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사 레터 40회 (2022.01.26)
안녕하세요, 김겨울입니다. 저는 책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글을 짓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시를 쓰기도 합니다. 저는 시와의 인연이 첫 5초 안에 결정된다고 믿는 편입니다. 시는 마치 시인의 몸에 맞춰진 숨소리, 혹은 영혼이 삶을 연주할 때의 해석과도 같아서 독자는 자신의 리듬과 맞는 사람을 금방 알아볼 수 있습니다. 어디서 잠시 멈추고 어디를 늘어뜨릴지,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을 강조할 것인지, 어느 순간에 숨을 쉬고 또 멈춰야 할지에 따라 삶이라는 하나의 악보는 무한대로 변주되고, 그중에는 분명 나와 맞는 호흡으로 연주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훌륭한 합주를 해낼 수 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김겨울 작가가 사랑한 첫번째 시💕 말의 목을 끌어안고 (이은규,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모든 고백은 선언이다 나는 안장에 앉아 고삐를 쥔 자가 아니어라 가차없이 채찍을 휘두르는 자도 아니어라 노래는 말이 아니어라 마부의 채찍질에도 꼼짝하지 않는 말의 목을 끌어안고 흐느꼈다는 한 사람 세상이 수군거린다 지혜를 사랑하다니, 미치광이 그가 오래 흐느낀 이유는 동물의 말을 알아들어서가 아니다 세상의 말에 귀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책상에 앉아 펜을 쥔 자가 아니어라, 나는 향기로운 문장을 휘두르는 자도 아니어라 말은 노래가 아니어라 나는 누군가 늦췄다 당겼다 하는 고삐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어리석은 발자국 누군가 함부로 휘두르는 채찍에 고개 숙여 히잉— 먼 소리를 내는 목울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그러나 나는 이 은유를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고삐를 움켜쥔 손아귀의 힘을 상상하며 채찍을 다루는 손목의 습관을 증오하며 말보다는 노래에 노래보다는 말에 그보다 행간 사이를 서성이는 동안 초록이 진다 한들, 온다 한들 한 점 꽃이 그러나 나는 이 은유를 끝까지 밀고 나갈 것이다 오래 미치광이라 불리는 사람과 같이 가까스로 초록을 지키는 식물과 같이 이 시는 제목을 보자마자 특정한 이름이 떠오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감상의 차이가 조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의 목을 끌어안은 사람은 니체입니다. 세번째 연에 나오는 “지혜를 사랑하다니”라는 부분에서 이를 한번 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혜(sophy)를 사랑(phil-)한 사람은 말 그대로 철학자(philosopher)이니까요. 니체는 1844년 독일에서 태어나 정확히 1900년, 20세기의 여명에 숨을 거뒀습니다. 평생 몸이 아팠던 니체는 1889년 결국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산책을 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지게 되는데요, 그 계기에 말이 등장합니다. 마부가 말을 매질하는 모습을 보고 울며 말의 목을 부둥켜안았다고 하죠. 깨어난 뒤 그는 죽을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니체가 지고 있었을 말의 무게를 상상해보곤 합니다.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가 전통의 생각들을 깨부수는 동안 그의 등과 어깨 위로 어떤 짐이 실어졌을까. 어쩌면 그는 무엇이든 등에 얹어야만 하는 말을 보고 자신의 무게를 떠올렸던 것은 아닐까. 동시에 그러한 연민을 느끼는 자신의 모순—니체는 연민조차도 부숴버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앞에서 붕괴했던 것은 아닐까. 이것을 바라보는 시의 ‘나’는 니체도 마부도 아닙니다(혹은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시에 따르면 모든 고백은 곧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어떤 사람입니다. ‘나’는 채찍도 휘두르지 않고 향기로운 문장도 휘두르지 않습니다. ‘나’는 그 두 가지 모두를 증오합니다. ‘나’는 차라리 한 마리 말입니다. 그래서 고개 숙여 먼 소리를 냅니다. 아마도 ‘나’는 행간 사이를 서성이는, ‘가지지 못한 자’인 것 같습니다(혹은 그러리라 선언하는 것 같습니다). 니체도 마부도 결국은 동물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나’의 고백에 저의 고백을 얹고 싶습니다. 저는 동물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말을 보고 저의 연민에 철학적으로 흔들리는 대신 기꺼이 말의 고삐를 풀어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막간 우.시.사 소식 : 나희덕 시인 미니 인터뷰🎙 시집 『가능주의자』로 독자 여러분의 사랑을 받은 나희덕 시인의 미니 인터뷰를 공개합니다. 『가능주의자』는 1989년 등단 이후 아홉번째 시집인데요. 시집의 표지와 그림의 비하인드, 그리고 시를 쓰면서 했던 고민들까지!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 바로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보러 가기) 💕김겨울 작가가 사랑한 두번째 시💕 네가 신이라면 (주민현, 『킬트, 그리고 퀼트』) 네가 신이라면 첫 페이지에 역사와 종교를 다음 페이지에 철학과 과학을 적고 스물네번째 페이지쯤에 음악과 시도 적겠지 그렇다면 나는 눈을 감고 거꾸로 책장을 넘기겠네 독재자의 동상 앞에서 예술가들을 추방한 철학자들과 춤을 추겠네 네가 신이라면 새들에겐 그림자 인간에겐 견딜 만한 추위와 허기를 주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공깃돌처럼 가지고 놀겠지 나는 구멍난 공깃돌에서 흐르는 작은 슬픔을 엿보네 네가 신이라면 나는 네 두 눈 속에 오래 서 있는 동상 네 다리를 핥는 회갈색 눈의 개 너는 사랑하는 두 사람과 두 사람을 막아서는 나무들 무성한 나무들의 숲과 그 숲에 울려퍼지는 절규의 화음을 만들지 그것을 사람들은 음악이라 부르네 소년들은 커서 좀도둑이 되고 소녀들은 헐값에 신부가 되고 네가 신이라면 나는 무성한 나무숲을 돌지 포기를 모르는 들개처럼 네가 신이라면 너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하나의 귀 나는 밝은 대저택과 침침한 교회 앞에서 하인처럼 조아리는 두 개의 음악 트리에 온통 반짝이는 것은 심장처럼 매달린 전구들 나는 붉게 빛나는 허름한 구두 한 짝 하늘엔 비행기 땅에는 부드러운 털모자를 쓴 인간들 실밥은 터진 호주머니 사이로 흐르고 가난한 연인들은 사랑을 조각보처럼 기워서 입고 다니지 그래서 “공깃돌에서 흐르는 작은 슬픔”을 나누고 싶습니다. 아마 말은 울고 있을 테니까요. 마부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하나의 귀”이고, 우리는 어쩌면 그러한 성품이 미덕인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시는 “네가 신이라면”, 하고 가정하고 있지만 실은 이미 ‘네’가 신인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흐르고, 흐르고…… 공깃돌에는 구멍이 나고 호주머니 실밥은 터집니다. 그것이 예술이고 사랑이고 자연이기 때문입니다. 구멍을 시멘트로 메우고 실밥을 본드로 붙이는 대신 조각보를 기우고 한 짝의 구두를 빛낼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멋지고 (보기에)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멋지고 어리석기만 하면 좋을 텐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이미 ‘네’가 신인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견딜 만한 추위와 허기"를 하루하루 버티며 결국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 미래를 기대합니다. 저조차도 그러한 질서를 완전히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해가 갈수록 시대에 적응하기가 힘듭니다. 시대에 적응하는 것이, 혹은 시대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는 것이 나이를 먹는 일이라고 들었는데요. 날이 갈수록 모든 게 점점 더 이상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저의 어리석음은 어디에 도착하게 될까요? 도착지라는 게 존재할까요? 그러나 저는 이 까끌거리는 느낌을 연주하는 글들을 볼 때마다 외로움을 잊게 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그런 분이 계시기를 바라봅니다. 📢 다음주 <우리는 시를 사랑해> 시믈리에 ![]() 다음주 <우리는 시를 사랑해>는 설 연휴로 쉬어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라며...💛) 다다음주 아름다운 시 두 편을 추천해줄 시믈리에💛는 교보문고 시/에세이 한지수 MD입니다. 책에 대해 늘 진심인 한지수 시믈리에가 들려주는 시 두 편을 기대해주세요. 그럼, 2주 뒤 수요일에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