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아침 일곱시에 눈이 떠지며 시작하는 하루, 꼬박꼬박 챙겨 먹는 비타민, 하루 10분 걷기, 부모님께 보내는 안부 문자와 같은 자연스러운 일상 말이죠. 이런 대부분의 사건들이 반복되는 하루의 풍경이 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일상에 녹아든다는 건 고집과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일본 브랜드 오라리(Auralee)는 아침에 아무런 생각 없이 무심코 고를 수 있는 옷을 만듭니다. 주변 풍경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내면의 아름다운 개성을 돋보이게 해주는 ‘자연스러운’ 디자인을 추구하지요. 티셔츠 한 장을 만들어도 오랜 시간 공들이며 고민하고, 계절과 주변 사물을 닮은 소재를 찾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이유 역시 아마 이 때문일 겁니다. 오늘은 부드럽지만 강인한 힘을 가진 오라리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일상 속 파편이 되고자 부단히 움직이는 이들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길 바라요.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말하는 오래된 포크송의 제목이자, ‘불을 밝혀주는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 브랜드, 오라리(Auralee). 일본인 디자이너 이와이 료타(Iwai Ryota)에 의해 2015년 설립된 브랜드입니다.  소재와 실루엣에 집중한 미니멀한 스타일의 옷을 만드는 것이 특징. 런칭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주 탄탄한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어요.

이와이 료타는 Norikoike를 비롯한 여러 패션 브랜드에서 패턴 메이커로서의 일을 한다. 원단 도매상인 Clip-Crop에서 일을 하다가, 2015 SS 시즌을 맞이하여 브랜드 오라리를 런칭하게 돼요. 그리고 드디어 2017년 9월, Auralee의 첫 번째 목표였던 자체 매장을 도쿄의 미나미 아오야마에 엽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사실 파리에서 컬렉션을 발표하거나, 어떤 상을 수상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고 하죠. 이와이 료타는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을 뿐인데 기회가 오고, 대처하고, 또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걸었습니다. 이내 그는 깨닫습니다. 이런 잔잔하고 꾸준한 성장이 곧 오라리만의 스타일로 굳어질 거라는걸요. 확고한 스타일 정립 후, 차분한 노력 끝에 오라리는 이내 제2회 Fashion Prize of Tokyo에서 수상을 받고 런칭 4년 만에 파리 컬렉션에서 환영을 받으며 데뷔합니다.

소재를 향한 이와이 료타의 오래된 집념 끝에 오라리는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오리지널 소재로 정평이 났습니다. 원단 도매상의 Clip-Crop에서 분리되어 시작한 브랜드이기에, 원단은 보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자 하는 이와이 료타의 애집 덕분이죠. 디자이너들이 직접 국내외의 도매상까지 찾아 나서며 옷을 구상할 정도예요. 높은 퀄리티의 소재는 오라리의 깔끔하면서 미니멀한 맛의 디자인과 서로 맞물리면서 순식간에 글로벌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

오라리는 몸을 타고 흐르는 유려한 실루엣, 그리고 편안한 움직임을 가진 옷으로도 칭찬 일색인데요. 이와이 료타가 워크웨어를 사랑하는 덕분입니다. 모든 작업복의 디테일에는 존재 의미가 있다고 말해요. 가령 워크웨어에 달린 포켓 크기와 위치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식이죠. 패션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부터 ‘의미가 담긴 디자인’을 좋아했던 이와이 료타에게는 워크웨어만큼이나 매력적인 스타일도 없었는데요. 그래서 오라리는 미니멀한 디자인을 지향하지만, 자세히 보면 워크웨어의 요소에 착안하여 최소한의 디테일을 적용한 옷을 제작합니다.

한국에서는 ‘미니멀리즘 브랜드’라는 키워드로 대변되고는 하지만, 깔끔하고 심플한 디자인만이 이 브랜드의 모든 것을 뜻하진 않습니다. 오라리의 영감의 원천은 ‘날씨’, 그리고 ‘일상에서 우리를 둘러싼 색과 여행’이에요. 특히 소재만으로도 사람들이 ‘계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힘을 쏟습니다. 가령 삶과 계절의 주변 사물로부터 영감을 얻어서 디자인 작업을 하는데, 계절의 질감을 옷의 소재로 표현해요. 그래서 처음부터 미니멀리즘을 지향한 건 아니지만, 소재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로고, 프린팅, 혹은 다채로운 디테일을 활용하는 것에 딱히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고.

오라리는 일상에서 영향을 받다 보니 오히려 ‘기본’에 충실하게 된다고 전합니다.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섬세하면서 기본적인 디자인, 유행과는 상관없이 오랫동안 입을 수 있으면서 언제나 손이 가는 그런 편안한 옷들 말입니다. 그래서 오라리의 옷엔 부담스럽지 않은 샌드 컬러부터 뉴트럴 색상이 주입된 정교한 테일러링과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는 느슨한 실루엣이 균형 있게 믹스되어 있는 것이 특징.

오라리의 컬렉션은 타 브랜드들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어요. 각 시즌마다 특정한 ‘주제’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 거창한 영감의 원천도,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도 없습니다. 그저 단편소설의 챕터를 보고자 책장을 넘기듯, 모든 컬렉션은 하나의 지속적인 연장선입니다. 시대가 변화하고 새로운 접근 방식과 기술이 있을 수는 있지만, 오라리의 미학은 여전히 그대로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죠.

덕분에 늘 따뜻하고, 편안하며, 또 차분합니다. 자연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내는 세련되고 투명한 디자인과 파스텔 톤의 따뜻한 컬러 팔레트는 늘 한결같아요. 오라리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이런 요소들. 지금의 팬들이 매 컬렉션을 기대하게 만드는 동력으로 자리 잡았죠.

항상 그렇듯이, 오라리의 핵심은 ’소재’이다. 이번 2023 SS 컬렉션은 실크, 린넨, 면을 트로피컬 울, 캐시미어, 모헤어 등의 원단과 혼합한 옷들이 주로 보였습니다. 그린, 오렌지 등 중성적인 컬러 팔레트를 활용한 것 역시 눈에 띄어요.

퀄리티 좋은 면 트위드, 실크 니트웨어 등에 스포츠에서 영감을 받은 나일론 반바지와 아노락 등과 과감히 매치한 모습입니다. 뉴발란스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슈즈까지, 오라리가 가진 우아하고도 선명한 정체성에 역동적인 멋을 가미하여 우리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컬렉션이었어요. 스포티한 아이템 위에 수트를 과감히 걸쳐버리는 믹스매치가 돋보였던 이번 2023 SS 시즌, 몇 가지 룩을 함께 즐겨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