘나 취해도 집에만 잘 넣어줘’의 아웃도어 버전이랄까. 취해도 텐트에 몸만 잘 누이면 되는 간편함이라니. 좌초가 예정되어 있으나 살아 돌아올 방도는 확실한 선장이 된 기분으로. 당시 캠핑 용품이라고는 테이블 하나가 전부였던 난 다이소에서 네 귀퉁이 밖으로 분명 한쪽 엉덩이는 삐져 나갈 것만 같은 낚시 의자 2개와 함께 우중 캠핑 대비용 목욕탕 의자 2개를 샀다. 그렇게 초보 선장과 선원들은 자라섬으로 항해를 떠났다. 매년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오토캠핑의 성지’ 가평 자라섬까지는 1시간 10분이 걸렸다.


오토 캠핑장과 캐러밴 사이트를 지나니 우리가 예약한 자율 캠핑 사이트가 나온다. 초보자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텐트가 미리 설치돼 있었다. 부스에 가서 매트와 침낭 등을 전달받고, 별 조명으로 텐트를 장식한 후 바람개비까지 달고 나니 제법 감성 캠퍼 같아졌다. 그제서야 운전하느라 쌓인 긴장감에 가려져 있던 배고픔이 성난 메뚜기 떼처럼 덮쳐 온다. 캠핑용 볶음밥과 삼겹살을 꺼내 고기를 굽기로 한다. 아차, 그러나 라이터가 없네. “저기,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20년 차 흡연자처럼 옆 사이트에서 자연스럽게 라이터를 빌려온 나는 그제야 가스버너를 꺼냈다.

불붙은 프라이팬을 보며 지난날을 떠올리다


셋 다 캠핑은 처음인 상황에, 나 역시 아웃도어 배냇저고리도 못 입을 캠핑 신생아였다. 버너라고는 부탄가스만 써본 데다, 이소가스를 호스로 연결하는 버너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설명서는 일본어뿐. 사돈에 팔촌까지 여러 단톡방 집단지성에 의지한 결과, 겨우 가스와 호스는 연결했다. 그러나, 스토브의 밸브를 너무 오래 열어둔 걸까. 라이터를 켜자마자 크게 “파박” 소리를 내며 점화된 불은 스토브에 올리지도 않은 프라이팬으로 옮겨붙었다. 그리고 곧 삼겹살 기름을 발화점으로 겉잡을 틈 없이 주변 음식 재료로 옮겨붙기 시작한다. 비명을 지르며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우리 셋의 머릿속으로 지난 30여 년 동안의 회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소개팅한 A에게 그냥 만나자고 말해볼 걸, 카푸어 소리 듣더라도 지바겐을 뽑아볼 걸, 내 월급이 한 번에 날아가도 테라스가 있는 한강 뷰 자쿠지를 갖춘 집에서 살아볼 걸…….’

 

“꺄악! 저거 어떻게 꺼?!”

“119 불러야 하는 거 아냐?”

“터질 것 같아! 야 가까이 가지마!”
“산소 차단하려면 담요로 덮어야 하는 거 아니야?”

사색이 된 일행은 각자의 솔루션을 외쳤으나, 다들 가스에서 멀찍이 서서 빽빽 소리만 지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옆에 있던 냄비 뚜껑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호스를 든 소방관처럼 결연하게 불을 겨냥했다. 원반던지기 선수처럼 불을 향해 빠르게 뚜껑을 날리자,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뚜껑은 양궁 국가대표의 과녁처럼 정확히 불 위에 안착했다. 그러자 악마의 불꽃처럼 넘실대던 불꽃도 사라졌다. “야, 꺼졌어! 꺼졌어!” 다리에 힘이 풀린 우리는 그만 목욕탕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야, 놀러 왔다가 뉴스 나올 뻔 했다! ㅜㅜ”

나만의 소화기를 찾아서


밸브를 너무 오래 열어둔 것이었는지, 아니면 가스가 샌 건가. 많은 사고들이 그렇듯이 ‘가스 냄새가 났었다’, ‘밸브가 이미 열려 있었다’ 등 목격자들의 진술은 가지각색이었다. 사건의 원인은 의문 투성이로 남았지만, 냄비 뚜껑의 뛰어난 화재 진화력 덕에 무사히 사고는 무마됐다.


놀란 가슴은 차가운 맥주가 진정시켰다. 우린 용기 있게 화재를 제압한 fire fighter(나)에 대한 추앙과, ‘죽을 뻔하고 먹으니 더 맛있다’며 바비큐와 맥주에 대한 칭찬을 하며 지옥에서 살아 나온 각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윽고 ‘볼빨간 사춘기’가 나오자 우주를 줄게를 떼창했고, 숲속 스테이지에선 함께 젬베를 치며 외국 뮤지션과 위스키를 마셨다. 에어 베드에 누워 꿀렁꿀렁 몸을 움직이다가, 머리에 화관을 쓰고 스컬의 공연을 보러 갔다. 억수 같이 퍼붓던 소나기를 피해 돗자리를 우산 삼아 뒤집어쓰고, 킬킬대며 나눠 마시던 와인은 왜 그리 맛있던지…….


텐트 바깥으로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낮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아름다운 불꽃이다. ‘살아 있으니 텐트 안에서도 라이브를 듣고, 얼마나 좋냐’며 킬킬대던 우린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자라섬 사건 이후 내 차에는 휴대용 소화기와 함께 휴대용 가스 누출 감지기가 늘 실려 있다. 그 이후로도 내 삶의 냄비 뚜껑은 늘 나타났다. 양아치 같은 포토그래퍼 때문에 울며 전화한 내게 “야 그놈의 X끼 X놈의 X끼 아냐 그거!”라며 속 시원하게 쌍욕을 해준 선배. 본인의 모든 질량을 담아 내 눈을 바라보고 공감해 준 덕에 죽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준 친구 B, 인턴 시절 광고주의 갑질로 프로젝트가 날아간 뒤 한강 다리를 하염없이 걷던 내게 다가와 “괜찮아요?”라며 말 걸어 준 초소 헌병.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급하게 뚜껑을 던져 불을 꺼야 하는 다급한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그때 옆에 던질 만한 냄비 뚜껑이 있든, 내 명줄을 쥔 소방관 같은 가족이 있든, 우산 없이 오는 비를 함께 맞아줄 친구가 됐든 각자 인생의 소화기 같은 냄비 뚜껑 하나쯤 마련해두면 된다. 당신만의 냄비 뚜껑은 어디에 있을까. ✉️

박찬은은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캠핑과 스쿠버다이빙, 술을 사랑한다. 삐걱대는 무릎으로 오늘도 엎치락뒤치락 캠핑과 씨름하며 퇴사 욕구를 잠재우는 중이다. 그의 캠핑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camping_cs을 따라가 보자.

📎 Clip |  휴일 즐기기

휴일을 즐긴다. 걱정 없이 즐긴다. 밤낮으로 회사에서 일에 몰두하는 업무로는 작은 사업은 성공시켜도 사업은 만들 없음을 알고 있다. 인생은 미래에 보상을 바라고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도 인생이라는 것을 알기에 휴일을 즐기고 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더욱 성공을 이룬다는 것을 알고 있다.

- 김승호, 『생각의 비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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