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매일 쌓아온 사소한 습관들은 결국 삶의 문제가 된다.
2024년 3월 둘째 주: 9호
안녕하세요. 정민호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저는 최근 실수가 잦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꼼꼼하게 챙겼어야 하는 일을 놓쳐버리고 마는 ‘구멍’ 난 순간들이 저를 스쳐 갔습니다.

복기해보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존재합니다. 이런 일은 어딘가 불편한 부분, 내키지 않는 것, 깔끔하게 정돈되지 않은 모호한 영역들에서 주로 일어나지요. 솔직하게 말해서, 제가 애정과 에너지를 많이 담지 않은 것이 탄로 나는 겁니다.

이불킥을 하게 되는 날이면, 뭐든 듣고, 뭐든 읽고 싶어집니다. 다른 곳으로 생각을 돌리고 싶은 거죠. 저는 요새 다른 뉴스레터들을 훑어보고, 웹진을 찾아봅니다. 독자님들은 그럴 때 어떻게 하시나요? 아무거나 읽고 싶을 땐 무얼 읽으시나요? 〈서사의 서사〉 메일이 독자님의 그런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찾아가 읽히면 좋겠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졌다가 추워졌다가 하네요. 저는 입술 안쪽에 물집이 생겼습니다. 모두 몸조리 잘하시고, 건강하게 지냅시다.

오늘도 책과 함께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나와 습관 사이에서
이하나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 ‘경칩’이 지났다. 완연한 봄을 느끼기엔 아직 이르지만, 달라진 아침 공기에서 봄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마다 봄이 오면 봄맞이 대청소를 한다. 창문을 활짝 열어 겨우내 묵었던 창틀 사이의 때를 벗겨내고, 켜켜이 쌓인 추억만큼 늘어난 짐들을 비워낸다. 남편과 나는 소문난 ‘청소광’이지만 아기자기한 것들을 좋아하는 여자아이 셋과 살다 보니 때마다 버려야 할 물건이 한가득하다.

최근에 《버리기 잘한 습관들》(구름이머무는동안)이라는 책을 한 권 추천받았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 ‘삶을 바꾸는 습관’ 같은 유의 제목이 아니었고, 내가 가진 것을 ‘버리는’ 내용을 연상케 한다는 점과 ‘버리기 잘한’이라는 회고적 표현이 마음에 들어 얼른 구매했다.
실제로 책에서는 너무나 사소한 나머지 지나치기 쉬운 익숙한 습관을 이야기한다. 올바른 삶을 위해서 계속 늘려야 하는 좋은 습관들이 아닌, 나도 모르게 반복하는 잘못된 습관들을 발견하고 하나둘씩 비워나가는 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시고 강박적으로 집을 정리한다. 오늘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을 정리하다 보면 마음이 분주해지고, 분주하다 보니 산만해진다.

신속한 것과 분주한 것은 다르다. 빠르게 일하면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분주함은 우리를 넘어지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분주해질까? 나보다 먼저 빨리 달려가는 사람들 속에서 속도를 맞추지 못할 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신이 무능력해 보이거나 게을러 보인다고 느낄 때 우리는 분주해지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빠르고 신속한’ 삶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세상은 우리에게 ‘빠르게’ 사는 것을 요구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르게’ 사는 것을 요구하신다. 속도가 아닌 방향의 중요함을 말씀하신다. (57쪽)

나는 지난 1월에 수술받은 후 안정을 취해야 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습관적으로 하던 일들을 멈추고 꼭 필요한 일만 하고 있는데, 의도적으로 비우는 시간을 통해 나와 일상 사이에 공간이 생겼다. 나와 습관 사이를 분리해보니 삶의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습관들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하셨던 일들을 잊어버리고 또 의심하고 삶을 통제하려는 내 모습이 보인다. 지난 실패의 경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하지 않는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사순절 기간에 커피 금식을 하고 있는데, 나에게 커피는 기호 식품을 넘어선 하나의 의식이다. 하루를 시작할 때 카페인에 의지하며 주어진 시간 안에 많은 일을 감당하려고 했다. 커피를 금식하면서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만 일하기 시작했다. ‘내가 할게’라는 마음을 내려놓고 속도를 늦추니 방향이 보이고 함께 애쓰는 사람들이 보인다.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좋은 습관을 채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단단하게 서있으려면 버려야 할 것들을 잘 버려야 한다.

무엇을 세우기 전에는 반드시 허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안의 잘못된 습관을 버리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끈끈하게 붙어 있는 삶의 방식들을 철저하게 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변화시키실 수 있으니까요. (프롤로그)

무심코 매일 쌓아온 사소한 습관들은 결국 삶의 문제가 된다. 나의 다짐과 나만의 힘으로는 삶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나와 습관 사이에 하나님을 두고 하나님께서 매일 나를 변화시키시고 새롭게 삶을 세워가시길 기대해본다. 하루를 시작하며 해야 할 일에 대한 목록을 쓸 때, 오늘 꼭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가지씩 덧붙여보면 어떨까?

이하나
멋진 남편과 세 딸아이 루아, 로이, 라엘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고 있다. 커피, 책과 여행,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나를 발견하는 것을 사랑한다.


스며드는 경험
문준호

  

“하나님은 J일까, P일까?”

3월 첫 주, 중등부 예배가 끝난 뒤 공과 시간. 내가 맡은 1학년 아이들은 중학교 입학 전날이어서인지 한껏 들떠있었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를 향해 준비된 질문을 던졌다. 누군가는 “어떻게 하나님을 MBTI 속에 가둘 수 있어?”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 질문은 곧장 효력을 발휘했다. “J요. 왜냐하면……”

함께 공부할 내용을 설교 말씀을 통해 이미 들어서인지 아이들은 대부분 J(계획형)라고 대답했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어느 영화의 명대사처럼, 그들에게 하나님은 계획이 있으신 분이었다.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P(즉흥형)일 수는 없을까? P 같은 J일 수도 있고, J 같은 P일 수도 있을 텐데.” 약발이 떨어진 걸까. 이후로 대화는 곁길로 빠졌다.

지금 편집 중인 김기석 목사 원고에는 꽤 많은 문학작품이 등장한다. 목회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그는, 그동안의 인생과 목회 사역 가운데서 만났고 지금도 여전히 만나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성경 이야기와 다양한 작품을 통해 고백한다. 그에게는 평생 다섯 번 이상 읽은 책이 몇 권 있는데, 그중 하나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다.

이 소설 속에서 조르바가 묘사하는 하나님의 캐릭터는 무척 특이하다. 천당과 지옥 사이에서 구름 같은 스펀지를 손에 든 모습이 흡사 숙련된 세차장 직원 같다. 혼령 하나가 하나님께 다가와 자기 죄를 밑도 끝도 없이 조목조목 나열하면, 하나님은 하품하고는 꾸짖은 뒤 쓱싹쓱싹 물 묻은 스펀지로 문질러 그의 죄를 몽땅 지워버린다. 그런 다음 “가거라, 천당으로 썩 꺼져라. 여봐라, 베드로. 이 잡것도 넣어줘라!” 말씀하신다. 이 장면을 읽을 때만큼은 그러한 하나님의 행동이 계획적인지, 아니면 즉흥적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일단 저자의 상상력에 한 번 놀라고, 상상을 뛰어넘는 하나님 모습에 또 한 번 놀라고. 이야기 속에 빠져들 뿐이다. 이와 같은 독서 경험을 한마디로 “스며드는 경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 속으로, 그리고 그 ‘시간’ 속으로 시나브로 스며드는 것이다.
몇 년 전 아이와 함께 붉게 물든 언덕 위를 걸은 적이 있다. 아이는 오랜만에 아빠와 밖에 나와서 좋은지 폴짝폴짝 뛰어올랐다. 어쩌면 아이가 들뜬 건 그날 산책의 중간 행선지가 놀이터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저만치 사라져가는 아이를 바라보며 문득 스며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크고 작은 신비를 동경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관계의 끈들이 연결되어 나를 형성한다고 생각했다. 종일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처럼 단조롭고 따분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견디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주어진 순간들을 의미 있게 채울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인연이 닿으면 닿는 대로, 마음이 맞으면 맞는 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다 보면 특별한 시간 ―그 안의 사람과 사물들― 과 그렇지 않은 시간이 구분되었고, 후자의 시간은 스치듯 사라져버렸다.

시간은 실로 우사인 볼트 같았다. 자고 일어나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갔고, 뽀로로 자동차 뒤를 따라다니며 걸음마를 하던 아이는 어느덧 쭈그려 앉은 채 레고를 조립하고 있었다. 가끔은 달리는 시간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What to Do’ 목록이 흘러넘쳤고, 그렇게 시간의 마디에 몸뚱이를 가두지 않으면 인생이라는 긴 경주에서 낙오할 것만 같았다. 시간과 나는 깊은 정을 나누지도, 그렇다고 등을 지지도 않은 채 평행선을 타고 있었다.

시간 속에 스며들고 싶다. 그것은 일 년 내내 유유자적한 삶, 생의 모든 속박과 근심, 계획과 책임으로부터 벗어난 채로 살겠다는 의지 표명이 아니다. 그와 내가 함께 걷고, 얼굴을 마주하고, 커피와 쿠키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울고 웃는 시간들…. 그렇게 선물로 주어진 존재들과 깊은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가운데 시간 속에 깃든 참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싶다. 그 안에서 우리의 말과 언어가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이― 서로 어우러지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겨울바람의 숨소리에, 나뭇가지에 움튼 새순에,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에 존재의 근원을 떠올린다. 우리의 이야기들은 그 근원 안에서 수렴된다. 오늘도 나는 시간에 깃든 신비를, 그 토대 위에 일어나는 꿈틀거림과 활력을 기대한다.

문준호
복있는사람 편집팀장. 내가 만든 책이 누군가의 삶에 가닿은 것을 발견하는 순간 일의 기쁨을 가장 크게 느낀다. 인스타그램 @walkingman.moon


출판 생태계에서 '읽는 생태계'로
이재원

  
1.
생태계는 생물로 이루어진 군집(community)과 이 군집이 접하고 있는 무생물적인 물리적·화학적 환경이 유기적 집합을 이룬 것을 말한다. 생물 군집은 식물·동물·미생물이고, 무생물적 환경은 대기·기호·토양·물처럼 생물을 제외한 요소들이다. 그래서 생태계는 이해하고 싶은 대상에 따라 그 경계와 크기가 정해진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출판 생태계’라는 표현을 참 많이 들었다. 나에게는 ‘출판사를 살려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내가 이곳에서 밥을 벌어먹고 있으니 당연하다 여겼다. 다른 의미로는, ‘책 좀 많이 사달라’는 말이기도 했다.

출판으로 밥을 벌어먹는 이들에게 ‘출판 생태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속한 곳이니 말해 뭐하랴. 그런데 이들이 아니면 ‘출판 생태계’ 살리는 일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러니 이 말을 하며 책 좀 사달라고 하는 건 별 설득력이 없다. 그래도 책을 사달라는 말보다는 있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지구 생태계를 살려보겠다며 ‘비니루’ 대신 장바구니를 가방에 넣고 다닌다. 카페 갈 때는 텀블러를 들고 가서 커피를 받아온다. 귀찮고 불편한 일이다. 이 지구별에 인간들이 차고 넘치는데 나 하나 그렇게 한다고 어떻게 생태계가 살아날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지구 생태계 살리겠다고 개인뿐 아니라 기업도 온갖 불편하고 어려운 일을 한다. 이제는 수많은 국가와 단체와 개인들이 탄소를 열심히 줄이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데 동참하고 있다. 지구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연대하고 동참하는 ‘회원님’과 ‘멤바’가 늘어나는 셈이다.

출판 생태계를 살리는 일이란 무엇일까. 출판 생태계 회원님과 멤바가 늘어날수록 생태계를 살리는 일이 더 힘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출판 생태계 멤바가 되는 길이 책 사주는 일 말고는 없는 걸까? 회원님이 되고 싶고 멤바가 되고 싶은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생태계가 살아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지점이다. 책 읽는 이들을 출판 생태계 멤바로 만들려면, 아마도 먼저 현재 생태계에 속한 이들의 정신, 마음, 가치를 함께 공유하고 연대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출판사가 책 한 권 더 팔아서 이익을 내거나 수익을 창출하는 데서 조금 더 확장해보자는 말이다. 그러면 생물과 생물이 만나 군집 즉 커뮤니티가 되듯, 이 커뮤니티가 무생물과 만나 생태계를 확장해가듯 우리 출판 생태계도 조금 더 의미 있는 형태로 진화하지 않을까? 아, 기독교인이 ‘진화’를 말하는 건 좀 그런가? 어쨌든, 진화한 생태계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해하고 싶은 대상을 확장하여 설정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2.
책을 완성하려면 두 번 인쇄해야 한다. 표지 한 번, 본문 한 번. 인쇄된 본문은 먼저 제본소로 가서 기다리고, 표지는 코팅과 후가공을 위해 ‘코팅집’으로 간다. 표지 후가공 시간은 본문 잉크가 마르는 시간이기도 하다. 본문 잉크가 다 마를 때쯤 후가공을 마친 표지가 제본소에 도착한다. 순서를 기다린 끝에 제본 기계로 들어간 본문은, 잘리고 접힌다. 그리고 풀을 발라 표지와 합체하면 책이 완성된다.

완성된 책은 유통을 위한 창고에 입고된다. 입고된 신간은 출판 유통의 특별한 방식인 ‘위탁’ 시스템에 따라 계약된 서점으로 ‘배본’된다. 대부분의 출판 창고는 ‘파주’에 있다. 창고에는 하루 종일 무거운 책 나르고 정리하고 출고하거나 반품이 들어왔을 때 재생하고 폐기하는 등 고생스러운 일을 하는 직원들이 있다. 출고 프로그램으로 출고 명령을 입력하면 창고에서 출력되고, 출고서를 따라 전국 서점에 배본된다. 창고에서 서점으로 책을 보내주는 곳이 ‘유통사’인데, 기독교 유통사는 ‘소망사’가 유일하다. 소망사 직원들이 탑차를 타고 출판사 창고를 돌아 책을 수거하고 분리해 싣고 전국 서점에 배송한다. 서점 신간 매대에 올라온 책은 독자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독자 몇 분이 신간을 선택하면 서점에서는 재주문한다. 출판사에 팩스나 전화로 재주문하면 출판사는 매일 아침 전국 서점에서 보내온 주문서를 취합해 창고로 가는 출고 명령서를 입력한다.

이렇듯 책을 만들기까지도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오히려 그 이후 과정은 출판사 안의 손길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과정이다. 인쇄, 제본, 코팅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만 작업할 수 있다. 그런데 몇 년 전 주 52시간 법이 제정되며 24시간 주말도 없이 돌아가던 인쇄소와 제본소의 기계가 멈췄다. 리스로 기계를 사서 10년 이상 갚아나가며 30년 넘게 사업하던 분들이 새 기계를 구매해야 하는 시점에 사업을 접는다. 인쇄 관련 업종의 제작 단가가 낮다 보니 주 52시간 기계를 돌려서는 사업을 유지하기 어렵다. 몇 년 전만 해도 인쇄 감리하고 평균 일주일 이후면 유통할 수 있었다. 이제 양장본은 최소 3주 여유가 있어야 한다. 제본집이 문을 닫아 물량을 소화할 수 없다.

책값에는 사업을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장님과 직원들의 피·땀·눈물이 서려있다. 평생 뒤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해온 분들이, 기계 멈추는 날까지 마지막 춤을 다하겠다는 듯 일하고 있다. 책 만드는 출판사 이상으로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출판’ 자부심은 대단했다. 수십 년간 자리를 지켜가며 밤을 지새우고, 휴일에도 기계를 돌리며 일해왔다. 나는 오래전부터 책 판권에 인쇄와 제작처가 표기되는 것에 이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복음과상황〉 400호에서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 이범진 편집장님이 웹진 〈서사의 서사〉를 만드는 이유가 ‘읽는 생태계’를 꾸려가기 위함이라고 했다. 이 글을 읽으며 출판 생태계는 이미 책을 만드는 생태계와 유기적 결합을 이루고 있고, 이런 생태계에 책을 나누는 서점 생태계와 책을 읽는 독자 생태계까지 더해져서, 읽는 생태계로 진화하게 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음과상황〉 400호를 받아볼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그 길에 이렇게나마 동행할 수 있어서 진심 행복하다.

400호에 이르기까지 함께해오신 모든 분께 한 명의 오래된 독자로서 고개 숙여 감사드리고, 이 글도 출판 생태계를 넘어 읽는 생태계로 가자는 〈복음과상황〉의 한 명의 멤바가 되고 싶은 짝사랑을 담아보며, 800회까지 가즈아~~~

이재원
홍성사, 위즈덤하우스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선율 출판사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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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강동석 | 일러스트 이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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