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야 할 글(돈 받고 쓰는 글)이나 그걸 위해 해야 할 일, 밀린 집안일, 만나야 할 사람, 약속 같은 것이 없는 주말은 잘 찾아오지 않는데, 지난 일요일이 웬일로 그런 날이었다. 이런 날엔 온전히 영화 한 편이나 책 한 권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 스낵과 커피, 혹은 와인을 옆에 두고 스마트폰은 손 닿지 않는 곳에 던져둔 채. 듣는 이 아무도 없는데 괜히 입 밖으로 “아, 혼자라 참 좋아”를 소리 내어 뱉으면서.
항상 어떤 도시를 그리워하는 내게 친구가 추천해 준 영화를 벼르다 틀었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런던의 가정부 해리스가 어느 날 일하던 집에서 디올 드레스를 만난 후 전 재산을 털어 파리로, 유일무이한 디올 아뜰리에로 향하는 얘기가 줄거리다. 전쟁에서 전사한 남편이 남긴 미망인 연금, 천운으로 당첨된 복권 상금,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청소해 모은 돈을 긁고 긁어 마련한 그 시절의 500파운드(자기 연봉보다 더 값나가는 액수로 추정되는)로 왜 오뜨 꾸뛰르를, 그 옷이 빛나는 때와 장소를 삶에서 만날 일이 별로 없는 할머니가 욕심낼까? 파리 곳곳이 담긴 낭만 넘치는 미장센을 꾸역꾸역 눈에 넣으면서도 머릿속엔 냉소가 떠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급식비와 문제집 살 돈, 학원비를 ‘삥땅’ 쳐서 에뜨로 헤어 밴드나 페라가모 플랫 슈즈를 사는 애가 있었는데 걔가 점심시간마다 내 식판 앞에 와서 “너 그 밥 다 먹을 거야? 남길 거면 나 좀 먹어도 돼?” 했던 게 떠올라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굴 거면 까르띠에니 루이비통이 다 무슨 소용이야? (클럽에서 헌팅으로 만난 남자친구가 제 누나가 안 쓰는 걸 훔쳐다가 걔한테 선물했다고 한다.) 페라가모 슈즈 신고 떡볶이집 가서 신발에 국물 흘릴까 봐 전전긍긍하는 게 네 멋이야?” 하고 쏴붙이고 싶었지만 면전에선 걔가 상처받을 까봐 차마 그러지 못하고 뒤에서 다른 애들과 호박씨를 깠던 기억도. 주인공 얼굴에 걔 얼굴이 겹치면서 끝내 그 할머니를, 감독과 작가와 배우가 파리와 디올만큼 아름답게 그린 미세스 해리스를 사랑하지 못한 채 엔딩 크레딧을 마주했다.
며칠 후 출장으로 간 통영에서 요트를 탔다. 잡지에 실을, 마땅히 건져야 할 ‘있어 보이는 그림’을 제대로 건지지 못해서 귀경해야 할 시간에 마리나로 길을 틀었다. 바다 앞에서 요트만 한 그림이 있나? 바람의 힘으로 느긋하게, 섬 사이를 유영하는 상괭이처럼 나아가는 요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참 좋았다. 이런 걸 내 걸로 누리는 삶은 얼마나 근사할까? 닻줄을 풀고 묶는 방법, 섬을 570여 개나 거느린 다도해에서 요트 타고 누릴 수 있는 낙 같은 것을 신나게 설명해 주는 선장을 보며 속으로 ‘와- 저 아저씨 끝내주게 사네.’ 했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요트는 로망의 끝이잖아요. 요트 이전과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다르죠?”
바람 한 점 없는 무인도 안자락에 배를 정박시켜 두고 새우깡 한 봉지 뜯어 갈매기와 시시껄렁 노는 선장에게 물었다. 물어볼 걸 물어보라는 표정으로 그가 답했다.
“그럼요. 갑자기 이런 말은 좀 그럴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 힘에 부치는 일이 많거든요. 위에서 옆에서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니까요. 그래서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어요. 바다를 아주 좋아해서 항상 바다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었는데 젊을 땐 먹고 사느라 못했으니 이젠 좀 해볼까. 처음엔 낚싯배를 사서 손님 태우며 돈 벌고 그 김에 나도 같이 즐기자, 했었는데 친구가 요트를 추천하더라고요. 바로 요트학교에 등록해 항해술을 배우고 중고 요트 한 대 샀어요. 돈은 별로 못 벌지만 그래도 좋아요. 마누라는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지만. (웃음) 아무튼 나는 만족합니다.”
언변 없는 경상도 남자의 두서없는 얘기를 듣는데 그 얼굴 위에 미세스 해리스가 겹쳤다. 아, 그 디올이, 이 요트구나.
그날 그 요트 위에서 (시시해서) 다시는 곱씹을 일 없을 줄 알았던 그 영화 생각을, 아니 해리스 생각을 한참 동안 했다. 디올 아뜰리에의 콧대 높은 프렌치 마담이 드레스를 앞에 두고 “내 꿈. (It’s my dream.)” 타령하는 해리스에게 “물론 꿈을 살 수는 있죠. 그런데 그걸로 뭘 하죠? (You may buy your dream, but what will you do with it?)” 했던 장면, 거기에서 주인공의 울 것 같은 얼굴에 마음을 주는 대신 “그니까! 내 말이!” 했던 게 떠올라서 조금 부끄러웠다.
디올과 요트는 낭만이었다. 낭만. 오그라든다는 이유로,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혼자 늙는 미래가 내 삶이 될 때를 대비해 먹고 살 방법을 지금 빡세게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에, 오랫동안 내 입과 뇌에서 지웠던 단어. 내가, 내 유전자엔 없는 이성을 갖춘 사람이 되려고 애쓴 시간 동안 낭만과 꿈을 잊고 살았구나.
살짝 터무니없는, 허영이라는 딱지가 붙기 딱 좋은 꿈. 그게 나를 둘러싼 사정(특히 주머니)과는 좀 동떨어져 있어도 천연덕스럽게 뻔뻔한 얼굴로 좇으며 살아야지. 인생의 장면을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틀어주는 건 잘난 이성이 아니라 철없는 낭만이 아닐까? ‘사는 게 지금도 재미없는데 나중은 얼마나 더 재미없을까. 혼자 100살까지 사는 건 함께 장수하는 것보다 더 지리멸렬하지 않을까.’ 했던 것도 이렇게 두근거리는 꿈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 반짝이는 물비늘에 시선을 던지며 상념의 바다에서 뒹굴던 차. 새우깡 한 봉지를 다 비운 마도로스가 나의 결단에 방점을 찍는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선택을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나는 내 꿈에서 도망치지 않았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