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배경
VR챗은 안 되는 거 빼고 다 되는 무법지대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매력적이고 동시에 위험하죠. 위험한 모습은 BBC의 폭로기사 같은 형태로 소개된 적 있고, 매력적인 모습은 이제는 여려분들도 익숙하실 'We Met in Virtual Reality' 같은 작품이나 '메타 사피엔스' 같은 책을 통해 알려졌죠. 그리고 저같은 사람에게 VR챗은 VR에서만 가능한 새로운 스토리텔링 포맷을 실험해볼 수 있는 싸고 편리한 창작 플랫폼으로 인식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이 서비스의 불안요소는 바로 '저작권 침해'에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일단 이곳에는 수많은 IP들이 별도의 저작권 허락을 받지 않은 채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오징어 게임'도 있고 '스파이더맨'도 있으며 '귀멸의 칼날'도 있습니다. 현존하는 최대 VR 플랫폼이라고는 하나 동시접속자 수는 3~4만 명 정도에 불과하고 상업적 이득을 크게 취하지 않는 팬 메이드 콘텐츠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아직은 기존 IP 보유사들이 크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듯 합니다. (하지만 결국 문제가 될 수밖에 없죠)

그에 앞서 창작자들끼리 서로 도용을 하는 상황은 이미 문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VR챗에서는 '아바타'를 직접 제작하고 이를 유료로 거래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데, 어떤 창작자가 만든 유료 아바타를 다른 사람이 무단으로 도용해서 이용하거나 판매하는 상황(VR챗에서는 '짱법'이라 표현)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면서 내부적인 문제제기가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고 이에 대해 수수방관하는 플랫폼 운영사 VR챗에 대한 비판도 높아져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2022년 7월 25일 플랫폼 운영사 VR챗은 EAC(Easy Anti Cheat) 도입을 골자로 하는 보안정책 업데이트를 발표하게 됩니다. EAC는 이미 '포트나이트', '엘든 링' 등에도 쓰이고 있던 클라이언트 수정 방지 기능이라고 합니다. VR챗은 이 조치를 발표하면서 '고객의 요구에 마침내 우리가 나섰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사태의 발단 7/25 업데이트 발표 (출처 : VR챗 공식 홈페이지)
격렬한 비난과 사용자의 급격한 이탈
하지만 정책 발표 직후 부터 서양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격렬한 비난을 받게 됩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번째는 EAC로도 '짱법 문제'(아바타 불법 복제) 문제는 거의 해결할 수 없다. 그리도 두번째는 EAC로 인해 모든 '모드'가 차단되면서 사용자들이 그동안 VR챗 서비스의 편의성 개선을 위해 자체적으로 개발해 쓰던 수많은 기능들이 차단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상징적인 건 청각 장애를 가진 사용자들이 사용하던 '수화 모드' 같은 것들이 불법 개조로 취급 받으며 차단 당한 것이었습니다. 

비난의 핵심은 VR챗을 '아름답게' 만든 건 VR챗 서비스 운영사가 개발한 기능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필요에 의해 직접 만들어 낸 수많은 모드들이었는데, 이제 와서 운영사가 '보안 상의 이유'로 그것들을 다 차단하니 이건 더 이상 VR챗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사용자들은 비난에만 그치지 않고 곧바로 행동에 나섭니다. 유사 기능을 제공하는 플랫폼인 '네오스 VR'이나 '칠아웃'으로의 이주를 선언해 버린 것이죠. 이에 따라 VR챗 동접자 수는 업데이트 정책을 발표한 7월 말 기점으로 급격하게 줄어드는 모습을 보입니다. 
VR챗 동접자 수 변화 추이 (출처 : 스팀차트)
VR챗 개발진의 편의성 제고 업데이트(ing)
여기서 끝이었을까요? 국내 많은 언론들은 이 상황까지만 정리해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하지만 VR챗 운영진은 7월 28일 개발자 업데이트 노트를 통해 그동안 받은 피드백을 기반으로 VR챗의 편의성을 개선할 리스트를 정리하고 이를 데일리 업데이트를 통해 매일 매일 무엇이 개선됐는지 업데이트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개선 리스트란 그동안 VRC의 공식 개발진이 개발하면 더 좋았겠지만 여의치 않아 사용자들의 개조(MOD)에 의존해야 했던 편의성 기능들이었습니다. 그리고 7월 29일부터 바로 어제 8월 8일까지 주말을 제외하고 정말로 '데일리'로 업데이트를 하기 시작합니다. 

VR챗 개발진의 이러한 행동은 소비자를 기만하기 위한 또 하나의 쇼일까요? 아니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의 뒤늦은 행동일까요? 혹은 이 사건이 VR챗을 더 나은 서비스로 만들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까요? 

어쨌든 논란은 다소 사그라드는 추세입니다. 일단 업데이트 속도가 엄청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용자들도 업데이트 된 내용들을 일일이 테스트 해본 뒤라야 다시 깔 수 있을텐데 그것도 벅찰 정도거든요. 저희요? 저희도 '원래 하려던 것' 중 EAC로 인해 안 되는 게 무엇이고 새롭게 업데이트 된 기능들로 할 수 있게 된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여념이 없는 상황입니다. 

1990년대 인터넷 문화가 이제 막 형성되던 초창기에도 '인터넷 문화'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 논란이 있었습니다. 로그인 시스템은 과연 필요한가(개인정보 수집의 시작), 카피라이트, 혹은 카피레프트(혹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스)는 인터넷에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 등의 논쟁이었죠. 그러다 인터넷 서비스를 하는 기업들이 대기업, 이른바 IT 공룡이 되며 그러한 논쟁은 사라졌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들은 IT 공룡들이 제공하는 업데이트를 좋든 싫든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익숙해졌죠. 하지만 VR챗 사태에서 보듯, 새로운 인터넷 환경에서는 기존 IT 업계의 관행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다시 인터넷의 초창기 문화를 복원하려는 강력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1990년대에 가보지 못했던 길을 이번엔 선택해보고자 하는 마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마음들은 결국 어떤 미래를 만들게 될까요? 아직까지는 저희는 그 마음들을, 그 마음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정도입니다. 님은 어떠신가요? 
[뉴스] 어몽어스 VR, 마침내 클로즈드 베타 시작
온라인 마피아 게임 '어몽어스' VR 버젼이 마침내 클로즈드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미 VR챗 '어몽어스 VR' 월드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던 지라 정식 서비스는 어떨지 더 궁금한데요. 현재 아래 사이트를 통해 베타 서비스 참가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어몽어스 VR 베타 서비스 안내화면
[뉴스] CAA, Joanna Popper를 최고 메타버스 책임자(CMO)로 영입
에스파, 이정재, 강동원, 페이커 등 국내 슈퍼스타들과도 계약을 맺고 있는 미국의 메이저 에이전시 CAA가 '최고 메타버스 책임자(Chief Metaverse Officer)' 직을 신설하고 Joanna Popper를 영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맥킨지 컨설턴트, NBC유니버설 마케팅 부문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HP VR 부문 글로벌 헤드이자 XR 콘텐츠 프로듀서로서 활동해 왔습니다. VR 이머시브 연극 '파인딩 판도라 X' 및 'Breonna's Garden'의 제작자이기도 하죠. 실제로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될 지도 궁금하지만 일단은 CAA가 메타버스 관련 임원을 영입했다는 상징성이 먼저 다가옵니다.  
[뉴스] MTV 비디오뮤직어워드, 최우수 메타버스 퍼포먼스 부문 신설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또 하나의 신호로 8월 29일 열리는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최초로 '최우수 메타버스 퍼포먼스' 부문이 신설됐다는 것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해 후보로는 총 6개 퍼포먼스가 선정되었는데 바로 얼마 전 열렸던 PUBG의 '블랙핑크 버추얼 공연', BTS의 마인크래프트 공연 및 아리아나 그란데의 포트나이트 공연, 저스틴 비버의 Wave 공연과 찰리 XCX, 트웬티 원 파일럿츠의 로블록스 공연 등입니다. 과연 이 부문의 시상이 1회성 이벤트로 끝날 지 향후 쭉 이어가게 될 지 궁금해 집니다. 
MTV VMA 최우수 메타버스 부문 후보 (이미지 출처 : MTV VMA 홈페이지)
[뉴스] Within의 앱 서비스 중단 소식, 그리고 위딘 유튜브 채널
위딘은 초창기 시네마틱 VR을 이끄는 회사 중 하나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직접 제작한 360 다큐멘터리로, 그 다음에는 VR 콘텐츠 배급사로서 초기 시장 형성에 기여했죠. 한국의 360 영화 '공간소녀(Space X Girl)'도 위딘과 배급계약을 체결하고 전세계에 소개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위딘은 2021년 '슈퍼 내추럴'이라는 VR 피트니스 서비스로 피벗하고 메타에 인수되기에 이릅니다. 그 이후에도 위딘의 VR App 서비스는 운영을 지속해 왔는데 이제 곧 운영을 중단한다고 합니다. 현재 위딘은 자사 플랫폼에서 서비스하던 360 영상들을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 유튜브 채널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 중인데요. 초창기 VR 영화의 흔적을 살펴보고 싶다면 위딘이 유튜브에 업데이트 하는 영화들에 관심가져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위딘(Within)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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