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2일 (금)  웹에서 보기 | 구독하기

VOL.124 사계절 시리즈: 봄
『말랑한 고고학』 김상태_3화 안료의 발견_인간, 자연의 색을 탐하다 (1)
🎨 색
지난 회차에선 빛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주제는 색입니다. 인류가 자연의 일부를 활용할 수 있게 된 순간에 관한 글이 이어집니다. "인간이 왜, 언제부터 안료를 사용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가공하고 어디에 활용했는지 등"을 알아봅시다.

* 내용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수정해 다시 발송합니다. 혼선을 드려 죄송합니다.

이젠 완연한 봄이다. 파란 하늘에는 하얀 뭉게구름이 흩어져 있고, 들판에는 새싹이 앞 다투어 올라온다. 곧 울긋불긋 봄꽃과 연초록 나뭇잎도 일제히 피어오르리라. 나는 이 세상 모든 색 중 이른 봄 나뭇잎의 연초록을 가장 사랑한다. 계절이 여름으로 접어들고 잎이 짙은 녹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굉장히 섭섭하다. 우리 곁의 반려견은 이 아름다운 봄을 흑백으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세상의 빛깔을 함께 볼 수 없음이 못내 아쉽다. 앞서 ‘등잔’ 이야기에서 언급했듯 인간은 고도로 진화한 눈 덕분에 대자연의 형형색색 빛깔을 고스란히 즐길 수 있다.

인간이 외부로부터 얻는 정보의 70퍼센트 이상은 시각 정보라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눈을 뜨고 있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 DNA 깊은 곳에는 새로운 것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이 있다. 그 결과 인간은 세상 모든 일에 직접 참견하고 그것을 소유하길 원한다. 그러니 아름다워서 황홀하기까지 한 자연의 색깔들도 당연히 탐했을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인간이 왜, 언제부터 안료를 사용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가공하고 어디에 활용했는지 등을 이야기하려 한다.

제일 먼저 안료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유를 질문해보자. 현대인에게 색은 일종의 언어이자,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신호등의 녹색과 빨간색은 세계의 도로 어디에서든 통하는 세계인의 공통 언어다. 선거철인 요즘에서 여러 정당이 각자를 상징하는 색을 내걸고 경쟁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때로는 특정 색이 금기를 나타내거나 영적 힘을 지닌다고 믿기도 한다. 부적에 쓰는 경면주사鏡面朱砂의 붉디붉은 색이 특히 그렇다. 인간이 맨 처음 안료를 사용한 이유는 아마도 주술과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지 않을까.

[그림1. 파푸아뉴기니 후리 위그멘Huli wigmen 부족의 바디 페인팅]

안료의 기원을 파악하려면 초기 사용처를 추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와 관련된 고고학적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것은 거꾸로, 초기 안료 사용처가 ‘이내 사라지는 것들’이었음을 의미한다. 연구자들은 ‘이내 사라지는 것들’로 신체 장식, 예컨대 타투tatoo나 바디 페인팅body painting 등을 지목한다. 이런 행위는 원래 야생에서 생존력 강화를 위해 강인한 이미지를 부각하는 목적이었다. 다른 동물들이 장구한 진화를 통해 얻은 보호색을 인간은 안료를 사용하여 단기간에 획득한 것이다. 현대의 원시 부족에서도 볼 수 있는 바디 페인팅은 단지 몸에만 그치지 않고 장신구나 무기류로 범위가 확장되었다. 하지만 오래 전 인간의 신체에 칠했던 안료는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다행히 장신구에 사용한 안료는 남아서, 그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초기 안료 관련 유적 중 하나인 이스라엘의 카푸제Qafzeh 동굴에는 35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지중해에서 채집해온 조가비가 있었다. 조가비 중 일부에는 구멍을 뚫고 줄에 묶어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또 서로 부딪혀 마모된 흔적도 확인되어서, 이것을 장신구로 사용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런데 정밀 분석 결과 조가비의 표면에서 붉은색과 검은색의 안료가 나왔다. 지금으로부터 10만 년 전, 혹은 그 이전의 인간이 자연의 색을 탐하고 소유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림2. 카푸제 동굴의 안료 덩어리와 안료가 칠해진 조가비들]

📝 김상태
구석기 고고학을 전공하고 전기 구석기 시대 뗀석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원도 양구군 상무룡리 유적 발굴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구석기 연구를 시작했으며, 그 밖에 제주도 최초의 구석기 유적인 서귀포시 생수궤 등 여러 발굴에 참여했다.

1996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박물관 업무를 시작했으며, 이후 유물관리부와 고고부, 전시팀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하며 관련 저술과 전시로 활동을 넓혔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제주박물관, 국립춘천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등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국립나주박물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최초의 진화 인류학 특별 전시 〈호모 사피엔스: 진화∞관계&미래?〉(2021년 5~9월) 등을 주관했다.

지은 책으로 구석시시대에 관한 한국 최초의 교양 입문서 『단단한 고고학』, 구석기 시대에 인류가 사용한 도구를 연구한 『한국 구석기 시대 석기군 연구』와 『한국미의 태동 구석기·신석기』(공저), 박물관 큐레이터와 큐레이터 지망생을 위한 실용적인 유물 관리 지침서 『박물관 소장품의 수집과 관리』 등이 있다.
데이터를 모아 다음을 예측하는 기술이 일반화된 요즘 이진법 신호로 환원되지 않는 이야기에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예측이 아닌 상상에 방점을 찍게 됩니다. 새로운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상상이 있고, 『말랑한 고고학』은 그 시작점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북뉴스는 '4월'을 주제로 한 큐레이션이었습니다. 독자의 피드백에 답합니다.

* 북뉴스 제작 늦어져 하루 지나 발송합니다. 이어지는 북뉴스는 다시 목요일 발송합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른 양해 부탁 드립니다.
👀: 독자 | 🎱: 담당자

👀 김돼지
4월에 어울리는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계절 책은 모으는 재미가 있네요 : )

🎱
안녕하세요, 독자님. 사계절출판사의 책은 사계절 언제 읽어도 좋지요 : ) 독자님 서재가 사계절출판사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미국인
서현 작가님 좋아하는데 신간 소식! 이번엔 아주 어린이들을 위한 책은 아니네요 ㅎㅎ 함께 읽기 좋은 책일 것 같습니다.

🎱
안녕하세요, 미국인 님? 저 또한 기대하고 있던 서현 작가님의 신작입니다. 만나보시면 알겠지만 만듦새부터 다른 책입니다. 모두와 함께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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