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1일
Rule #10

마음 다스리기


매일 좋을 순 없다. 여행할 땐 거의 매일 좋은 편인데 그래서인지 한 번 기분이 가라앉으면 세게 가라앉는다. 물러서 있던 걱정과 슬픔, 무력감, 울적함이 한 번에 몰려오는 듯하다. 해결 방법을 안다. 나가서 걷는다. 엉킨 생각이 풀리든 사라지든 다시 숨든 평정을 되찾을 때까지 걷는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오늘은 이미 걸었다.


한 더미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엑스트라 드라이로 돌린다. 잘 마른 빨래의 포근한 냄새를 맡고 싶다. 멍... 낮술을 때려야 하나. 아니지. 크로와상을 먹으러 갈까? 그럴 시간은 지났다. 일단 밥을 먹자. 아보카도를 하나 으깨고 칼집 낸 방울토마토를 우르르 넣고 올리브오일 잔뜩과 소금을 뿌려 전자레인지에 1분. 캐슈넛 한 움큼. 한두 입 먹고 나니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잘 다스렸단 생각에 기분이 나아진다.


설거지하는데 옆방의 Andy가 묻는다. “닫았던 브루어리가 다시 열어서 친구들이랑 맥주 마시러 갈 건데 낄래?” 갈까. 영어를 듣고 말하는 일에 정신을 돌려 이 기분을 덮어버릴까? 덮어지긴커녕 쓸쓸함까지 더해질 것 같다. “아니, 난 카페 가서 쉴래.” 책과 노트북이 든 가방을 들고나온다. 일단 걷는다.


감정의 실체를 쫓아본다. 그럴 줄 알았지. 불안이다. 잘하고 있는 건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거 아닌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거 아닌가? 판단 기준을 찾는다. "오늘 기분 좋으면 잘하고 있는 것. 그걸로 끝.” 자, 그러면 지금은 기분이 안 좋으니 잘못하고 있는 거고,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거고,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건데 어떻게 할까. 기분 좋은 생각을 해 보자.


나는 누군가에게 미안할 만큼 운이 좋다. 성숙해질 만큼만 고생했고, 그 과정 과정에 삐뚤어지지 않게 등 두들겨 주는 어른들이 있었다. 보통 외로웠지만, 손잡아주는 친구가 한 명은 있었다. 지금은 천원, 오천원, 만원 밥 챙겨 먹으라는 메시지와 함께 구독료를 보내주는 친구'들'이 있다. 뉴욕에서 인종차별은커녕, 말 걸면 활짝 웃으며 답해주는 사람들을 하루걸러 하루 만난다. 이번 달까지는 월급도 들어온다. 모든 게 싫어지면 다 팽개치고 도망가 숨을 곳이 있다. 그러니까. 불안할 게 뭐가 있나.


이제 가진 것이 많아 잃을까 불안한 거다. 그럼에도  갖고 싶은 게 있어 가질까봐 불안한 거다. Let it be. C'est la vie. Memento mori.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성큼성큼 걷다 보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제 군것질할 자격이 있는 같다. 무려 7달러(10,041) 하는 초코케이크를 조각 산다. 크게 베어 입에 넣는다. 아무것도 아니다. 거의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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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뉴스레터에 답장이 온다. 어떤 글은 혼자 보기 아깝다. 함께 보려고 여기에 옮긴다.


루크레시아 마르텔의 말은, 따지고 보면 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지만, 뼈를 때린다.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차이라는 것은, 그 차이가 얼마나 모호한가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알려주기도 한다. 
그 모호성이, 마르텔의 두번째 말을 이해하도록 이끈다.
그리고 극장에서의 실제 상황은, 즉 다큐 속의 실제 죽음 앞에서의 환호 그리고 그것의 갑작스런 중단은 그 모호성 혹은 이중성이 우리의 경험 속에 구현되는 기막힌 사례이기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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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뱅크 1000-1000-2750 이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