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지혜에 대한 아버지와 두 딸의 글입니다.
2024.7.15. 스물한번째 이야기
70대 아버지, 30대 두 딸이 함께 같은 주제로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
얼마전 땡비는 가족대전(!)이 발발하여 뉴스레터를 발송하지 못했습니다. 싸움은 가족 모두에게 불처럼 퍼져나가 온 가족이 엉망진창이던 지난 2주였는데요. 다들 상처주는 말을 폭격처럼 퍼붓고나서 '아차!' 싶어 한 명씩 마음을 푸니 '가족은 쪽팔림의 연속이다'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머쓱해지기도 합니다. 지난 회차를 보내지 못하고 잠시 휴재기를 가진 것에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땡비에서 나눠볼 오늘의 이야기는 🐝어린이의 지혜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어린이는 어떤 존재인가요? 님도 오늘 땡비와 함께 '어린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진 에너지를 떠올려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

우리도 한 때는 어린이었음을(by. 흔희)


아이가 네 살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하루 종일 붙어 있던 생활을 뒤로하고 나는 직장에,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니며 각자의 생활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앞에는 아이들이 어울리기 좋을 만한 규모의 놀이터가 있었다. 친구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운지 아이들은 하원 후에도 놀이터에 몰려들어 구슬땀을 흘리며 함께 어울렸다. 저녁때가 다가오자 아이들은 하나둘씩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갔고 놀이터에는 아이와 나만 있었다. 직장에서 업무를 마무리하고 한달음에 달려와 다시 엄마로 역할을 바꾸려니 그 숨 가쁨이 벅찼다. 벤치에 퍼져서 가만히 앉아 있으니 아이도 모래 놀이를 하던 손을 툭툭 털고 걸어와 내 옆에 앉았다. 초여름이었다.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아이의 잔머리가 좌우로 흔들렸다. 목이 마를 듯하여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주었다. 아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을 마시다가 갑자기 말을 건넸다.


“엄마, 바람이 보여.”


무슨 말인가 싶어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니 아이가 손짓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손끝을 따라 시선이 멈춘 곳에는 바람에 나무들이 넝실넝실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는 나뭇가지들의 나부낌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앞 뒤 설명을 다 자르고 눈에 보이고 느끼는 것만을 냅다 던지고 보는 아이의 천진난만함에 웃음이 났다. 군더더기가 붙고 설명이 길어지는 어른의 말과는 달리 아이의 말은 시의 한 구절처럼 간결했다.


흔히 우리는 어린이를 과도기적 존재로 생각한다. 미성년자. 아직 성인에게 미치지 못한 존재. 그래서 어른들은 어린이를 완성되지 않은 존재로 대하며 그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고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 윤여정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할 때 ‘나도 60은 처음이라 늘 서툴고 헤맨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인생에 있어서 완성되는 시기가 과연 있기는 한 걸까? 우리가 어른이라고, 좀 더 오래 살아봤다고 어린이보다 더 나은 존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아이가 여섯 살 때, 함께 저녁을 먹다가 유치원에서 친구와 나눈 이야기에 대해 말해주었다. 반에서 단짝 친구와 블록을 갖고 노는데 갑자기 친구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고 했다. 자기의 엄마는 외국에서 일하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다고. 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와 함께 생활을 하는데 자기 생각에는 엄마와 아빠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엄마나 아빠가 눈을 보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거나 셋이서 같은 공간에서 무언가를 한 경험이 별로 없는 것이 그 추측의 근거였다. 여섯 살 아이들끼리도 그런 내밀한 대화가 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무심코 내뱉은 아이의 말이 혹시 친구에게 상처는 되지 않았을까 미리 걱정이 되었다.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는 친구에게 '넌 어떻게 반응을 했냐'고 되물었다. 아이가 말했다. 

“그냥 듣고 있었어. 그리고 내가 꽂으려고 남겨뒀던 예쁜 블록 친구한테 줬어. "

“혹시 우리 엄마 아빠는 안 그런데~ 하고 말한 건 아니지?”

아이가 버럭하고 화를 낸다. ”엄마! 내가 그럴 것 같아?” 


어린이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현상 너머에 숨어 있는 의미를 굳이 찾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의도를 심고 의도를 찾고자 하는 어른들의 세계와는 달리 어린이의 세계는 담백하고 직관적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받아들이는 것을 바탕으로 말하고 행동한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는 군더더기도 없고 주저함도 없다. 자기의 직관과 마음에 따라 행동해 보는 것도 용기다. 어른들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다. 어른들은 타인에게 비친 나의 모습도 생각해야 하고 나중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생각하고 염두에 둬야 할 것들이 많으니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은 꽁꽁 숨어버리고 말은 길어진다. 검열의 단계가 많을수록 원래 하고자 했던 의도와 표현은 멀어진다. 말과 말이 꼬리를 물어 오해를 낳고 균열이 가는 이 사회에서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배워야 할 지혜는 그들의 직관력이다. 내가 본 것을 믿고 행할 수 있는 용기. 타인의 말을 판단하지 않고 말 그대로를 품어 줄 수 있는 너그러움. 


가끔 하루가 고단할 때, 퇴근 후 나에게 뛰어오는 아이의 품에 꼭 안길 때가 있다. 어른보다 다소 빠른 박자로 콩콩거리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그 소리를 듣다 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어른의 품보다 아이의 품이 더 크고 넉넉할 때가 있다. 기억하자. 우리도 한 때는 그들처럼 넉넉함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아이에 관한 여러 경험들(by. 못골)

동생이 없으니 젊을 때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부담스러워하며 그들을 가까이 하지도, 가까이하는 방법도 몰랐다. 아이에게 인기가 있으면 출세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욕구에 맞추기가 어려운 대상이라는 말이다.      


아이를 키워보면서 그들도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모든 사고방식이 어른과 꼭 같아서 ‘아! 그렇구나!’하고 탄성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다만 경험하지 않아서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고 적절하게 언어로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이들을 아이로만 생각한다.     


아이들은 처음 만나는 낯선 동무들과도 금방 친해지고 어울려 잘 논다. 마음이 순수하고 따로 이해(利害)를 앞세우는 목적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손녀가 유치원으로 진학하여 처음에는 몹시 재미있게 등교하고 즐거워하더니 어느 날부터 유치원 가기를 싫어한다. ‘갑자기 왜 이런 반응을 보일까?’ 하며 궁금하였으나 선생님이나 동무들과의 문제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하였다. 유치원에서 하는 생활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물어보았다. 동무들과의 문제였다. 짝꿍인 아이가 다른 친구와의 관계를 차단하고 아이를 독점하며 옆자리에서 이것저것을 지시형으로 이야기하며 통제했다. 자율형으로 자란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표해 보지 못하고 계속 간섭을 받으니 갑갑한 마음에 대응할 방법도 알지 못해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짝지는 이미 선행학습을 하여 한글을 읽고 쓰고 하니 학습면에서도 뛰어나 문맹인 아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미리 포기해 버렸나 보다.      


아이가 의기소침하여 등원을 하지 않으려 한다. “가슴이 답답하여 죽겠다”라고 어른 같이 표현하여 깜짝 놀랐다. ‘이것 보통 문제가 아니라 심각하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되도록 그 동무와 함께 앉지 말고 무슨 일을 하라고 시키면 “너가 해라!”라고 친구에게 되받아 치라며 연습을 시켰다.  

    

“동무가 ‘이것 해!’하고 시키면 뭐라고 답하지?” 

“‘니가 해!’라고 답하지!”     


그 대답이 자신도 만족스러운지 웃는다. 그 이후로 아이도 적응하여 짝지를 바꾸어 앉으며 위기를 피해 가는 방법도 스스로 알아 갔다.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제어당하고 상대방에게 포획되면 아이도 견디지 못하는구나.’를 나도 알아갔다.      


카페에서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아이는 딸기 잼을 먹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 노랗게 머리를 염색한 젊은이와 외국인이 있는데 아이가 이들을 바로 쳐다보지 않고 슬쩍 곁눈질로 신기한 듯 쳐다본다. 바로 쳐다보면 상대방이 민망해할 것을 염려하는 마음에서이다. 사고하는 폭이 어른과 꼭 같다.      


고등학교 때 고종 사촌 누나가 고모와 함께 나에게는 할머니인 고모의 어머니를 보러 친정인 우리 집에 왔다. 내가 여치를 잡아 고종사촌 누나의 등에 올려놓으니 여치가 자기 엄마를 잡아먹는다고 생각한 듯 누나 등에 업힌 조카가 떠나갈 듯 울어 제친다. 그래서 여치를 다시 아이에게는 할머니인 고모의 등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할머니는 여치가 잡아먹어도 괜찮다는 듯 재미있다고 웃는다.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매우 이기적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 나름의 살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 때문일 것이다. 등에 업힌 젖먹이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목적에 맞게 행동을 한다.   

   

한때 사진관을 운영하였다. 늘 손님에게 포즈 교정을 한 후 촬영을 하니 둘째 딸아이도 그런 순간을 많이 보았나 보다. 손님이 사진관에 들어오는 소리가 나면 5살짜리 둘째가 나보다 먼저 뛰어 나가서 손님보고 “이렇게! 이렇게! 바로 앉아!”라며 짧은 소리로 “포ㅡ즈” 지시를 한다. 그러면 손님은 “그놈 참! 허~” 하며 웃는다. 아이는 보고 배우고 표현하고 나름 판단한다. 늘 살아가는 순간이 배움의 장이고 경험이다.      


어른인 부모는 아이가 언제나 어린애이고 생각이 깊지 않고 자기중심적이라고 믿는다. 아이들은 어른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살아나가기 위해 나름의 생존전략을 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 아이를 어른의 관점에 올려놓고 대화를 한다. 그렇게 해도 하등 불편함이나 부족함이 없다. 어쩌면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맞벌이 부모가 직장을 나가고 정글 같은 세상을 혼자서 떠돌며 스스로 살아 나가는 영악한 방법을 배우기도 한다. 상급생 언니가 아이에게 물건을 받으며 “저번에는 내가 500원어치를 너에게 사 주었으니 이번엔 너가 600원어치를 나에게 사줘.”하며 이자 개념 같은 웃돈 몫을 요구한다.   

승강기에서 아이가 “나중에 ‘내 집에’ 놀러 와” 한다. 이제 아이들은 공동체의 용어인 ‘우리’를 쓰지 않고 영어식 표현인 ‘마이 홈’으로 표현한다. ‘형제 없이 홀로 자라 개별화된 세상으로 바뀌어 버렸구나.’하는 섭섭한 생각이 든다. 그런 면도 아이들이 현실에 적응하며 스스로 살아나가는 방법들이다. 우리들이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지금 현실에 맞추어 그들의 생존전략을 짜고 그 요령을 터득해 가는 중이다. 아이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눈높이에서 짐작해 보면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그들도 성인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행동하고 고민하며 정글 속을 헤쳐 나가고 있다. 

내 안의 어린아이로부터(by. 아난)


인간관계에 한껏 지쳐있던 때였다. 맞지 않는 사람은 끊어내면 그만이었는데 그만둘 수 없는 관계가 한꺼번에 닥쳐오던 때였다. 관계를 맺은 건 다름 아닌 나이기에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하고 자책했다. 빨리 이 부정적 감정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해결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상담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여러 달의 개인상담 이후 상담 선생님의 권유로 집단상담에 참여하였다. 


처음에는 영화 속 알코올 중독에 쩔은 주인공이 집단으로 재활 치료를 받던 장면에 내가 들어온 느낌이었다. 참가자들은 원형으로 둘러앉아 각자 별명을 정하고 그 외 어떠한 정보도 제공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은 했을까 싶은 앳된 얼굴부터 푸석푸석한 얼굴의 중년 어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별명이 적힌 이름표를 가슴팍에 달고서 어색한 침묵을 깨고 누군가 화제를 가져와 이야기를 했다. 바깥 사회에서는 적나라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참던 감정을 쏟아내며 내 안의 필터를 걷어내는 과정을 연습하는 시간이었다. 상담 끝자락에는 오늘 갈등에 대한 소감을 각자 이야기하며 늘 마무리했다. 


한 달 동안은 집단상담에 쉽게 참여하지 못하고 방청객처럼 앉아있었다. 미친 듯이 울부짖고 때로는 쌍욕을 하며 갈등을 격렬히 쏟아내는 사람들이 무서웠고 모두가 성격파탄자처럼 보였다. 어떤 때는 사람들의 속내나 인생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라 '이게 어떻게 현실이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이 와중에 바깥 사회에서처럼 여전히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커 어느 갈등에도 개입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와도 관계가 이어지지 않았다. 


이래서는 참여의 의미가 없겠다 싶어 내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기 시작했다. 이입이 잘 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일부러 ‘이 감정은 대체 뭐지?’하며 감정을 더 표현하며 관계 맺기를 시작했다. 상담 선생님이라는 안전장치가 있으니 용기 내서 내 안의 날 것 같은 감정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있는 힘껏 소리치고 화를 냈는데 사람들이 화를 낸 거냐면서 내 분노를 알아차리지 못해 당황했다. 화를 내다 말고 “이렇게? 어떻게?”하며 벙쪘다. 나는 화나는 상황에서 참고 서늘해졌다가 다시 그 상황을 이야기할 때면 화를 꺼내와야 하는 사람이라 화에 대한 에너지가 곱절은 더 드는 사람이라고 했던 선생님의 말이 무슨 말인지 조금씩 깨달아갔다.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어떻게 화를 내는지, 지금 이 감정은 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퇴근하고 학원 가듯 상담실로 가 배워나가는 시간이었다. 울부짖고 소리치다 보면 골이 아플 정도로 감정의 진폭이 크게 오갔다. 집에 돌아갈 때면 모든 기가 몸에서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속내 깊은 곳의 상처를 모두 꺼내며 각자 이야기하다 보니 별명 밖에 모르는 상담 참여자들이지만 누구보다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선을 따라 들어가 보면 각자 상처받았던 그 시절의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었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도 아버지의 등살 때문에 제대로 애도할 시간을 가지지 못해 시간이 멈춰버린 딸. 경제적으로 무책임한 부모님 때문에 일찍 철들어버린 아들. 늘 욱하는 자신이 사실은 평생 꾹 참기만 하다 몸만 자란 장남이라는 걸. 저마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상처 받았던 그때 그 시간에 묶여있는 어린이들의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서로 불같이 갈등하다 위로하기도 하고 보듬으며 깊은 관계 쌓기를 배워나갔다. 


약 1년 정도의 집단상담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감정 자체에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문제로 삼고 없애려고만 했다.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있는 내 모습이 싫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감추는 것이 상대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며 부정적 감정을 감추고 그런 감정이 드는 나 자신을 속으로 나무랐다. 이런 나를 집단상담 시간 동안 잘 이해해 주던 ‘오드아이’라는 별명의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오드아이와 크게 갈등을 하다 그가 물어왔다. 

“지금 마음이 어때?”

“다 내 탓인 것 같아.”

“또 도망치고 선 긋는 거야? 왜 내가 책임져야 하는 감정의 몫을 너가 가져가놓고 착한 척하는 거야?” 


오드아이는 내가 봐왔던 모습 중 가장 크게 화를 내며 나를 나무랐다. 머리가 댕-하며 생각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경험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내 탓으로 돌리는 생각이 상대를 위한 배려라 여겼다.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내 안에서 원인을 찾고 나만 바뀌면 되는 게 쉬운 해결책이라 생각했다. 상대도 이런 나의 노력을 좋게 봐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오히려 깊은 관계로 나아가지 않으려 혼자만의 문제로 선 그으며 뒷걸음질 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나의 노력이라 생각했던 배려가 사실은 나만 편하자고 내린 생각일 뿐이었다. 늘 좋고 밝은 사람이고 싶은 내 안의 어떤 막이 진짜 마음을 가두고 깊은 관계를 막고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 모두 마음속에 든 감정을 바깥으로 잘 표현하던 어린아이였다. 말 못 하던 갓난쟁이 조카가 두 발을 드높이 들었다가 바닥으로 팡팡 내리치며 몸을 건드리지 마라고 싫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 갓 세상에 나와서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투명하게 마음을 그대로 바깥으로 꺼내보여 주는 게 신기했다. 인간관계가 또다시 버거워질 때면 격하게 발로 나를 내리치던 갓난쟁이 조카를 떠올린다. 내가 나 자신을 또 억누르고 있는 건 아닐지 드문드문 질문을 던져본다. 그럴 때면 내 안의 어린아이가 걸어 나와 나를 다독여준다. 


“마음에는 좋고 나쁜 게 없어. 그냥 그런 마음이 떠오른 것뿐이야. 다른 사람의 몫까지 가져오지 말고 네 마음을 토해내.”


오늘 드는 이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마음에 와닿게 말로 표현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내 안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잘 들리도록 오늘도 말을 걸어본다.

💌 지난 호 구독자 후기 (#20. 할매와 할배에 대한 보고서)
골골님 :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서 담담히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제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떤 존재였는지, 저는 어떻게 나이들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까지 여러 생각이 뻗치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땡비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소개
 - 못골👨🏻‍🎨 : 한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진을 찍어왔다. 한계를 넘어 뭐든 끝까지 가는 남다른 의지력을 지녔다.
 - 흔희👩🏻‍🎤 : 눈치를 보지않아 '인간 사이다'로 불리나 K장녀로 은은히 돌아있다. 직업 때문에 생계형 낱말수집을 한다.
 - 아난👩🏻‍🍳 : 목구멍 보이게 웃는 큰 리액션과 미친 에너지 때문에 '어린 짐승'으로 불렸다. 빵을 굽는 방구석 빵수니. 
오늘의 땡비 어땠나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읽으면서 머리를 스친 어떤 의견이든 편하게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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