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다스리기
매일 좋을 순 없다. 여행할 땐 거의 매일 좋은 편인데 그래서인지 한 번 기분이 가라앉으면 세게 가라앉는다. 물러서 있던 걱정과 슬픔, 무력감, 울적함이 한 번에 몰려오는 듯하다. 해결 방법을 안다. 나가서 걷는다. 엉킨 생각이 풀리든 사라지든 다시 숨든 평정을 되찾을 때까지 걷는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오늘은 이미 걸었다.
한 더미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엑스트라 드라이로 돌린다. 잘 마른 빨래의 포근한 냄새를 맡고 싶다. 멍... 낮술을 때려야 하나. 아니지. 크로와상을 먹으러 갈까? 그럴 시간은 지났다. 일단 밥을 먹자. 아보카도를 하나 으깨고 칼집 낸 방울토마토를 우르르 넣고 올리브오일 잔뜩과 소금을 뿌려 전자레인지에 1분. 캐슈넛 한 움큼. 한두 입 먹고 나니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잘 다스렸단 생각에 기분이 나아진다.
설거지하는데 옆방의 Andy가 묻는다. “닫았던 브루어리가 다시 열어서 친구들이랑 맥주 마시러 갈 건데 낄래?” 갈까. 영어를 듣고 말하는 일에 정신을 돌려 이 기분을 덮어버릴까? 덮어지긴커녕 쓸쓸함까지 더해질 것 같다. “아니, 난 카페 가서 쉴래.” 책과 노트북이 든 가방을 들고나온다. 일단 걷는다.
감정의 실체를 쫓아본다. 그럴 줄 알았지. 불안이다. 잘하고 있는 건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거 아닌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거 아닌가? 판단 기준을 찾는다. "오늘 기분 좋으면 잘하고 있는 것. 그걸로 끝.” 자, 그러면 지금은 기분이 안 좋으니 잘못하고 있는 거고,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거고,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건데 어떻게 할까. 기분 좋은 생각을 해 보자.
나는 누군가에게 미안할 만큼 운이 좋다. 성숙해질 만큼만 고생했고, 그 과정 과정에 삐뚤어지지 않게 등 두들겨 주는 어른들이 있었다. 보통 외로웠지만, 손잡아주는 친구가 한 명은 있었다. 지금은 천원, 오천원, 만원 밥 챙겨 먹으라는 메시지와 함께 구독료를 보내주는 친구'들'이 있다. 뉴욕에서 인종차별은커녕, 말 걸면 활짝 웃으며 답해주는 사람들을 하루걸러 하루 만난다. 이번 달까지는 월급도 들어온다. 모든 게 싫어지면 다 팽개치고 도망가 숨을 곳이 있다. 그러니까. 불안할 게 뭐가 있나.
이제 가진 것이 많아 잃을까 불안한 걸 거다. 그럼에도 더 갖고 싶은 게 있어 못 가질까봐 불안한 걸 거다. Let it be. C'est la vie. Memento mori.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성큼성큼 걷다 보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제 군것질할 자격이 있는 것 같다. 무려 7달러(10,041원)나 하는 초코케이크를 한 조각 산다. 크게 베어 입에 넣는다. 아무것도 아니다. 거의 다 아무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