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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2. 직급을 없애고 반말을 쓰면 수평적인 문화가 되는가?
by jason, KIM

직급/호칭을 단순화 또는 폐지하는 분위기

1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기업의 직급체계는 거의 똑같았습니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이사-상무-전무-부사장-사장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임원 직급을 빼고 직원의 직급만 따지면, 소위 우리가 사대과차부라고 하는 5단계가 대부분이었죠. 간혹 어떤 회사는 사원대리사이에 주임이 있어서 6단계인 경우도 있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이 직급체계를 그대로 호칭으로 썼습니다. 즉, 직급이 '대리'인 홍길동이 있으면, 반드시 "홍길동 대리"라고 불렀습니다.

요즘은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이나 IT/게임 회사들은 당연하고, 보수적인 문화로 알려진 제조 산업 분야의 대기업조차도 직급/호칭을 간소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2019년에 직급을 4단계(호칭은 2단계)로 간소화했고, 그보다 2년 앞선 20177월에 LG그룹은 사원-선임-책임3단계로 바꿨습니다. 아예 직급을 없애버린 곳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메프의 경우 부장 이하는 모두 매니저, 임원급은 모두 리더로 통일했습니다. NAVER도 직급은 없고 직책만 있습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과감한 시도를 한 기업도 있습니다. <클래스101>이라는 온라인 교육업체는 2017년 창업 이래 직원이 200명이 넘은 지금까지 반말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생각을 보다 솔직하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가장 날것의 소통을 한다는 취지라고 합니다. 참고로, 저희 회사가 <클래스101>과 같은 사무 공간을 사용합니다. 그것도 바로 옆 사무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나이나 지위고하와 무관하게 하이!”라고 통일하여 인사를 나누고, 반말로 회의하는 것을 가끔 목격하는데, 저는 아직도 가끔 깜짝 놀라곤 합니다. (제가 꼰대인가 봐요…🙄)
무엇을 기대하기에 이러는 걸까요?

이미지 출처: www.saramin.co.kr
이렇게 직급을 단순화하거나 폐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모두가 놀지 말고 열심히 일하는, 즉 웬만하면 실무를 놓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꼭 직급체계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일반적으로 직급이 다단계로 되어 있으면 위로 갈수록 실무는 하지 않고 관리만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단계 직급체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연공서열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직급/호칭 파괴는 연공이 아닌 성과와 역할에 의해 조직 내 처우를 결정하려는 목적이 가장 큽니다. 그리고, 직급 단계가 줄어들면 아무래도 의사결정이 신속해지고 실행력이 높아진다고 믿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수평적인 조직문화까지 형성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런 기대효과도 있습니다. 우선, 매년 돌아오는 승진심사의 압박을 다소나마 덜 수 있습니다. 고객사의 CEO와 이야기해보면, 승진심사가 매우 큰 스트레스라고 토로하십니다. “승진 시즌이 왜 이리 자주 돌아오냐”, “꼭 이렇게 매년 꼬박꼬박 승진시켜줘야 하냐”, “누구는 올려주고 누구는 떨어뜨리는 것이 너무 괴롭다라는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아무래도 직급 단계가 간소화되면 승진심사의 빈도나 양()이 줄어드니 의사결정자로서 압박감은 다소 줄어들 수 있겠죠. 게다가 요즘 같은 저성장 시대에서는 과거처럼 조직이 급팽창하기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 그만큼 새로운 자리(position)가 많이 생겨나기 어렵죠. 이 와중에 정년도 60세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니 자칫하면 고령화된 인력들이 승진(=직책 보임)에 불만을 품고 유휴인력 또는 불만세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CEO 입장에서는 일정한 연령 또는 직급이 된 모든 직원을 팀장 자리에 앉힐 수 없으니, 보직은 없어도 실무 전문가로서 자신의 역할만 충분히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직급을 단순화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렇게 승진심사의 압박감을 덜어내는 것에서 파생되는 또 하나의 효과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승진을 하면 소위 승진급 또는 승진가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 같은 직급 내에서는 연봉인상률이 낮게 유지되다가 승진하는 시점에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 이상이 뛰어오르는 것이죠. 직원 입장에서는 이 맛에 승진하려고 노력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회사 입장에서는 승진급(승진가급) 때문에 발생하는 인건비 부담이 상당합니다. 직급 단계를 줄이면 이 승진급(승진가급)을 줄일 수 있으니 인건비 상승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거꾸로, 직원 입장에서는 이렇게 하면 총생애소득이 감소하기 때문에, 줄어든 승진급(승진가급)을 다른 방법으로라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과에 따른 기본급의 파격 인상이나 장기 성과급으로라도…)

직급 간소화의 또 다른 효과는 유연한 인사운영, 특히 유연한 보상 결정이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우수인재를 영입하거나 우리 회사 내에서 핵심인재를 파격 승진시키는 데 유리해집니다. 예를 들어, 모 대기업이 AI 사업을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점 찍었다고 가정합시다. 이를 위해서는 외부에서 관련 전문가를 대거 영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떠오르는 신() 분야의 전문가들은 대체로 젊습니다. 과거 직급체계상으로 잘해야 과장 정도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들에게 우리 회사 기준으로 당신 나이나 경력이면 대체로 과장 직급이고 제도상 기본급은 6,000만원이 최대치이다라고 말하면 과연 그 회사에 입사할까요? 직급 단계가 적을수록 Pay Band가 넓어지고 그 Pay Band 간 중첩(overlap)도 커지니 유연한 보상 운영이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직급/호칭에 신경쓰지 않고 파격적인 연봉 계약도 할 수 있게 됩니다.
부작용은 없을까요?
이런 직급 간소화/폐지에 따른 부작용은 없을까요? 부작용을 살펴보기 전에 직급 간소화/폐지 방식에도 몇 가지 유형이 있다는 점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유형은, 직급은 엄연히 존재하는데 호칭만 수평적으로 통일한 경우입니다. 인사상 처우의 기준이 되는 직급은 존재하나, 상호 간 호칭만 매니저”, “~”, 영어 이름, 닉네임 등으로 바꾼 것입니다. 직급과 호칭을 분리시켰지만, 직급이 살아 있기 때문에 완전한 직급 파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적은 변화폭의 제도인 셈이죠. 이러한 대표적인 기업으로 CJ가 있습니다

두 번째 유형은, 직급 단계를 축소하고 호칭은 그 단순화된 직급에 연동시킨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LG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직급을 사원-선임-책임 3단계로 단순화했고, 이름 뒤에 그 직급을 붙여 부르는 것입니다. “홍길동 과장홍길동 선임으로 바뀐 것입니다

세 번째 유형은, 직급체계를 완전히 없앤 것입니다. 직급은 없어도 직책은 있으니, 직책자(: 팀장)가 되기 전에는 상당한 기간 동안 팀원으로 남습니다. 호칭도 “~이나 닉네임을 섞어서 씁니다. 회사에서 특정한 규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각자가 편한 대로 부르면 그만이라는 분위기입니다. NAVER를 비롯한 IT/게임 기업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미지 출처: www.saramin.co.kr
3개 유형 중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큰 부작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부 개인은 소소한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직급이 그대로 유지된 상태에서 호칭만 바뀌거나 직급 단계만 한두 개 줄어든 것이기 때문에 큰 변화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어떤 직원들은 일정 연차가 되면 승진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줄어들어서 오히려 좋다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부작용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세 번째 유형입니다. 직급이 아예 없는 것에서 오는 부작용이 꽤 있습니다.

첫째, 직원 입장에서는 본인이 성장한다는 체감이 어렵습니다. 직책을 맡는, 즉 파트장이나 팀장이 되기 전까지는 신분상에 변화가 없어서, 내가 잘 성장하고 있는지,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 (직급이 없는) 한 회사의 직원을 인터뷰한 내용을 인용하겠습니다. “내가 늘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다른 회사처럼 승진하면서 느끼는 재미나 변화들이 없어 굉장히 무료하다.” 

둘째,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직급 승진이 없으면 승진급(승진가급)을 통한 연봉의 점프(jump)가 없어지니, 매년 큰 차이가 없는 기본급 상승에 직원들이 만족하기 어렵습니다. 이러다 보면 보상을 통한 동기부여 효과가 점점 떨어집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직급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중도에 직급이 없어진 회사에서는, 이미 15년 이상 회사를 다닌 고연차자와 입사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저연차자 간 총생애소득에서 너무 큰 차이가 발생합니다. 여러분도 복리(複利)의 마법을 잘 알 겁니다. 우리나라 기본급 인상은 대부분 전년도 기본급을 베이스로 하여 누적 인상을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과거 승진급(승진가급)을 통해 몇 차례 확확 연봉이 올라간 고연차자의 연봉을 최근에 입사한 주니어 직원들이 따라잡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셋째, 아이러니하게 연차나 나이에 따른 서열문화가 심해질 수 있습니다. 직급이 없다 보니, 직원 간에 위아래가 없어집니다. 누가 선임인지 후임인지가 불명확해집니다. 다 같은 팀원이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속된 말로 나이가 깡패이고, 연차가 계급이 됩니다. 직급은 인사운영상 처우의 기준으로서 역할을 하는데, 이 처우의 기준이 없어졌으니 연령이나 근속년수 같은 것이 암묵적인 기준이 되어 버립니다

넷째, 직원 간 위아래가 없어지니 사수-부사수 같은 교육과 학습의 관계 형성이 어렵습니다.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것이 당연시되는 시대는 아닙니다만, 선배가 좋은 뜻으로 후배에게 업무와 직장 예절을 가르치는 것조차도 꼰대짓이 되어버리고는 합니다. 수평적인 문화를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이쯤 되면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인해 회사가 망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위와 같은 부작용 때문에 직급 간소화/폐지를 시도했다가 다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간 회사도 꽤 많습니다. KT2009년에 직급을 폐지하고 구성원 호칭을 매니저로 통일했습니다. 그 후 5년간 새로운 제도를 잘 유지하다가 2014년에 기존의 사대과차부로 돌아갔습니다. 포스코도 과거로 다시 회귀한 경우입니다2017년 국내에서 대리·과장·차장 등 옛 호칭을 되살렸습니다.

이런 소수 사례에도 불구하고, 직급 간소화/폐지 경향성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은 분명합니다. HRer로서 우리는 직급 간소화/폐지 경향성을 따르는 쪽으로 생각하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에 대한 저의 생각을 몇 가지 적어보겠습니다.

첫째, 전통적인 '직급'이 아니더라도, 인사상 처우의 기준은 필요합니다. 직급이 완전히 폐지된 회사에서 연령/연차가 어설픈 기준이 되어, 오히려 수평적인 문화를 해치는 것을 저는 자주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급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믿는 편입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직급을 완전히 없앤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기준을 마련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수평적인 일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꼭 직급체계에 변화를 줘야만 하는지 근본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직급체계가 조직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 있지만, 또 이 둘이 엄청나게 강하게 연동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조직문화는 핵심 리더들의 리더십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받습니다. 직급체계만 간소화한 것으로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자연스럽게 꽃피우리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셋째, 직급 승진이 주는 동기부여 효과를 완전히 무시하진 마십시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지치고 매너리즘에 빠집니다. 직급이 달라진다 해도 역할이 크게 바뀌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개인의 기분이나 일을 대하는 태도에는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기회가 될 수 있죠.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승진 시에 적절한 승진자 교육까지 제공한다면, 직장생활을 이어가는 데 있어 좋은 모멘텀이 될 수 있습니다. 

넷째, 무슨 수를 쓰더라도, 구성원 간 교육/학습의 관계를 해쳐서는 안 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직급이 무너지면 이 교육/학습의 관계도 함께 무너지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는 서로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복잡한 학습관계망(developmental network)이 형성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 전문성이 쌓이고 사회 경험이 있는 사람들 간에나 가능합니다.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신입사원에게마저 너나 나나 다 똑같은 팀원이지라고 생각하여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은 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글을 맺으며...

HR의 모든 업무가 그러하듯직급체계에도 정답은 없습니다우리 회사에 잘 맞는지가 중요할 뿐입니다. 'One-size-fits-all policy' 같은 것은 이제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니, 직급체계를 바꿀 때는 현 직급체계에서 나타나는 이슈는 무엇인가?”, “그 이슈가 정말 직급체계에서 비롯된 것인가?”, “직급체계 개선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직급체계가 바뀌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특히 직원들에게 생기는 불리함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충분히 생각한 후에 결정하시기 바랍니다직급체계가 물이나 공기 같은 면이 있어서평소에는 잘 모르다가 변화가 생기면 확 체감되는 것이거든요다른 인사제도보다 더 인프라적인 측면이 강해서 직급체계가 바뀌면 다른 인사제도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그러니 그 어떤 것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만약 직급/호칭체계에 큰 변화를 줬다면, 그것이 현장에서 잘 정착되도록 꾸준히 노력하십시오. 습관과 관행은 생각보다 바뀌기 어렵습니다. 제도 변경 공지 한두 번으로 바뀔 거라 기대하지 마십시오. 대내외 홍보, 캠페인, 교육 등 다양한 변화 노력을 최소 1년 이상 꾸준히 해야만 정착될 것입니다.
💬NO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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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저희 J& COMAPNY도 충분한 휴식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구독해주시는 HRer분들도 소중한 분들과 풍족하고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기를 바라며, 저희는 10월 12일에 더욱 유익하고 흥미로운 소식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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