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어나는 동화 같은 이야기 또는 미래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나도 한 번쯤은 판타지  
[글 순서]
1. 당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하루 - 러너
2. 슈룻슈룻슈룻! - 로이린
3. 광녀(狂女) - 마드쏭 
당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하루 
by 러너

 너무나도 맑고 푸른 바다 한가운데에서 앤디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따스한 햇살과 더불어 산들바람이 그의 얼굴을 가볍게 스친다. 수영을 못해서 그렇게도 물을 싫어했던 그가 배에 누워 있다니, 그동안 생각한 유람선 여행은 아니지만, 가족과 함께 여행한다는 게 꿈만 같았다. ‘해외에 1년에 1번씩 나가 보기’를 기록했는데, 이젠 한국을 떠나 1년간 바다를 떠다니고 있다. 그의 인생을 바꾼 여행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여행을 떠나기 몇 년 전에 무척이나 바쁜 일상을 살았다. 문득 영국 방문이 떠오른다. ‘세계의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마음을 움직이는 강연하기’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제가 생각하는 세계시민의식은 단순히 온 인류와 세계를 위한다는 것이 아닌 ‘자기 존중’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이 부분은 사랑과도 연결되는데요. 우울증 환자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격차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이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진정 변화를 원하는지?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성찰과 직면이 필요한데요.
솔직하게 말해볼까요? ‘내 꼴 보기- 주제 파악을 해라!’가 먼저입니다. (청중 웃음) 내가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는 자기 통제권이 늘어나게 되면 자존감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질문 하나 드릴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혁신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걸까요?”

 

 앤디는 잠시 멈추고서 청소년과 청년들을 바라보았다.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시민교육 & 사회혁신 포럼에서 강의를 진행 중이던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강의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5초간의 정적 뒤에 세미나실에서 갑자기 방송이 하나 흘러나왔다.

 

 “강의실에 계신 앤디 마커스님, 앤디 마커스님 강의 중 죄송하지만, 긴급 전화가 와 있습니다. 지금 바로 사무국으로 오시겠습니까?”

평소에 중요한 일을 할 때는 전화기를 아예 꺼 놓는 습관을 지닌 그에게 자주 있는 일이었다.

 

 “제게 급한 전화가 와서 죄송하지만, 강의는 여기서 마칠게요. 아! 제가 드린 질문은 여러분에게 숙제로 남겨둘게요. 질문이 있으시면 화면에 보이는 메일이나 저희가 운영하는 한국의 ‘러브미타운’ 홈페이지에 질문을 남겨 주세요.”

 

 “선생님, 선생님!” 많은 청년이나 청소년들이 질문하고 싶어서 일어섰다. 앤디는 손을 흔들며 인사한 뒤 급하게 앞문을 열고 사무국으로 종종걸음을 재촉했다. 뭔가 새로운 일이 터질 것 같다는 기대에 그는 설레기도 했다.

 

 문득 갑자기 길을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여기 처음 왔는데 사무국이 어디 있더라?’ 지나가는 직원에게 길을 물은 뒤 간신히 사무국에 도착해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앤디 선생님이시죠?”

 “네, 그런데요?” 

 “저희는 공기 정화 시스템을 연구하는 에어클린이라는 회사인데요. R재단에서 시작하려는 사업 공모에 참여하고자 연락드렸습니다. 기획 담당이 앤디 선생님으로 되어 있으시더라고요. 저희 팀원들이 런던에 와 있습니다. 만나서 상의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오늘 혹시 가능할까요?” 

 “아! 그러시군요? 어디에서 뵐까요?”

 

 세계의 공기가 오염되었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던 중 미세먼지와 공기 오염을 줄이는 장치 개발을 시작하려는 앤디는 무척이나 기뻤다.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사업하기’를 적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인류를 위해서 도울 수 있는 일이 한 가지 더 생긴 것이다. 공기 오염과 바이러스 등으로 인해서 호흡기 질환과 여러 문제가 발생하자 이전부터 생각해 왔던 것을 실행한 것이다.


 그 전부터 많은 일이 있었다. 30대 초반에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장학재단과 교육센터를 세우자’라고 드림 노트에 적은 적이 있었는데, 소년·소녀 가장 100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서울의 스타트업 아카데미에서 만난 J 대표가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에서는, 장애인과 정상인도 아니지만, 최근 3년 안에 제대로 일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과 우울증 환자 50명을 고용할 수 있었다.

 

 2028년 세워진 러브미 타운은 ‘나다운 하루’라는 목표를 가지고, 온전한 나를 찾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21년에 ‘러브미’라는 단어가 앤디의 머릿속에 꽂히면서, 그는 ‘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하고, 전 지구적으로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지려면 ‘러브미’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일어설 힘이 없는 ‘그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와 함께 하는 러브미 운동 이야기는 2년 전 책으로 출간이 되었다. 그 책은 전 세계에 있는 공동체와 단체에 영향을 주었고, 16개 국어로 번역되어 80개 나라에 전해졌다. 현재 매년 열리는 ‘러브하트 캠프’에는 30여개 국의 아이들과 청소년, 청년들이 참여하고 있고,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신에게 놓인 환경에 갇혀서, 마음의 상처로 힘든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어린아이들에게는 무상으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부모들, 회사의 대표, 각 단체의 장이나 리더들도 자신의 인생을 찾기 위해 러브미 타운을 찾고 있다. 죽음과 질병이 퍼지며, 생명의 소중함이 사라지는 시대에 러브미 운동은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고 있었다.

 

 러브미 타운에는 자신을 찾고서 꿈과 희망을 나누어주는 선생님들이 있다. 러브미 타운에는 직책이나 계급, 서열에 구분이 없어서 마을장을 제외하고 모두 선생님으로 불리고 있다. 그중에는 기획과 마케팅, 기술을 담당하는 P 선생님부터, 부드러움과 편안함을 주는 R 선생님까지 다양한 직종에 있던 분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도움을 주고 계신다.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유기농 먹거리 식당은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인기다. 즉석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풍성한 볼거리가 제공되어, 어른들과 아이들이 모두 좋아한다.

 

 23년 4월 우연히 만나게 된 서울의 도시락 카페의 여성 대표로부터 ‘나답게, 자기답게 살았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듣고서 그는 무척이나 하기 싫은 주제 파악을 해야만 했다. 삶을 자포자기하고, 깊은 우울증에 빠진 채 무기력하고 어지럽고, 온 힘이 빠지던 시절에, 그는 힘겹지만, 이제부터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멍하게 바라보던 강물은 참으로 야속하게도 변함없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10초만 걸으면 호수에 빠져 죽을 수도 있었던 그때, 그는 왜 자신이 제자리인지 문제의 실체를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10년 이상 애써 외면했던 질문을 드디어 자신에게 던졌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앤디는 자신이 피폐하게 된 것이, 병든 몸 때문이라는 생각이 많았다. 그런데 몸의 고통이 조금씩 줄어드는데도, 여전히 의욕이 없고, 무기력하고, 하기 싫은 자신의 모습을 직면해야 했다. 그는 왜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까지 됐는지 알기 위해, 잔인하게 계속 과거로, 과거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사업을 하는 분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 기업가는 앤디에게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체면과 자존심을 버리라고 했다. 현재의 나를 정확히 볼 수 있어야 하며, 나를 내려놓고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용기를 가지라고 조언해 주었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밑바닥에 내려갔는데, 또 절망의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듯했다. 닿는 땅이 없이, 끝없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기업가는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조건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앤디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

 

 너무나 많은 상처와 아픔 속에 앤디의 마음은 무너져 있었다. 자신의 마음이 병들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에게는 지난 10년 동안 자신을 도와주고자 했던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 그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자기 연민과 학대 속에서 두 발로 일어서지 못함을 본 것이다. 뭘 더 바란 것일까? 제대로 된 공감과 위로? 함께 울어주고 아파해 주는 것? 우울과 불안 속에서, 몸이 말을 듣지 않는 현실에서 지금이라도 실체를 찾아야 했다. 나에 대해서 온전히 슬퍼하지 못했던 걸까? 상처받은 어린아이로 슬픈 감정 속에 갇혀 그것을 즐기고 있는 건 아닌가? 가슴이 쪼이고, 제대로 잠 못 드는 밤이 계속 이어져 갔다. 그는 그래도 두 발로 일어서는 연습을 해야만 했다. 다시 어린 아기가 되는 듯했다.

 

 갑자기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앤디의 얼굴에 저절로 웃음이 번져갔다. 아내가 조용히 와서 말을 걸었다.

 

 “여보, 무슨 생각 해요?”

 “응? 왔어? 잠깐 꿈을 꿨나 봐.”

 “꿈이요? 또 이상한 생각 하는 건 아니죠? 공책에 적고 다른 일 꾸미는 건 아니에요?”

 “글쎄, 그냥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하루에 대해서 생각했는데, 그게 이미 이루어진 것 같은데?”

 “그래요? 여보, 또 전화기 꺼 놓은 거죠? 러브미 타운에서 전화가 왔어요. 마을장님이 꼭 할 얘기가 있대요. 얼른 받아 보세요.”

 “엥? 전화? 아~ 받기 싫은데, 마을장님이 빨리 돌아오라고 하는 거 아닌가?”
 “여보~ 마을장님은 당신을 사랑해서 그러는 거예요.”

 “하하, 부담스러움~.”


 당신이 누구를 알고 있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알고 싶지 않다. 당신이 몇 살인지, 돈이 있는지 없는지도, 성별이나 학력이 어떠한지도 내겐 중요하지 않다. 다만 당신이 슬픔과 절망의 밤을 지새운 뒤 지치고 뼛속까지 멍든 밤이 지난 뒤 자리를 떨쳐 일어날 수 있는가를 알고 싶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어려운 일을 해내기로 결심한다면 박수를 보낼 것이다. 당신이 홀로 일어서기 전에도, 혼자서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을 때도, 무가치하다고 여길 때도 앤디는 ‘사랑해, 고마워’라는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이러니저러니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같이 두려워하고, 당신이 아파하는 것을 함께 아파할 것이다. 사랑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될 것을 믿기에. 

슈룻슈룻슈룻!
by 로이린

  차가운 공기의 아침이었다. 어렸을 적 한 번도 손수 무언가를 해보지 않았던 한나는 새벽 말간 공기를 피부로 느끼며 집 앞을 나섰다. 무언가를 해보겠다며 시작한 그날의 새벽이 그녀에게 어떤 경험을 하게 할지 몰랐다. 단지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따뜻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에 설렘만 가득했다.

 

 ‘이 시간에 나와 본 것도 참 오랜만이네

 

 아직 해가 뜨기 전인데도 도로에는 차들이 제법 보였다. 목적지가 있는 듯 발걸음을 재촉하는 행인들도 더러 있었기에 두려움을 떨치기에도 적당했다. 어렸을 때 다녔던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한나는 그렇게 했다.

 

 어스름이 보이는 햇살 사이로 배나무 언덕의 둥근 선이 드러나 보였다. 문득 그 광경을 바라보며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리고 한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슈룻슈룻슈룻!! 세 번만 외치면, 그때로 다시 한번 돌아갔으면 좋겠다. 슈룻슈룻슈룻!’

 

 ‘딱 여기다!’

 냄새, 색깔, 느낌 모든 게 같았다. 한나는 9살 무렵, 남동생과 부모님, 온 가족이 버스로만 움직여 골목골목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던 여행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지금 그녀가 느끼는 이 공기는 그때의 모험 같은 여행을 다시 경험하게 하듯 너무도 익숙했다. 웅장하고 푸른 산이 이렇게 내 앞에 가까이 있다니! 파란 하늘과 진녹색의 둥근 산등성이가 나를 포근히 안아주는 기분이었다. 모든 게 같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모두 내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아니다, 사람들이 아니었다…!’

 

 익숙한 풍경이지만 꿈꾸듯 새로운 세상이었다. 라벤더 컬러의 멋진 신사복 재킷에 연녹색 자명종 시계를 들고 바쁜 듯 뛰어가는 족제비 신사, 내리쬐는 햇빛만큼 환한 오렌지색 원피스에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고양이 아가씨, 온 세상의 행복은 모두 내 것이라는 듯 하늘의 두둥실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는 핑크 곰 아저씨까지. 한나는 놀라긴 했지만, 그 언젠가 꿈꾸었던 솜사탕 같은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여긴 어디지? 흥미로운 곳인걸?!’

 

  한나는 핑크 곰 아저씨 옆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었다.

 “무엇을 그렇게 보세요?”

 행복한 꿈을 깨우기라도 한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넌 누구니?”

 “네? 아 저요, 저는 한나예요.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뭘까? 생각에 잠기다 여기까지 왔어요.”

 “진짜로 하고 싶은 거라…? 음… 나는 잠시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내가 지금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지금 여기서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데요?” 한나는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사진작가란다. 여행도 많이 다니지,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이 생기면 즉흥적으로 떠나기도 하고, 그곳에서 그때의 내 감정을 사진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지. 그래! 집중! 집중력이 향상되는 그때 나는 잠시 숨을 참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단다.”

 “와! 생각만 해도 멋지네요. 저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셔터를 눌렀을 때의 그 적막함을 알아요! 설레는 숨 참기죠! 그런데 왜 다른 곳에 있는 생각을 하셨어요?”

 “음… 뭐 말하자면 길지만… 사실 내가 카메라를 들기 시작한 건 내 의지가 아니었을 수도 있단다. 나는 원래 원하던 다른 삶이 있었거든… 그때 그 일을 했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아쉬운 마음이 있으신가 보네요! 저도 종종 과거를 회상해 볼 때가 있는데,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요!”

 “맞아, 그런데 후회는 하지 않아. 잠깐의 공상이랄까? 그런 거지…”

 “그런데 원래 원하던 삶은 어떤 삶이셨어요?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나는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단다! 어릴 때 자동차 장난감을 분해해 보기도 하고, 자동차 사진을 보는 것도 굉장히 좋아했어, 그리고 언젠가는 꼭 멋진 자동차를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지…”

 “그런데요?”

 “매일 도로의 자동차들을 관찰하는 게 내 일상이었고, 자동차 박물관에도 가보고, 자동차 잡지를 매일 같이 끼고 잠들 만큼 푹 빠져 있었어, 그런데 점점 자라면서 꼭 내가 원한다고 뭐든지 할 수 있는 건 아니란 걸 깨달았지! 간절하게 원하기만 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구나 하고 말이야.”

 “에이 그래도 좀 아쉬워요!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일이라면 뭐라도 더 해볼 수 있었지 않을까요? 사실 저도 그런 것들이 있거든요”

 “그래? 그런데 말이야, 지금의 삶도 난 나쁘지 않아, 지금은 난 뭐든 할 수 있거든. 마음먹으면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지금의 내가 좋아, 그때 그런 고민, 생각들이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수 도 있다고 생각해. 이름이 한나라고 했지? 한나는 어떠니?”

 “저는… 그게 아직 잘 모르겠어요… 지금 내가 하는 일 역시 저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뭔가 목이 마른 기분이랄까…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그게 조금은 답답하거든요. 앞으로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지 하는 고민도 있고요…”

 “그게 뭐라도 이런 고민을 하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서 너에게 언젠가는 ‘번뜩임’을 가져다줄 거란다! 나는 그걸 믿는다. 어이쿠 어느새 해가 지고 있네… 집으로 돌아가 봐야 하겠다. 다음에 또 이야기하자꾸나”

 “만나서 반가웠어요. 핑크 곰 아저씨! 멋진 여행 하시고요!”

 “그래, 고맙다. 한나에게도 행운이 따르길…!”

 

 한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핑크 곰 아저씨, 생각해 보면 원하는 삶을 단번에 이루는 것 보다 그 길을 나아가는 과정이 더 멋있는 것 같아요. 나에게 의미 있는 일들이라면 뭐든지요! 아저씨는 사진작가잖아요. 멋진 자동차 사진을 찍고 그걸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 역시 곰 아저씨의 꿈을 이루게 된 게 아닐까요?! 어쩌면 더 멋진 콜라보가 탄생할지도 몰라요! 그리고… 저 다시 현실 세상으로 돌아가야겠어요. 해야 할 일이 뭔지 ‘번뜩임’이 왔거든요! 아저씨 덕분이에요. 다음번에 슈룩슈룩슈룩 세상에 오면 그때 또 이야기 나누어요!’

 한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내가 원하는 삶이 가까이 오고 있어! 슈룩슈룩슈룩!’  

광녀(狂女)
by 마드쏭

 “매일 기차 타고 출퇴근하느라 힘들죠?”

 “아뇨~ 재밌어요!”

 흔히 할 수 있는 인사치레든 날 걱정하는 염려의 말이든 나의 솔직한 대답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매일 신난다.

 

 그렇다고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오늘 와야 하는 것 아니에요?”

 “직원이 처음 알려주는 대로 했으니까 잘못되면 거기서 책임져요!”

사무실에 울린 전화를 받은 나에게, 고객은 자기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부분만 보며 다짜고짜 화를 낸다. 전후 상황을 모른 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나는 당황스럽다.

 ‘에고(ego)다! 저기에 똑같이 반응해서 저들의 아집을 키우지 말자.’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그들을 응대하고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휴우, 잘했어.’ 안도와 함께 헛웃음이 난다. 그들은 본래의 목적을 잊고 책임을 전가하기 바쁘다. 그러면 그들의 진짜 속마음과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을 분리해서 바라봐야 한다. 내가 복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일상의 삶에서 평온함 유지하기’

 

 새벽 4시 25분 알람이 울린다. 바로 일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뭉그적거리며 고양이처럼 몸을 깨우고 4시 50분이 다 되어 일어나기도 한다. 간단히 출근 준비를 하고, 마실 물을 챙긴다. 아침 인사 카톡이 없는 분께 모닝콜을 하며 줌을 켠다. 새벽 5시가 가까워지니 러브미즈 님들이 미라클 타임을 누리기 위해 줌에 접속한다. 낭독과 질문을 통해 나를 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을 더 깊이 느끼는 고요한 시간이다.

 

 6시. 아이들이 알람을 듣고 일어나 내 방에 들어온다. 새벽 모임을 끝내야 할 시간이다. 서로가 에너지를 채운 후라 한층 밝아진 얼굴로 손을 흔들며 줌을 종료한다. 남편은 내가 첫째 아이를 낳고 난 후부터 회사 가서 아침을 먹는다. 집에서 먹고 출근하려면 더 일찍 일어나야 하고 그러면 더 피곤하다고 말하지만, 나를 위한 배려인지도 모르겠다. 남편을 배웅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져갈 물과 아침을 챙긴 뒤 두 딸아이의 머리를 빗겨준다. ‘엄마 갔다 올게. 학교 잘 다녀와. 사랑해.’ 아이들과 포옹하고 집을 나선다.

 

 매일 아침 여행 떠나듯 기차를 타러 가는 출근길은 발걸음이 가볍다. 오디오북을 들으며 매일매일 초록이 짙어가는 가로수와 길가에 핀 꽃들, 때때로 미세먼지와 황사로 뿌옇기도 하지만 그 너머에 있는 파란 하늘 사진을 찍는다. 기차역까지 올라가는 길에 역 뒤편 산을 바라보면 내 마음도 햇살과 설레는 푸르름으로 가득 차오른다. 복직 이후 날마다 보는 풍경이지만 매일 새롭다. 새벽부터 에너지를 가득 채운 나는 기차 지정석에 앉아 이어폰을 끄고 눈을 감는다. 50여 분 동안 깊이 자기도 하고 중간중간 깨는 순간마다 보이는 창밖 풍경에 감탄하며 잠들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

 

 역에서 직장까지 5분 거리다. 걸어가는 인도엔 데이지처럼 생긴 작고 노란 꽃들이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볼 때마다 사랑스러운 꽃이다. ‘얘들 이름은 뭘까?’ 사진을 찍어 검색하면 나오겠지만 이름을 몰라도 좋다. 그냥 이 꽃들의 존재만으로도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매일 일찍 일을 시작하는 짝꿍 동료 덕분에 이미 열린 문으로 사무실에 편히 들어갈 수 있다. 기차 시간 때문에 다른 직원들보다 일찍 출근하는 나. 조금은 이른 시간에 여유로운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도 행복하다.

 

 ‘윈-윈’ 할 수 있는 업체를 찾아 정보를 제공하고, 지자체와 협업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전화와 메일로 제안을 한다. 현업에서 필요할 때 틈틈이 지원 업무를 하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된다. 그 과정에서 몰랐던 것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꽤 즐겁다. 현재의 결과가 어떻든 그 속에서 배우며 기회를 발견하고 성장하고 있다. 점심시간 나에게 원기를 불어넣어 주는 맛있는 식사와 3월의 벚꽃에 이어 4월 이팝나무로 하얗게 수놓은 가로수 길을 걷는 산책 시간도 나에게 활력을 주는 기쁨이다.

 

 어떻게 매일, 매 순간 재밌고 즐거울까? 가슴에서 솟아나는 기쁜 에너지는 어디서 생겨나는 걸까? 미쳤나 봐. 심장이 터질 듯 충만해지는 기쁨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으로 느껴본다. 불평불만 가득한 세상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혼자 세상의 기쁨을 다 가진 듯하다. 이걸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고개만 돌리면 발밑에, 하늘에, 사람들 속에, 일 속에 신비로운 행복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요? 왜 불행해요?” 대신 “뭐가 그렇게 즐거워요? 왜 행복해요?”라는 질문에 “사는 게 원래 그런 거지. 원래 신나고 재미난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해졌으면 좋겠다.

 

 과거에 대한 후회는 나에 대한 용서와 개선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은 현재 삶의 열정으로 대체될 수 있다. 미래를 위해 항상 준비해야 했던 나는 오래도록 나를 편히 쉬어주지 못했다. 지금은 현재 누리는 것들에 집중하니 일하면서도 일상이 ‘쉼’처럼 느껴진다. ‘해야만 해’, ‘하면 안 돼’보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어떤 선택의 결과도 가볍게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행복한 것이 이상하다면 나는 이상한 사람으로 남으련다. ‘미친 듯이’ 강물에 떨어진 낙엽처럼 물에 온몸을 맡긴 채 오늘 하루를 보낸다. 일상의 행복에 미친 내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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