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님, 평화해요!
오늘의 예하 벗님을 소개합니다.

 예하씨와 저는 사랑에 빠졌다랄까요. 비밀편지를 주고받듯 사랑하고 싶은 이입니다. 눈을 마주치면 고양되는 마음에 절로 신이 납니다. 또 조심스레 사랑하고 싶어 보살피게 됩니다.

 우리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로 처음 만났습니다. 예하는 저에게 작품 같은 밥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추운 겨울에도 꽃밭 같은 밥상을 보았습니다. 총각무에 작은 얼굴을 만들어 주었던 것처럼 그는 모든 사물에 애정을 붙이는 사람입니다. 그의 요리를 보면 할머니가 뭐 하나 더 쥐여주는 마음을 닮았습니다. 사랑이 흘러넘쳐 덕지덕지 붙은 느낌이 납니다. 예하의 갈고 닦은 감각이 더해져 정갈하기까지 합니다.

 그와 만나고, 그의 요리를 보고는 기다림과 정성을 배웠습니다.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을 보았고, 타인을 섬기는 마음을 보았습니다. 언젠가 저도 예하에게 정성을 보이는 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참, 예하는 『할머니와 나의 사계절 요리학교(가제)』 책을 쓰고 있다지요? 그의 사랑스런 할머니 홍순씨와 요리하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비건 세상 만들기』를 실현하고자 하는 예하에게 존경을 전합니다.

가슴이 뜨거워져야만
 좋은 글은 어떤 글일까?

 두 눈이 번쩍 뜨이고, 머리에 망치를 얻어맞은 것 마냥 큰 울림이 있고, 가슴이 뜨거워져야 좋은 글일까. 그렇다면 나는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해본 적이 있을까? 내 글이 누군가의 가슴을 미지근하게 데운 적이나 있었나. 내 가슴은 미지근할까, 차가울까, 뜨거울까- 그마저도 아니라면 어떤 온도를 품고 싶었나?

 글뿐만 아니라 ‘좋은’이 붙은 것을 상상하면 대게 비슷하다. 특별하고 빛나야만 한다고 생각되는 것.
 시작하기도 전에 떠오르는 결말들 앞에서 웃어 보이지도 울어보이지도 못한 채 내 안에 썩어 문드러지게 방치해 둔 것. 비교라는 단어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부패를 발효라고 믿게 되는 것.
 감히 예상하건데 당신과 내가 좋고 특별하고 싶어서, 대단하지 않아서 쌓아둔 모든 것들을 펼친다면 지구 반 바퀴를 돌고도 남을 것이다. 이건 매번 수없이 늘어진 물음표와 가능성을 남겨두는 내가 확신하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의 지구가 손바닥만 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나는 홍순 씨라는 사람과 동거를 하고 있다. 홍순 씨는 나의 할머니이신데, 나를 참 많이 사랑해주시는 분이다. 사랑만 떠올리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가 대차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로 사랑을 퍼다 주는 사람. “아 이게 사랑이구나.” 싶어지는.
 그 사람은 밥을 먹을 때나, 버스를 기다릴 때, 요리를 할 때, 티비를 볼 때, 잠에 들기 전에 늘 노래처럼 들려주시는 이야기가 있다. 평범한 이야기. 거친 사막에 호수를 만드는 일보다도 온 마음을 쏟아버려서, 일평생 스스로가 아닌 자식이 먼저였어서. 온몸이 타오르듯 아파도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날려버렸다는 평범하고도 진부한 이야기. 자기희생적이란 단어와 거리가 먼 나로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이야기다. 지독한 애환哀歡이 묻어나기에 쓴 냄새가 나기도 하는, 코끝이 찡해지기보단 물음표로 가득해져 한참을 생각하게 되는.

 그 이야기 속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 검색이 뭐야 컴퓨터도 없고, 보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 한통 날릴 수 있는 전화기도, 우리의 따수운 겨울을 위한 도톰한 옷도, 무더운 여름 거리를 버티게 해주는 손풍기도, 당연하게도 물이 졸졸졸 나오는 샤워기도, 언제든 꺼내먹을 수 있도록 보관해주는 냉장고도. 지금은 당연하다 못해 소중하다고 여겨지지도 않는 것들.

 그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못하였던 시대라 어찌 살았나 막막하면서도 조금은 부러워지는 시절. 나는 종종 그 시절이 부럽다. 왜냐고 묻는다면 쏟아지는 선택지들 사이에서 숨쉬기가 버거워서, 나를 따라다니는 광고가 나보다 나를 잘 알아서, 샤워기의 물이 너무 잘 나와서, 냉장고가 빈틈없이 채워져 있어서, 당장 내일 세계가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파괴적인 삶을 택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게 지쳐서- 라고 답하겠다. 가끔은 살기 싫게
도 만들어서.

내 손에 쥐어지지 못한 세월은 부럽고,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은 빛이며,
사랑하는 눈동자들의 기대는 빚이고,
완전함을 바라는 마음은 독이며

온도를 담는 건 나의 부끄러웠던 믿음의 몫이 아니었나.

 평소 같았으면 반질반질 그럴듯한 말로 토닥여주기 바빴을 나였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썩어가던 빚들을 먼저 꺼내 보이는 게 글보다 빠를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내 글은 두 눈이 번쩍 뜨이지도 않고, 가슴이 타오를 듯 뜨겁지도 않지만 당신과 만났다. 이게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 기적이고 빛일까. 어찌 더 빛날 수가 있을까.

 좋은 글은 미지근하지도 뜨겁지도 않다.
 
@sossi0226

"거짓말하는 양배추는 되지 마, 할머니의 평생 유일한 충고.

나는 말하는 양배추밭을 가꾼다."


『날개 환상통』, 「할머니랑 결혼할래요」, 김혜순 


애정을 담아, 마공과 자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