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좋은부모 주간 47위"

책이 나온 이후 새로 생긴 습관이 있다. 국내 3대 온라인서점의 매일 달라지는 순위를 체크하는 습관. ‘한국 에세이 Top100’, ‘시/에세이 141위' 등 서점 두 곳의 성적은 아직 순위를 논하기 이른, 올림픽 본선 참가 수준의 순위였지만 나머지 한 곳의 분류방식은 우리에게 가장 우호적인 방식으로, 가장 높아보이는 숫자를 제시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좋은 부모’란 이름으로.

갑자기 궁금해졌다. 우리 책 앞에 있는 46개의 책은 어떤 책일지. 그리고 알게 됐다. 썬파클 책이 1등을 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란 걸. 1등은커녕 Top 10도 쉽지 않을 것이란 걸. 

『똑게육아』, 『초등어휘일력365』, 『엄마의 내공으로 영어를 다시 시작합니다』, 『교과서는 사교육보다 강하다』, 『생기부 필독서 100』, 『삐뽀삐보 119 이유식』, 『내 아이를 위한 주의력 수업』,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오은영”), 『스카이 버스』, 『늦기 전에 공부정서를 키워야 합니다』, 『수학은 암기다』 등등

30위까지의 목록만 봤을 뿐인데 세 가지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사실 1] 나는 교육열 세계 1위의 나라에 살고 있다. 

[사실 2] 갈수록 어렵다고 하는 종이책 시장에서도 살아남는 건 확실한 효용과 목적이 보이는 실용서다.

[사실 3] 우리 책을 더 잘 팔기 위해선 제목을 썬데이 파더스 클럽이 아닌  <좋은 아빠 단기 완성> 또는 <내 아이 영재 만드는 아빠 육아>로 지어야 했다. 

동시에 한 가지 질문이 남았다. 과연 좋은 부모란 무엇일까. 저 위의 책들을 다 읽고 내 아이가 또는 부모인 내가 똑똑해지면 정말로 좋은 부모가 되는 걸까.

4월의 어느 일요일 저녁, 육퇴 후 침대에 누워 인스타그램을 하던 중 한글 학습지 브랜드의 무료체험 상담신청 버튼을 무심결에 눌렀다. 화면에는 4월 한정 프로모션으로 한글공부 태블릿 제품을 할인해준다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적혀있었다. 할인과 프로모션은 사실 좋은 명분이었다. 내 손가락 뒤 본심에는 말하기에 부쩍 재미를 붙인 33개월 이현이에게 한글을 빨리 가르치고 싶은 욕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도 5세용으로 나온 프로그램을 1년이나 빨리. 

담당 매니저의 적극적인 전화가 걸려올 때 바로 후회하긴 했지만, 결국 무료체험 기기를 받기 위한 상세 개인정보까지 술술 넘겨주고 이틀 만에 제품을 받았다. 택배 상자엔 누가 봐도 학습지 브랜드같은 로고가 큼지막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아내가 퇴근길에 먼저 보면 분명 잔소리를 할 것 같아서 회사로 받은건데 하마터면 더 민망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상상이 들어 내용물만 빠르게 확인한 후 자리 밑에 숨겼다. 뉴스레터를 쓰면서 나름 깨어있는 아빠 소리를 들어왔는데, 이 상자의 로고가 노출되는 순간 깨는 아빠라고 할 것 같다는 상상.. 

주어진 무료체험 기간은 일주일. 하지만 정작 아이는 단 하루만 기기를 만져볼 수 있었다. 회사가 너무 바빠 상자를 집에 가져다 놓고도 개봉을 이틀 만에 했고, 개봉 후에도 프로그램 설치를 미루다 끝내 마지막 날에야 아내 도움으로 아이가 만져라도 보게 된 것이다. 무료체험 반품 날 자정까지 야근했던 나는 새벽 두 시에 태블릿을 다시 포장하며 생각을 했다. 좋은 부모는커녕 부모 근처에도 못 간 일주일이었다고.  

5월 어느 평일 저녁, 오랜만에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날이었다. 아내가 최근에 재밌게 본 영화 요약본이라면서 식탁 위 아이패드로 영상 하나를 틀었다. 제목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제목은 익히 들어 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대표작이었다.    

영화엔 서로의 자녀가 바뀐 두 아버지가 대조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한 명은 경제적으로 직업적으로 성공했고 아이도 명문 사립학교에 보낼 정도로 주변에서 선망하는 삶을 살지만 6년간 휴가를 거의 가지 않는 워커홀릭에 아이에게 엄격한 원칙만을 강조하는 아버지. 다른 한 명은 부유함, 유능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가정적으로 매우 훌륭하고 진심으로 아이들을 존중하는 아버지. 

줄거리와 결론은 얼핏 보면 뻔하지만 영화의 묘미는 좋은 아버지를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그리고 있다는 데 있다. 핏줄이 같아도 유대감이 없으면 남과 같을 수 있다는 것을, 핏줄이 달라도 같이 겪어온 길고 견고한 시간이 있으면 좋은 가족이자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계기를 들었다. 일이 바빠 집에 잠만 자러 들어오는 생활을 거듭하던 중에 딸이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 라고 인사하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아 만들었다는 비하인드는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좋은 부모란 무엇일까. 좋은 집안 환경에서 좋은 육아 철학을 가지고 아이에게 매일 좋은 의식주를 누릴 수 있게 해준다면 좋은 부모인걸까. 흔히 나쁜 부모 모습으로 언급되는 부부싸움, 영상, 스마트폰, 무관심 등에서 벗어나 내 아이를 제2의 김연아, 손흥민, 조성진처럼 키우면 훌륭한 부모가 되는걸까. 

분명한 건, 누군가가 좋은 부모인지 아닌지는 어떤 보여지는 결과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 육아휴직을 쓴 부모여도, 아이 교육에 누구보다 아낌없는 투자를 하는 부모여도 그 사람이 그들의 아이에게 진정으로 좋은 부모인지는 알기 어렵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아버지도 겉으로는 최고의 부모였지만 정작 아이 관점에서는 좋은 부모가 아니었던 것처럼 부모의 올바름를 판단하는 주체는 타인이 아니라 아이일 때 비로소 정확해 지는 것들이 많다. 

부모가 죄인처럼 나오는 금쪽이 방송을 보면서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문제투성으로 그려지는 부모도 화면 바깥에서는 분명 그의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 있다고. 반면 인스타그램에 좋은 부모처럼 올라오는 사람들, 깨어있는 양육자처럼 보이는 사람 중에는 회사와 바깥 활동에 치중해 정작 자신의 아이와 진실된 시간을 못 보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물론 내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다행인 건, 좋은 부모란 타이틀을 어떤 한 사건이 아니라 역사가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시종일관 무뚝뚝했던 나의 아버지도, 아내에게 엄하셨던 장인어른도 지금에 와서는 좋은 부모님이자 좋은 할아버지 역할을 해주시는 것을 보면 내가 가끔 이현이의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가끔 같이 놀다가 업무를 핑계로 스마트폰을 해도 만회할 기회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도 첩첩이 쌓이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 이번 글에 미처 녹여내지 못한 좋은 영상과 글을 소개하고 싶다.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은 멀고 어렵지만 좋은 것을 접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영상] NTT docomo 광고 ‘어른이란 무엇일까'

[글] 부모란 무엇인가 - <더 글로리>의 부모들

Fathers’ Update

💬 남편과 저 둘이서 애칭으로 쓰는 단어가 있는데… 어느날 아이가 같이 놀아달라는 반응에 응하지 않자, 아이가 저희 부부를 향해 그 애칭을 쓰며 부르더라구요. 아! 싶었어요. ‘안듣는것 같으면서도 다 듣고 있었구나!’ 정말… 부모는 아이의 거울 입니다!!! (똥강아지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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