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해외 생활을 보내면서 얻은 이점 중 하나는 몰라도 일단 던져보는 외국인의 기세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FEBRUARY 6, 2026
프랑스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에펠탑도, 바게트도 아닌 프랑스어 때문이었습니다. 유려한 흐름이 녹아든 발음이라든가 레고처럼 맞아떨어지는 문법, 문장 곳곳에 숨겨진 그림 같은 숙어까지, 너무나 매력적인 언어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이십 대 초반에 어학연수를 가려고 어학원과 기숙사까지 알아봤다가 결국 가지 못했었는데, 그때 언젠가는 내 힘으로 가고 말겠다고 이를 갈았더랬죠. 그렇게 몇 년 후 나 혼자 어학연수라고 생각하고 워킹홀리데이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말 그대로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면서 무작정 부딪히는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문법책과 실생활이 이렇게 다를 줄 정말이지 몰랐어요. 일은 구해야 하니까 면접용 불어만 달달 외워 ‘불어 잘하는 척’하면서 합격했는데, 막상 일하다 보니 손님과의 응대가 되지 않아서 결국 일을 그만두라는 통보도 받았었습니다. (사장님과 둘만 일하는 카페였던지라 언어가 실무 능력만큼 중요한 곳이었지요.) 다시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혼자 뤽상부르 공원에서 일기를 쓰던 순간이 생생합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도 있었어요. 다른 곳에 일을 구하고 나서도, 맘처럼 말이 나오지 않아서 화장실에서 울다가 아닌 척 정리하고 나오는 청춘영화 같은 일도 겪었답니다. 그렇게 2년의 프랑스 생활 동안 차곡차곡 쌓인 언어 열등감은 아직도 불쑥불쑥 고개를 들곤 합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건 세상의 해상도를 높이는 경험이라고 하잖아요. 언어는 그 사람의 세상을 표현하고 상상하게 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외국어를 배운다는 건 세상을 다르게 보고 넓힐 수 있는 방법이라고요. 그 말에 백번 동의합니다. 아직도 기억이 나요. 프랑스 신문을 읽는데, 한국 기사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고 오히려 너무 감상적인 표현이라 분명 발행되기 전에 삭제되었을 법한 상황 묘사가 또박또박 적혀있었어요. 어떤 남자가 갑자기 찾아온 비를 피하기 위해 손에 든 신문으로 머리 위를 가리고 뛰어간다는 내용이었는데, 어떠한 실용적인 정보도 없는 문장을 읽는 순간 눈앞에 그 장면이 오소소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별거 아닌 문장이 프랑스어를 배우길 잘했다고 느끼게 해주었어요.

귀찮고, 힘들고, 답답하지만 그래서 언어 공부를 놓을 수가 없더라고요. 하루만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만치 사라져 버리는 야속한 그 외국어 안에는 내가 프랑스에서 보냈던 시간과 감정, 관계, 생각, 그리고 그것들이 뭉치고 치대져 만들어진 ‘프랑스에서의 자아’가 있으니까요. 외국어를 말할 때는 자아도 어느 정도 달라진다는 흥미로운 사실, 알고 계신가요? 이 부분은 제가 다음 기회에 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한편 엄마는 요새 일본어 배우기에 아주 열심입니다. 요새라고 말하기 무색한 게, 벌써 아마 몇 년쯤은 됐을 거예요. 그동안 엄마는 핸드폰 언어를 일본어로 바꾸고, 일본어 수업은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출석하며, 웬만한 일본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은 죄다 섭렵한데다, 얼마 전의 친구분과 떠난 도쿄 여행에서는 일본어로 물어물어 지하철까지 탔다고 합니다. 나이 때문인지 노력하는 것만큼 바로바로 일본어가 튀어나오지 않는다며 느는 건지 모르겠다고 투덜대는 볼멘소리와는 다르게 그래도 일본어 공부는 재밌다면서 계속 붙잡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귀엽기도, 대견(?)하기도 무엇보다 저에게도 많은 귀감이 됩니다. 아마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의 세상을 넓혀가는 중이겠지요.
짧은 해외 생활을 보내면서 얻은 이점 중 하나는 몰라도 일단 던져보는 외국인의 기세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이번 호주 여행도 그랬어요. 영어권 나라로의 여행은 오랜만인지라 긴장했었는데, 최근에 영어 공부를 하고 있으니 뭐라도 써먹자 싶어서 밀어붙이는 모습이 호주 사람들의 스몰토크 문화와 맞물려서 꽤 이런저런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버벅대고 생각과는 다른 단어가 튀어나와서 몇 번 이불킥하긴 했지만 뭐 어쩌겠어요! 

그래서 이번 파스타는, 프랑스 친구가 일 순위로 추천해 준 시드니의 Cafe Paci라는 곳에서 먹은 뇨끼를 소개하려 합니다. 혀에서 사르르 녹듯 풀어지는 질감이 인상적이었어요. 전반적으로 통통 튀는 조합에 와인을 곁들이면 더 맛있을 요리들이라 다음에도 꼭 다시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먹은 뇨끼 덕분에 다음에 다른 곳에서 뇨끼를 먹는다면 자연히 이곳이 떠오를 것 같아요. 함께 나눈 대화들까지요. 더불어 서버분들이 세상 친근하게 말을 걸어준 덕에 진땀 빼면서 와르르 이야기하다가 팁까지 결제한 해프닝이 생긴 곳인데요. 뭐, 덕분에 영어 공부 잔뜩 했지 뭐예요! 여러모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레터가 도착할 때 저는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에 있을 예정인데요. 올해 상반기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계획이 많아서 어쩌다 보니 빡빡하게 일정을 짜버렸네요. 무슨 일이 생길지 감도 오지 않지만 아무튼 당분간의 담파스타는 스페인에서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새로운 일이 많이 생기길, 그리고 그 새로운 일들을 여러분에게도 파스타에 찹찹 잘 버무려서 보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Potato dumpling, XO sauce
사실 메뉴판에는 potato dumpling이라고 써져있었는데요, 나름의 위트를 곁들여서 표현한 느낌이었어요. 실제로 먹었을 때 뇨끼에 가까웠다면 뇨끼인 거죠, 뭐! 혹시 시드니에 가신다면 추천합니다😁
님, 오늘의 파스타는 어떠셨나요?
너무 길었나요? 레시피가 부실했나요?
듣고 싶은 내용이 있나요?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다음 레터에 반영해 답장할게요.
제가 궁금하다면 아래에서 더 확인할 수 있어요!
R.DAM
artist.rdam@gmail.com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