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연구탐사대 입니다. 👨🏻‍🚀

덜컥 기획을 시작했지만 겁이 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라는 단어 자체가 여러 모양으로 해석될 수 있기도 하고 연구자와 연구를 소개해드릴 때에도 자칫 ‘평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합니다. 매주마다 발간하는 뉴스레터의 특성상 리서치의 한계와 논의의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구요. 동시에 사회문제에 대한 연구를 다룸에 있어 ‘연구자’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논의를 하는 것이 맞는가 등 머리가 아픈 한 주를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일단, 시작해봅니다. 연구자 개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보다는, 연구자들의 연구들을 살펴보면서 알게 된 한 두가지의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자리이길 바래봅니다. 당연히 모든 분야의 연구를 다 알 수도, 다 안다고 함부로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들이 가지고 있는 ‘빛나는 조각’들을 하나씩 소개해드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와 연구자를 정의할 수 있는 퍼즐조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뉴스레터를 연재하고 또 리서치를 해보면서 기획은 계속해서 보완, 발전시켜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첫 시작은, 거버넌스 분야의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의 이명석 교수님입니다.

* 시작에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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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

저희 뉴스레터에서도 많이 보셨겠지만 현대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라고 표현하는 글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있어요. 여기에서 말하는 ‘사악한(Wicked)’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그것의 선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악순환(vicious cycle)’에 가까운 표현이라고 보는게 맞다고 해요. 우리가 이야기하는 난제(難題)라는 단어가 이 표현에 가장 가깝게 설명해주는 단어라 볼 수 있어요.

처음 사악한 문제라는 표현을 사용한 Rittel과 Webber 박사는 사악한 문제에 대해 아래와 같은 10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문제에 대한 정의가 불가능하다
•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다
• 완전한 해결이 불가능하고, 단지 만족할만한 수준의 해결만이 가능하다
• 해결책의 성패를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이고 즉각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 전례가 없고 독특하고 유일하다
• 한번 문제 해결이 추진되면 되돌릴 수 없어 시행착오가 용납되지 않는다
• 제한된 범위의 기존 대안이 존재하지 않아, 대안을 창조적으로 고안해야 한다
•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하나의 문제가 다른 문제의 징후일 수 있다
• 문제 설명 방식이 다양할 수 있으므로, 문제 설명 방식 선택이 문제 해결책의 본질을 결정한다
• 문제해결 실패의 막대한 영향력 때문에 문제 해결을 계획하는 담당자에게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

각 특징들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에는 보다 ‘선명한 문제’에 대해 문제의 ‘선명한 원인과 구조’를 알고, 그 원인과 구조에 대한 ‘선명한 대안’을 알아서 그 대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집행하는냐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문제, 원인, 구조, 대안 자체에 대해서 그 무엇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황들이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저희가 계속해서 이야기했었던 VUCA와 내용이 비슷하죠? 급변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성과 같은 사회문제의 특징들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상황들을 만들어내면서 마치 안개 속에서 아군과 적군이 파악되지 않는 현장에서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것만 같은 상황들이 계속해서 연출이 되는 것이죠.

이러한 사회문제의 특징은 우리 각자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문제의 특징이자, 그 가운데에서 우리가 느끼는 ‘무력감’ 자체를 나타내주는 특징과도 같아요.

가장 가까운 예로 ‘기후위기’를 들자면, 기후위기 자체를 정의하는 데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의 논란이 있어 왔어요. 지구의 기온이 비약적으로 올라서 자연재해가 발생하게 된 최근까지도 ‘기후위기란 실재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았고, 현재에도 일부는 이 또한 지구의 전체 자정작용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보통 우리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누구일까’라고 질문을 하게 되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에 대해서 많은 부분에서 ‘정부’라고 이야기하게 되어요. 정부는 우리가 세금과 법적 권한을 부여하면서 공동체 차원에서 공동체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만든 기관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문제와 관련해서 미디어를 비롯한 공론장을 통해 정부기관을 감시하고 건의하기도 하고, 또 투표에 참여해서 정치를 움직여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도록 촉구하기도 하죠.

하지만 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가 보다 일상화되면서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에 대해서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검토를 해야 하지 않을까에 대한 논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어쩌면 정부가 가지고 있는 구조 자체에서부터 사악한 문제를 풀기에 적합하지 않은 원인이 있지 않을까 라는 질문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죠.

정부에 대해서 주로 연구를 해오던 행정학에서부터 이러한 우려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그 중 대표적으로 정부의 변화를 주장해온 학자는 1970년대에 활동했던 빈센트 오스트롬(Vincent Ostrom)이라는 학자예요. 그는 <미국 행정학의 지적 위기 Intellectual Crisis in American Public Administration>이라는 책에서 정부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도리어 사회문제 그 자체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어요.

정부가 사회문제 그 자체가 되는 이유에 대해 Ostrom은 그것이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을 1개의 기관에서 중앙집권적으로 하는 특성, 즉 단일중심성(monocentricity)에 있다고 봤어요. 우리가 모두 당연시 여기는 것처럼 ‘정부’라고 하는 1개의 기관이 사회문제에 대한 정책의 기획에서부터 집행, 평가까지를 모두 하는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죠.

사실 ‘정부Government’라고 하는 기관은 사회 전체가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해결과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만든 기관이라고 봐도 무방해요. 우리는 우리 각자의 일상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 대처해야 하는 문제들이 존재하죠. 예를 들어 안보라던가 경제문제와 같은 경우에요. 이 경우, 사회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이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내서 해결책을 낸다면 그 해결책으로 인해서 이득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사회 전체가 될 거에요. 따라서 사회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을 따로 뽑아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돈을 모아서 이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이들이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서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사회 전체의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겠죠? 그래서 모으는 돈이 세금이고, 그렇게 해서 선발하게 된 사람들이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이것이 정부의 ‘관료제’라고 볼 수도 있구요.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에 정부가 그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할지에 대해 바라보고, 또 정부가 그 일을 직접 해결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요. 동시에 우리가 ‘공무원을 선발하는 고시제도’를 바라볼 때, 정부가 다루는 사회문제가 너무도 복잡하고 전문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별도로 훈련된 공무원이 그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우리는 공무원 선발제도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구요.

하지만 뭔가, 앞선 문장들을 읽을 때 조금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으셨나요? 사실 저 이야기들이 우리 시대에 뭔가 동떨어진 생각이라는 마음들이 우리 또한 강해지기 시작했죠. 우리가 어떤 사회문제를 바라볼 때에, 정부가 그것을 해결해주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아예 정부 자체가 그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를 하지 않는 경우들이 생기고 동시에 사회문제가 점차 복잡다양해지면서 그저 ‘고시공부’만을 한 공무원들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Ostrom은 무려 50년 전에 이 문제에 대해 지적을 했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민주행정 패러다임’이라는 대안을 제시했어요. 정부 홀로 정책을 만드는 것이 아닌, 여러 주체들이 정책을 만들어서 그에 대해 서로 경쟁하는 다중심적 방식의 모델이었죠.(민주행정 패러다임에 대해서는 너무 얘기가 길어질 수 있으니 생략하도록 할게요.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래 논문을 참고해주세요!)

하지만 당시 빈센트 오스트롬의 이론은 큰 주목을 받았음에도 주류 행정학에 편입이 되지는 못했어요. 1970년대의 상황이 그렇기도 했고 여전히 정부가 가지는 힘이 강했고, 또 사회문제들의 특성 또한 정부가 모두 해결하기에 어렵다고 할 정도로 복잡다양하다고 볼 수는 없었거든요.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여전히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주요한 주체인 것은 사실이었고, 그에 따라 행정학은 여전히 정부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졌던 것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의 발전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고 그에 따라 사회의 복잡도 또한 급속도로 높아졌어요. 동시에 개인의 주체성이 높아지면서 각자의 선호들이 모두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 모든 것들을 모두 파악하고 분석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지기 시작했어요. 이에 따라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그저 현상유지에 가까워지는 상황들이 계속해서 발생했고, 그렇다면 어떻게 사회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이 이어지기 시작했죠.

정부가 중앙집권적인 관료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협력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메커니즘mechanism이 필요할까에 대해서 행정학에서는 고민을 시작했고, 그에 따라서 나타난 것이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이론이었어요. 어쩌면 사회문제 해결에 진심인 우리가 어떻게 사회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론일 수도 있겠죠.

이렇게 사회문제의 해결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Ostrom이 주장했던 민주행정이론에 대한 재평가도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고, 부부로서 함께 연구를 수행해오던 Elinor Ostrom은 2009년 공유자원을 정부가 아닌 공동체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유지 관리하는 사례들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답니다.

(Elinor Ostrom의 연구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책을 읽어보세요!)

이명석 교수님은 1994년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따셨는데 당시의 지도교수님이 앞서 소개한 Elinor Ostrom이었어요. 또한 Elinor Ostrom과 남편인 Vincent Ostrom이 함께 운영하던 인디애나 대학교의 Workshop in Political Theory and Policy Analysis 에서 조교와 Fellow로 연구에 참여하면서 두 분의 영향을 많이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실제 이명석 교수님의 연구물에는 각 지도교수님들이 해오신 연구들을 계승한 연구의 흔적들도 많이 보게 된답니다.

그럼에도 앞서 이야기했듯 이명석 교수님이 수학하시던 1990년대 당시만 해도 Ostrom 교수님들의 거버넌스 이론은 행정학에서도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연구에 가까웠고, 이 Workshop에서 연구되던 내용들 또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Vincent Ostrom이 70년대 당시 지적했던 행정학 및 정부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는 언젠가는 수면위로 드러날 문제였고, 그에 대한 대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이 분들의 주된 고민이시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요. 이명석 교수님은 그 맥락에서 함께 미국에서 수학하면서 연구를 이어나가셨던 것으로 보이구요.

이러한 다소 선제적이라고 볼 수 있는 연구성향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여요. 거버넌스라는 단어에 대해서 한국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서야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해외에서는 90년대부터 관련된 연구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연구를 선제적으로 수행하면서 거버넌스에 대한 학계와 공론장에서의 유행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죠. 그리고 현재는 거버넌스라는 단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익숙해할 정도로 거버넌스 이론은 행정학의 어엿한 주요 이론으로 부상한 상황이랍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실제 현장에서는 거버넌스가 보편화되었는가 라고 한다면 여전히 그렇지 않은 것을 보게 되어요. 이것은 연구계에서의 논의와 현장의 논의 간의 간극이라고도 볼 수 있고, 동시에 앞서 이야기한 ‘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의 심각성이 정부의 붕괴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정도인 수준이어서 일지도 몰라요. 혹시 거버넌스 이론이 이야기하는 관료제 정부의 한계가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죠!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해서 마주하는 현실은 정부에게만 사회문제의 해결을 의존하기에는 역부족이고, 계속해서 재발되고 변이되는 사회문제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어요. 그렇기에 이제는 이론에 머물러 있는 거버넌스를 실제로 어떻게 사회문제 해결에 구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그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의 연구를 요구하고 있어요.

다음 뉴스레터에서는 이명석 교수님의 주요 논문들과 연구물들을 함께 살펴보면서 지금까지의 거버넌스 연구가 어디까지 진행되었고, 앞으로 어떤 연구가 필요할 지에 대해서 살펴볼까 해요.

제가 처음 이명석 교수님의 연구물을 접했던 것은 행정학과에 재학 중이던 2018년이었는데요. 거버넌스 사례를 두고 학교에서 관련 수업을 접하지 못해 끙끙대면서 논문을 찾고 있던 때에, 이명석 교수님이 쓰신 여러 편의 논문들과 단행본을 찾아 읽으면서 ‘광맥을 찾아냈다!’ 하고 유레카를 외치던 때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네요. 이번 뉴스레터를 적으면서 새삼 당시에 느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거버넌스 이론의 필요성’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지고 있고, 무엇보다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와 활동가들에게 무엇보다 근간이 될 수 있는 이론이 거버넌스 이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뉴스레터를 적다보니 느낀 것이지만 연구자 자체보다는 연구를 둘러싼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는 거 같네요. 그럼에도 저희가 바라보는 것이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것임을 생각할 때에! 사회문제 해결과 연구의 관점에서 인사이트를 위주로 계속해서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관련해서도 언제든지 피드백과 소감을 남겨주세요!

부디, 빠른 시일 내에 이명석 교수님과의 인터뷰 뉴스레터까지 쓸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긴 글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