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디터 작년 여름, 파주출판단지로 향하는 2200번 버스에서 편집자님이 『채널예스』에서 연재하신 <김영훈의 잃어버린 편집을 찾아서>를 처음 읽었던 기억이 나요. 졸린 눈을 비비며 조금이라도 더 잘까… 아니면 밀린 업무를 미리 정리해 놓을까… 하던 중 편집자 친구가 읽어 보라고 칼럼 링크를 보내 줬거든요.
무심코 눌러서 읽다가 잠이 확 깼었어요. 너무 재미있어서요. 1화로 연재된 ‘판권면’에 대한 글이었는데, 여러 출판사의 판권면 유형을 최대주의형, 최소주의형, 백과사전형 등으로 나누신 게 너무 흥미롭더라고요. 재밌기도 했지만,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판권면(간기면)이라는 주제를 통해 출판 노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특히 좋았고요. 소위 출판 베테랑들의 이야기에서는 잘 접하지 못한 주제라는 느낌이었어요.
출판계의 가려운 부분을 이렇게 위트 있고도 세세하게 다뤄주신 이 분은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었네요.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영훈 저는 다산북스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김영훈이라고 합니다. SNS에서는 ‘무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보름유유 뉴스레터에 샛별 같은, 기라성 같은 출판계 분들이 많이 나와서 저 같은 필부가 나와도 되나 싶긴 했는데… 사실 출판계에는 그런 분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되게 다양한 분들이 또 있잖아요. 또 한 명의 출판 노동자 이야기라고 생각해 주시고 인터뷰를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뱅 우선 <잃어버린 편집을 찾아서>를 처음 연재하시게 된 계기가 좀 궁금해요. 칼럼에 달린 댓글을 보니 X(트위터)에서도 글을 봤는데 반갑다는 말도 있더라고요. 처음에 어떻게 연재를 시작하게 되셨는지 또 어떤 이야기를 칼럼에 담아내고 싶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훈 2024년 초 『채널예스』의 제안으로 8회 분량의 연재를 시작했어요. 2023년 연말, 『채널예스』에서 크로스 인터뷰라는 제목의 대담 형식 인터뷰 코너가 있었는데, 거기에 제가 참여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현장에서 나왔던 제 출판계 이야기를 아마 『채널예스』 에디터 분들이 재밌게 들어주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X(트위터)에서도 이런저런 출판계 이야기를 하며 출판 관련 기사를 소개하고 짤막하게 코멘트를 하기도 하니, 그런 부분을 좋게 봐 주셨는지 제안을 주셨고요. ‘잃어버린 편집을 찾아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출판 노동에서 비가시화된 어떤 노동들, 특히나 편집자로서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편집 노동을 꺼내 놓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뱅 칼럼에서 다루신 주제를 살펴보면 판권면, 파주출판단지, 북에디터, SBI 등 평소에 무심코 지나칠 수 있던 출판계의 주제 혹은 문제를 잘 뽑아 전달해 주신 것 같아요. 어떻게 주제를 선정하셨는지 궁금해요.
훈 사실 출판 노동에서의 문제라 함은, 도처에 만연해 있고 항시 산적해 있잖아요. 결국 여러 문제 중 어떤 걸 뽑아서 쓸지에 가까웠어요. 가급적이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고 시의성도 있는 주제를 다뤄 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고요. 예를 들면 총선 시기에 맞추어 ‘출판 담론 실종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를 다룬다거나, 정지돈 작가의 소설 속 윤리 문제가 대두되었던 시기에 ‘재현의 윤리와 출판사의 책임’을 다룬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뱅 출판 노동에 문제가 항시 산적해 있다는 말에 공감이 가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지? 하며 혼자 되묻게 되는 것 같아요. 비교적 많은 회사를 다녀본 것도 아니고, 또 눈앞의 일에 집중하다 보면 어떤 문제를 구체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넘기는 때도 있는 것 같고요. 편집자님께서는 그 만연한 문제들을 주로 어떻게 인지하시고 기록하신 건지도 궁금해요, 또 그 과정에서 혹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는지도요.
훈 기본적으로는 제가 경험했던 것들 또는 일을 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느꼈던 고민이나 약간의 의구심을 기록했어요. 대체로 그런 의구심이나 고민이 들었던 건 출판계에 만연한 어떤 ‘관성’ 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이렇게 해 왔으니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관성이요. 저는 그런 관성들이 많이 의아하고 낯설고 이해하기가 난망했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왜 그래 왔다는 이유로 계속해야 될까. 당신들도 불편하고 나도 불편하고 너도 불편한데. 그렇게 계속된 의아함을 일기나 SNS에 기록해 놓았다가, 주제를 뽑아 엮어 보았습니다.
칼럼에도 썼던 것 같은데, 사실 출판 업무라는 게 출판사마다 다르잖아요. 심지어 팀마다 다르고요. 또 개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하나로 규격화하거나 단순화해서 말하는 게 너무 어렵기도 했어요. 그래서 뽑은 주제를 칼럼 형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약간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습니다.
뱅 그렇다면 출판계에서 어떤 게 제일 이상하고 의아하셨어요? 훈 좀 추상적이긴 한데,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뭉개는 것들이요. 그건 때로 연봉일 수도 있고, 편집 업무의 어떤 제도일 수도 있고, 회사의 구조일 수도 있고요. 어떤 불합리를 유지하는 가장 큰 명목으로 들었던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들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책을 사랑하고, 출판사 직원이고, 너는 에디터니까, 편집자니까 그냥 따라야 하지 않겠냐….
뱅 문제를 문제로 포착해 내는 편집자님의 예리한 시선이 저는 참 좋았는데요. 언젠가 추가로 다뤄 보고 싶으신 주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훈 요즘 고민하는 것 중 하나는 '추천사'입니다. 호명사회라고 하잖아요? 누군가 누군가를 호명하고 호명 받아야지만 인정받고 콘텐츠가 팔리는 사회요. 하지만 때로는 추천사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괜찮은지는 모르겠어요. 이 상황을 바꾸려는 시도가 없는 것인지, 불가능한 것인지, 지금의 상황이 출판계에 과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뱅 몇몇 인물들에게 책이 호명되면… 로또 맞은 것처럼 너무나 기뻐하는 상황이지요.
훈 ‘픽 미’란 말이에요. 모두가 ‘출판듀스101’을 하고 있는 이 현상이 어떤 시기에는 정말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드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이런 호명사회의 흐름이 출판계만의 문제는 아니긴 하잖아요. 그런데 출판계에서 좀 더 큰 문제로 느끼는 까닭은, 그것만이 전부처럼 느껴지는 상황 때문인 것 같아요. 추천사뿐 아니더리도 불과 1~2년 전만 해도 업계에서 농담처럼 대한민국 최대 출판 마케터라고 부르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X(트위터)나 페이스북에 한 번 어떤 책을 호명하면 다음 날 그 책이 서점 종합배스트 순위에 올라가잖아요. 이게 과연 한 산업이 돌아가는 건강한 환경인지에 대해 늘 고민이 들었던 것 같아요.
물론 추천사가 필요하고 유효한 상황도 있죠. 어떤 추천사가 독자의 마음을 너무나 동하게 해서 책을 사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는 것도 동의하고요. 다만 추천하는 분들이 너무 몰려 있다거나 관성적으로 이 흐름이 이어진다는 것이 문제적이라고 느낍니다.
뱅 그 말이 와닿는 것 같아요. 다른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 상황을 전부라고 느끼게 되고, 그래서 더 문제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네요.
훈 얼마 전에 밀리의 서재 유튜브를 보니 출판계 분들을 한 분 한 분 인터뷰를 하는 콘텐츠가 있더라고요. 거기에서 흐름출판 박대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요. 출판 마케팅이 다 똑같다. 그 이유는 어쩌면 관성의 문제인 것 같다. 그럼 왜 관성적으로 움직이느냐 했을 때 일하는 사람들이 이 일을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는 맥락에서 말씀해 주셨거든요.
예를 들면 내가 다른 곳으로 이직할 때 내 포트폴리오로 삼을 만한 게 뭐가 있을지 고민한다면, 늘 하던 대로 카드 뉴스만 만들고 늘 했던 협업 제의만 반복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요. 물론 당연히 마케팅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편집도, 디자인도 똑같겠죠. 출판 업무와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한 번씩 고민해 볼 수 있는 문제인 것 같아요. 내가 관성적으로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저부터도 늘 돌아봐야 하겠지만요.
뱅 결국 큰 틀에서 출판업계의 불필요한 관성을 바꿔 나가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요. 이에 대해 목소리를 보태고 싶으셨던 것이겠지요? 칼럼 연재도 그럴 테고요. 훈 저는 처음부터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겠다는 마음으로 출판업계에 오게 된 사람이 아니거든요. 서비스 업계에서 잠깐 일을 하다가 흘러 들어온 쪽에 가까워요. 소위 말하는 SBI(서울출판학교)나 한겨레 교육 같은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은, 그러니까 ‘길거리’ 출신인 거죠. (웃음) 그러다 보니 일종의 제도권에서 말하는 것들이 더 낯설었던 것 같고요. 흘러들어 왔지만 막상 일을 해 보니 즐거웠어요. 작가와의 만남, 동료들과 함께 책을 만드는 일, 물성을 가진 책으로 독자를 만나는 것도 즐거웠어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내가 즐겁게 이 업계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려면 제가 의문을 가진 것들을 함께 논의하며 어떤 활로를 모색해 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졌고요. 그런 의미에서 2021년에 출판 소식을 담은 뉴스레터 <무무의 섬>을 연재했던 것, 『채널예스』 칼럼을 연재했던 것, SNS에 출판계 관련 뉴스 기사들을 공유하는 일을 계속해 온 것 같아요.
뱅 또 궁금했던 게, 『채널예스』 연재에서 본명을 밝히셨잖아요. 다니시던 회사에서 딱히 별다른 말씀 없으셨나요…?
훈 칼럼을 연재할 때는 마침 제가 퇴사했을 때였어요. 그래서 익명으로 하지는 않았고요. 사실 칼럼 연재도 익명으로 하고 싶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칼럼에 담은 이야기를 보고 누군가는 네가 뭘 아냐고 할 수도 있고, 이건 답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그냥 일이나 하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걱정이 있었죠.
그런데 다른 출판사를 다니는 동료의 말을 떠올렸어요. 이제는 편집자들이 익명성을 벗고 무대로 올라가야 된다. 기라성 같은 분들이나 샛별 같은 분들이 아니더라도 일반 노동자들도 이름을 알리고 뭔가를 해야 한다, 그런 얘기를 해 주어서 이름을 내걸고 연재를 했던 거죠. 보통 뉴스레터에 닉네임을 많이 쓰잖아요. 사실 그때의 효과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좀 더 친근한 느낌도 주기도 하고요. 다만 한편으로는 실명으로만 얻어지는 효과라거나 의미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결국 필요에 따라서 잘 쓰는 게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