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저는 요즘 정신이 없어요.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요.
매년 겪는 방학인데 참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가도 문득 멈추게 되는 게 있어요.
다른 일을 하다가 갑자기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요.
이번에는 아이들이 보낸 DM이 그랬어요.
절교했어요. 차단했어요. 극혐이에요.
이런 말이 정말 많아요.
그리고 조금만 상황이 안 좋아지면 자살이라는 단어가 나와요.
아이들 DM을 받으면서 제일 놀랐던 게 이 부분이었어요.
그 단어가 너무 쉽게 나오거든요. 아이 마음이 가벼워서는 아니겠죠.
그래도 이런 일로 저 말까지 나오나 싶을 때가 있어요.
절교도 참 많아요.
제가 보기엔 둘이 비슷하게 잘못한 일 같은데, 그 친구가 너무너무 싫대요. 절교하겠대요.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절교하고 지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해요.
뭐 하나 서운하면 차단하고, 친구들한테 뒷이야기를 해요.
관계를 정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참 짧아졌어요.
유치원 선생님들이 하시는 이야기가 있어요.
요즘 아이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불편해요, 라고요.
친구가 뭘 조금만 해도 불편해요. 선생님이 뭘 하자고 해도 불편해요.
제가 혜린이 키울 때는 싫어요가 유행이었어요.
엄마들이 싫어요를 가르쳤고, 동화책도 그랬고, 유치원에서도 가르쳤어요.
뭐만 하면 선생님 싫어요, 안 해요. 그 말을 배웠어요.
지금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불편해요를 배워요.
표현이 다를 뿐이지 비슷한 맥락이에요.
지금 중학생, 그 아래 아이들은 외동이 많아요.
형제가 있어도 어릴 때 또래랑 부대끼며 보낸 시간보다 어른들 사이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길어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어른은 아이한테 맞춰주잖아요. 그게 어른의 선이니까요.
덥지 않게, 배고프지 않게, 심심하지 않게.
아이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조심해요. 저도 그러고요.
그러니까 아이 입장에서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몇 년을 보내는 거예요.
또래는 안 그렇잖아요. 내 사정을 봐주지 않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걸 자기도 하겠다고 하고, 내 기분은 신경도 안 써요.
그 부딪힘이 사회성이 자라는 자리인데, 그 자리가 많이 줄었어요.
어쩌다 부딪히면 이렇게 흘러가요.
친구가 놀렸다고 아이가 말하면 엄마가 선생님한테 말하고, 선생님이 두 아이를 떨어뜨려 놓아요. 자리를 바꾸거나 반을 나누거나요.
불편이 생기면 푸는 게 아니라 없애버리는 거죠. 빠르고 확실하니까요.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 아이한테 뭐가 남을까요.
불편한 상황을 겪어본 적은 없고, 불편하다고 말하면 어른이 치워준다는 것만 남아요.
이 아이들은 타인에 대한 기준이 높아요.
상대가 나한테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선이 높아요.
조금만 그 선을 벗어나면 견디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자기 행동을 보는 눈은 그만큼 자라지 않았어요.
자기도 그 친구한테 비슷한 걸 하고 있거든요. 그건 잘 안 보여요.
남이 나한테 한 것만 선명하게 보이니까요.
최근에 있었던 일이에요.
한 아이가 다른 아이 때문에 힘들다고 했어요.
그 친구가 자기를 괴롭혔다고, 잘못한 걸 하나씩 다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저는 두 아이를 다 알아요.
제 눈에는 둘이 똑같았어요.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하고 있었어요.
각자 자기가 당한 것만 이야기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이런 일이 참 많아요. 선생님들도 그러시잖아요.
싸움을 중재해보면 대개 비슷한 아이들끼리 부딪혀 있다고요.
아이가 나빠서가 아니에요.
아이들한테는 그냥 다 불편한 일이고, 네가 나쁜 거예요.
지금 아는 게 거기까지인 거죠.
남의 마음이 어떤지는 아직 배우지 못했어요.
그건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실제로 부딪혀보고, 내가 한 말에 친구 표정이 굳는 걸 보고, 미안하다고 해보고, 그러고도 어색한 며칠을 견뎌봐야 조금씩 생기는 감각이에요.
아동정신과에서는 아이들의 다툼을 사회성 훈련으로 봐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배우는 시간이라는 거죠.
특히 초등 저학년 무렵이 그 감각이 만들어지는 시기라고 하고요.
우리는 그 시간을 참 안전하게 관리해왔어요. 나쁜 뜻은 하나도 없었고요.
관계를 끊는 게 쉬워진 것도 마음에 걸려요.
버튼 하나면 되잖아요. 차단하면 그 사람이 사라져요.
화해할 필요도 없고, 어색한 시간을 견딜 필요도 없고요.
그런데 그렇게 정리한 관계는 남는 게 없어요.
한 사람과 오래 지내려면 실망한 다음에도 같이 있어봐야 하거든요.
저 사람이 저럴 때도 있구나, 그래도 괜찮구나 하고 넘어가 본 경험이요.
그게 쌓여야 깊은 관계가 되고요.
주변 사람이 자주 바뀌는 삶일수록 더 외롭다는 연구도 있어요.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기댈 사람이 없는 거죠.
물론 아이가 정말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고 있을 수도 있어요.
그건 다른 문제예요. 그때는 어른이 바로 들어가야 하고요.
아이가 무거운 말을 꺼냈을 때 요즘 애들 말투려니 하고 넘기지는 않으셨으면 해요.
다만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큰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요즘 제가 생각하는 건 조금 달라졌어요.
아이한테 참으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불편한 걸 견디는 힘을 키우자는 이야기도 아니고요.
불편한 일이 생겼을 때, 그걸 어떻게 읽느냐가 다인 것 같아요.
저 친구가 오늘 기분이 안 좋았나 보다. 나한테 그런 뜻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사람이 저런 면도 있지.
이렇게 한 번 돌려서 생각해보는 것.
지금 아이들한테 없는 게 이 여지예요.
상대가 선을 넘었다는 판단만 있고, 그럴 수도 있다는 자리가 없어요.
그러니까 남는 선택지가 끊는 것밖에 없는 거죠.
이건 참는 것과 달라요. 참는 건 마음에 쌓이지만, 그럴 수도 있지는 마음에서 내려놓는 거니까요.
아이가 이걸 배우려면 어른의 말이 좀 필요해요.
친구 이야기를 할 때 그랬구나 하고 들어주고, 한 번쯤 그 친구는 왜 그랬을까 하고 같이 생각해보는 것 정도요.
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요.
오늘 우리 아이한테 불편한 일이 있었다면, 아이는 그걸 어떻게 읽고 있을까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쿨한나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