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영화 #노스텔지아 #고요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지난 한주 어떠셨나요? 부디 아무 일 없이 평안하셨길 바랍니다 😊

처음 만들어졌을 때 영화는 소리도 색도 없었습니다. 흑백 영상을 스크린에 투영하고 피아노 반주를 곁들여서 상영회를 열었지요. 기술이 발전하면서 영상과 소리가 통합된 유성영화가 등장하고 흑백 영상도 컬러 영상으로 바뀌었어요. 요즘은 거기에 3D, 4D 기술이 더해져 영화가 '보기'에서 '체험'의 영역으로 옮겨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에도 여전히 흑백 영화가 종종 만들어집니다. 얼마 전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흑백 버전으로 재개봉하기도 했죠. 굳이 흑백으로 영화를 만드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흑백 영상은 관객이 이야기 그 자체에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다른 볼거리가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요즘 만드는 흑백 영화는 대부분 음향 효과도 극도로 아낍니다. 색을 없애고, 소리를 낮추고, 무엇이든 최소한만 남긴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순식간에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이끌어요.

이다(2013)
폴란드 영화를 본 적이 있나요? 우리가 평소 접할 수 있는 국외 영화는 대부분 영미권 영화입니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영미권이 아닌 나라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만나면 한번 더 눈여겨 보게 되더라고요. 약간의 낯설음을 지나고 나면 평소 보던 영화와는 색다른 영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나만의 보석을 발견한 것 같은 기쁨도 덤으로요.

안나는 수녀원에서 고아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정식 수녀가 되기 위해 서원식을 치르기 전 자신에게 이모가 있다는 걸 알게 돼요. 원장 수녀님은 안나에게 서원식 전에 이모를 만나고 오라고 합니다. 평생 있는 줄도 몰랐던 이모를 만나러 가는 일이 영 내키지는 않지만 수녀님의 말을 따라 안나는 도시로 향합니다. 처음만난 이모 완다는 그리 살갑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인사만 나누고 돌아가면 되는 건가 했는데, 완다는 안나가 유태인이고 본명이 '이다'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영화 '이다'는 스탠더드 화면비(4:3 또는 1.33:1)로 만들었어요. 화면을 가득 채운 1960년대의 폴란드와 소녀 안나, 아니 이다의 이야기에 눈과 귀를 기울여보세요.  

감독 :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러닝타임 : 1시간 21분
Stream on Watcha  
로마 (2018)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영화 '그래비티'를 통해 영화를 '우주 체험'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후 다음으로 무엇을 선보일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감독은 흑백 영화를 가지고 왔어요. 
(그것도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말이죠. 이 영화 때문에 넷플릭스 결재를 시작한 사람도 제법 많을 거예요. 전 로마는 참았는데 아이리쉬맨은 참지 못해서... 덕분에 로마도 보았습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님 사랑해요 😘)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합니다. 왜 제목이 로마인가 했더니, 영화의 배경이 멕시코시티 안에 있는 로마라는 지역이라네요. 흑백 영상 너머로 1970년대의 멕시코시티가 펼쳐지는데 그때 당시 우리나라와 비슷한 느낌이에요. 영화는 집안일을 보는 나이 어린 입주 가정부 클레오를 중심으로 그녀를 고용한 가족의 일상을 그립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꽤 오랫동안 물로 마당을 씻어내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어렸을 때 빗자루로 마당 청소를 하던 엄마를 보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영화 로마는 그런 영화입니다. 보는 이를 찰나의 순간에 어린 시절의 기억 속으로 데려다주는...

감독 : 알폰소 쿠아론
러닝타임 : 2시간 14분
Stream on Neflix
동주 (2015) 
제게 윤동주 시인의 시를 처음 알려준 건 '한컴타자연습'입니다. 저와 비슷하게 학창 시절을 보냈다면 아마 기억하실 거예요. 모니터를 가득 채운 회색 화면과 낮은 픽셀의 검은 명조체. 여러 타자 연습 중에 가장 짧은 예문이라 친구들 사이에도 인기 연습 레퍼토리였어요. 그때의 반복학습 탓인지 별 하나에 무언가를 헤아리는 구절은 요즘도 문득문득 머리속에 떠오르곤 합니다.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강하늘 분)와 송몽규(박정민 분)의 삶을 향해 아주 고요하게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영화적인 꾸밈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윤동주의 시와, 혼란한 시대에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과 그를 지켜보며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지기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단순한 연출이 때때로 TV 문학관을 보는 듯한 기분을 들기도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윤동주의 시가 더욱 돋보여요. 

지금은 왓챠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데요, 두 곳 모두 4월 30일에 스트리밍 서비스가 종료됩니다. 한번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이번 주말에 함께해 보길 권합니다. 
 
감독 : 이준익
러닝타임 : 1시간 50분
Stream on Watcha & Netflix
함께하면 좋을 책 📓
그날들
윌리 로니스 (1910 - 2009)

파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에 '자기 키만 한 바게트를 안고 달려가는 남자아이'가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 윌리 로니스의 작품집입니다. 1940년대 즈음의 파리의 일상을 담고 있는데요, 모두 흑백 사진입니다. 

각 사진마다 거기에 얽힌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는데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무심코 보았던 사진이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어쩌면 특별할 것 없이 보이는 일상의 순간순간을 포착해내는데 이것이 사진가가 보는 세상인가 싶어요.

흑백 사진인데도 굉장히 따뜻한 느낌이 듭니다.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파리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요. 책을 읽다 보면 나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동네 이곳저곳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샘솟습니다. 
저는 흑백이 매체의 주류이던 시대를 겪어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흑백 사진이나 영화를 보면 묘한 노스텔지어를 느낍니다. 화려한 영상도 좋지만, 흑백만이 주는 단단한 힘은 오래도록 기억되고 사랑받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돌아오는 금요일에 또 만나요.
당신의 큐레이터Q
🧐 지난 금요알람 보기 https://url.kr/6q58is
📬 금요알람 구독하기 || 친구에게 소개하기 https://url.kr/4aycxm
금요알람은 언제나 당신의 이야기를 환영합니다. 
fridayalarm@gmail.com 
구독을 원치 않으시면 아래를 클릭해주세요.
다시 만날 그날까지 건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