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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라는 즐거움 |  류진

디올과 요트를 꿈꾼다는 것

써야 할 글(돈 받고 쓰는 글)이나 그걸 위해 해야 할 일, 밀린 집안일, 만나야 할 사람, 약속 같은 것이 없는 주말은 잘 찾아오지 않는데, 지난 일요일이 웬일로 그런 날이었다. 이런 날엔 온전히 영화 한 편이나 책 한 권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 스낵과 커피, 혹은 와인을 옆에 두고 스마트폰은 손 닿지 않는 곳에 던져둔 채. 듣는 이 아무도 없는데 괜히 입 밖으로 “아, 혼자라 참 좋아”를 소리 내어 뱉으면서.  

 

항상 어떤 도시를 그리워하는 내게 친구가 추천해 준 영화를 벼르다 틀었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런던의 가정부 해리스가 어느 날 일하던 집에서 디올 드레스를 만난 후 전 재산을 털어 파리로, 유일무이한 디올 아뜰리에로 향하는 얘기가 줄거리다. 전쟁에서 전사한 남편이 남긴 미망인 연금, 천운으로 당첨된 복권 상금,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청소해 모은 돈을 긁고 긁어 마련한 그 시절의 500파운드(자기 연봉보다 더 값나가는 액수로 추정되는)로 왜 오뜨 꾸뛰르를, 그 옷이 빛나는 때와 장소를 삶에서 만날 일이 별로 없는 할머니가 욕심낼까? 파리 곳곳이 담긴 낭만 넘치는 미장센을 꾸역꾸역 눈에 넣으면서도 머릿속엔 냉소가 떠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급식비와 문제집 살 돈, 학원비를 ‘삥땅’ 쳐서 에뜨로 헤어 밴드나 페라가모 플랫 슈즈를 사는 애가 있었는데 걔가 점심시간마다 내 식판 앞에 와서 “너 그 밥 다 먹을 거야? 남길 거면 나 좀 먹어도 돼?” 했던 게 떠올라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굴 거면 까르띠에니 루이비통이 다 무슨 소용이야? (클럽에서 헌팅으로 만난 남자친구가 제 누나가 안 쓰는 걸 훔쳐다가 걔한테 선물했다고 한다.) 페라가모 슈즈 신고 떡볶이집 가서 신발에 국물 흘릴까 봐 전전긍긍하는 게 네 멋이야?” 하고 쏴붙이고 싶었지만 면전에선 걔가 상처받을 까봐 차마 그러지 못하고 뒤에서 다른 애들과 호박씨를 깠던 기억도. 주인공 얼굴에 걔 얼굴이 겹치면서 끝내 그 할머니를, 감독과 작가와 배우가 파리와 디올만큼 아름답게 그린 미세스 해리스를 사랑하지 못한 채 엔딩 크레딧을 마주했다.

 

며칠 후 출장으로 간 통영에서 요트를 탔다. 잡지에 실을, 마땅히 건져야 할 ‘있어 보이는 그림’을 제대로 건지지 못해서 귀경해야 할 시간에 마리나로 길을 틀었다. 바다 앞에서 요트만 한 그림이 있나? 바람의 힘으로 느긋하게, 섬 사이를 유영하는 상괭이처럼 나아가는 요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참 좋았다. 이런 걸 내 걸로 누리는 삶은 얼마나 근사할까? 닻줄을 풀고 묶는 방법, 섬을 570여 개나 거느린 다도해에서 요트 타고 누릴 수 있는 낙 같은 것을 신나게 설명해 주는 선장을 보며 속으로 ‘와- 저 아저씨 끝내주게 사네.’ 했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요트는 로망의 끝이잖아요. 요트 이전과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다르죠?”

 

바람 한 점 없는 무인도 안자락에 배를 정박시켜 두고 새우깡 한 봉지 뜯어 갈매기와 시시껄렁 노는 선장에게 물었다. 물어볼 걸 물어보라는 표정으로 그가 답했다.

 

“그럼요. 갑자기 이런 말은 좀 그럴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 힘에 부치는 일이 많거든요. 위에서 옆에서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니까요. 그래서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어요. 바다를 아주 좋아해서 항상 바다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었는데 젊을 땐 먹고 사느라 못했으니 이젠 좀 해볼까. 처음엔 낚싯배를 사서 손님 태우며 돈 벌고 그 김에 나도 같이 즐기자, 했었는데 친구가 요트를 추천하더라고요. 바로 요트학교에 등록해 항해술을 배우고 중고 요트 한 대 샀어요. 돈은 별로 못 벌지만 그래도 좋아요. 마누라는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지만. (웃음) 아무튼 나는 만족합니다.”

 

언변 없는 경상도 남자의 두서없는 얘기를 듣는데 그 얼굴 위에 미세스 해리스가 겹쳤다. 아, 그 디올이, 이 요트구나.


그날 그 요트 위에서 (시시해서) 다시는 곱씹을 일 없을 줄 알았던 그 영화 생각을, 아니 해리스 생각을 한참 동안 했다. 디올 아뜰리에의 콧대 높은 프렌치 마담이 드레스를 앞에 두고 “내 꿈. (It’s my dream.)” 타령하는 해리스에게 “물론 꿈을 살 수는 있죠. 그런데 그걸로 뭘 하죠? (You may buy your dream, but what will you do with it?)” 했던 장면, 거기에서 주인공의 울 것 같은 얼굴에 마음을 주는 대신 “그니까! 내 말이!” 했던 게 떠올라서 조금 부끄러웠다.

 

디올과 요트는 낭만이었다. 낭만. 오그라든다는 이유로,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혼자 늙는 미래가 내 삶이 될 때를 대비해 먹고 살 방법을 지금 빡세게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에, 오랫동안 내 입과 뇌에서 지웠던 단어. 내가, 내 유전자엔 없는 이성을 갖춘 사람이 되려고 애쓴 시간 동안 낭만과 꿈을 잊고 살았구나.

 

살짝 터무니없는, 허영이라는 딱지가 붙기 딱 좋은 꿈. 그게 나를 둘러싼 사정(특히 주머니)과는 좀 동떨어져 있어도 천연덕스럽게 뻔뻔한 얼굴로 좇으며 살아야지. 인생의 장면을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틀어주는 건 잘난 이성이 아니라 철없는 낭만이 아닐까? ‘사는 게 지금도 재미없는데 나중은 얼마나 더 재미없을까. 혼자 100살까지 사는 건 함께 장수하는 것보다 더 지리멸렬하지 않을까.’ 했던 것도 이렇게 두근거리는 꿈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 반짝이는 물비늘에 시선을 던지며 상념의 바다에서 뒹굴던 차. 새우깡 한 봉지를 다 비운 마도로스가 나의 결단에 방점을 찍는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선택을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나는 내 꿈에서 도망치지 않았어요.” ✉️

류진은 패션 잡지와 여행 잡지에서 월급을 받으며 살다가 내 시간을 내 뜻대로 쓰고 싶어서 프리 워커가 됐다. 그게 절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엔 혼자 살고 혼자 일하는 삶을 잘 꾸리기 위해 더 많이 보고, 읽고, 겪고, 쓰고, 부딪히며 산다.  @nomad_ryu

📄  1일 3매 | 최갑수

무언가를 비평해야 한다면

무언가를 비평해야 한다면, ‘분명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거야.’ 하고 먼저 고민해 본다. 조롱으로 보이지 않도록 말이다. 비평은 그를 위한 더 따뜻한 말을 찾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드나 보다. ✉️

최갑수는 시인이며 여행 작가다. 출판사 '얼론북'을 운영하며 책을 펴내고 있다.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어제보다 나은 사람』 등을 썼다. 그의 인스타그램 @ssuchoi에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 Special Guest | 김민욱

모든 노동은 감정노동이다

생각해 보면 감정노동이란 것이 그 정도의 깊이가 다를 뿐 우리가 일하는 현장에서 언제나 마주칠 수 있는 것들이다.


「서울특별시 감정노동 종사자의 권리보호 등에 관한 조례」 제2조 제1호(정의)를 보면 아래와 같다.

“고객(시민) 응대 등 업무수행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자신이 실제 느끼는 감정과는 다른 특정 감정을 표현하도록 업무상, 조직상 요구되는 노동형태.”


하지만 우리네 삶속에서 일하는 중에 감정을 숨겨야 하는 게 비단 감정노동이라고 일컫는 직종뿐일까. 하물며 집에서도 때때로 감정을 숨기고 내가 실제 느끼는 감정과는 달리 행동하지 않는가 말이다.


내가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상황들을 떠올려 본다. 그 와중에 만나게 되는 분들이 이모저모로 다 일하는 분들, 곧 노동자 아닌가. 그렇게 만나게 되는 노동자에게 나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하나 하나 돌아본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면서 만나게 되는 지하철역의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부터 역사 안의 역무원들, 출출해서 들어간 편의점에서 만난 아르바이트생(편의점 아르바이트도 요즘엔 꼭 젊은 친구들이 아닐 경우가 많아서 ‘생’이란 글자를 붙이기가 민망하기도 하다), 회사에서 만나게 되는 나의 동료들,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만나는 종업원, 밥먹고 들어오는 길에 만나는 야쿠르트 아주머니, 기다렸던 택배를 받을 때 반갑게(?) 만나게 되는 택배기사님, 퇴근길에 가끔 들러 붕어빵을 사들고 들어갈 때 만나는 노점상분들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만나는 모든 분들이 노동자 아니던가. 그것도 만남의 사이에 여러 감정을 주고받게 되는 감정노동자.


오늘 만나게된 대리기사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요즘 어려우시죠?”라는 내 말 한 마디에 그 기사님께서 쏟아낸 여러 이야기에서 느꼈던 건, 대리운전 일이란 게 지독한 감정노동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콜을 했다가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사람부터, 콜을 불러서 도착지에서 전화를 하니 목적지를 이리 저리 계속 뺑뺑이를 돌리는 사람, 자기가 선택한 요금을 비싸다며 못주겠다고 생짜를 놓는 사람까지. 정말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구나 싶기도 했고, 나이가 많다고 대리 업체로부터의 콜을 받지 못하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니 정말 사람으로서 느끼게 되는 감정의 폭이 어떠할지 나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왜 대리운전이 대표적인 감정노동 직군으로 꼽히는지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해가 쏙쏙 되었다.


내가 오늘 하루를 살면서 만났던, 그 수많은 일하는 분들. 모든 분들이 내가 허투루 대할 분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 분 한 분 만날 때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분들의 노동에 대한 ‘존중’을 가지고 대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분들이 오늘 나를 만남으로서 조금이나마 기분이 나아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

이석제는 평생 비영리쪽에서 굴러다니며 공익활동가이자 노동자로 살고 있다. 최근 책과 도서관에 빠지게 된 후 시간만 나면 동네 도서관과 책방을 돌아다니는 걸 취미로 삼고 살아간다. 그가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하다면 @doldoleco 슬쩍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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