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 (감독 허범욱)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 332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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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 오늘의 큐 💡
Q. 인간이 된 돼지, 괴물이 된 인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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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농가에 한바탕 구제역이 돌고, 별안간 돼지들은 한밤중에 살처분을 당합니다. 영화의 암담한 분위기를 예고하듯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는 어둡고 스산한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땅속에 묻힌 돼지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고 되살아난 돼지 'H'는 어딘가 비범합니다. 알고 보니 H는 자신이 다른 돼지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농장 사장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반드시 인간이 되겠다는 꿈도 품고 있었지요. 한편 인간 '정석'은 어릴 때부터 따돌림을 당해왔습니다. 조용히 살아보려 했지만 군대에서도 이어진 말도 못 할 폭력에 정석은 결국 폭발하게 되지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짐승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정석은 끝내 인간의 외형을 잃게 됩니다.
허범욱 감독의 작품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는 진정한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강렬한 애니메이션입니다. 감독은 이전의 단편 애니메이션에서도 인간성에 관한 질문을 종종 던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7월, 우리의 곁을 너무나도 일찍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가 남기는 질문들은 우리의 세계에서는 만날 수 없게 되었지만, 오늘은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의 감상을 나누며 그가 그려낸 현실을 함께 돌아보고자 합니다. 허범욱 감독의 전작 단편 〈갈라파고스〉를 비롯해 올해 함께 개봉했던 다른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들, 그리고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 〈메리!〉도 함께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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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죄판결이라는 변호
- 허범욱 감독의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 〈갈라파고스〉와 함께
2.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의 성취를 보다
- 김보솔 감독의 〈광장〉
- 허평강 감독의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 안재훈 감독의 〈아가미〉
3. 추울 땐 잠시 기대보자
- 진승완 감독의 단편영화 〈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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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판결이라는 변호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 그리고 〈갈라파고스〉
*故 허범욱 감독님의 명복을 빕니다
살기 위해 죽인 이를 욕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이해해야 할까? 이 어려운 질문에 함께 고민해 주기에 허범욱 감독의 영화는 귀하다. 영화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이하 〈구살돼지〉)와 〈갈라파고스〉는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폭력을 저지르는 이들을 다룬다. 〈구살돼지〉에는 구제역 살처분에서 겨우 살아남았기에 인간처럼 강해지고 싶은 돼지 ‘H’와, 어릴 적부터 인간들에게 폭력을 당해 왔기에 차라리 짐승이 되고 싶은 인간 ‘정석’이 등장한다. 방어 수단으로서의 힘을 꿈꾸던 이들의 결말은 통쾌한 복수가 아니라 파멸이다. H는 인간처럼 탐욕을 부리다 죽고, 정석은 인간으로 다시 살아볼까 싶은 순간에 희망이 바스러진다. 완전한 절망으로 이들을 몰아붙이는 영화 덕에 H와 정석의 살인이 옳은지 그른지는 중요치 않게 된다. 이미 유죄판결을 마친 영화 앞에서 관객은 죄인들을 이해하기에 이른다. 두 반인반수의 이야기를 본 많은 관객이 진정한 인간성을 돌아보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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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는 보다 직접적으로 살인 너머의 구조를 지적한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극심한 학업 압박과 학대를 견디다 못해 어머니를 살해한다. 그런 주인공 앞에 하늘 높이까지 이어진 사다리가 나타나고,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듯 주인공은 사다리를 오른다. 입시지옥을 연상케 하듯 반복적이고 기계적으로 올라가면서 주인공은 점점 장난감 모형처럼 변한다. 겨우 도착한 곳은 어딘가 기괴하고 주인공의 결말은 더욱이 기괴하다. 이 지점에서 주인공의 살인을 추궁하는 건 더 이상 관객의 몫이 아닌 것 같다. 머리통을 잃은 주인공에게 그 누가 죄를 묻겠는가.
그러니 허범욱의 영화가 잔인한 그림들로 점철되어 있다는 건 역설적으로 따뜻하다. 인물의 끔찍한 최후를 구형함으로써, 그가 너무 쉽게 비난받지 않게 해주는 것. 죄인 옆에 그를 죄인으로 만든 세계까지도 심판대에 세우는 것. 그 최소한의 변호는 허범욱이 이룬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성취만큼이나 용감하다.
인디즈 강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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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
감독 허범욱
모션캡처 연기 한우진
목소리 출연 남도형, 민승우, 김도희, 방시우
105분|애니메이션|2026
살처분 구덩이에서 기적같이 생존한 돼지 ‘H’는 오직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되기로 결심하고, 평생 폭력과 괴롭힘에 고통받던 청년 ‘정석’은 그저 벗어나기 위해 ‘짐승’의 삶을 선택한다.
인간이 되려는 돼지, 짐승이 되려는 인간.
그리고 그들이 물어뜯는 지옥 같은 세상.
“제발 지옥 속에서 우리를 구제(救濟)하소서”
살기 위해 괴물이 된 인간들의
하드보일드 지옥도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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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감독 허범욱
목소리 출연 조민수, 김민주, 정형준
15분|애니메이션|2019
악랄한 부모의 학대 속에서 한 소년이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을 피하기 위해 어머니를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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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를 비롯, 올해 개봉했던 멋진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 장편영화 세 편을 소개합니다. 김보솔 감독의 〈광장〉, 허평강 감독의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안재훈 감독의 〈아가미〉입니다. 세 작품 모두 소설과 관련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해요. 〈광장〉은 최인훈 작가의 동명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속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요. 〈아가미〉도 역시 구병모 작가의 소설이 영화화된 작품입니다.
적어도 올 한 해는 극장에서 분기별로 한국 애니메이션을 한 편씩은 볼 수 있던 시간이었어요. 아래 작품들을 같이 보며 나 혼자만의 감상을 기록해 보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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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솔 감독이 언급했듯 북한은 여전히 예민한 소재이나 〈광장〉은 정치적 담론에 매몰되는 대신 그 속에 사는 사람의 얼굴에 집중한다. 애니메이션 특유의 정제된 화면 구성은 오히려 북한 사회의 정적인 압박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그 정적을 깨고 터져 나오는 인물들의 감정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결국 〈광장〉은 묻는다. 우리는 서로에게 투명한 감시자인가 아니면 내일을 물어봐 줄 수 있는 동료인가. 비록 이별이 예정되어 있고 광장을 도는 원의 궤도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지라도, 누군가를 찾기 위해 벽에 계란을 던지는 그 무모한 용기가 우리를 인간으로 살게 한다는 것을 영화는 증명해 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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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감독 김보솔
목소리 출연 전운종, 이찬용, 이가영
73분|애니메이션|2026
북한 평양으로 파견을 온 스웨덴 대사관의 1등 서기관 ‘보리’. 그는 외교관이라는 신분 덕분에 보호를 받지만, 한편으로 늘 주변의 감시를 받는 이방인에 불과하다. 그런 ‘보리’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평양 시민인 교통보안원 ‘복주’. 하지만 이별이 정해져 있기에 두 사람은 남은 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보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 날 ‘복주’가 어딘가로 사라졌고,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보리’는 그녀를 찾아 바깥을 온종일 헤맨다. 결국 ‘보리’는 아무 말 없이 상황을 지켜봤던 자신의 통역관 ‘명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명준’은 자신도 모르게 꿈틀거리는 마음 때문에 갈등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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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모르는 나를 알아봐 주고, 사이를 좁히다가 어떠한 기별도 없이 사라지는 것. 이별이라 부르는 모든 헤어짐에 우리는 공허함을 느낀다. 살아는 있는지, 유토피아로 돌아오지 않을 것인지. 영화는 데이지와 소피를 통해 자신 안에 걱정과 슬픔, 그리움과 같은 감정이 남아 있음을 깨닫고 그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을 향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가 답하는 ‘사랑이 유토피아의 전제를 무너뜨린다’는 생각보다 더 간단하다. 이렇다 할 관계의 서사나 SF 다운 놀라운 상상력이 첨가되진 않았다. 하지만 만사를 제쳐두고 떠나는 그 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그 힘. 유토피아인이 관성적으로 순례자가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었지만 그 힘의 크기를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처럼, 사랑이 하는 일은 어떠한 경계도 가볍게 넘어서는 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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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감독 허평강
목소리 출연 김향기, 박지후, 이주영
60분|애니메이션|2026
열여덟 살이 되면 지구로 1년간 순례를 떠나야 하는 규칙이 있는 세상. 하지만 지구로 떠난 어떤 순례자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슬픔도 고통도 없는 유토피아를 뒤로하고, 그들은 왜 불완전한 세계를 선택했을까? 이것은 스스로 유토피아를 떠난 이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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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물은 흔히 떠올리는 맑고 푸른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탁하고 오염된 물이 있는가 하면, 석양을 받아 붉게 물들어 있기도 하다. 물속에서 편안해질수록 곤은 사람들의 세계에서 멀어지고, 그 안에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함께 남는다.
낯선 곤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은 애니메이션의 매력과도 이어진다. 아가미가 어떻게 생겼을지, 피부의 비늘은 어떤 모양일지 각자의 방식으로 상상하며 읽던 소설은 시각화된 캐릭터를 통해 관객 앞에 드러난다. 곤이 물속을 헤엄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소설 속에서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존재가 비로소 하나의 몸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소설 속 ‘이내촌’ 대신 영화에서는 프랑스가 배경이 되면서 곤이 놓인 세계도 조금 더 낯설게 다가온다. 한국과는 다른 풍경 속에 놓인 곤의 모습은 그가 세상과 맺고 있는 거리감과도 닿아 있다. 익숙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몸 때문에 낯선 존재로 살아가는 곤에게, 영화 속 낯선 공간은 그의 외로움과 거리감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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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
감독 안재훈
목소리 출연 정해인, 강하늘, 이청아, 유재명
105분|애니메이션|2026
깊은 물 속에 던져진 날, 아가미가 생겨난 세상에서
유일한 아이 ‘곤’ 그리고 그의 세계에 전부였던 존재들의 눈부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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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의 '정석'은 고통스러운 인간의 삶에서 벗어나려고 차라리 짐승이 되기를 선택합니다. 그러다 '빅풋'의 모습으로 변하게 되고, 정석은 숲에서 헤매다가 돌연 삶을 포기하려는 소녀 '지은'을 구하게 되지요. 삶에 대한 기대가 없던 정석과 지은은 어쩌다 보니 두 번째 삶을 살게 되고 동시에 서로를 돕게 됩니다.
요즘같이 추운 날이면 더욱 마음 한 켠 내어주기 어려운데요. 〈메리!〉의 누나 '우희'와 동생 '상진'은 마치 정석과 지은처럼 서로를 보살피게 됩니다. 마음까지 차가워지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의 온기를 나누어 주는 조용한 모습을 〈메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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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문제에는 시즌이 없다. 크리스마스를 맞은 남매 우희와 상진은 아르바이트를 구한다. 보호자 아닌 부모에게 보호자 동의서를 받고나서야 최저시급이 보장된다. 산타와 루돌프가 되어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우희와 상진. 계절이 무색하게 두 사람의 얼굴엔 땀이 흐른다. 축축한 머리카락들은 외롭다. 〈메리!〉의 두 남매는 영화 내내 한번을 명랑해지지 않는다. 상식도 인정도 없는 어른, 한 칸짜리 집, 적요한 골목이 이들이 겪는 크리스마스의 전부이다. 앳된 얼굴들의 분투가 서글프고, 세상을 째려보는 어린 눈이 기특하고, 홀로 아닌 나란히 걷는 뒷 모습만은 다행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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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감독 진승완
출연 지소영, 김지온, 한상진
19분|극영화|2023
시놉시스 일자리를 구하는 우희(지소영)는 마트에서 루돌프와 산타 탈을 쓰고 전단지를 나눠 줄 사람을 구한다는 벽보를 본다. 동생 상진(한상진)과 함께 일을 시작한 우희. 하지만 고달프고 배고픈 현실이다.
연출의도 사회의 사각에 놓인 아동들에 대한 작고 유의미한 관심이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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