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카오톡에 [얼론 앤 어라운드] 오픈채팅방을 만들었습니다. 코드는 alone 입니다.

✏️ Words | 기분이 좋은 건 좋은 일이니까요.


지금 행복한 상태입니다. 왜냐구요? 불행하지 않기 때문이죠. 어두워야 빛의 소중함을 아는 것처럼, 불행에 처하면 비로소 아 그때가 행복했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까 불행하지 않은 지금 우리는 행복한 거죠. 비가 오면 처마에 듣는 빗소리를 듣는 것으로 좋고, 흐리면 덥지 않아 좋습니다. 맑은 날에는 하늘의 푸른색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한숨을 쉰다고 나아지는 건 없습니다. 피에르 보나르가 그랬습니다. “사람은 행복해서만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노래를 하다 보면 행복해지는 것이죠. 노래를 불러봅시다. 기분이 좋은 건 좋은 일이니까요.

- alone&around

📄 1일 3매 |  최갑수

1루 외야석에서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는 어느 오후

오늘 새벽, 계산해 보았다.


지금까지 나는 아마도 3,000권 정도의 책을 읽지 않았을까, 적어도 500,000킬로미터 정도를 여행한 것 같다. 약 40,000매 가량의 원고를 쓰지 않았을까 싶다. 몇 컷의 사진을 찍었는지는 모르겠다. 약 3,000번의 약속을 했는데, 그 가운데 150번 정도는 지키지 못했을 것 같다.


돈을 얼마나 벌었을까. 모르겠다. 분명한 건 많이 벌지 못했다는 것이다. 크게 아팠던 적은 없다. 딱히 기억에 남는 이별은 없다. 계절이 오고 가듯, 인연도 자연스럽게 오고, 갈 때는 점점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떠나간다고 생각한다. 떠난 사람을 웃으며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나고 보니 모두 사소한 인연이다.


사고 싶은 것은 많았으나 사지 못한 것이 더 많았다. 하지만 별로 아쉽지는 않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들이 내 인생에 그렇게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지금 사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지만, 그것이 갖고 싶다는 건 아니다. 우리가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은 의지와 집념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굴러가니까.


앞으로는 글쎄……, 조금 더 여행을 다녔으면 좋겠다. 웬만하면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하고, 좋은 호텔에서 묵고 싶다. 저가 항공과 게스트 하우스는 이젠 사양하고 싶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글을 써보고 싶은데, 지금 저질러 놓은 일 때문에 몇 년 동안에는 힘들 것 같다.


더 나이가 들어서는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 가끔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직접 뜬 회를 내주며 말이다. 제주도까지 나쁜 일이 쫓아오진 않겠지. 인생에서는 기쁜 일이 생기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나쁜 일이 생기지 않고, 나쁜 사람과 맞닥뜨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 인생에 좋은 일이 이미 많이 일어났겠지만 우리가 그걸 몰랐을 뿐이고(그래도 괜찮다), 좋은 사람은 우리에게 이미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그것 역시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을 뿐이다(그것도 괜찮다. 우리 역시 다른 이에게 좋은 일을 했을 테니까). 하지만 나쁜 일은 우리 인생을 나쁜 곳으로 몰고 가고, 나쁜 사람은 반드시 함정을 파고 해악을 끼친다.


어느 오후 사직구장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까지 그런 시간을 무척이나 갖고 싶어 한 것 같다. 지금 누가 내게 좋은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하고 물어온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초여름 어느 오후, 사직구장의 1루 쪽 외야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는 일이 아닐까요. 이기고 지는 것엔 관심이 없어요. 마감은 이미 끝냈으니까요.


경기가 끝나면 야구장 근처, 길모퉁이에 있는 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더 마시는 거다. 어느새 밖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겠지. 나는 깨끗하게 비운 맥주잔을 탁, 하며 탁자에 내려놓으며 이렇게 중얼거리는 거지. 졌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경기였어. ✉️

최갑수는 작가다. 오늘이 생일이라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았는지 대충 계산해 보았다. 프로야구가 생긴 이후 자이언츠를 응원하고 있다. 최고의 선수는 최동원이라고 생각한다. 쓴 책으로 『어제보다 나은 사람』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등이 있다. 그의 일과 일상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ssuchoi를 들여다 보자.

🥃 위스키에 진심입니다 |  고현

위스키라는 판단 미스

앞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현재 나는 프리랜서 신분이다. 잡지사 에디터로 일을 할 때 진중하게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업보(?)다. 실상 에디터들의 직업적 수명은 프로야구 선수만큼 짧다(프로야구 선수만큼 연봉을 받으면 좋으련만). 편집장 혹은 디렉터처럼 팀을 이끄는 위치에 올라가면 다소 수명이 연장될 수는 있겠다. 또 매체를 옮기는 경우라면 연봉이든, 직급이든 상승의 기회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비록 내가 앞선 글에서 몇몇 불만을 토로하긴 했지만, 나는 여행 잡지 에디터의 직업적 속성이 꽤 마음에 들었고, 초기의 방황기를 거치고 나니 제법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뻔하지 않은 여행지를 집요하게 들춰내는 론리플래닛 매거진이라는 매체에도 애정이 생겼기에 다른 매체로의 이직은 염두에 둔 적도 없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한 잡지사에서 일평생 몸담을 수 없다는 건 예감하고 있었다. 대략 10년 정도 채우면 되지 않을까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론리플래닛 매거진에서 일한 지 8년 차가 되었을 무렵, 뜻하지 않은 일이 연거푸 찾아왔다. 내가 입사한 이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편집장님의 퇴사가 시발점이었다. 창간호부터 거의 만 10년을 채운 그야말로 매체의 산증인이 자리를 떠난 일종의 사건과 같았다. 문제는 어쩌다 보니 편집부에서 가장 연차가 쌓여버린 내가 다음 편집장을 맡게 된 것이었다.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느닷없는 상황이었다. 뭔가 몸을 제대로 풀지 않고 마운드에 오른 패전 투수의 심정으로 엉겁결에 직을 이어받았다. 2020년 1월의 일이었다.


연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다음에 벌어지는 일들은 가히 블록버스터급이었다. 편집장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직책을 맡자마자 전례 없는 코로나19로 인해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연일 뉴스를 떠돌았다. 여행 업계의 사정은 그야말로 속절없는 패닉에 가까웠다. 국경은 폐쇄됐고, 여행은커녕 평범한 외출 자체를 불안하게 여겨야 하는 시대를 맞이해야 했다. 잡지 지면은 번역 기사나 ‘집콕 챌린지’ 같은 쥐어짜 낸 기획으로 채워야 했다. 그렇게 당황스럽고 불안한 시기를 통과하던 중, 론리플래닛 본사가 매거진 발행을 중단한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라이선스 계약 기간 동안 잡지를 발행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유의미한 일로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회사는 사무실을 옮기고 조직을 개편하는 어수선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렇게 2020년 5월 31일, 론리플래닛 매거진편집부의 해체와 함께 퇴사를 하게 됐다.


언젠가 이런 순간과 마주칠 거라 예감은 했지만,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방식이었다. 한편으로는 잠시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퇴사를 하고 나니 마감의 편두통에서 완전히 해방됐다. 그간 미뤄둔 일을 하거나 사람들과의 만남을 갖는 등 제법 분주하게 시간을 보냈다. 캠핑 위스키의 진가를 알게 된 것도 바로 그때였다.

 

마침 아내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재택근무를 하는 중이었다. 집에서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그동안 출장이며 마감이며 한 달에 같이 저녁을 먹는 날이 다섯 번이나 되었을까. 심지어 아내와 내 생일 모두 불행히도 마감 기간과 겹친 탓에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 기억조차 없다. 어쩌면 상대적으로 우리 부부가 원만했던 이유도 주기적인 마감과 출장으로 인해 떨어진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란 생각도 들었다. 마치 채무상환을 받는 것처럼 보상으로 주어진 아내와의 시간이 제법 좋았다. 요리도 해 먹고, 저녁이면 산책도 다니고, 뭔가 여유를 누릴 줄 아는 선진국의 부부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기도 잠시. 어느 순간 나의 하루는 덧없이 게으르게 흘러갔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소파와 한 몸이 되어 핸드폰을 뒤적거리고, 잠시 노트북을 켰다가 느지막이 밥을 먹고, 다시 소파나 침대에서 뒹굴고, 술 약속이 있으면 나가고 집 앞에서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하고. 마치 생산적인 일을 하면 벌이라도 받는 것처럼 누구보다 치열하게 무용한 시간을 보냈다.


더는 이렇게 지내면 곤란하다는 압박이 슬금슬금 찾아왔다. 여행 잡지 에디터로의 삶을 더는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고, 그렇다면 프리랜서로서 어떤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러고는 다소 무모하게 작업실을 하나 구하면 좀 더 체계적으로 프리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일을 구하지 않고, 일하는 공간부터 구하겠다는 순서가 단단히 잘못된 판단이었다. 그 무모한 판단이 내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된 건 분명하다. 더구나 출장 혹은 일상 중 취미로만 가벼이 즐기던 위스키와 좀 더 내밀한 관계를 맺게 된 것도 그 판단 미스로부터 시작됐다. ✉️  

고현은 낮에 글을 쓰고 밤에 위스키의 세계로 안내하는 공간 운영자다. 작업실이자 위스키 시음실로 사용하는 무용;소(@mooyongso)에서 위스키와 취향을 매개로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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