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건, 서로 잘 모르니까 하는 말이죠.
독자님 안녕하세요!

메일링크 대표 덩이입니다. 🧚지난주는 우정과 사랑에 대한 에세이를 보내드렸는데요,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소재라 그런지 반응이 뜨거웠답니다! 혹시 지난 레터를 놓치셨다면? <지난 레터 보러가기> 

오늘은 연 작가님의 에세이로 찾아왔습니다. 달라진 바람의 온도를 시렵다고 느끼는 간절기에, 지나간 여름을 회상하며 에세이는 시작합니다. 연 작가님의 지난여름에 자리하고 있는 장면들은, 파도보다 청량하게 쏟아지더군요! 키워드는 파도, 보드, 그리고 보사노바입니다. 
파도를 걷는 아이   

어느새 달라진 온도의 바람을 맞으며 걷는데 나는 그것이 상쾌하기보단 시렸다. 몸 안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서 바람이 슉-하고 빠져나가는 허전함. 겨울을 싫어하지만 한겨울보다 여름이 끝나가는 이 간절기의 순간이 내겐 일년 중 가장 슬픈 시기다. 그리고 몇 해 전의 나는 끝나지 않는 여름을 만끽하고 있었지.

 

분명 한겨울이어야 할 새해에 나는 뜨거운 여름 나라에 있었다. 1월은 분명 추워야 하는데. 살갗은 점점 까매지고 코에선 바다내음이 맴돌았다. 잠깐의 산책으로도 머리카락에 바다를 담을 수 있었다. 물보라를 일으키는 거센 파도를 바라보다 알알이 부서지는 파도의 잔해에 피부가 끈적해져도 상관없었다. 추위에 떨어야 할 시기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돌아다니는 매 순간이 마치 자습 시간을 몰래 땡땡이 친 학생의 마음 같아서 이상하고 들떴다.

 

그러니 내가 K의 그을린 피부를 보고, 파도 위를 걷는 그 애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들뜨지 않았다면 이상한 일이겠지.

 

바닷가에 사는 아이. 틈만 나면 파도를 타러 바다로 향하는 아이. 해가 내리쬐지 않아도, 비가 오는 흐린 날이라도 상관없이 바다에 가는 그 애 때문에 바다에 갈 때에 날씨 같은 건 중요치 않다는 걸 알았다. 차가운 바다를 오래 견디지 못하는 나는 항상 따뜻한 햇볕을 필요로 했는데. 그리고 그것이 나의 여름 바다였는데. 모래 위에 사롱을 펼쳐두고 나른하고 게으르게 바다를 즐기는 나는 K의 바다가 궁금했다. 태양보다 파도로 가득 찬 그 애의 바다가.

 

그 애의 몸은 오랜 시간 파도를 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을렸고, 단단했다. 성실히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기도 했다. 옆구리엔 나에게는 없는 아가미 같은 근육이 붙어있었는데 패들링을 많이 하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곤 패들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잠깐에 폼이 났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성실히 쌓아온 지난 날들을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태도, 몸에 배인 행동 같은 것. K의 그것은 나의 것과 아주 달라 선망하는 눈빛을 품게 만들었다.

 

삶을 소모적인 태도로 살아왔다. 내 것이 아니라 남이 누가 던져주고 간 것마냥. 나를 텅 비우고 타인의 발자욱을 기꺼이 허용하며 짓밟히기도 했던 밤. 그것을 멈추지 못해 스스로를 마네킹처럼, 의지를 상실한 채 살아왔던 날들.

 

K는 그런 나를 아직 몰랐고 내가 그 애를 선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듯 그 애도 나에게 듣기 좋은 말을 건넸다. 그게 어느샌가 나를 물들이고 있었다. 말이라는 것은 힘이 세서 그게 사실이 아닐지라도,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같이 느껴져도 마음 한 켠에 뿌리내리기 마련이다. K 역시 비슷했던 것 같다.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불안해하는 K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잘 다듬은 말뿐이었으니까. 그런 건 나에게는 할 수 없지만 타인에게는 할 수 있었다.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서로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들.

 

하지만 이 들뜸이 오래가지 못할 것을 진작에 알았다.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언제 다시 볼 지 모를 이 사람으로 나를 채웠다간 지금의 충만함보다 더한 나락으로 떨어질 것을 알았다. 그 애의 말은 가라앉고 있는 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줄 수는 있어도 헤엄쳐 나가게 할 수는 없었다. 그건 내가 해내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예전처럼 행복한 과거에만 매여있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애의 부재는 내게 안정을 남겼다. 아이러니하게도.

 

맑은 날의 아침 풍경을 상상한다.

 

오케이 구글, 보사노바 음악 틀어줘.

 

잔잔하고 포근한 노래가 밤사이의 침묵을 깬다. K는 비몽사몽한 내게 인사를 건넨 뒤 일찌감치 운동을 하러 간다. 나는 조금 뒤 일어나 차 한 잔을 마시고 거실 창 옆에 매트를 깔고 수련을 한다. 수련이 끝날 즈음 돌아온 그 애와 아침을 같이 먹는다. K는 아몬드유를 넣은 달달한 시리얼, 나는 따끈한 오믈렛. 적당히 설거지를 하고 바다로 갈 채비를 한다. 도로는 한가하고 창문 밖에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Boy Pablo Feng Suave의 음악을 들으며 내 왼쪽 허벅지에 놓인 그 애의 손에서 익숙한 온기를 느낀다.

 

회원권을 끊어둔 서핑샵에 가서 각자 보드를 하나씩 챙긴 뒤 패들링을 한다. K는 어느새 나를 저만치 앞서 있다. 그 애는 보드의 끝 부분에 걸터앉아 파도를 기다린다. 나는 패들링을 잠시 멈추고 그 애를 본다. 90도로 꺾인 나의 시야엔 반짝이는 윤슬과 일렁이는 파도와 원래부터 이곳에 속했던 것 같은 그 애가 있다. 눈을 감았다 뜨면 파도를 잡으러 나아가는 그 애가 보인다.

 

스스로로 완전한 두 사람의 모습을 그려본다. 우리가 서로에게 심은 말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단단히 내렸길 바라본다. 각자의 보드 위에서 각자의 파도 위를 걷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파도 위를 각자의 힘으로 걸어갈 우리를.

 

이미 내 머릿속에선 너무도 선명하지만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아직은.


(제목은 고아라, 한지우 작가님의 ‘파도를 걷는 소녀’에서 차용했습니다.) 

🏄‍♀️에세이스트, 연

"수신인 없는 편지를 씁니다. 무엇이 당신을 제 편지에 닿게 했을까요. 그게 무엇이 되었건, 반갑습니다. 우리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연결되는 비밀 통로 안에 있습니다." 
  
  9월 셋째 주, 메일링크 소식 💌
당신이 찾던 그 작가_08  

작가 발굴 인터뷰 여덟 번째 주인공, 메일링크에서 드물게 소설을 쓰시는 작가님이에요! 짧은 소설뿐 아니라 에세이와 시까지 맛깔나게 쓰시는 팔방미인 작가님입니다. 🕺

소설가, 글장고

“사소하고 하잘것없지만 생각하기엔 머리가 복잡해서 글을 쓰는 사람.”

소설 쓰기를 사랑하는 만큼 글쓰기를 사랑해서 이것저것 끄적이며 살아가는 중입니다. 언젠가 제 글장고를 열었을 때 시원하고 차곡차곡한 글들이 쏟아져 나오길 기대합니다.

❄️작가님을 알려주세요!

이렇게 말하기 굉장히 부끄럽지만, 글장고입니다. 뜬금없지만 ‘글장고’는 제 필명이 아닙니다. 사실 뭐, 필명이랄 게 저한테는 없습니다. 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텐데, 저는 제 이름으로 소설가가 되고 싶거든요. 아직까지 제 이름과 같은 이름의 소설가가 없어서 참 다행이고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제 이름은 오지환이고, 만약 훗날 이 이름으로 출간된 소설을 발견하게 된다면, 적당한 망설임으로 제 책을 집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글장고’인지 궁금하실 법도 한데, 사실 별건 아니고 올해 초부터 시작한 블로그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고, 글을 저장하는 냉장고라는 뜻입니다.

본격적으로 저를 소개하자면, 저는 소설가 지망생입니다. 처음 소설을 쓴 건 2018년 어느 여름의 새벽 무렵이었습니다. 아주 우연한 계기였습니다. 날씨가 굉장히 더웠고, 친구가 서점에 들르기 해서 저도 따라간 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베스트셀러 코너를 둘러보다 문득 눈길을 끈 책을 집어 들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새벽녘에 저는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고, 여차여차해서 지금까지 끈질기게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소설을 쓰는 일은 항상 설레고 항상 어렵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좋아요. 오랜 시간 낯선 시선으로 글을 읽는 것도, 오래 시간을 들여야 글이 좋아지는 것도 좋아요. 글을 쓸 때는 늘 막힘이 있지만, 그럼에도 가장 처음 소설을 썼을 때의 그 마음을 간직한 채, 오래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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