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 그렇게 메모장에 남긴 나의 짤막한 생각들을 살짝 보여줄래. (아마 의식의 흐름이 그대로 보일거야. N적 사고. 뭔지 알지.)

1. 내가 직접 떠나기에는 돈이 없던 이십 대 초반, 떠나는 이들의 설레는 기운을 느끼고 싶어 공항 까페에 가만히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던 때가 있었지. 그 때 만나던 사람들과 그런 식의 공항 데이트도 종종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굳이 멀리 있는 공항까지 가서 사람들의 얼굴만 보고 오는 걸 비효율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데이트야말로 가장 비효율적인 활동 중 하나라지만, 이제는 직접 같이 떠날 것도 아닌 공항에 함께 가기엔 너무 삼십 대가 되어버렸으려나.

2. 어떻게 백 명 넘는 인간들이 이렇게 큰 쇳덩어리를 타고 한꺼번에 구름 위를 떠다닐 수 있는 걸까? 하늘에서의 무게는 어떤 의미일까? 이런 기계 하나를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기술이 들어가야 하는 거지? 이카로스와 라이트 형제, 8살 때 늘어지게 보았던 ‘발명가와 발명’ 비디오테이프가 생각나네. 그 시리즈 중 라이트 형제 편을 가장 좋아했는데… (상식이 이때 수준에서 멈춘 것이 가장 큰 문제지만)

3. 이 구름 밑 픽셀 단위만 한 집에서 살고있는 먼지만 한 사람들은 어떤 인생을 살까. 집들도 건물도 자동차도 너무 바글바글 많아. 각자 먼지만 한 인간의 몸과 생각들이 또 하나의 우주라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우주가 있는 걸까, 먼지랑 우주는 어쩌면 같은 걸까?

4. 처음 멀리 비행기를 타던 때, 혼자 가는 유럽이라고 잔뜩 긴장해서는 짱 세보이겠다고 (정확히는 만만해 보이지 않겠다고) 굽 높은 앵클부츠 차림으로 비행기를 탔었던 게 생각나네. 나중에는 발이 부을 대로 부어서 신발을 제대로 신지도 못했지만. 장시간 비행 시 실내용 슬리퍼는 필수라는걸 그때 너무 온몸으로 배운 거고. 직항이었다면 기내 물품으로 줬을지 모르지만 그때는 너무 20대의 경유 비행기였고, 그때부터 5시간 이상 비행기를 탄다면 꼭꼭 실내용 슬리퍼를 챙기는 게 버릇이 되었네. 오늘 1시간의 제주 비행기도 슬리퍼 차림이야. 발 편한 것이 모든 건강의 시작이야(?)

5. 제주도 가는 비행기에서 바다를 내려다볼 때면 2014년 4월 18일에 진도 바다 위를 지나 제주도 본가로 가던 때가 생각난다.
   그 당시 페이스북 글을 찾아보니, ‘시험 주간에 학교에서 보는 시험이 하나도 없어서 나는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내려간다. 평소같이 따뜻한 집밥과 가족이 나를 맞이해줄 집에 가는데도 지금은 전혀 기쁘지도 설레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바다 위를 지난다는 게 조금은 이상하고 착잡하고 조금은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공항에 내려 제주도의 바다냄새를 맡는 순간 나는 또 행복해하겠지. 삶은 너무나도 개별적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면서 언론의 태도를 지적하고 누구는 찬양받는 동시에 선동이니 조작이니 하는 각종 자극적인 단어들이 타임라인에 가득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 다 필요 없이 기적이 제발 꼭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1명이라도 더 살아나와 주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라고 썼네. 그때를 기점으로 나의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지.

6. 바다 위를 지날 때마다 하는 생각 - 둘 중 한 곳을 꼭 가야만 한다면 해저가 무서울까 우주가 무서울까. 내가 현실로 인지하는 범위 안에서 가장 미지의 세계가 해저고, 우주는 손에 닿지 않는 내 존재 밖의 영역인 느낌. 아마 나라면 우주에 가지 않을까. 해저가 나에게는 훨씬 와닿는 공포의 영역이야. 우주에 갔다가 지구로 돌아올 수 있다면 어떤 부분은 완전히 미쳐버릴 수도, 어떤 면은 전혀 다른 영역으로 통달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 둘 역시 크게 다른 게 아닐지 모르겠고.

메모장의 끄적거림이 끝나니 어느새 비행기는 활주로에서도 바다가 보이는 공항에 도착했어.

제주공항은 택시를 타러 가는 길에서도 바다냄새가 나는 게 항상 새삼스럽고, 조금은 애틋하고, 약간은 괴리감이 느껴진다.

짧고 굵은 제주 일정을 마무리하고 나는 그렇게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어.

태풍 영향 때문에 지난 주말이 내내 습하고 더웠지. 이번 한 주의 날씨를 보니 최고 온도가 26도야. 이제는 정말로 가을이 오고 있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