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첫날, S와 둘레길 산책을 하기로 해서 집 밖을 나섰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화창한 날씨에 오늘부터 5월이라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환한 햇살에 내 마음도 같이 환해지리라는 기대와 달리, 밝은 햇빛 아래에 있으니 내 그림자도 더욱 선명해지는 것 같아 당혹스러웠다. 내 마음은 오늘의 날씨처럼 밝지 않다는 게, 내 마음과 현실의 간극이 어쩐지 부끄럽고 또 쓸쓸하게 느껴졌다. ‘벌써 오월인데...’ 나아진 것이 없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S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나타났다. 생애 첫 탈색을 감행한 S의 머리를 보자 내 눈도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어떤 때는 자연보다 사람의 에너지가 나를 충전해준다. 그날은 노란 햇살보다 친구의 노란 머리에 힘을 얻었다. 내가 염색한 것도 아닌데 내 마음도 잠깐 신이 났다. 나에게도 그런 일탈이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어쩐지 요즘은 아무것도 시작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일이 끝나면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어영부영 지내다가 괜찮아 질만하니 다시 일을 하고 있어서일까? 내 마음도 나아지고 아니기를 반복하고 있다. 4월쯤 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벌써 5월이고 한 해의 반이 지나가고 있는데도 나는 여전히 괜찮지가 않다. 어떻게 해야 하나 무거운 머리를 굴리면서 S의 가벼운 발걸음을 따라 걷다 문득 내 마음이 괜찮아지는 시기마저 마감기한을 정해놓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쓴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땀을 식히기 위해 눈 앞에 보이는 우뚝 솟은 바위에 올라가 누웠다. 바위에 누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만큼은 내 눈에 비치는 풍경과 내 마음속 풍경이 일치하는 듯 느껴졌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풀리곤 한다. 문득 괜찮아지려고 너무 많은 걸 한 것이 문제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괜찮아지려고 상담을 하고, 괜찮아지려고 요가원에 등록하고, 괜찮아지려고 워크숍을 신청하고 괜찮아지려고... 안 괜찮은 채로 좀 더 있어도 되는거 아닐까.

하루는 요가원 원장 선생님이 ‘아무것도 되지 않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아무것도 되지 말자고 다짐하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나는 무엇이 되려고 했던 걸까. 그저 무엇을 하든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지 않고 잘 하길 바랐던 것 같다. 고작 나쁘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버티고 있는 건가. 지난 주말에는 그런 마음 때문에 놓지 못하고 붙잡고 있던 일들을 하나 둘 놓아 보았다. 쉬고 싶지만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취소하지 못했던 일정을 취소하거나 미루고 맘 편히 드라마를 보며 빨래를 갰다. 짧은 일탈이었지만 조금은 가볍고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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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가벼운 생활을 꿈꾸게 되었을까, 디자인을 배우면서 ‘less is more’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인지, 대학교 동아리방 구석에서 먼지가 쌓인 채 뒹굴고 있던 <우리는 너무나 복잡하게 산다>라는 책을 집에 가져와 읽었을 때부터인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이라는 글을 읽고 나서부터인지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인이 되고 취향이 형성될 무렵부터 나는 언제나 조금 가벼운 것에 끌렸던 것 같다. 가벼워서 깨어질 때도 경쾌한 소리가 날 것 같은 것들이 좋았다. 왜 이렇게 가벼운 것에 끌리는 것일까 아직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지는 못했지만 감당하기 버거운 삶의 무게에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짐작한다. 가볍게 살고 싶은 오랜 열망에 비해 어쩐지 점점 보따리가 무거워 지는 것 같아 덜어내는 연습 겸 써보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