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좋아했던 음악을 들으면서 잠시 눈을 감고 어떤 시절에 방문한다. 아주 손쉬운 타임머신이다. 마지막으로 들은지 아주 오래된 음악이라도 나는 그것을 어느정도 따라 불러볼 수 있다. 비록 가사와 세세한 악기의 연주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어디서 주 멜로디의 음이 미끄러지고 또 솟구치는지 가늠할 수 있다. 다들 그런 경험은 해 봤을 것이다. ‘그 노래 있잖아, 흠흠흠~ 흠흠흠흐음 그리고 그 흠흠흠~흐음 흠흠 그 다음에 반주가 다라다라라라 하고 올라가고……’ 종종 내가 깊이 생각에 빠지는 주제 중 하나는, 만약 내가 모종의 뇌 손상을 입고 기억을 대부분 잃어버린다면, 내가 즐겨 들어왔던 음악들, 언젠가 사랑했던 음악들이 내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궁금증이다. 마침 어느 정도의 실마리를 주는 사례를 올리버 색스의 책 <뮤지코필리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음악가 클라이브 웨어링은 치명적인 헤르페스 뇌염에 감염된 뒤 기억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심하게 손상되었다. 그는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지 못해 몇 분, 몇 초마다 자신이 새로운 곳에서 깨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역행성 기억상실증의 발현으로 뇌 질환이 발생하기 이전의 기억들마저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오로지 그의 연인 데버러만을 기억했다. 올리버 색스는 ‘데버러는 그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었다’ 라고 서술한다. 그마저도 클라이브는 데버러를 보고 있지 않을 때 그녀의 생김새에 대해 서술 할 수 없었고 데버러가 우연히 그의 곁을 지나간다고 해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1965년 이후의 사건들에 대해 거의 기억하지 못했지만, 이전에 그가 지휘하고는 했던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거기에 아주 능숙한 즉흥연주를 추가할 수도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고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있을 때도 오르간 앞에 앉아 능숙하게 페달을 밟고 또 노래 할 수 있었다.
이는 기억에 서로 다른 두가지 분류가 있음을 뜻한다. 첫번째는 오늘 아침 누군가를 만났다, 점심식사로 무엇을 먹었다 등과 같은, 사건에 대한 의식적 기억(일화성 기억)이고 두번째는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절차성 기억(내재적 기억)이다. 이를테면 숟가락질, 자전거 타기, 연주하기 등이다. 클라이브 역시 연주 뿐만이 아니라 면도를 하거나 옷을 입거나 춤추거나 말할 수 있었다. 절차성 기억은 반복, 리허설, 타이밍, 연속이 생명이라고 한다. 신경생리학자 로돌포 이나스는 절차성 기억에 대해 ‘고정행위 패턴’ 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나스는 연주자가 내재적 기억을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이를테면 클라이브 역시 놀라운 음악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악보를 준비해주고, 연주하도록 이끄는 등 다른 사람의 ‘면밀한 지시’가 있어야만 새로운 음악을 배우고 연주할 수 있었다.
클라이브가 노래하거나 피아노를 칠 때 뇌 속에서 암호화된 운동패턴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예술적이거나 창조적인 연주는 자동화 기제에 의존할지언정 절대 자동적이지 않다. 데버러는 ‘음악의 추진력’이 클라이브를 이끌어간다고 말한다.
‘작품의 구조 속에서 그는 마치 보표가 전차 선로이고 자신이 전차라도 되듯 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간다 (…) 악절마다 리듬과 조성과 선율이 맥락을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음악은 음의 연속적인 나열이 아니라 탄탄하게 조직된 완전한 유기체다. 모든 마디, 모든 악절이 앞선 마디와 악절에서 유기적으로 나오고 이어지는 것을 지시한다.’
아마 처음 들어보는 음악에서, 다음에 어떤 식으로 음이 진행되리라는 것을 가늠해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바로 음악적 관습과 패턴이 우리 안에 친숙하게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나 역시 뛰어난 연주자는 아니지만, 무언가를 연주할 때 내가 연주해 온 선율이 그 다음 음을 이끌어내는 듯한 경험을 하고는 한다. 우리가 다소 과장되거나 뜬금없는 형식의 음악을 들을 때,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진행이 이어질 때 크게 당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올리버 색스는 또 이렇게 말한다.
‘음악 청취는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추측과 가정과 기대와 예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는 극히 능동적인 활동이다 (…) 우리가 선율을 ‘기억하는’ 순간 그것은 마음속에서 연주되면서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는다.’
‘음악을 음향적 사건의 연속으로 듣는다면 금방 지루해질 것이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간의 표출로 듣는다면 지루할 수가 없다.’
클라이브가 발병한지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는 어떤 차도가 없다. 그는 공간과 시간에서 떨어져 나와 더이상 내적 연속성을 이루며 살지 않는다. 클라이브는 그러나 과거의 것이나 ‘한때’ 일어났던 사건의 기억을 열망하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현재를 요구하고 채우는 것이고, 그것은 ‘그가 행위의 연속적인 순간에 완젼히 빠져들 때만 가능하다. 심연의 다리를 잇는 것은 ‘지금’이기 때문이다.’
책 이야기가 좀 길어졌다. 실은 오늘은 예고한 바와 같이 조엘플레잉 특별편이다. 바로 조엘플레잉의 구독자이자 내가 오래전부터 사랑하고 존경해 온 음악가 빅 베이비 드라이버가 2월 17일 발매한 EP <Leftover>를 소개하기 위한 특별편이다! 이번 EP 앨범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앨범에 실리지 않았거나 ‘묵혀둔’ 음악들이 수록되어 있다.
“<Leftover>에 실린 다섯 곡은 과거와 현재를 비춘다”(앨범 소개글 인용) 그 컨셉에 맞게 빅 베이비 드라이버는 곡을 작곡할 당시 즐겨 들었거나 영향을 준 음악들을 묶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 플레이리스트는 여기에) 오늘 플레이리스트는 그 형식을 흉내내어, <Leftover>에서 좋았던 곡들, 그리고 내가 <Leftover>를 들으며 받은 인상들을 설명할 수 있을만한 곡들을 오래 전 좋아했던 음악들 중에서 고르고, 빅 베이비 드라이버가 만든 플레이리스트에서 몇 곡을 골라 만들어보았다.
오래전에 쓰고 연주했던 곡들을 골라 앨범으로 묶는 마음이란 가상의 타임머신을 타고 이루어지는 수집 활동처럼 느껴진다. 과거의 일들을 모아 지금 여기로 소환하고 현재로 만들어내는 일. 과거의 일들은 절대 과거에만 남아있지 않다. 그것은 다시 우리가 연주하고 부르면서 새로운 ‘현재’의 감각이 된다. 또한, 그 시간을 알 수 없는 우리들에게는 누군가의 과거가 우리의 새로운 현재가 된다. 나는 빅 베이비 드라이버, 그 이전에는 아톰북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나의 개인적인 역사 역시 이 음악과 함께 현재에서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위에서 썼듯이, 이전에 내가 연주해오고 있던 선율이 그 다음 선율을 이끌어내듯이---과거의 음악들이 앞으로의 음악을 만들고, 내가 이전에 했던 일들이 나의 다음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빅 베이비 드라이버의 EP <Leftover>는 여러분께 아주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