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노동(인지노동 혹은 기획노동)


“일상의 무너짐을 막기 위해 누군가는 쉬지 않고 ‘다음’ 일을 생각하고 있다”

 

“보이지 않아도 쉴새 없이 돌아가는 ‘인지 노동’의 불평등”

 

두 인용문은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김희경(2026), 웨일북)와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앨리슨 데이밍거/전경훈 옮김(2026), 한겨레 출판사) 각각의 책표지 문구다. 저 인용문에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해도해도 표나지 않는, 하지 않으면 바로 표나는 집안일을 태곳적부터 부여된 듯 감당하고 있는 여성은 더욱 그러할지도 모른다. 집안일을 시간적으로 많이 하기 때문이 아니라 집안이 유지되도록 머릿속으로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기획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번 톺아보기(65호)에서는 일상유지를 위해 보이지 않아도 쉴새 없이 돌아가는 머릿속 노동(인지노동 혹은 기획노동)에 대해 톺아본다.

-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앨리슨 데이밍거, 2026, 한겨레출판)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의 저자 앨리슨 데이밍거는,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은 줄고 남성의 가사노동시간은 늘고 있는 통계에 기반해 가사노동의 평등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정당한 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저자는 인지노동과 관련해 이성커플 일흔여섯 쌍과 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퀴어 등을 포함해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를 포괄하는 약어. +는 앞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여러 정체성과 경험까지 넓게 아우르는 표현)커플 열여덟 쌍, 총 172명을 인터뷰하여 시간 중심의 정량적 연구가 가사 기여도의 성별격차를 과소평가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가시적인 가사노동시간(청소, 요리, 세탁 등)에서는 남녀 평등이 상당히 이루어졌으나, 비가시적인 가사노동에 대한 인식이나 측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예컨대, 휴지나 샴푸가 얼마나 남았는지, 아이 간식은 뭘로 채워야 하는지, 냉장고 속 우유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인지, 여행 계획과 숙박예약은 어떻게 할지 등등 집안의 모든 일을 관리하는 일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다.

  앨리슨 데이밍거는 “인지적 가사노동이란 가족의 필요와 요구가 무엇인지, 가족이 가족 외부의 타인과 사회에 대해 어떤 의무를 지는지, 그러한 가족의 필요와 의무가 충족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수행되는 일련의 사고과정”으로, “집안을 순조롭게 돌아가게 하는데 매우 중요하면서도 드러나지 않는 일”(73쪽)로 규정한다. 모든 가족 구성원의 욕구 충족을 보장하려는 일단의 정신적 과정인 인지적 가사노동의 주된 구성요소는 “예상하기, 선택지 확인하기, 결정하기, 결과 지켜보기”(63쪽)이다. 네 가지 구성요소는 순차적으로 전개되지 않고 복잡성을 띤다. 첫째, ‘예상하기’는 임박한 필요, 문제, 기회를 인지하는 것(예: 봄 축구교실 등록이 언제더라, 명절 쇼핑이 시작할텐데, 건강보험 보장 기간이 끝나간다 등), 둘째, ‘선택지 확인하기’는 예상되는 문제를 다루기 위해 가능한 해결책들을 제시하는 과정(휴가 여행지를 고르기 전에 다양한 해변 도시들의 장단점을 꼼꼼하게 보기, 추수감사절 만찬(명절, 집안 행사 등) 메뉴를 최종 결정하기 전체 수많은 레시피를 찾아서 갈무리하기, 일요일 오후 비가 와서 계획이 무산되면 영화 볼까 할머니댁 갈까, 아이의 활동에 적합한 옷 선택하기 등등), 셋째, ‘결정하기’는 앞서 확인한 선택지 중에서 선택하는 것인데, 선택은 순간적이기도 하고 숙고의 과정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내 결정이 틀렸으면 어떻게 하지’와 같은 불안을 동반한다. 마지막으로, ‘결과 지켜보기’는 목적을 성취했는지 확인하고 그러지 않을 경우 다시 계획 단계로 돌아가 선택지를 살펴보고 결정하는 과정이다. 마지막 과정에서는 평가(아이의 식단을 바꾼 것이 괜찮았나? 베이킹소다를 썼더니 얼룩이 지워졌나?)까지 포함된다.

  “가끔 남편과 다툴 때면,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쉬운 일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은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남편한테 상기시켜야”(279쪽) 한다는 연구 참여 여성의 말은 집안일에 대한 머릿속 노동이 당사자에게 과중하지만 상대방은 알지 못하는 말해준다. 남성도 인지적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남성은 투자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거나 주거나 육아에 들어가는 예산을 결정하는 것처럼 장기적이거나 전체적인 재정 문제를 다루었다”(107쪽)는 것이 데이밍거의 분석이었다. 왜 다수의 가정에서 집안일 대부분의 머릿속 노동(인지노동)을 여성이 감당하고 있을까? ‘물론’ 여성이 더 잘하고 ‘당연’히 어울린다고 넘어갈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저자는 성별 투자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진다. “탁월한 인지노동은 타고난 역량이기도 하지만 습득된 기술이기도 하다.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힘들이 어떻게 여성을 몰아가서 가정이란 맥락에서 그러한 기술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하는지 밝혀 보고자 한”(19쪽) 것이다.

  인지노동을 주도하는 사람은 대체로 그렇게 만들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개인의 성격 특성처럼 보이는 것들이 실은 기술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남성과 여성은 인지적 가사노동을 용이하게 하는 영역별로 특화된 기술을 쌓는데 서로 다르게 투자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축적된 성별화된 행동양식은 ‘자아’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익숙치 않은 도시의 거리와 교통체계에서 갈 길을 찾아 돌아다니려면 종종 효율과 조화의 이름으로 한 사람을 지목하여 길잡이 역할을 맡긴다. 번갈아 길잡이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이 영구적인 길잡이 역할이 더 적합하다고 결정할 수도 있다. “더 능률적이다, 더 빠르다, 더 낫다 같은 표현들이 초인 유형 여성의 식사 계획하기와 아이돌보미 찾기부터 선물 고르기에 이르는 과업 수행을 정당화했다”(173쪽) 초인 유형 여성의 우월한 인지노동 역량은 여러 해에 걸쳐 계발되고 사회적 힘에 의해 강화되었다. 여성이 아주 빈번하게 가족의 길잡이가 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길을 이끌기 위한 더 강한 동기와 더 훌륭한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때 주목할 한 가지는 육체적인 집안일은 번갈아 할 수 있었지만 인지적 과업에서는 균형을 맞추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육체적 집안일에 비해 인지적 과업을 효율적으로 완수하는 데 필요한 지식은 요약하고 흡수하기 어렵다. “성별화된 투자양상은 자녀 양육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자녀 양육을 수행할 때 전형적으로 여성이 아이의 발달과정에 대해 배우고 부모들끼리 맺는 관계망을 더 강력하고 폭넓게 구축하는 데서 일찍부터 ‘주도권’을 쥐었다 ... “기본값으로” 부모 역할 학습의 주된 책임은 여성에게 맡겼다 ... 남성과 여성은 모두 성별에 따른 사회적 기대를 내면화했고 인간관계를 학습하고 형성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다. 초기에는 파트너 간 역량 차이가 크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성과 여성이 가정생활의 어느 부분을 궁극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라고 각자 이해하느냐에 따라 정신과 대인관계의 다양한 습관들에 때로는 무관심하거나 때로는 주의를 기울이면서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176-177쪽) 그리고 공고히 되었을 것이다.

  나아갈 길은 멀고 녹록치 않다. 성별에 따라 정신 사용과 시간 사용을 예단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서는 정치, 단체, 개인 등 각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학문 차원에서는 시간 사용과 더불어 정신 사용까지 포괄해 설명할 수 있는 확장된 가사노동의 사회학이 필요하다. 비육체적 가사노동 기여도를 파악하기에 더 적합한 새로운 도구를 고안하고 개발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가사노동 배분 방식을 진지하게 같이 논의하려는 태도와 미래의 변화를 열어두는 자세”를 취한 연구 참여자들과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이 인지”(283-284쪽)되어 이를 검토하여 인지노동이라는 개념 형성과 방식까지 탐구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김희경, 2026, 웨일북)  

  “아무리 쳐내도 끝나지 않는 ‘할 일 목록’ 때문에 머릿속은 뒤죽박죽인데 마땅한 이름조차 없는 일. 뇌를 꺼둘 수도 없는데 눈에 보이지 않기에 일을 나눠 하는데도 왜 나는 피곤할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이름 없는 노동”(8쪽)

 

  이 노동에 국내 연구진들이 붙인 이름이 ‘기획노동’이다. 기획노동은 해외에서 ‘인지노동(cognitive labor)’이라 불린다. 기획노동 혹은 인지노동은 “저녁 식사로 된장찌개를 끓이려면 냉장고에 두부, 버섯, 파 등의 재료가 있는지 없는지를 파악하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보다 먼저 이번 달 생활비 예산으로 어떤 메뉴를 식탁에 올릴 수 있는지, 가족 중 누가 매운 것을 먹지 못하고 누가 돼지고기를 싫어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주말에 일주일치 식단과 장볼 품목을 정해야 한다. 어느 마트 또는 온라인 쇼핑몰의 품질이 좋고 저렴한지, 우리 동네 마트는 무슨 요일에 할인하는지를 살펴 장을 보는 일정도 짜야 한다. 어디 식생활뿐이겠는가. 부쩍 자라는 딸의 신발이 작아지지 않았는지, 학원에 가기 싫어 몸부림치는 아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어머니 생신이 다가오는데 선물은 무얼 사야 할지, 식사는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한다. 끼니를 차리고 집안을 정돈하고 아이를 씻기는 등의 살림과 돌봄은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그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정보를 찾고 결정하는 정신적 과정없이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어떨 땐 가전제품의 도움으로 실제 ‘실행’은 쉬워졌는데 오히려 더 많은 선택지와 정보가 쏟아지는 바람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머릿속 살림의 덩치가 커”(7쪽)졌다.

  그럼에도 기획노동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논의의 대상도 되기 어렵고 인정받기도 어렵다. 정부가 가사노동시간을 측정하는 통계에는 청소, 요리, 세탁 등 몸을 쓰는 ‘실행’ 노동만 담겨 있다. 하지만 집안일은 그렇게 몸을 쓰는 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존의 협소한 가사노동의 정의에 문제 제기하면서 기획노동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것이다.

  기획노동의 시작은 맞벌이 부부였다. 자녀를 키우는 양육자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부모 돌봄을 혼자 떠맡다시피한 자녀들의 이야기와 발달장애인 엄마들로 이어졌고, 이뿐만 아니라 돌봄을 받는 장애 당사자들까지 만난 이야기가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에 담겨 있다.  

  집에서 주로 여성이 떠맡아온 살림과 돌봄을 ‘여성의 본능’이나 ‘사랑의 행위’가 아닌 노동으로 호명하는 것에 대한 반발은 만만치 않다. 여성의 지위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덴마크에서도 논쟁거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여성이 집안일을 책임지는 현실을 조명하고 더 나은 가사분담을 위한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시작된 시리즈 <정신적 부하>에서 파트너가 집안일을 분담해도 자신이 가족의 매니저처럼 되어버렸고, 살림과 아이 돌봄에 필요한 모든 일을 생각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며 파트너에게 할 일을 위임하는 기획 노동의 정신적 부담이 크다고 토론했다. 기획노동이 “특권층 여성이 만든 가짜 문제”이며 엄마들의 “병적인 완벽주의”와 “허영심” 때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재반박이 이어졌다. 과연 살림이 빠듯하면 기획노동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일까? 아이 셋을 키우는 워킹맘 A씨는 소고기가 비싸서 살 엄두를 못낼 때면 돼지고기를 사서 김치찌개나 만들어 먹이며, 어떻게 해야 내 상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건강하게 키울지 고민하느라 머리가 쉴 틈이 없이 돌아간다고 했다. 경제적 결핍은 기획노동을 없애는 게 아니라 선택지가 줄어든 상태에서 더 정교한 기획을 강요한다. 이 문제에 관련한 저자의 결론은 “기획노동은 여성만의 문제도, 중산층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리고 그 무게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만 얹히지 않는다. 부모가 나이를 들고 약해지는 순간, 이번에는 성인이 된 자녀들이 그 짐을 물려받는다”(112쪽)는 것이다.

부모가 쓰러진 그날 시작된 기획노동은 병원을 정하고 간병인과의 관계를 고려하고, 요양등급은 어떻게 받고 집에서는 어떻게 돌볼지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물리적 노동을 덜 수는 있지만 기획노동은 면제되지 않는다. “가족 안에서 며느리니까, 딸이니까, 비혼인 딸이니까, 여자니까, 결국 OO이니까 돌봄을 맡아야 한다는 말은 돌봄의 나눔을 차단하는 봉쇄의 언어다 ... 가족이 맡은 노인 돌봄의 무게와 복잡함을 줄여주는 제도적 변화가 없다면 개인이 짊어져야 할 짐이 너무 크다”(132쪽)

저자는 취약한 사람을 돌보는 기획노동을 하는 대표적인 존재로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는 엄마를 꼽았다. 발달장애 아동의 엄마들은 의사조차 “부모가 열심히 싸우는 수밖에 없다”라며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해 주지 않는 현실에서 약자일 뿐 아니라 아이의 치료사, 교육 전문가, 아이의 상애주기 전체를 관장하는 총괄 디렉터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의 기획 노동을 “평생 꺼지지 않고 24시간 가동되는 관제탑”(134쪽)과도 같다고 한다.

보이지 않지만 쉴새 없이 돌아가는 머릿속 정신 노동에 이름을 붙이고 가시화한다는 것은 “돌봄에서 역량의 차원을 복원하는 일”이고, “특정 성별의 사람이 본능적으로 떠맡을 일이 아니라 모두가 배우고 나눠야 하는 일”(247쪽)이라는 인식이 정립되어야 한다. “역량은 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필요한 일을 알아차리는 눈이 트이고, 기획의 시작과 끝을 감당하는 근력이 붙”(197쪽)는 것이므로 가정과 학교에서 “성별에 상관없이 집안일을 돕고 자기 환경에 대한 주인의식”(248쪽)을 갖도록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돌봄의 가치를 중시하고 보상을 높이는 등의 방식으로 사회제도를 만드는 일까지 이어져야 할 것이다.

두 책은, ‘왜 저 사람에게는 가사노동이 보이지 않을까’라는 평소의 의문이 풀리는 과정이자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이었다. 두 책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처럼 인지노동 혹은 기획노동의 격차는 기질적, 본능적 차이가 아니고, 훈련과 경험을 통해 습득되는 기술이자 역량의 차이다. 집안일 나아가 돌림에 대한 인지노동 및 기획노동의 격차는 개인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는 없는 구조적이고 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지라 단박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또렷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