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성의 힘을 느꼈던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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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른일곱 번째 책한조각 레터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대상에 깊은 진정성을 담아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 대상은 일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겠죠. 저는 스물한 살 대학생 때 그런 경험을 해봤습니다. 아주 강렬한 경험이었어서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네요.

저는 1학년 때 국제학생포럼을 기획 및 운영하는 학생 조직위원회에 속해 활동을 했었습니다. 단어들은 거창하지만, 쉽게 풀어쓰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나누는 대학생 포럼을 기획하는 팀'이었어요.

1년에 한 번 개최되는 행사였고, 그 1회의 행사를 위해서 저희는 주제 선정, 연사 섭외, 후원처 모집, 대외 홍보 등의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당시 저희가 준비했던 주제는 '연대'였는데요, 즉 '사람들이 왜, 어떻게 하나의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치는가(연대하는가)'였습니다.

사실 저는 당시에 '연대'라는 개념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우선 이 개념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겠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아티클, 책, 영상들을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 개념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택한 방법은 무작정 물어보는 거였습니다.

제가 읽었던 책과 아티클의 저자들에게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메일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연대에 대한 포럼을 개최하려고 하는 학생들입니다. 근데 저는 아직 이 현상에 대한 이해도가 깊지 않습니다. 당신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사실 너무 모호한 질문이었고, 누가 봐도 "얘 연대가 뭔지 정말 모르는구나"를 느낄 수 있는 질문들이었습니다. 당연히 제 메일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답장조차 하지 않았고, 성의를 보여준 분들도 계셨지만 형식적인 답변이었습니다. 슬펐지만 뭐 별 수 있나요.

하지만 그중 딱 한 분으로부터 매우 긴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산하의 연구기관인 The MAHB이라는 곳의 부국장(이라는 직함이 정확한지 모르겠네요. 정식 직함은 Deputy Director입니다)을 맡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The MAHB은 우리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연구하는 곳이구요.

Joan Diamond라는 나이 지긋한 여성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저희의 시도에 흥미를 보였고, 제 질문들에 꽤나 상세하게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깊은 감사와 함께 추가적인 질문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수십 통의 메일을 주고받으며 '연대'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사실 대등한 대화였을 리는 없고, 제 일방적인 질문들에 답을 해주신 게 옳은 표현이겠죠.

제가 한 가지 확실히 하고자 했던 게 있습니다. 바로 모든 메일에 진심을 담는 것이었어요. 이 주제에 대한 진정한 관심, 이 포럼에 대한 진정한 의지,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먼 나라 학생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것에 대한 깊은 감사 말이죠.

그러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이 분을 우리 포럼의 연사로 초청할 수는 없을까..?

하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렸습니다. 왜냐면 저희는 학생들로만 구성된 팀이었고, 예산이 (매우) 빠듯했기 때문이죠. 국내 연사도 거의 무료 봉사 수준으로 모셔오는데, 해외에서 연사를 초청하는 게 가능할 리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어요. 무턱대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당신을 연사로 모시고 싶다고요. 우리가 많은 금전적 보상을 해줄 수는 없지만, 우린 이 주제에 대해 정말 관심이 많고, 이 행사를 반드시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싶고, 당신의 인사이트라면 이 포럼의 퀄리티를 매우 많이 높여줄 수 있을 거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습니다.

여기서도 한 가지 분명하게 한 건 정말 깊은 진심을 담으려고 애썼다는 점입니다. 모국어로 진정성을 표현하는 것도 어려운데, 영어로 진심을 전달하는 건 더더욱 어려웠어요. 아이 디플리 앤드 신시얼리 어프리시에이트 블라블라...

며칠 뒤 답장이 왔습니다. 내용은 수락!

믿을 수가 없었어요. 흔쾌히 한국에 와서 저희 포럼의 연사가 되어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진정성의 힘을 느꼈습니다. 진정성을 담으려는 노력이 분명한 힘을 가지고 있구나.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습니다. 예산(보상)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어요. 저희가 제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연사비만 챙겨주면 되고, 비행기 표 및 숙박 비용은 모두 당신이 속한 기관(The MAHB)의 예산과 사비로 충당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

Joan Diamond라는 멋진 이름을 갖고 계신 이 분은, 과거 한국 대학의 한 교수님과 공동 연구를 한 적이 있고, 그때 이후로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과 그리움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의 부탁을 더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한국에 와서 겸사겸사 그 교수님도 만나 뵙겠다는 것이었어요. 또 대학생들의 이러한 적극적인 시도를 기특하게 여기셨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결국 Joan은 참가자가 끽해야 30명 내외 수준이었던 저희의 포럼에 와서 너무도 멋진 강연을 해주셨고, 참가자들의 발표의 심사위원 역할도 해주셨습니다. 아직까지도 제 인생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일 중 하나예요.

마지막으로 Joan이 저와 점심을 먹으며 해주신 말을 첨부하며 레터를 마치겠습니다.

포럼에 사전 등록을 해두고 당일에 실제로 참여한 사람들의 수가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예상보다 저조한 참여율이 실망스러웠고, Joan에게는 더더욱 미안했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행사를 생각하고 온 건 아니었을 테니까요.

점심을 먹으며 그런 부분에 대한 미안함을 얘기했더니 Joan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의 남편은 교수인데, 어느 작은 나라에서 연사 초청이 와서 간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행사의 참여자 수가 단 5명이었던 거예요. 하지만 남편이 집에 돌아와 한 말은, 단 5명이라고 해도 자신이 그 사람들의 지식수준을 높여주고,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수가 중요한 건 아니라면서요. 그러면서 Joan은 이 포럼은 5명에 비해서는 몇 배 이상 큰 규모이니 얼마나 좋냐며 막 웃었습니다.

벌써 7~8년 전 일인데 아직도 생각하면 소름이 돋고 말할 수 없이 감사하고 암튼 그렇습니다. 썰 풀다 보니 레터가 엄청 길어졌네요.

여러분은 정말 깊은 진정성을 담아본 경험이 있으신지, 있다면 그 대상은 무엇이었고 결과는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그럼 다음 주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 이번 주에 기록한 책 속 문장들 ✍

📖 "인생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오직 나 자신의 장점밖에 없다."

🤔 위버멘쉬가 되려 노력하기

📖 "그중 가장 큰 위험부담은,"

🤔 지금 내가 하고있는 일을 돌아보게 해주는 구절

📖 "남자와 여자라는 사회적 용어는 생물학적 용어와는 관련이 희박하다."

🤔 '남성과 여성', '남자와 여자'의 차이

책한조각에겐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성은 오씨고 이름은 리지널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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