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딱하면 2시간 반

"그냥 집에서 바로 출발하세요." 수원으로 출근해 업무를 좀 하다가 외근을 나가겠다고 하자 들은 대답이었다. 에디터 거주지는 안양으로, 수원과 청량리 사이에 있다. '수원 내려왔다 청량리로 다시 올라가느니 오늘 밤에 내일 해야 할 업무를 미리 끝내고 외근을 가는 게 편하지 않겠느냐'라는 대표님의 판단 아래 6월 27일 화요일은 처음으로 매장 출근을 하지 않은 날이 되었다.


집에서 매장까지는 신이 나를 보고 '넌 빨리 가라'라고 점지해 주는 수준으로 환승이 딱딱 맞아야 40분이다. 그게 아니라면 1시간인 걸 떠올리자 문득 아찔해졌다. 매장 출근했다 청량리까지 가면 아무리 빨라도 두 시간은 걸린다. '경기도민은 서울 어디든 1시간'이라는 말에 청량리는 논외다. 집에서 전농동까지는 1시간 반이 걸렸음에 감사하며 지하철에서 내렸다.

외 근 일 지

소속 카페 도안
직책 에디터
행선지 슈퍼 내추럴
이동수단 대한민국의 대동맥 1호선
날짜 장마 소식이 무색하게 쨍쨍했던 2023년 6월 27일

수행업무 한 우물만 파는 슈퍼 내추럴 사장님 탐구
업무결과 괴근식물에 푹 빠져버렸다
처음 슈퍼 내추럴에 갔을 때를 떠올려본다. 지금은 아니지만 일본 유명 로스터리 원두를 취급했었다. 유난히 쾌활하신 사장님의 환대에 기분이 좋아져 만 오천 원을 냉큼 지불하고 필터 커피를 주문했다. 무산소 발효를 거친 엘살바도르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나GINA 드리퍼를 쓰는 점도 재밌었다. 지나는 에미 후카오리가 2018년 월드 브루어스 컵 챔피언에 등극했을 때 사용했던 추출 기구인데, 여과와 침출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콘형 드리퍼다. 사서 써보려고 했지만 가격이 무지막지해서 포기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매장을 찬찬히 뜯어봤다. 매킨토시 앰프, JBL 스피커, 라 마르조꼬 리네아. 다음은 좌석. 철로 프레임을 만든 나무 테이블, 무심하게 발려진 시멘트 벽. 내부에 오브제가 많다고 할 순 없었지만 하나하나가 묵직했다. 매장 바깥엔 다른 베스파와는 조금 다르게 생긴 베스파가 주차되어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튜닝을 많이 했나 싶겠지만 베스파 946은 원래 그렇게 생겼다. 한국에는 20대가 들어와 있다.

곧 커피가 나왔다. 내가 주문한 아이스커피는 리델 와인 잔에, 동행인이 주문한 따뜻한 커피는 아라비아 핀란드 잔에 담겨 있었다. 사장님과 말을 해보지 않더라도 매장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대충 가늠이 된다. 첫 방문을 마치고 난 뒤의 인상은 이랬다. 이 사람은 좋은 것만 쓰려고 하는구나. 
잠시 옛 추억에 잠기며 걷다 보니 어느새 슈퍼 내추럴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만난 사장님과 즐겁게 인사를 나누고 주문을 한다. 라떼나 에스프레소 마시라는 말에 에스프레소를 골랐다. 준비되는 동안 바뀐 매장 내부 상태를 머릿속에 최신화한다. 오닉스 패키지가 잔뜩 쌓여 있고, 원래 손님 좌석이던 카운터 왼쪽은 못 보던 괴근식물들로 가득해졌다. 그라인더 앞에는 잭 다니엘이 종류별로 구비되어 있다. 그 앞에 당당히 자리 잡은 카베진 알파를 보고 피식 웃었다. 커피를 대체 얼마나 마시고들 가길래 위장약이 준비되어 있는 걸까. 맛있는 커피라면 악으로 깡으로 집어넣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좌석을 차지해놓고서는 1인 1음료를 하지 않는 괴근식물들. 사람이 아니라 괜찮다고 항변하는 듯함>
주문한 에스프레소가 단아한 잔에 담겨 나왔다. 베리나 포도 같은 맛이 좋았다. 1시간 반 동안 1호선에 절여진 뇌를 카페인으로 깨우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습니다의 어미를 사용하는데, 사장님과 나눴던 대화를 그렇게 옮기니 영 글맛이 안 산다. 대화를 그대로 살려 현장감을 실어주고 싶었다. 하여 본 인터뷰는 이전 외근일지와는 다르게 반말로 실었다. 독자분들을 향한 반말이 아닌 에디터를 향한 반말이므로 너른 양해 부탁드린다.

독자님들께 자기소개 한 번 해주시죠
슈퍼내추럴을 운영 중인 이홍석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경력이 오래되셨어요. 어쩌다 커피 씬에 발을 들이셨나요?

원래는 피아노 전공이었어. 집안이 예체능 집안이라 나도 예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집안 사정도 안 좋았어. 내가 노력형이거든. 예체능엔 재능이 없다고 느꼈어. 13년을 했는데 음악을 포기하게 되니 할 게 없더라고. 아무 전문대나 들어가자는 마음에 집 근처 대학에 지원을 했는데 그게 호텔경영이었어. 우연찮게 서비스에 대해 공부하게 됐는데 적성에 맞는 거지. 사람들 만나는 거 재밌고, 일하는 게 노는 느낌이더라고. 교수님도 나보고 '너는 사상이 너무 자유로워서 호텔엔 안 맞고, 바리스타나 소믈리에 혹은 바텐더 쪽으로 가면 성공할 것 같다'라고 했지. 그때 아무 데나 입사하지 말고 미국계 프랜차이즈 업체를 권하셔서 커피빈에 입사했지. 스타벅스는 모자를 쓰고 근무해야 해서 싫었거든. 1년 정도 파트타이머로 근무하다 정직원 시험을 보고 들어갔지. 그게 시작이었어.


벌써 흥미로운데 그간의 역사를 한번 들려주세요

7년 정도 커피빈에서 근무를 했어. 당시에는 매장 경영/관리, 직원 트레이닝 및 스케줄 관리 같은 일을 했는데 그게 커피를 잘 하는 건 줄 알았지. 그게 커피를 하는 행위인 줄 알았고. 그런데 커피 좀 한다는 사람들이랑 미팅을 가져 보니 아무 말도 못 하겠더라고. 내가 경력은 훨씬 길었는데. 나이 먹고 더 늦기 전에 커피의 본질을 파봐야겠다 생각했지. 머신 엔지니어링이랑 로스팅을 같이 하는 업체에 들어가서 1년 정도 배웠어. 머신 오버홀, 설치, 유지/보수 전부 재미있더라고.


그러다 보니 더 배움에 욕심이 생겼어. 그동안 돈 모은 걸 가지고 일본에 갔지. UCC 커피 아카데미라는 곳에서 일본 챔피언들한테 3년 동안 배웠어. 17년도에는 글리치 커피를 만나게 돼서 카페 람베리라는 업체에서 글리치 커피 코리아를 하려고 왔는데, 계약이 잘 안됐어. 그즈음에 모 F&B 그룹에서 스카웃 제의가 와서 그쪽에서 차린 매장에서도 일을 했지. 1인당 12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 하이엔드 커피나 디저트를 취급하는 매장이었는데 아무래도 금액대도 금액대고 매니아틱한 곳이다 보니 아주 잘 되진 못했어. 11개월쯤 했을까, 이제는 독립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 회사 생활하면서는 경쟁의 연속에 바쁘다 보니 쉬는 날이 스무 살 때부터 서른다섯까지 총 쉰 날이 5주도 안 될 거야. 주말이고 공휴일이고 일만 했어.


그러면 그때 독립을 결심하신 거예요?

아니야. 25살, 그러니까 커피빈 3년차 때 이 길밖에 없겠다고 느꼈어. 포기하고 다른 길로 가기엔 늦을 것 같았어. 허황된 꿈일지라도 내 매장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 그 뒤로 쭉 일을 하면서 '투자하겠다' '동업하자' '부모님께 돈 빌려서 빨리 차려라'같은 유혹도 많았지. 그렇지만 경험도 더 많이 쌓아야 했고, 내가 자신 있을 때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오래 걸렸어. 10년을 계획으로 잡았어. 딱 35살이면 경험치도 쌓였을 거고 돈도 많이 모았을 거라는 단순한 마음이었거든.


변하지 않고 신념을 지키며 지내니 때가 됐다고 느꼈어. 그게 21년도였는데 코로나가 심했는데도 불구하고 기회라고 생각해서 바로 차려버렸어. 다행히도 커피를 오래 했다면 했으니까 아시는 분들이 소문도 내주셔서 안정적으로 운영 중이야. 커피업에 종사하시는 분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 입맛에 맞는 커피를 주고 있지. 대중적인 느낌보다는 매니아틱한 매장을 원했어. 그 매니아틱한 게 규모가 커지면 곧 대중적인 것이 될 것이라 생각했거든.


해 보니까 어떠세요? 좋았던 순간도, 후회스러운 순간도 있었을 거 같은데요

정말 단 하나도 후회하지 않아. 단 하나도. 매 출근길이 행복해. 출근할 때는 사람들과 놀 생각에 설레고, 퇴근길엔 매출과 관계없이 손님들과 재밌게 좋은 시간 보내서 하루하루 소중하게 일하고 있어. 내가 만족감을 느끼는 걸 고객분들도 체감하시는지 그런 모습이 긍정적으로 다가와서 계속 와주시는 것 같아. 지금 1년 10개월 차인데 여태 휴무가 총 6일 뿐이야. 매일 칼출근해. 매장 마감은 오후 7시 반인데 손님들이 늦게까지 계시고 싶으시다면 나갈 때까지 있어.


안 힘드세요?

난 안 지쳐. 성향이 맞아야 할 수 있는 거 같아.

슈퍼 내추럴 이름에 담긴 뜻이 뭔가요?
스물다섯 살에 10년 뒤 내 매장을 해야겠다 생각했을 때 정해놓은 거야. 왜 슈퍼 내추럴이냐, 커피 하나로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된다는 거야. 지금 너하고 나처럼 고객과 고객들이 카페에서 친구가 되고, 우리가 커피를 매개체로 만나서 거리낌 없이 대화하고 고민을 나누는 문화가 너무 좋았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슈퍼 내추럴. 말 그대로 기이한 현상이잖아.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내추럴하다고 생각을 해서 슈퍼v내추럴이야. 내추럴 프로세싱만 다루냐, 미드를 재밌게 보았냐는 질문도 받는데 전혀 아니야. 난 오히려 워시드 좋아해. 다 그렇잖아. 처음에는 내추럴 좋아하다가 오래 마시면 결국 워시드로 빠지게 된다고.

청량리에 매장을 여신 이유는요?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청량리는 역이 있다는 것만 알았어. 전농동이라는 동네는 몰랐지. 독립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인터넷으로 상가를 찾아보는데 마음에 드는 곳이 없더라고. 그런 찰나에 친한 동생네 집에서 배달을 시켜 먹으려고 네비를 찍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고 있었거든? 열이면 아홉을 지금 매장 옆 큰길로 안내를 하는데, 그날따라 이 골목으로 안내를 하는 거야. 그렇게 여기를 지나는데 '이 동네 뭐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한 쪽은 완전히 서울 같지도 않은 동네인데 도로 하나만 가로지르면 으리으리한 아파트가 있더라고. 구와 신의 경계선인 게 마음에 들었지. 근처 상가도 다 임대더라고. 마침 옆에 부동산도 있어서 바로 문의했는데, 코로나가 심했을 때라 좋은 조건으로 들어왔어. 운이 좋았지. 한창 매장 위치를 못 잡을 때 주위에서 '너랑 맞는 스팟이 있을 거야'라고 했는데, 솔직한 마음으로 '무슨 X소리야' 했거든? 이런 경험을 하게 되니까 정말 말로 할 수 없는 기운 같은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 동네가 정말 잘 맞아. 오시는 분들 기운도 좋고. 음악을 크게 틀어도 절대 뭐라 하는 사람 없고, 오히려 지나가면서 인사하시며 응원해 주시지. 신기하면서도 좋은 동네야.

공간을 구성하며 콘셉트는 어떻게 잡으셨나요
이솝하고 무인양품을 오래전부터 좋아했어. 두 브랜드의 매장에 가면 기물이나 용품들만 봐도 기분이 정말 좋았어. 스튜디오 볼드라는 인테리어 스튜디오에 그런 분위기의 매장을 만들고 싶다고 의뢰했어. 작은 공간에 단순하면서도 임팩트 있었으면 했어. 미니멀 속의 맥시멀이 내가 추구하는 공간이야. 매장 보면 아무 것도 없어 보이지만 기물 하나하나들은 훌륭한 것들로 채웠어. 그러다 보니 오시는 고객들도 다른 생각 잘 안하고 편하게 대화하다 가는 심플한 매장이 된 것 같아.
그래서 그런지 매장에 재미있는 요소가 많아요. 그중에서도 손님들 사진 찍어 주는 게 재밌었어요. 어쩌다가 시작했나요
어머니께서 여행사 직원이셨어. 나를 모델로 사진을 많이 찍어주셔서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났지. 어머님이 사진 찍을 때마다 행복해하셨거든. 나도 스무 살에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카메라를 사서 친구들을 찍어줬는데 정말 재미있는 거야. 어떻게 보면 유전이 된 거지. 그렇게 자주 찍어주다 보니 결과물이 나쁘지도 않고 주변 사람들도 좋아해 주니까 보람찼어. 내 공간에서도 그러면 좋겠다 싶었지. 한가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분들이 오면 웬만하면 먼저 물어보고 찍어줘.
기억에 남는 반응도 있을 거 같아요
올 때마다 내가 사진을 찍어주니까 그걸 모으시는 분들도 있어. 그게 이야기가 되더라고. 처음 사진 찍어줬을 때는 여자친구랑 헤어졌었는데 이 사진은 같이 찍었네. 이때는 또 구인구직 중이었는데 지금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네. 사진을 통해서 손님들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게 재미있지.
어느 순간 괴근식물이 잔뜩 보여요
이것도 어머니 영향이야. 베란다가 거의 식물원이었어. 그걸 닮아서인지 매장 초창기에는 일본 소나무 분재 같은 걸 뒀었어. 그런데 손님 중에 식물원 대표님이 계셨거든. 매장에 선인장이나 괴근식물 두면 잘 어울릴 거 같다고 추천해 주셨어. 그게 뭔지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는데 그것만으로도 완전 빠져버렸어. 마다가스카르나 멕시코 사막에 살던 식물을 채취해서 가져온 거라는데 이것도 슈퍼 내추럴인 거야. 스토리텔링이 좋았고, 비록 외형은 뾰족하지만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식멍'이라고 하지. 처음엔 두세 개로 시작했던 괴근이 지금 이렇게 많아졌어. 뭉쳐 있을수록 힘이 생기더라고. 그 맛에 중독돼서 지금은 손님 앉는 자리까지 포기하면서까지 모으고 있지. 좌석 몇 개보다는 매장에 '내 색을 더 많이 입히자'로 바뀌었어. 반응은 오히려 지금이 더 좋지. 식물 갤러리에서는 이미 유명해졌다던데?

하나 빠지면 끝장 보시는 스타일 같아요. 커피도 오닉스만 쓰시잖아요.

원래 수입 원두를 좋아했어. 타 업장에서도 오닉스를 몇 번 접했지. 국내 생두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어. 해외 원두는 가격이 좀 있더라도 맛이나 패키지 퀄리티가 높아서 좋아했지. 또 오닉스 인스타그램을 봤는데 어떤 레게 머리한 흑인 직원이 에어로프레스로 야외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더라고. 커피, 카페 컬처를 엄청 강조하는데 '이게 진짜 찐(?)이구나, 이게 멋이구나'라는 생각에 오닉스라는 브랜드에 매료됐지. 그래서 계속 사용하면서 패키지를 모으고 있는데 지금 이렇게 됐네.


레시피랑 추출 팁도 있나요

잘 볶여서 잘 나오니까 특별한 팁은 없는데, 나는 지나를 쓰니까 추출을 멈추거나 지연시킬 수 있지. 대신 지나는 라이트 로스팅에 더 특화되어 있는데 오닉스는 완전 라이트보다는 중배전에 가까워서 너무 진하게 뽑지는 않으려고 해. 아프리카 식물들 많으니까 아프리카 커피 레시피 알려줄게.

지나 쓰면 맛있어지나

준비물
지나 드리퍼

분쇄도
평소보다 굵게

물 붓기
아이스 커피
원두 17.5g
150g 추출
1) 00:00 - 추출 잠금, 50g
2) 01:00 - 추출 개방, 50g 총 100g
3) 01:30~40 - 50g 총 150g
4) 02:30 전 추출 종료

뜨거운 커피
원두 15.5~17g
250~260g 추출
1) 00:00 - 추출 잠금, 80g
2) 00:40 - 추출 개방, 120g 총 200g
3) 물이 다 빠지면 250~260까지 푸어
4) 03:30 전 추출 종료
Point! 분쇄는 평소보다 굵게

분쇄는 굵고, 추출은 빠르게 진행하지만 뜸을 오래 들여 추출 시간 보정

커피 고르실 때 무엇을 중점으로 보시나요

워터리 하지 않지만 깔끔하고 향미가 좋아야 해. 단맛은 물론 받쳐줘야 하고.


슈퍼 내추럴 왔으면 이건 꼭 먹고 가라 하는 메뉴도 있나요

배도라지 슬러시. 내 매장 정체성이랑 딱 맞아. 건강에도 좋고 사람들에게도 경험치를 제공하는 음료야. 도라지 뿌리 하면 어때? 씁쓸하고 부정적일 것 같잖아. 그걸 좋게 풀어서 제공하니까 좋아하시더라고. 우리 시그니처야. 아니면 에스프레소. 이건 자신 있어.

<배도라지 슬러시>

에디터 시식평 : 배도라지는 건강원에서 파는 즙으로만 나오는 줄 알았다. 내심 한약 맛 나는 거 아니냐는 걱정과 함께 한 입 먹었다. 우려는 순식간에 불식됐다. 예상과는 다르게 복숭아의 향긋함이 먼저 치고 들어온다. 도라지의 디펙트(?)인 씁쓸함을 가리기 위해서 차를 함께 냉침했다고. 그렇다고 해서 도라지의 정체성이 사라지진 않았다. 자극적이지 않게 달달한 배 맛 덕에 끝까지 먹어도 물리지 않았다. 3분 만에 다 마셨다. 에스프레소 세팅과 비슷하게 접근한 셈이다. 커피인의 피는 역시 진하다. 이 사장님,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선 어떨까?

카페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신다면요

되게 웃길 수도 있는데, 지구의 연결고리. 카페 하나로 우리가 다 만날 수 있잖아. 지금 너와 나만 봐도 그렇고.

 

지금의 슈퍼 내추럴도 그러한가요

완전 그렇지. 커피도 싱글 오리진, 블렌딩 쓰잖아? 이거야말로 '휴먼 블렌딩'이야.


앞으로 꿈꾸는 슈퍼 내추럴의 모습도 궁금해요

추후에는 로스팅도 하고 납품도 해보려고 해. 또 친한 일본 유명 바리스타 친구들, 이를테면 글리치나 다른 친구들 불러서 분기마다 정기적으로 팝업을 해볼까 해. 1주일 정도? 브랜드는 계속 돌아가면서 내가 좋아하는 해외 원두들을 알려보려고 해. 이건 갑자기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인데, 도안이 지금 독보적으로 여러 업체 수입하고 판매하며 알리고 있는데, 실제로 대중들이 잘 몰라. 아쉽기도 하고 안타까워. 공급 사업자 입장에서 남는 게 없을 텐데 꾸준히 하고 있는 게 대단해. 커피 좋아하고 카페 하는 사람들도 금액대가 높지 않다고 생각하더라고. 많이들 취급하고 알려줬으면 좋겠어. 그래야 우리 커피 시장도 프로페셔널하고 커지지 않을까?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슈퍼 내추럴 찾아주시는 손님들께 한마디 부탁드려요

전농동이 접근성도 아주 안 좋은데 힘들게 오신 만큼 여기서 오히려 재미나 좋은 영감 얻고 가시는 거 하나는 있을 거예요. 많이 오세요. 단순히 커피만 마시는 게 아니라 사람의 에너지를 공유하고 친구 만들어서 나가실 수 있을 거예요.

인터뷰를 끝내고 담소를 좀 나누다 나왔다. 싯가로는 4만 원쯤 한다는 괴근식물도 한 그루 선물 받았다. 이번엔 업무 차였지만 다음에는 평소처럼 손님으로 또 와야겠다는 다짐을 하자마자 '왜 나는 이 먼 곳까지 커피 한 잔 마시러 계속 오는 건가'라는 의문이 이어진다. 재방문하고 싶어지는 카페는 소비자에게 무엇을 제공하는가?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가 주는 미각적 쾌감, 공간이 주는 편안함, 그리고 사장이 뿜어내는 기운이다. 셋 중 적어 두 가지는 만족스러워야 또 가고 싶다는 의사가 생긴다. 커피만 맛있으면, 편안하기만 하면, 사장님만 좋으면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은 적어진다.

일식과 월식이 고대 사람들에겐 그저 신기한 일이었겠지만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초자연 현상이 다 그렇다. 보기엔 기이해 보일지라도 다 과학적 원리가 있다. 다만 초자연 현상이 일어나려면 여러 환경이 타이밍 좋게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그래서 적게 일어나는 거다. 전농동 구석 카페에 사람들이 계속 모이는 이유가 뭘까. 그 카페라는 한 공간 안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가 친구가 되는 이 기이한 현상은 뭘까. 위 열거한 세 가지 환경이 동시에 갖춰져서 그런 것 아닌가. 아, 내가 이래서 계속 가나 보다.
<괴근식물 선물 받아서 좋은 말 해주는 거 아닙니다>
먼 길 오셨는데 밥 한 끼 해야죠.
스페셜티 커피 좋아하는 사람 중에 맛있는 음식 싫어하는 사람 못 봤다. 입맛 고급이신 슈퍼 내추럴 사장님의 근처 맛집 2픽.
정편백

사장님들이 우리 매장 자주 오시는데 나처럼 먹고 마시는 거 좋아해. 식재료 좋은 거 쓰는데 서비스도 좋아. 매장 이름은 편백이지만 편백 찜만 파는 게 아니라 육회비빔밥이나 규동도 있으니까 점심 한 끼 먹기 좋아.

추천메뉴 : 육회비빔밥, 규동

주소
인스타그램 @j_pyeonbaek
부산슈퍼

부산슈퍼라고 검색하면 부산에 수백 개가 뜨니까 전농동 부산슈퍼라고 검색해야 해. 이 동네 원탑 맛집. 돈까스나 떡볶이같은 분식에 저녁엔 술안주도 파는 가맥집이야. 맛있는데 가격 엄청 싸. 완전 추천!

추천메뉴 : 모든 메뉴

주소
인스타그램 @busan1999_2
슈퍼 내추럴
영업시간
  • 12:30 ~ 19:30
  • 마감 시간이 늦어질 수 있으므로 인스타그램 확인 必

주소 서울 동대문구 전농로23길 78

전화번호 0507-1366-1430
전농로23길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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