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때 안 죽고 살아있길 잘했다.’
하는 순간을 고대하며 산다. 살다 보면 그런 찰나가 있다. 그런 순간이 생각치도 못한 때에 또 올 거라는 걸 안다. ‘죽고 싶다.’는 생각보단 ‘살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고달프고 팍팍하고 지리멸렬해서. 그런 마음이 우연히 겹칠 때 친구들과 나는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어.” 자조하고 한탄하고 한숨을 쉬다가 어영부영 끝을 맺는다. (진짜 죽을 순 없으니까. ㅎㅎㅎ)
어제 그런 일이 있었다. “뭐 하러 더 살아.” 소리가 툭 튀어나올 만큼 아주 큰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었다. 아. 그 일의 자초지종을 부려 놓을 생각은 아니다. 생판 모르는 얼굴들에게 그런 감정의 짐을 지울 생각은 없다.
어제는 그런 기분에 사로잡힐 시간이 없는 날이었다. 마감. (덧. 기자에게 ‘마감’이란 나라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국정원 비밀 요원의 절박한 마음에 버금가는 중압감에 사로잡히는 시기다.) 그걸 알지만 좀처럼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 앞뒤 사정을 아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전화 통화를 무척 싫어해서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절대 하지 않는다. 휴대폰 화면에 내 이름이 뜨는 일이 지극히 드물다는 것을 잘 아는 친구는 놀란 목소리로 내 전화를 받았다. 한참을 통화하고 자리에 돌아왔는데 마음이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속앓이하던 걸 털어놨을 뿐, 해결된 건 없으니까.
가만히 앉아서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생각했다.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이에게 화가 횃불같이 치밀어 올랐지만 일단 그건 넣어두자.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고맙게도 친구들이 제 일처럼 발벗고 나서서 이런저런 경험담을 들려줬다. 갈팡질팡했던 생각에 실오라기 같은 가닥이 잡혔다.
마감은 내 사정을, 내 기분을 고려해 주지 않으므로 다시 정신을 붙잡고 해야 할 일을 했다. 저녁까지 굶고 늦은 밤 터덜터덜 지하철역으로 들어서는데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승강장엔 화장실이 없었고 가방엔 휴지가 한 장도 없어서 맨손으로 쓱쓱, 멈출 기미가 없는 눈물로 흥건하게 젖은 얼굴을 닦았다. 사방이 다 트인 그 휑한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청승맞은 모습을 보이는 꼴이라니. 지하철 두 대를 보내고 나서야 눈가가 말라서 겨우 집에 들어왔다.
아까 연락을 나눈 친구들이 제 일과를 다 마치고 다시 연락이 왔다.
“뭐 하고 있어. 기분 좀 괜찮아?”
“어떻게 하기로 했어. 잘 해결된 거야?”
내 기색과 상태를 살피는 그 따뜻한 걱정들 앞에서 아까는 무너질까봐 꽁꽁 묶어 놨던 감정이 와르르 쏟아졌다. “지하철역에서 청승맞게 울었다”로 시작한 내 투정은 급기야 “살고 싶지가 않네. 그냥 자다가 숨이 꺼졌으면 좋겠어”까지 흘러갔다. 그럴 일까진 아닌데 그랬다. 밥을 굶었고, 원고 독촉에 쫓기고 있었고, 게다가 혼자 있는 깊은 밤엔 생각이 (의도와 다르게) 멀리 간다.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는 과격하고 극단적인 말 앞에서 친구는 깔깔 웃었다.
“그래. 죽자. 뭣 하러 더 살아. 이 모든 게 다 무슨 의미가 있니? 나도 종종 그래. 살고 싶지가 않더라고. 어제도 룸메이트(그의 집 동료는 ‘목사님’이다)한테 한참 그 타령 하다가 잤어. ㅋㅋㅋ.”
“죽고 싶다”는 말은 금기어가 아니었나? 가볍게 내뱉어선 안 될 말을 “담배 한 대 피고 싶다”처럼 툭 내뱉으니 오장육부를 짓눌렀던 뜨거운 화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죽고 싶다”고 말하면 살고 싶구나. 죽음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 빠르게 움직이는 뉴런에 내 뇌에 띄우는 장면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 내가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 이렇게 죽기엔 억울한 각종 까닭들……. 그리고 내게 ‘아, 살아 있길 잘했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게 하는, 아주 좋아하는 순간들이 전광석화처럼 지나가서.
“아, 살기 싫다”는 엄살을 던져 놓은(관심받고 싶어서) 또 다른 친구에게서 뒤늦게 연락이 왔다. 걔는 “무슨 일이야. 그런 끔찍한 말을 왜 해.” 같은 호들갑 대신 밥 타령을 했다.
“야. 아까 치킨 시켜 먹고 좀 남았는데 그걸로 너 먹고 싶다는 치밥 만들어 줄게. 내일 출근하기 전에 와서 밥 먹어.”
그 치밥을 먹어야 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쏙 들어갔다. 꽤 깊다고 생각했던 절망감과 실망감이 고작 ‘치밥’이라는 단어 앞에서 녹았다. 잠이나 자자. 내일의 슬픔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그러다 보면 “그때 내가 뭘 그렇게까지 그랬을까?” 하는 순간이 또 오겠지.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확실히 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