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최민서 인턴기자가 소설집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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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혜영 외 4인,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
“여성의 고통은 구조와 체계의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되기보다 그냥 ‘히스테리’를 부리고 ‘유난’을 떤다는 등 고통을 호소하는 개인을 비난하는 데서 그쳐버리기 쉽다. 이것은 여성혐오의 대표적인 방식 중 하나다. 여성 자신도 이런 사회적 시선을 내면화하여 정당한 분노, 슬픔, 고통에 대해서도 ‘내가 이상한가?’ ‘나만 유난 떠나?’ 하고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그런 외적, 내적 억압이 사람의 마음을 부순다. 그런 세상이 여자를 미치게 만든다.” _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의 작가노트(정보라) 중에서
정보라 작가의 말처럼 2026년에도 세상은 여전히 여자를 미치게 만듭니다. 여성 대상 폭력, 여성 살해 사건이 끊이지 않습니다. 직장에서는 성차별을 겪고, 가정 내 돌봄이 여성의 당연한 책임으로 요구되곤 하죠. 사회적 억압에 맞서 자신만의 길을 갈 땐 ‘예민하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할 소설집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는 ‘여자를 미치게 만드는’ 순간들을 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 들여다봅니다. 편혜영·최진영·정한아·정보라·예소연이라는, 한국 문학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여성 작가들이 모인 것만으로도 관심을 가질 분들이 많다고 생각하는데요. 더 흥미로운 포인트는 이 책이 ‘미친 여자’를 주제로 하는 앤솔로지라는 겁니다.
편혜영 작가가 쓴 <재배의 경제> 속 ‘석미’는 보험금을 타내려는 목적으로 다친 동생에게 하반신 마비 연기를 제안합니다. 보험 조사관의 눈을 속이기 위해 석미는 돌봄 노동을 이어갑니다. 일부러 보는 눈이 많은 스타벅스나 대형마트에 들려 동생이 탄 휠체어를 세워둔 채 활보하기도 합니다. 보는 눈이 없을 때조차 동생이 장애를 갖게 된 듯 행동하는 석미의 태도는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석미가 “뿌리는 대로 거두는 노동”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듣고 있어>는 최진영 작가 특유의 촘촘한 감정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소설에는 ‘금옥’과 그녀의 엄마 ‘애정’이 등장합니다. “살아남기. 살아서 남기. 언제부턴가 삶 자체가 스트레스다.”라는 말을 뱉는 금옥은 본부장의 지독한 괴롭힘 탓에 고통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견디다 못해 엄마에게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문자를 보내지만 ‘하루만 참아’라는 답장이 돌아올 뿐입니다. ‘화목한 가정’을 지키는 것이 일 순위였던 애정은 이러한 딸의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발버둥치는 여자들을 바라보며 ‘이해한다’라는 말에 내포된 폭력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인 정한아 작가의 <여자들의 산>은 ‘나’가 낡은 기도원에 방문하며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사고를 겪은 뒤 학원을 폐업하고 어린 시절 가족들과 지내던 금식기도원을 찾게 되는데요. 그곳에서 낯선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 암에 걸린 아이의 완치를 바라며 기도를 올리는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기도원과 학원이라는 장소는 너무나도 다르지만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은 꽤 비슷하기도 합니다.
정보라 작가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일상의 억압을 작가 특유의 장르적 상상력으로 그려나갑니다. 장례식장 접객실 도우미와 청소 업체 일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는 어느 날 단골손님 ‘사모님’의 집 바닥에 떨어진 정체불명의 하얗고 둥근 구슬을 발견합니다. 그날부터 그에겐 “보이잖아요” “도와주세요” 같은 소리가 들리고 기이한 인물들이 따라다니기 시작합니다. <부서지는 여자>는 누굴 의미하는 걸까요.
마지막 단편인 예소연 작가의 <목숨과 숨통>은 가족의 붕괴와 불안을 그려냅니다. ‘나’는 소년원에 들어간 아들 ‘윤범’의 행적을 이해하려 애쓰다 그의 핸드폰을 켜게 됩니다. 메신저에서 발견한 ‘왕포메’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그가 헤이보습학원에 다니는 ‘한나’라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한나를 무작정 찾아가 하룻밤을 보내며 윤범을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오히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달아 벌어집니다.
작품 뒤에 작가노트가 붙어있는 구성도 좋았습니다. 소설을 읽은 뒤 작가노트를 보면 작품을 조금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한아 작가는 “우리가 함께 도망칠 만한 장소를 그리고 싶었다”고 하고 정보라 작가는 “내가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때 세상과 나 자신이 어떻게 느껴졌는지를 꼼꼼히 되돌아보았다. 그 감각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고 썼는데요.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미친 여자를 만들고 소설을 써내려갔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순식간에 소설을 읽어내려간 뒤엔 “이 여자 미친 여자 아닙니다. 슬픈 여자입니다.” 밈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이 여자들… 정말 미친 여자들 아니고 슬픈 여자들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미친 여자들이 비상식적인 인물이 아니라 공동체로부터 배제된 이들이기 때문인데요. 이들은 전혀 다른 캐릭터지만 사회의 가장자리에 위치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설 제목이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인 건 이들의 이야기가 결국 한 여자를 미치게 만드는 사회의 풍경을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레터에 간략하게 소개한 이야기는 정말 일부에 불과합니다.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한 미친 여자들을 직접 마주하고 이들이 펼쳐내는 광기의 세계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플랫 인스타그램에서 7월 22일까지 도서 증정 이벤트도 진행 중이니 관심 있는 입주자분들은 참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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