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요이 쿠사마의 작품 세계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민 기자입니다.

요즘 미술계 사람이라면 한동안 소셜 미디어에서 ‘이 작가’를 마주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독특한 모양의 호박 모자를 쓴 로봇, 파리 샹젤리제의 건물을 집어 삼키는 인형까지.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과 협업한 일본 예술가 구사마 야요이(93)의 이야기입니다.

다소 기괴한 조형물들을 보고 호사가들은 “아흔 넘은 예술가가 정말로 이 프로젝트에 동의한거냐”며 음모론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제게 더 흥미로운 건 예술가가 작품을 넘어 본인의 캐릭터까지 사랑받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가인 피카소도 어디까지나 작품으로 사랑을 받았는데 말이죠. 구사마는 어떻게 대중들을 사로잡은 걸까요?
Yayoi Kusama, Photo: Yusuke Miyazaki. Courtesy of Ota Fine Arts, Victoria Miro, and David Zwirner, © YAYOI KUSAMA
현재 홍콩 M+ 미술관에서도 구사마의 작품 200여 점을 선보이는 회고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제외하고 최대 규모라고 하는데요. 이 전시에서 볼 수 있는 구사마의 초기 조각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안락한 소파에 돋아난 돌기
Installation view of Yayoi Kusama: 1945 to Now, 2022, Photo: Lok Cheng. M+, Hong Kong
원래는 푹신한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할 소파 위에 통통한 돌기들이 빽빽하게 돋아나 있죠. 미술관은 ‘식물의 눈, 종양 혹은 남근 같은 모양’이라고 설명합니다.

1960년대 선보인 ‘축적’ 시리즈에는 이런 일상의 도구 위에 돌기들이 가득 메워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안락해야 하는데 앉지도 못하도록 기괴한 모양을 한 의자에서 느껴지는 건 불안과 공포입니다.

구사마는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는 신체적 학대를 당했고, 아버지의 혼외 관계를 감시하라는 임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어릴 적을 회고하며 “성에 대해 두려움과 호기심의 양가적 감정을 느꼈다”고 합니다. 불안한 가정 상황 가운데 어린 나이에 보지 않아도 될 것까지 본 그녀의 심정이 바로 이런 것이었겠죠.

소파 위 돌기들은 성에 대한 징그러운 느낌, 그러면서도 빽빽하게 채워진 막을 수 없는 호기심을 상징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욕망은 곧 에너지다
이 징그러운 돌기들은 그런데 점차 컬러풀한 점으로 수렴되기 시작합니다. ‘축적’ 시리즈 이전에도 구사마가 물방울무늬를 이용했지만, 이 무렵부터 퍼포먼스나 참여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죠.
Installation view of Self-Obliteration (1966–1974) at Yayoi Kusama: 1945 to Now, 2022, Photo: Lok Cheng, M+, Hong Kong

  구사마는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나체 위에 물방울무늬를 칠하거나, 그 무늬가 그려진 옷을 입고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이 때 퍼포먼스는 미국의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욕망을 의미하는 ‘점’에 지배된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점이 앞선 설치 작품에서는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것이었다면, 나중에는 세계와 나를 연결 시켜주는 통로가 됩니다.


구사마는 점을 ‘자아의 제거와 소멸’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살아있는 존재라면 모두가 갖고 있는 욕망을 통해 우주와 내가 연결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과거 사회에서 억눌러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욕망을 구사마는 에너지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물방울무늬는 태양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태양은 모든 우주와 생명의 에너지를 상징한다. 물방울무늬는 움직이는 운동이며 무한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된다.”

나에게 정직한 것이 무기
Installation view of Dots Obsession ──Aspiring to Heaven’s Love (2022) at Yayoi Kusama: 1945 to Now, 2022, Photo: Dan Leung, M+, Hong Kong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는 퍼포먼스로 드러낸 그녀에게도 시련은 있었습니다.


1960년대 퍼포먼스가 언론에 자극적으로 보도되긴 했지만, 그 이상의 의미로는 해석되지 못하면서 그녀는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집니다.


1973년 미국에서 일본으로 돌아간 구사마에게 일본 언론은 ‘스캔들의 여왕’이나 나체 퍼포먼스를 하는 문란한 여자라는 타이틀을 붙입니다.


그러다 1989년 미국 뉴욕에서 회고전을 하면서 재조명을 받게 되죠. 그녀가 잊혀졌다 다시 조명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예술이 결국 스스로에게 철저하게 솔직했고, 이것이 인간의 한 단면을 정직하게 드러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바뀜에 따라 작품이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죠.


욕망이 두렵고 불안하지만 동시에 에너지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과정은 곧 그녀를 대중적인 작가로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구사마가 테이트 미술관에서 선보인 유명한 설치 작품 ‘소멸의 방’은 관객이 흰 방에 스티커를 붙이도록 참여를 유도합니다.


스티커를 붙이는 행위는 마치 어떤 것을 나의 소유라고 표시하는 듯한 기분을 줍니다. ‘붙이고 싶다’, ‘갖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바로 이 설치작품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인피니티 미러 룸’은 사방에 거울을 설치해 관객으로 하여금 내 모습을 끊임없이 비춰보도록 만들었습니다.


내가 작품의 일부가 되고 주인공이 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을 북돋은 것입니다. 이 작품은 지금도 전 세계 미술관에서 전시될 때마다 빠르게 매진될 정도로 인기입니다.


구사마 야요이라고 하면 예쁜 호박이나 화려한 물방울무늬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그 가운데에는 삶의 좌절과 어두운 면까지 끌어안고, 스스로를 솔직하게 돌아본 과정이 있었기에 그녀가 예술가로서 사랑받을 수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구사마의 물방울무늬를 보며, 나를 괴롭게도 또 성장하게도 만드는 욕망에 대해 돌아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의 영감 한 스푼, 어떠셨어요?😋

☕ 쿠사마 야요이 작품의 느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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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레터에서 소개한 제이디 차 작품에 대해서는 '한국적이다'(64.3%)는 의견이 약간 많았습니다. 사실 양자택일을 꼭 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의견을 묻기 위해 보기를 제시해드렸는데요. 기타 의견으로 '한국의 신화를 범국가적으로 해석해가는 느낌'이라는 흥미로운 답변이 있었습니다.

😁: 지난 뉴스레터를 보고 보내주신 의견을 소개합니다.
🔸실질적으로 중심을 차지하는 그림만큼이나, 프레임에 시선이 갔습니다. 한국의 고유한 퀼트 보자기나 색동 저고리를 연상케 하는 정겨움이 있어서요. (...) 감상에 있어서 지식을 기반으로 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할까요? (...)타문화권에서는 이 그림들을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다양한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서 다문화적 배경을 지닌 작가들의 과제가 무엇일까요? 이번 기사 읽고서 질문이 많아지네요.
👉다양한 질문 감사드립니다 :) 감상에 있어 필요한 지식에 관한 의문은 미술을 접하면 꼭 한번쯤 갖게 되는 생각인듯 합니다. 저는 음악을 들을 때도 애호가들은 배경과 경험을 기반으로 감상하듯, 시각 예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내가 가진 경험과 인식을 바탕으로 작품을 볼 수 밖에 없더라구요. 그래서 오히려 작품에서 뭐가 보이는지에 따라 나를 알게 되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기보다, 이렇게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 자체를 즐겨보시면 어떨까요?

🔸어머니의 나라를 의식하면서 만든 작품이라 그런지 분명 한국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듯. 바리공주 등을 차용한 것은 작가 자신에겐 색다른 체험이었을테지만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그닥 신선하지는 않은 자기 비유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한국인 관객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공감을 끌어낼 강점이기도 할 듯합니다. 그런데 사실 한국적이고 이국적이고 하는 판단은 작가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관객에게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 않을까요? 국적을 떠나, 색감과 그림 속 인물 모두 강렬해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저도 구구절절 공감되는 의견이네요. 공감과 신선함 사이의 줄타기를 작가라면 늘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회 현상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박사 과정 생의 입장에서 오늘 레터는 앞으로 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게 만들면서도 용기를 줍니다. 제가 공부하는 분야의 뛰어난 학자들을 보면 그 때 그 때 유행하는 주제를 연구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연구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데, "자신만의 시각으로 결합해 새로운 '개인적인 신화'를 창조하기에 이릅니다."라는 표현과 겹쳐 보였습니다. 미래가 어떨지 알 수 없는 박사 과정 생의 불안함을 인정하는 과정에서도 갑옷이 생기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항상 좋은 레터 감사드립니다.
👉박사과정 중이시라니 응원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작품을 통해 힘을 얻으셨다니 저도 기쁘고 힘이 나네요 :) 삶의 많은 과제들에서 '나만의 시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저도 많이 하고 있답니다. 보람 있는 연구 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작품마다 등장하는 소라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한국 or 캐나다? 김민기자님이 의도적으로 언급을 안하신듯...^
👉제가 일부러 누락한 것은 아니고 분량상...빠졌습니다 ㅎㅎ. 소라는 작가가 말하길 제주도에서 발견하고 신기해했는데, 제주도민들은 매일 보는거라 별 관심이 없어했던 것이 흥미로워 선택했다고 합니다. 또 '집'을 의미한다는 것도 이유로 작용했다고 하네요.

🔸제이디 차가 이국적인 한국인으로 느껴졌을지 한국적인 외국인으로 느껴졌을지에 따라 작품도 그러할 것 같습니다. 기자님은 직접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셨는데 어떻게 느껴지셨어요? 그리고, 암모나이트와 구미호들에 둘러싸인 거대소라 모자를 쓴 소녀의 모습인 대구의 딸들은 어떤 이야기를 전하는 그림인지 궁금해요. (felix)
👉제가 만났을 때는 우선 언어의 장벽 때문에...외국인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제이디의 말대로 '한국에선 외국인, 캐나다에선 아시아인'이라고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구의 딸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못 들었지만, 저는 제이디의 어머니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 이밖에 의견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영감 한 스푼'이 전해드릴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더 가까운 소통을 원하신다면 저의 인스타그램(@mini.kimi)으로도 찾아오셔서 편히 이야기 나누어주세요.

감사합니다!

김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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