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한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17년간 사회생활이라고 불리는 활동을 했다. 그리고 작년부터 (구)한국 나이로도, 만으로도, 바뀐 법으로도 40세를 넘겼다. 졸업 후 백수 시간이 꽤 길었지만, 당시에도 자원활동을 가장한 무급 노동을 했으므로, 조금 있으면 사회생활 20년을 바라본다. 이런 사실을 돌이켜보면 정말 놀랍다. 나는 아직도 초년기에서 별로 변한 게 없는데, 어떻게 이리 시간만 빨리 가는 걸까. 직장생활 거의 20년을 바라보는 40대의 나라니. 20대의 나는 상상도 안 해봤던 모습이다. 

단련일기 멤버들이 처음 이 서비스를 시작할 때 나는 (구)한국 나이로 40세를 갓 넘겼다. 당시에 아무 준비 없이 40세를 넘겼다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허무함을 안고 새해를 맞이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길게 했고 나이가 들었지만, 내 길이 뚜렷이 보인다거나, 전문성이 늘었다는 느낌이 들거나, 회사생활이 더 편해졌다거나, 월급이 올랐다거나 하는 ‘성장’의 느낌이 들지 않아 괴로울 때가 있다. 가끔인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항상 드는 생각이다. 이런 정체감은 회사를 다니고 있음에도, 스스로 ‘경력 단절인’ 같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월급 받은 기간만큼 는 것이라면, ‘번아웃’과 연말정산 스킬 정도가 아닐까. 어릴 때는 방황이 주특기인 사람이었는데, 나이가 들어서는 번아웃을 겸한 방황이 주특기인 사람이 됐다. 직종 특성상 나를 갈아서 목표한 날짜를 향해 일을 만들어 내는 걸 3~4년 반복하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됐다. 궁금한 분야를 계속 찾아가며 일을 했는데, 더 이상 원하는 일도, 가고싶은 직장도 없는 시기가 있었다. 겨우 직장을 찾아도 '이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인가' 하는 질문만 쌓여갔다. 이렇게 번아웃을 겪은 지 십년을 더 넘겼다. 이제는 '번아웃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 정도면 나는 번아웃의 대가(大家)가 아닌가? 나보다 번아웃을 오래 겪은 사람이 있을까?'라는 자신감(?)이 들기도 한다. 아직도 이 정체감과 번아웃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 벗어날 수는 있는지 모르겠다. 번아웃이 습관이 된 이후로 나는 그동안 좋아했던 음악을 찾아 듣지 않고, 책도 멀리하고, 영화관도 잘 찾지 않게 됐다. 특히 매주 몇 개의 공연을 보고, 음악이 가장 소중했던 내가, 듣는 음악만 계속 듣는 사람이 됐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게 나이가 들어서인지, 번아웃이 와서인지 알기 어렵지만, 나를 지탱하던 것이 점점 없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다시 번아웃이 오고, 다시 힘이 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번아웃을 견디는 방법이나, 해결책은 찾지 못했지만, 요즘 의지하는 것을 두 개 소개해 보려고 한다. 첫 번째로 소개하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몇 년 전에 생긴 <빵과장미>라는 빵집이다. 원래 나는 빵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채식을 시작하고, 먹을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니, 집에서 한참 멀리 있는 <빵과장미>라는 빵집을 알게 됐다. 작년에 가까운 곳으로 이전했지만, 집에서 1시간 떨어진 <빵과장미>에 가는 게 주말 이벤트였다. <빵과장미>의 빵에 빠지게 된 이유는 빵이 맛있어서다. 그냥 맛있는 게 아니라 정성과 노력이 느껴지는 맛이다. 나는 플레인 깜빠뉴를 주로 사는데, 이 평범한 종류의 빵에서 이런 정성과 수고를 맛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궁금하면 주문하시라. 전국택배 가능)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아침에 일어나 <빵과장미>의 플레인 깜빠뉴를 냉동 칸에서 꺼내 데우고, 커피를 내려 마시는 시간이다. 오로지 <빵과장미>의 빵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죽은 빵도 살려준다는 발뮤다 토스터기를 ‘빵 데우는데 이런 거금을 써야 하나’ 하는 죄책감을 느끼며 샀다. 최선을 다해 아침을 소중하게 차려 먹으면, 하루 중 제일 즐거운 일이 눈 뜨자마자 끝난다. 직장에 가서 번뇌와 (퇴사)고민, ‘기빨림’으로 하루가 지나고,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뻗어 아무것도 못하는 나를 일으켜 씻기면 잘 시간이다. 오늘 하루를 또 무의미하게 보낸 건 아닐까 하는 자책과 함께 잠이 들었다가, <빵과장미>의 빵과 커피를 내리는 아침을 맞이하며 조금 괜찮아진다.

 
두 번째로 의지가 되는 것은 유튜브 채널 <원지의 하루>다. 집에서 뻗어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돌아다니던 중 <원지의 하루>를 만났다. 원지는 ‘고찰 전문가’인데, 불쑥불쑥 나오는 그의 생활에 대한 잔잔한 통찰력에 감탄할 때가 많다. 또 무엇보다도 개그프로보다 웃기다. (궁금하면 보시라. 그의 마성에 빠질 것이다.) 퇴근 후와 주말에 밖에 나가지도 않고, 아무것도 못 하고 집에 누워서 핸드폰만 보면서 자괴감을 느끼는 나는 “누워있는 게 최고의 액티비티”라고 하는 원지의 말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누워만 있는 게 아직도 마음 편하지 않지만 나도 그게 제일 편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스스로 게으르다고 하면서도 여행하고, 찍고 편집하고 유튜브에 올리고, 외부 활동을 하고, 회사를 만들어서 본인이 디자인한 상품을 팔고, 목수 일도 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며, 이것저것 시도하고 기빨려하고, 뻗는 그를 보면 계속 응원하게 된다. 

<빵과장미>는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운영한다. 10시 반에 열어 6시에 닫기 때문에 다른 빵집에 비하면 문 여는 시간이 짧다.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하면 짧게 문을 열어서 빵을 사기 어렵다고 말한다. 또 보통 일 년에 두 번 긴 방학을 가진다. 빵집 주인장은 휴일에 빵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을 가지고, 방학 동안 외국에서 빵을 배워오기도 한다. 주마다, 시기마다 쉬고 충전한 에너지를 모아 정성껏 빵을 만드는 것이다. <원지의 하루>는 최근 긴 휴식을 하고 돌아왔다. 대중적으로 알려지자마자 노를 젓지 않고, 파업을 선택했다.

의지하는 빵집과 유튜브가 없는 기간에 나는 가장 좋아하는 빵 없이 아침을 먹어야 할 때가 있었고, 밥 친구가 되어준 유튜브를 깔깔거리며 볼 수는 없었지만, 쉬는 그들을 생각하면 위안이 됐다. 충분히 쉬고 맛있는 빵을 만들고, 재밌는 영상을 만들어 줄 것을 믿고 기대하면서. 장기 번아웃인 나도 내가 쉬는 것을 자책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날이 올까 기대해 본다.

📻김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