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로부터 일상으로 돌아오며 느꼈던 것들 #1

지난번 '참지 마세요, 이겨내지 마세요, 도망가세요' (https://thebetter.stibee.com/p/18)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내 삶이 산산이 조각난 아침

어느날 새벽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으로 잠에서 깹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제 머릿속엔 '왜? 왜? 왜 아프지?'라는 의문만 계속 이어졌습니다. 결혼식을 한 달도 채 안 남겼던 때였어요.

지난 글에서 제가 자연재해를 만났다고 말씀을 드렸지요. 그때 이야기입니다. 제가 겪은 자연재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직장 내 갑질과 괴롭힘이었어요. 이를 악물고 참아내 드디어 이겨냈다고 생각했던 순간 결국 제 몸은 와르르 무너져 버렸습니다.

MRI 기계 안에서 보인 아내의 얼굴

발병 이후 종종 극심한 두통, 어지러움, 시야 결손으로 저의 생활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서도 원인을 밝히지 못해 통증을 꾹꾹 참고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떠났죠.

결국 아내는 신혼여행의 절반 이상 통증에 몸부림치는 남편을 보게 되었고 걱정을 넘은 공포에 떨게 되었습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신경과에서 결국 뇌혈관 파열 의심을 받고 MRI를 찍게 되었습니다.

웅웅 요란한 소음을 내며 돌아가는 MRI 안에 있으니 이제까지 살아온 삶이 눈앞을 스쳐 갔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 분명 큰 병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기에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혹시 모르니 아내와 혼인 신고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생각을 하자 한심하게도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습니다.

조각조각 깨져버린 미래의 조각들을 맨발로 걷기

다행히 뇌혈관 이상은 아니었지만 제 통증은 나아지지 않아 회사에 병가를 요청했지만, 팀장은 저에게 권고사직을 권유했습니다. 이미 일상생활마저 망가진 저로서는 대응도 못 하고 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많은 병원을 다녀도 진단 결과는 제각각이었고 증상을 잡기 위해 엄청난 양의 약을 처방 받았습니다. 평생 보지도 못할 약들을 잔뜩 먹었습니다. 약의 부작용으로 글씨를 읽어도 이해할 수 없게 되었고, 1시간을 움직이면 힘들어서 4시간은 누워있어야 하는 현실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벌거벗겨진 맨발의 제 앞에는 산산조각이 난 미래가 유리 조각처럼 흩뿌려져 있었고 저는 오랜 시간 그 위를 걸으며 피를 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바로 나

글씨도 못 읽고 하루에 몇 시간 남짓 움직일 수 있는 몸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새로운 일상이 만들어지더군요. 아침에 일어나 남은 반찬으로 출근하는 아내 밥 차려주고 배웅한 뒤, 아침마당 보면서 청소하고 나면 계속 우워 있다가 저녁 장보고 저녁밥 차려주고 잠드는 일상이요.

하지만 이 기묘한 일상에 적응하고 정신을 조금씩 차릴수록 제 마음은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제 처지에 대한 원망이 아닌 주변 친구들과의 비교가 저의 정신을 갉아먹기 시작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사회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고 승승장구하는 시기에 저는 장보기도 힘겨워하고 누워있다니요.

더 힘들었던 일은 숨기고 싶었던 과거의 상처들이 하나, 둘씩 마음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나태했던 나의 모습, 잘못한 것 같던 선택들, 남에게 무시당했던 일들 등 수많은 상처가 이미 무너진 제 마음을 도륙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수면 위로 올라온 마음의 상처들은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고통이라는 것을요. 그렇게 저는 스스로 냠냠 먹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1인분의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이 가장 부끄럽고 서글프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이제 결혼까지 했는데 가족을 먹여 살리는 1인분을 넘어서는 사람이 아닌 마이너스 1인분이 되어버렸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겉으로도 속으로도 철저하고 꼼꼼하게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바닥으로 침잠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글에 계속>

—📿 여러분들이 가진 구슬을 엮어 삶의 가치를 만들어 드립니다, 타래—

당신이 아니면 안됩니다. 손을 내밀어 주세요

눈가에 깊이 패인 다크 서클. 하루 이틀 사이에 생긴 게 아닌 듯 거의 볼까지 늘어져 있습니다. 분명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지만 눈빛은 흐립니다. 손가락 끝으로 데스크 위를 끊임없이 두드리며 끊임없이 한숨을 짓는 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삶은 스트레스의 연속입니다. 보통 깊은 잠이나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날려버릴 수도 있지만 가끔은 깊은 수렁 속에 빠지기도 하지요. 그 상황에서는 생각 외로 혼자의 힘으로 빠져나오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관심과 도움이 친구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우선 주변을 둘러보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친구가 있는지 파악해보세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아래와 같은 몇 가지 특징을 보입니다.

외면의 변화: 다크서클, 지친 표정, 둔한 움직임 등
감정의 변화: 계절 감각 둔화, 극단적인 감정 변화, 무감각 등
대인관계의 변화: 사람들과의 교류 회피, 의사소통 문제 발생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친구를 발견했다면 어떻게 도움을 주면 좋을까요? 저의 경우는 일단 안부를 묻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너의 곁에 내가 있고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신호부터 보냅니다. 손내밀어 줄 사람이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죠.

다음으로는 친구의 이야기를 경청합니다. 그냥 잘했다 잘못했다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게 핵심입니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으면 조언도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생각과 감정이 정리되는 경험은 우리 모두에게 있잖아요. 한 번에 길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좋지만, 틈틈이 시간을 내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방법도 효과적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함께 활동하기입니다. 제가 퇴사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을 때 친구들이 종종 놀러 와서 저와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은 떡볶이를 먹고, 또 다른 날은 같이 게임을 하거나 그냥 옆에 앉아서 쓸데없는 농담을 주고받았죠. 대단한 활동은 아니었지만, 그저 옆에서 일상의 일부를 같이 해주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삶은 스트레스의 연속이며 가끔 우린 스스로 일어나기 힘든 진탕에 빠집니다. 이럴 때 주변 사람의 도움은 삶의 마중물이 되어 금방 다시 일어나 툭툭 털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손을 내밀어줘야 합니다. 오늘 잠깐 고개를 들어 소중한 사람들의 표정을 한 번 살펴보세요. 우리가 살면서 진탕에 빠질 확률은 백퍼센트니까요.

—📿 여러분들이 가진 구슬을 엮어 삶의 가치를 만들어 드립니다, 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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