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뭐읽지 #지역의사생활 #신간 #시사IN북
💌   2022년 1월27일 89호
✏️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강원도 송정해변에 위치한 벙커. 60여 년 만에 철책이 걷히자 해변의 산책로가 열렸다. 사람들은 철책선이 사라진 길을 걸으며 오랫동안 바다의 조망과 접근을 막아왔던 벙커의 꼭대기에 올라가본다.©Photo by 김전기
'스키장 유기견' 구조하러
고성에 같이 갈래?
〈지역의 사생활 99〉 
정원 외 지음, 삐약삐약북스
 펴냄


아빠가 집을 나갔다. 엄마가 가출한 지 3년 만이다. ‘혼밥’으로 삼겹살을 구워 먹던 주인공의 눈에 불판 아래 깔린 신문지 기사가 들어온다. 강원도 고성 알프스스키장이 자금난으로 문을 닫았는데, 유기견 한 마리가 스키장 입구를 지키고 있다는 내용이다. 알프스스키장은 29살 프리랜서인 주인공이 몇 년 전 여자친구와 결별한 장소. 순간 그는 충동적으로 헤어진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개를 구조하러 고성에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지역의 사생활 99〉는 전북 군산에 기반한 독립만화 전문 출판사 삐약삐약북스가 출간 중인 웹툰 시리즈다. “수도권에서 살다 막상 지역으로 오고 보니 수도권에 문화산업이 얼마나 집약적으로 모여 있는지, 그리고 지역은 상대적으로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지 알게 되었다”라는 부부 작가 불키드(김영석)와 불친(전정미)이 지역의 정체성을 알리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보겠다며 기획했다. ‘웹툰으로 만든 지역 탐방기’라 할 수 있는 이 시리즈에는 시즌당 작가 9명이 참여해 비수도권 9곳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020년 진행된 시즌 1의 경우 부산·대구·고성·담양·충주·공주·광주·단양·군산을 다뤘다.


탐방기라고 해서 일반적인 여행 책자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이들 시리즈에는 구체적인 정보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지역 명소가 기껏해야 배경으로 스쳐가는 정도다. 대신 책은 사람 그리고 관계에 주목한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주인공들의 내면을 관찰하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균열의 지점을 순간 포착해 길어내는 식이다. 작품에 따라서는 사투리를 쓰는 인어(부산 편)나 택배 일을 하는 도깨비(광주 편)처럼 판타지 설정도 등장한다.


희한한 것은 화려한 여행 사진보다 흑백 그림으로 펼쳐진 이들의 이야기가 지역을 더 입체적으로 상상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첫머리에 소개된 ‘강원도 고성 편’을 읽다 보면 스키장 가는 길을 어색하게 걸어 오르던 헤어진 연인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고, ‘충북 단양 편’을 읽다 보면 한밤중 우주선처럼 빛난다는 시멘트 공장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지는 식이다. 책 말미에는 작가 인터뷰도 실려 있다. 작품 속 등장인물과 배경에 대한 설명, ‘지역에서 청년 만화가로 산다는 것’에 대한 단상 외 튀김만두·쫄면·팥죽·찹쌀호떡처럼 현지인들이 즐기는 소박한 먹을거리 소개가 호기심과 침샘을 두루 자극한다.


〈지역의 사생활 99〉는 최근 시즌 2를 위한 크라우드펀딩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덕분에 독자들은 새로 합류한 작가 9명이 쓰고 그린 정읍·강릉·양산·옥천·울산·경주·동해·구미·대전 등 9곳의 이야기를 곧 다시 만날 수 있다. 내가 아는 동네가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한 사람, 선입견 없이 아무 데나 떠나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권한다.


✍🏼 김은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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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우리 회사 헌법 만들기
조현익 지음, 스튜디오 하프-보틀 펴냄
우리는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것일까요?
 
2019년 창립한 디자인 회사 ‘스튜디오 하프-보틀’에는 회사 ‘헌법’이 있다. 기업가 정신으로 회사를 일군 이야기는 많아도, 회사 헌법을 만들게 된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직장 내 부조리 앞에서 “사회가 원래 그런 곳”이라는 회피 말고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창업이 회사라는 하나의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면, 조직 문화 역시 자체 기준과 가치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책 뒤에 나와 있는 스튜디오 하프-보틀의 헌법은 그런 점에서 좋은 사례다. 노동권·휴식권·환경권부터 의사결정과 업무 분담에서의 인격권, 일할 권리, 평가받을 권리까지 다양한 기본권들이 정리돼 있다. 한국과 해외 정당의 강령까지 참고했다. 책 자세히 보기 >> 
프렌즈
로빈 던바 지음, 안진이 옮김, 정재승 해제, 어크로스 펴냄
우정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마법처럼 뚝딱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친구를 만나는 빈도가 줄었다. 진정한 친구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확인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도대체 우정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친구를 사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옥스퍼드 대학 진화심리학 교수가 ‘우정’에 관한 각종 과학적 연구를 집대성한 책이다. 저자 로빈 던바는 야생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다 인간의 사회성으로 관심을 돌렸다. 뇌의 크기가 그 동물이 이루는 사회집단의 크기를 결정하며, 따라서 ‘사람이 유지할 수 있는 친구 수에는 한계가 있다(약 150명)’는 ‘던바의 수’로 유명하다. 소셜미디어 시대에 던바의 수는 유효한지, 우리의 뇌가 친구를 어떻게 만드는지 등 흥미로운 질문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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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어웨이
다이애나 그린 포스터 지음, 김보영 옮김, 동녘 펴냄
임신중지는 제 인생을 규정짓지 않습니다. 그건 그저 일어난 일일 뿐이에요.
 
임신중지를 했거나 ‘거절당한(turnaway)’ 여성 1000여 명을 약 10년에 걸쳐 연구했다. 원치 않는 임신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최초의 시도다. 인구통계학자인 저자가 이끈 연구팀에는 공중보건학·역학·사회학·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여성 전문가 40여 명이 함께했다. 이들은 임신중지가 여성의 신체건강 및 정신건강을 해치지 않음을, 오히려 임신중지를 거절당하는 것이 여성 당사자만이 아니라 아이와 가족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냈다. 연구는 임신중지를 ‘죄’로 만드는 법과 제도의 문제를 낱낱이 드러낸다. “내 바람은 우리가 실제 여성의 삶의 맥락에서 임신과 임신중지를 고려하는 것이다.” 책 자세히 보기 >>
도시를 바꾸는 새
티모시 비틀리 지음, 김숲 옮김, 원더박스 펴냄
새들이 도시에 오는 이유는 도시가 탄생하기 전에도 왔기 때문이에요.
 
새는 정말 당황스러워 보였다. 분명히 눈앞에 아무것도 없는데 몸이 자꾸 부딪혀 떨어졌다. 어느 순간 새의 날갯짓은 자포자기에 가까워졌다. 날개를 한번 퍼덕일 수 있는 힘이 모이면 날아올랐다가, 투명 방음벽에 머리를 들이박고는, 도로 콘크리트 담벼락에 떨어졌다. 만약 누군가 손짓으로 그 새를 유도하지 않았다면 그 참새는 해마다 국내에서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 800만 마리 중 한 마리로 기록됐을, 아니 기록조차 되지 못한 채 그냥 지워졌을 것이다.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무심하게 잔인할 권리가 있는가. 이 책, ‘자연과의 공생을 고민하는 도시생활자를 위한 안내서’가 묻는다. 책 자세히 보기 >>
생각해 보면 예외 없이 좋은 것들은
다 자연에 속한 것들이었다.
부드러운 구름, 신선한 바람, 고요한 바다.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김기창 지음, 민음사 펴냄)


생수와 세제가, 라면과 햇반이 빠르면 반나절 만에 현관문 앞에 놓입니다. 총알이니 로켓 같은 단어가 배송 앞에 붙는 게 어색하지 않습니다. 어쩐 일인지 책도 예외가 아니어서 온오프라인 서점마다 경쟁적으로 당일배송을 내세웁니다. 그럴 때면 마음이 자연스럽게 뒷걸음질 치곤 합니다. 택배기사를 혹사시키면서까지 책을 읽고 싶지 않으니까요. 

단골 동네책방이 사라진 후 방황하던 저는 요즘 회사 근처 동네책방을 자주 들릅니다. 다른 많은 동네책방이 그렇듯 없는 책이 더 많은 곳이지요. 그럴 때면 책방지기에게 원하는 책을 주문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렇게 주문한 책은 도착하기까지 일주일 정도 걸리는데요, 저는 그 '인간적인' 속도가 마음에 듭니다. 디지털 시대에 책의 필요와 쓸모가 있다면 그런 인간다움을 고민하도록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화요일 오후에는 후배들에게 선물하려고 주문했던 책을 찾으러 책방에 들렀습니다. 책방은 얕은 언덕에 위치해 있어서 호흡기질환이 있는 저에겐 제법 힘든 길입니다. 마스크를 쓰는 요즘엔 특히 헉헉대며 책방 문을 열어젖히곤 합니다. 문을 여는 동시에 '저 왔어요!' 인사를 건넸는데 적막이 대신 대답하더군요. 책방지기님이 부재중인 책방의 고요함에 기대 숨을 고르고 서가를 둘러보는 동안 저는 동네책방의 반짝이는 쓸모를 또 한번 깨닫고 말았답니다. 몰랐던 책을 발견하는 즐거움을요.

기후위기 관련 책들이 온통 사회과학 서적이라 아쉬워하던 차였거든요. 그런데 책방 서가에서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이라는 소설집을 발견한 거에요. 제목만 기후변화가 아니라 수록된 열 편 모두 기후위기를 '대놓고' 다루는 소설집이더라고요. 게다가 하필(?) 제가 좋아하는 정용준 소설가가 서문을 썼고요. '참내.. 이 좋은 책 또 나만 몰랐지...' 혼잣말 하면서 서가 앞에 못 박힌 듯 선 채로 서문을 읽었습니다. 당연히 그날 귀갓길에는 그 책과 함께 돌아왔고요. 

정용준 작가의 고민이 요즘 저의 고민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캠페인이 일상의 등을 떠밀 때, 구호와 선전이 동참과 참여의 언어로 바뀔 때, 듣는 자는 망설이게 된다. 올바른 그 말이 싫어진다. 부담스럽다. 번거롭기만 하다. (중략) 어떻게 하면 문제의식을 넘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문제를 풀어 보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걸까?" 정 작가는 소설의 방식으로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에 '귀하고, 고맙다'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뜨겁다,는 전망을 통증의 언어로 바꾸고 수치와 숫자로 가득한 예견에 일상의 디테일을 부여한다"면서요. 

시사IN과 오늘의행동이 시작한 '행동 구독' 은 오늘의 일상과 미래를 연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입니다. 뉴스를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함께 행동하고 싶다는 바람, 행동을 만드는 것 역시 뉴스의 역할이라는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3월부터 격월로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행동도구를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고백하자면 행동 구독 캠페인을 설계하면서 구독료(10만원, 기부금 영수증 발행 가능)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부분입니다. 행동도구 다섯 가지를 개발하고, 만들고, 보내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개당 2만원이 비싼 건 아니지만, 사실 10만원을 한 번에 내는 건 부담되는 일이 맞으니까요. 다만 우려에도 불구하고 밀어부친 건, 기후위기로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이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면(그런 측면에서 이 캠페인의 의미를 묻는다면), 행동 구독에 10만원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돈 뿐만 아니라 몸을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또 캠페인을 고민하고 준비하는 사람의 노동까지 살펴봐주시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행동 구독을 주변 청년과 청소년에게 선물하셔도 좋겠지요. 그 또한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뉴스의 역할을 '더하는' 투자이기도 하다고요. 좋은 언론은 독자와 함께 만드는 것입니다. $%name%$님, 다정한 명절 연휴 보내시기를요.

📝 장일호 드림

📝 서명 💳 기부 👍 좋아요 말고,

다른 건 없을까요?
오늘의행동과 시사IN이 시작하는 '행동 구독'은 뉴스에 행동을 더합니다. 나와 지구를 위해 '오늘' 할 수 있는 행동을 관련 도구와 함께 보내드리는 구독 서비스입니다. 2022년에는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함께할 거에요!  

 


매해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8시30분부터 한 시간은 '지구의 시간(earth hour)’입니다. 2007년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된 글로벌 캠페인이에요. 올해 지구의 시간은 3월26일(토) 오후 8시30분. 우리는 전등 대신 '3600초'를 켤 거예요. 3월에 보내드릴 행동 도구 3600초에는 10분 단위로 눈금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5월에는 함께 '씨앗폭탄'을 던질 거에요. 황토와 과일껍질 등으로 만들어진 씨앗폭탄 안에는 퇴비와 씨앗이 들어있어 던지면 깨지도록 만들어집니다. 


한국 국민 한 사람이 1년에 사용하는 두루마리 화장지는 17개. 매년 나무 8만 그루가 휴지를 만들기 위해 잘려나갑니다. 7월에는 1901년~2020년까지 한국의 기온 변화를 측정해 시각적으로 표현한 무늬(warming stripe)를 담은 손수건 ‘사용하면’을 보내드립니다. 워밍 스트라이프는 영국의 기후학자 에드 호킨스가 개발한 패턴으로 #showyourstripes 사이트에서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워밍 스트라이프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하수구 빗물받이를 재떨이처럼 사용하는 사람들, 꼭 있죠. 2019년 기준 빗물받이 청소에 들어간 예산은 약 80억 원입니다. 빗물받이는 강과 바다로 이어지는 출입구이기도 하죠. 담배꽁초 필터 90%는 미세플라스틱인데요, 빗물받이를 통해 강과 바다로 속절없이 흘러값니다. 그래서 우리는 9월'물살이의 길'을 만들 거에요. '물살이의 길'은 빗물받이 옆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 키트입니다. 11월에는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어르신들을 ‘환경수집가’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이어-줄’을 제공합니다.


이밖에도 행동 구독을 신청해주신 분들을 위한 깜짝 도구오프라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신청ㅣ2월28일(월)까지
■ 비용ㅣ10만원. ‘기부금 영수증’ 발행 가능
■ 행동 도구 3, 5, 7, 9, 11월 발송. 소셜트립 일정 추후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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