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태계는 생물로 이루어진 군집(community)과 이 군집이 접하고 있는 무생물적인 물리적·화학적 환경이 유기적 집합을 이룬 것을 말한다. 생물 군집은 식물·동물·미생물이고, 무생물적 환경은 대기·기호·토양·물처럼 생물을 제외한 요소들이다. 그래서 생태계는 이해하고 싶은 대상에 따라 그 경계와 크기가 정해진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출판 생태계’라는 표현을 참 많이 들었다. 나에게는 ‘출판사를 살려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내가 이곳에서 밥을 벌어먹고 있으니 당연하다 여겼다. 다른 의미로는, ‘책 좀 많이 사달라’는 말이기도 했다.
출판으로 밥을 벌어먹는 이들에게 ‘출판 생태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속한 곳이니 말해 뭐하랴. 그런데 이들이 아니면 ‘출판 생태계’ 살리는 일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러니 이 말을 하며 책 좀 사달라고 하는 건 별 설득력이 없다. 그래도 책을 사달라는 말보다는 있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지구 생태계를 살려보겠다며 ‘비니루’ 대신 장바구니를 가방에 넣고 다닌다. 카페 갈 때는 텀블러를 들고 가서 커피를 받아온다. 귀찮고 불편한 일이다. 이 지구별에 인간들이 차고 넘치는데 나 하나 그렇게 한다고 어떻게 생태계가 살아날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지구 생태계 살리겠다고 개인뿐 아니라 기업도 온갖 불편하고 어려운 일을 한다. 이제는 수많은 국가와 단체와 개인들이 탄소를 열심히 줄이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데 동참하고 있다. 지구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연대하고 동참하는 ‘회원님’과 ‘멤바’가 늘어나는 셈이다.
출판 생태계를 살리는 일이란 무엇일까. 출판 생태계 회원님과 멤바가 늘어날수록 생태계를 살리는 일이 더 힘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출판 생태계 멤바가 되는 길이 책 사주는 일 말고는 없는 걸까? 회원님이 되고 싶고 멤바가 되고 싶은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생태계가 살아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지점이다. 책 읽는 이들을 출판 생태계 멤바로 만들려면, 아마도 먼저 현재 생태계에 속한 이들의 정신, 마음, 가치를 함께 공유하고 연대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출판사가 책 한 권 더 팔아서 이익을 내거나 수익을 창출하는 데서 조금 더 확장해보자는 말이다. 그러면 생물과 생물이 만나 군집 즉 커뮤니티가 되듯, 이 커뮤니티가 무생물과 만나 생태계를 확장해가듯 우리 출판 생태계도 조금 더 의미 있는 형태로 진화하지 않을까? 아, 기독교인이 ‘진화’를 말하는 건 좀 그런가? 어쨌든, 진화한 생태계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해하고 싶은 대상을 확장하여 설정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2.
책을 완성하려면 두 번 인쇄해야 한다. 표지 한 번, 본문 한 번. 인쇄된 본문은 먼저 제본소로 가서 기다리고, 표지는 코팅과 후가공을 위해 ‘코팅집’으로 간다. 표지 후가공 시간은 본문 잉크가 마르는 시간이기도 하다. 본문 잉크가 다 마를 때쯤 후가공을 마친 표지가 제본소에 도착한다. 순서를 기다린 끝에 제본 기계로 들어간 본문은, 잘리고 접힌다. 그리고 풀을 발라 표지와 합체하면 책이 완성된다.
완성된 책은 유통을 위한 창고에 입고된다. 입고된 신간은 출판 유통의 특별한 방식인 ‘위탁’ 시스템에 따라 계약된 서점으로 ‘배본’된다. 대부분의 출판 창고는 ‘파주’에 있다. 창고에는 하루 종일 무거운 책 나르고 정리하고 출고하거나 반품이 들어왔을 때 재생하고 폐기하는 등 고생스러운 일을 하는 직원들이 있다. 출고 프로그램으로 출고 명령을 입력하면 창고에서 출력되고, 출고서를 따라 전국 서점에 배본된다. 창고에서 서점으로 책을 보내주는 곳이 ‘유통사’인데, 기독교 유통사는 ‘소망사’가 유일하다. 소망사 직원들이 탑차를 타고 출판사 창고를 돌아 책을 수거하고 분리해 싣고 전국 서점에 배송한다. 서점 신간 매대에 올라온 책은 독자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독자 몇 분이 신간을 선택하면 서점에서는 재주문한다. 출판사에 팩스나 전화로 재주문하면 출판사는 매일 아침 전국 서점에서 보내온 주문서를 취합해 창고로 가는 출고 명령서를 입력한다.
이렇듯 책을 만들기까지도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오히려 그 이후 과정은 출판사 안의 손길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과정이다. 인쇄, 제본, 코팅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만 작업할 수 있다. 그런데 몇 년 전 주 52시간 법이 제정되며 24시간 주말도 없이 돌아가던 인쇄소와 제본소의 기계가 멈췄다. 리스로 기계를 사서 10년 이상 갚아나가며 30년 넘게 사업하던 분들이 새 기계를 구매해야 하는 시점에 사업을 접는다. 인쇄 관련 업종의 제작 단가가 낮다 보니 주 52시간 기계를 돌려서는 사업을 유지하기 어렵다. 몇 년 전만 해도 인쇄 감리하고 평균 일주일 이후면 유통할 수 있었다. 이제 양장본은 최소 3주 여유가 있어야 한다. 제본집이 문을 닫아 물량을 소화할 수 없다.
책값에는 사업을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장님과 직원들의 피·땀·눈물이 서려있다. 평생 뒤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해온 분들이, 기계 멈추는 날까지 마지막 춤을 다하겠다는 듯 일하고 있다. 책 만드는 출판사 이상으로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출판’ 자부심은 대단했다. 수십 년간 자리를 지켜가며 밤을 지새우고, 휴일에도 기계를 돌리며 일해왔다. 나는 오래전부터 책 판권에 인쇄와 제작처가 표기되는 것에 이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복음과상황〉 400호에서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 이범진 편집장님이 웹진 〈서사의 서사〉를 만드는 이유가 ‘읽는 생태계’를 꾸려가기 위함이라고 했다. 이 글을 읽으며 출판 생태계는 이미 책을 만드는 생태계와 유기적 결합을 이루고 있고, 이런 생태계에 책을 나누는 서점 생태계와 책을 읽는 독자 생태계까지 더해져서, 읽는 생태계로 진화하게 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음과상황〉 400호를 받아볼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그 길에 이렇게나마 동행할 수 있어서 진심 행복하다.
400호에 이르기까지 함께해오신 모든 분께 한 명의 오래된 독자로서 고개 숙여 감사드리고, 이 글도 출판 생태계를 넘어 읽는 생태계로 가자는 〈복음과상황〉의 한 명의 멤바가 되고 싶은 짝사랑을 담아보며, 800회까지 가즈아~~~
이재원
홍성사, 위즈덤하우스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선율 출판사에서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