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웹툰
웹툰 좋아하시나요? 저는 2006년부터 웹툰을 즐겨보았습니다. 최근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가 많이 만들어져 웹툰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실감합니다. 국내의 만화 산업은 지식재산권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고, 글로벌 시장 영향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웹툰은 2019년까지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오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비대면 시대를 맞아 급성장하게 되었습니다. 2022년 국내 웹툰 산업 연 매출액은 1조 5,660억원으로 2021년 대비 48.6% 성장하였고, 국내 웹툰 작가의 수도 2020년 7,407명에서 2021년 9,326명으로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보고서] 2022년 웹툰사업체 실태조사
웹툰작가들의 건강 적신호
웹툰 산업의 성장의 이면에는 웹툰 작가들의 고된 노동 환경이 있었습니다. 2022년 '나 혼자만 레벨업' 장성락 작가가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하였습니다. 웹툰 ‘록사나’의 작화 작가가 유산 후에도 휴재가 받아 들여지지 않아 작품 연재를 계속한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되었습니다. 제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지원으로 전업 웹툰작가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28.7%가 병원에서 우울증상으로 의사의 진단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면장애는 28.7%, 자살사고는 17.3%였습니다. 장시간 앉아서 일하는 업무 특성상 근골격계질환과 방광염, 위장질환과 안과질환의 발병률이 높았습니다.
[기사] 30대 웹툰작가 사망에 노동여건 논란
[기사] '유산하고도 연재 계속' 웹툰 업계 논란
[기사] 1주일에 70컷, 밤샘 작업하다 ‘우울증’ 일반인의 12배, 2023
웹툰 작업방식의 변화
웹툰의 작업 방식은 예전의 만화 산업과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첫번째, 연재 주기가 주 1회 이상으로 더 짧아지고 1회 연재 분량이 늘어 났습니다. 두번째, 과거에는 작가가 출판사와 계약을 맺어 연재하였다면, 지금은 플랫폼에 게시하여 연재를 합니다. 세번째, 과거에는 유명 작가와 문하생으로 이루어진 도제식 제작 방법이 일반적이었지만, 현재는 분업화가 이뤄지는 스튜디오 제작 방법과 1인 작가 작업으로 다양화됩니다.
웹툰 작가의 노동시간
웹툰 작가는 주당 1편씩 일정한 분량의 웹툰을 게시하기 위해 하루 평균 9.9시간 근무하고 있고, 주 근무 일수는 평균 5.7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마감 전 날에는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11.8시간까지 높아집니다. 명백하게 초과 근무를 하고 있지만 노동시간에 임금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일감에 임금이 부여되기 때문에 과로를 제한하기 어렵습니다. 웹툰 작가의 노동은 장시간 근무와 과도한 마감 압박이 특징이었습니다.
웹툰 플랫폼의 작동방식
웹툰을 게시하는 플랫폼은 소비자와 컨텐츠 생산자를 중개함으로서 가치를 창출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중개역할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첫번째, 플랫폼은 특정인이 아니라 다수에게 일거리를 열어 놓아 과잉공급을 만들어내는 특징이 있습니다. 두번째, 플랫폼은 특정한 방식으로 컨텐츠를 소비자에게 더 잘 보이도록 통제하고 때로는 생산자의 컨텐츠를 제약하기도 합니다. 컨텐츠의 배치는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세번째, 대부분의 웹툰 작가는 작품 단위로 계약을 하고, 1회의 원고를 제출하면 익일에 원고료를 지급 받습니다. 휴재에 대한 권한 (휴재권)이 없고, 쉰다는 것은 소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웹툰작가들은 플랫폼의 일방적인 계약 조건과 지시를 거부하기 어렵다고 토로하였습니다.
[논문] 디지털화와 노동: 디지털시대 노동의 과제 2016
창작에 대한 자율성과 재량권의 감소
창작자들은 업무자율성이 높은 직종이라고 생각되지만, 이러한 플랫폼의 구조는 창작자로서의 재량권과 자율성을 갖기 어렵게 합니다. 플랫폼은 독자들의 만족을 높이기 위해 웹툰의 분량(컷수)을 제한합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1회에 요구 받는 컷수는 평균 68.3컷이었고, 작가 본인이 생각하기에 그리기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컷수는 52컷이었습니다. 본인의 적정량보다 31%가 많았습니다. 성인 웹툰 플랫폼 등에서는 특정 장면과 특정 작화를 요구하는 등 작품에 간섭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웹툰작가는 프리랜서로서 전속성은 낮으나 플랫폼의 요구,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워 종속성이 높은 특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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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연재 계약의 불공정성
플랫폼은 기존의 ‘전시’ 기능 이상의 영향력을 갖게 되면서 컨텐츠 생산자와의 계약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합니다. 웹툰 작가는 불안정한 소득, 불안정한 일자리로 인해 플랫폼 기업과 불공정한 계약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입니다. 웹툰 업계에 만연한 불공정 계약 문제로 인해 네이버 웹툰과 카카오 웹툰의 대표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되기도 하였습니다.
[기사] 문체위 국감, 네이버·카카오 '웹툰 갑질' 불공정 계약 비판
2023년 1월 만화가 협회 주관의 국회 토론회 “ 웹툰 계약 : 무엇이 불공정하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서는 웹툰 연재 계약이 다음의 8가지 점에서 불공정한 계약에 해당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1) 불공정한 수익 배분 기준을 포함하는 조항
(2) 과도한 비밀 유지 조항
(3) 재판 관할의 합의점
(4) 상당한 이유없이 급부의 내용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
(5) 불공정한 손해배상 조항
(7) 계약 기간 관련된 불공정한 조항
(8) 상당한 이유 없이도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조항
[자료집] 웹툰 업계 불공정 계약 실태 및 해결 토론회
플랫폼기반 창작산업의 불공정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
왜 웹툰 작가의 노동 환경을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일까요? 웹툰 작가의 노동환경은 디지털 컨텐츠 노동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공정한 계약은 웹툰 업계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웹소설, 일러스트레이션 창작 등 다양한 산업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일감 중심의 노동은 현재의 근로기준법에서 벗어나 있어 이 분야의 노동자들은 더욱 불리한 위치에 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더욱 늘어날 디지털에 기반으로 한 일감 중심의 노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가 지속되길 희망합니다.
[자료집] 그 작품의 코인은 누가 가져갔을까? - 디지털콘텐츠착작노동자 실태와 대책마련을 위한 토론회, 2020
글쓴이: 민지희 (한양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