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고 명품 소비가 늘며 과거 디자이너 의류 또한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중 우리 눈에 들어오는 한 단어, 000 아카이브. 이름 뒤 ‘아카이브’가 붙는 브랜드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아카이브 피스(Archive Piece)’는 단순히 오래된 의류를 뜻하지 않습니다. 후대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거나, 하나의 복식 트렌드를 주도한 중추적인 디자이너들의 작품에 가깝죠. 그렇기에 에디 슬리먼의 디올 옴므, 라프 시몬스의 질 샌더와 같이 특정 시기의 브랜드 컬렉션은 해당 디자이너의 유산으로 여겨집니다. 그만큼 디자이너 한 명의 성향이 여실히 드러난 컬렉션들이죠. 그중에선 디렉터에 따라 상징적인 컬렉션의 연도까지 따로 있다는 사실! 피비 필로가 이끌던 셀린부터 헬무트 랭이 이끌던 이끌던 헬무트 랭까지. 낯설게만 느껴진 아카이브 브랜드 아홉 가지를 소개합니다. 다양한 아카이브 브랜드 중 디렉터가 자신의 브랜드를 떠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것들로 선정했습니다. 이베이 등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또 다른 패션의 미학을 만나보세요.

올드와 뉴를 붙여가며 구분되는 브랜드는 많지 않고, ‘피비 필로(Phoebe Philo)’의 셀린은 여전히 그 존경을 받아내고 있다.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이 로고까지 바꾸어가며 뉴 셀린에 혈기를 불어넣었지만, 팬들은 올드 셀린(@oldceline)의 sns 채널까지 개설해가며 셀린의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다. 프렌치 모더니즘에 기반해 중성적인 선과 색을 활용한 피비 필로는 누구보다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의 옷을 제작했다고 평가받는다. 컬렉션 의류와 더불어 ‘러기지(Luggage)’와 ‘트리오(Trio)’ 등 당대 탄생한 많은 가방 디자인은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다.

헬무트 랭은 지난 30년 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중 하나로 남았다. 여러 본디지 스트랩과 ‘하네스(Harness)’로 개척되지 않은 미니멀리즘의 실용을 발굴하고, 데님을 불로 그을리고 방탄조끼를 제작하며 독특한 직물 ‘실험’에 집중했다. 1999년 프라다에 부분 인수되며 브랜드는 한 차례 위기를 맞고, 2005년 랭이 예술 작업에 몰두하기 위해 떠났을 때는 이전의 아우라가 희석되기도 했다. 현재, 뉴욕에 본사를 둔 브랜드 헬무트 랭은 ‘리에디션(Re-edition)’ 컬렉션으로 과거의 제품을 재출시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있다.

90년대 미우미우의 퓨처리즘은 감히 고혹적이었다. 지금의 그것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천진하고 낙관적인 디자인이 주를 이루었는데, 미우미우가 미우치아의 어린 시절 페르소나인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변화 또한 어느 정도 흥미로운 개연성을 갖춘다. 그중 스트링과 스트랩을 활용해 몸 위에 대담한 선을 긋는 그들의 보디 백은 지금까지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 미래주의적 양상이 훗날 프라다 스포츠의 밑거름이 되었고, 헬무트 랭이 하네스를 활용해 인체 역학을 탐미하던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1993년 니고는 편집숍 ‘노웨어(Nowhere)’와 브랜드 베이프를 세상에 선보인다. 영화 <혹성탈출>에 영감을 얻어 유인원에 착안해 다양한 그래픽과 오마주를 필두로 브랜드를 시작했다. 초기 베이프는 그래픽 디자이너 Sk8thing과 함께 한 소량의 티셔츠를 선보이며 하루주쿠 젊은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후 나이키 에어포스1에 변주를 가한 베이프 스타를, 뉴욕 소호 거리에 매장을 차례로 성공시키며 명실상부 일본 최대의 스트리트웨어 컬트를 생성한다. 베이프는 2011년 IT 기업에 매각되었고, 니고의 디렉팅이 가미된 카모플라주 패턴과 샤크 후드는 오랜 시간 범지구적인 인기를 향유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Hedi Slimane)’. 어린 시절 마른 체형으로 따돌림받던 그는 자신과 같은 이들을 위한 스키니 실루엣의 남성복을 구상하게 된다. 록스타에 영감을 받은 반항적 이미지와 디올 진, 치마 등의 중성적인 아이템은 세간에 거대한 충격을 선사한다. 그렇게 2000년대 남성복의 키워드는 ‘슬림 & 스키니’가 되었고, 이후 생로랑과 셀린에서도 자신의 뚜렷한 스타일을 지켜나가며 에디 슬리먼의 이름은 장르화(化)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지점에서 에디 슬리먼에 대한 평가는 극명히 갈리지만, 그의 열정이 묻어나는 디올 옴므는 명실상부 거대한 아우라로 여전히 많은 이의 그리움을 사고 있다.

벨기에를 대표하는 여섯 브랜드 ‘앤트워프 식스(Antwerp Six)’. 드리스 반노튼과 앤 드뮐미스터, 딕 비켐버그 등 걸출한 이름이 수놓은 앤트워프 식스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단 하나의 이름으로 그것들을 상회한 벨기에 태생의 메종 마르지엘라(@maisonmargiela). 익명의 디자이너로 알려진 마틴 마르지엘라는 텅 빈 지하철역과 길거리 한복판에서 쇼를 개최하는 등 그의 브랜드 자체에 신비로운 아우라를 덧입혔다. 해체와 재구성, 낯설게 하기 등 ‘플럭서스(Fluxus)’ 예술 운동을 연상케 하는 당시 제품군은 오늘날까지 유효한 전위 예술의 표본이 되었다.

온큐레이션은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영역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트렌드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마주하는 색다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