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 생각의 기본 영역은 공간이다”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12월이 왔어요. 저로서 한 달 만에 쓰는 한편의 편지네요! 미국에서 한 달 휴가을 보내고 돌아왔어요. 🎃🎉✨🛒🎨🚝🚞🛫🌎⛄ 긴 휴가를 보내고 나니 생명력이 넘치면서 계속 졸린데요. 시차 적응을…… 기획 편지 적응을 위해서 여행 중에 읽은 책 이야기를 정리해 볼까요.
💬 비행기에서는 전자책으로 로베르토 볼라뇨의 『2666』을 (또) 읽었는데, 5부 중에서도 베니토 후아레스에 관한 대목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그런데 시카고에 도착하자 베니토 후아레스의 동상을 만난 거예요! 책을 읽으면 꼭 이런 우연한 만남이 있어서 놀랍죠. 동상 앞에 새겨진 글은 이렇습니다. "베니토 후아레스는 멕시코의 첫 번째 선주민 대통령이다. 후아레스는 선주민의 권리를 위해 헌신했다."
💬 시카고 도서관에서는 북토크를 어떻게 하나 가봤는데, 글쎄 시카고에 방문한 작가가 더 큰 홀에서 하는 토크의 생중계를 200여 명이 모여 앉아 보는 거였어요. 이 행사를 유수의 은행에서 후원한다는 것도 신기했구요. 이때도 우연한 만남이 있었으니, 북토크의 주인공이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을 쓴 개브리얼 제빈이었고,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역자 엄일녀가 바로 《한편》 다음 호인 '유머'의 필자라는 사실.
💬 많은 구상이 있었던 미국 방문. 《한편》 '쉼' 호에서 친구의 배려로 #아웃오브서울을 실행하며 삶을 쇄신한 저자 김진영의 이야기를 부러워했는데, 저도 좋은 기회로 시카고 친구 집에 거점을 둘 수가 있었어요. 아침에 친구와 아침을 먹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저녁에 다시 모여서 또 오붓하게 차려 먹고…… 이런 조용한 생활을 하다가 한번씩 폭주하고 그랬습니다. 그사이 민음사의 최고 유명한 책을 마침내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다들 이런 책을 읽고 있었다니…….
💬 이번 여행의 가장 큰 계획이었던 미국 대륙횡단 기차 여행. 시카고에서 '캘리포니아 제퍼'를 타고 샌프란시스코까지 50시간 동안 여행했는데요. 엉덩이가 네모가 되겠다, 책을 많이 읽을 수 있겠다 같은 예상은 틀린 것으로 밝혀졌네요. 넓고 넓은 미국의 대평원을 열 시간씩 내다보느라 책을 펼칠 시간은 많지 않았어요. 식당칸에서는 미국인들과 작은 대화를 해야 했고…… 제일 즐거웠던 건 창밖으로 소, 말들이 자유롭게 노니는 모습을 만나는 거였네요. 사슴도 라마도 봤어요. 
💬 드넓은 미국에서는 많은 야생동물들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부두에서 야생 바다사자들을 보고 또 봤네요. 태평양 서쪽에 면한 캘리포니아 해변에서는 물떼새와 도요새를, 미시간호를 따라가는 호변에서는 걸어다니는 기러기를 실컷 봤는데요. 이건 다음 독서 모임에서 읽기로 한 『주폴리스: 동물 권리를 위한 정치 이론』을 이해하기에도 좋은 경험이었어요. "인간의 이동성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을 자치 공동체의 완전한 내부인도, 완전한 외부인도 아닌 상황으로 이끌 것이다."(『주폴리스』 서론) 이런 사정은 인간 근처에 사는 캘리포니아바다사자에게도, 큰캐나다기러기에도 해당하니까요.
역사가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는 “역사학의 기본 영역은 시간이지만, 미국인들 생각의 기본 영역은 공간이다”라고 했다. 미국인들은 시간보다는 공간에 대한 감각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이주영 1995) 

이 말은 여러 해석을 낳을 수 있지만, 미국의 많은 논자들이 강조하는 건 미국인들의 잦은 공간적 이동성이다. 미국은 늘 이동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1980년대에 나온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일생 동안 평균 13번을 이사하고(영국인들은 8번, 일본인들은 5번), 10회 직업을 바꿨다고 한다.(Time-Life 1988)

1995년과 2000년 사이에 미국 인구의 46%가 이동을 경험했다. 직업 보유 기간도 평균 6.9년으로 프랑스 10.4년, 독일 10.8년, 일본 11.3년에 비해 훨씬 짧다. 심지어 종교도 자주 바꾼다. 신에 대한 믿음은 미국인 58%, 프랑스 12%, 영국 19%였지만, 성인 미국인의 25%가 개종을 경험했다. 전 인구의 4분의 3이 평소 기부를 하는 미국인들은 유동성에 대한 한계 등을 혐오해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세금은 GDP의 3분의 1 정도로 스웨덴 52%, 벨기에 프랑스 40%에 비해 훨씬 적다. 브룩스는 이런 통계들을 거론하면서 "미국의 예외주의는 바로 에너지, 잦은 이동성, 더 나은 상태를 지향하는 정신"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혹 이동성은 주로 국토 사이즈와 관련된 문제는 아닐까? (중략) "미국에 도착한 유럽인은 처음에는 관점뿐만 아니라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 제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 점차 자신의 스케일을 넓히게 된다. 이전에는 300킬로미터 거리가 상당히 멀게 느껴졌지만 미국에서는 아주 가까운 거리처럼 여겨졌다. 미국의 공기를 마시자마자 이전에 있던 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규모로 틀을 세우고 설계를 시작하게 된다.


《인물과사상》 2010년 6월호에서



“역사학의 기본 영역은 시간이지만, 미국인들 생각의 기본 영역은 공간이다.” 기차에서 유일하게 읽은 『美國史』의 이 인용구가 아주 강렬했는데요. 이 점은 '반만년 역사'를 말하기 좋아하는 한국과 대조를 이루기도 한단 말이죠.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저의 기획은? 프론티어 정신으로역사학의 기본 영역은 시간이지만, 미국인들 생각의 기본 영역은 공간이다.” 기차에서 유일하게 읽은 『美國史』의 이 인용구가 아주 강렬했는데요. 이 점은 '반만년 역사'를 말하기 좋아하는 한국과 대조를 이루기도 한단 말이죠.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저의 기획은? 프론티어 정신으로 사람들을 만나자. 이 프론티어 정신이란 게 선주민을 적대하는 것인지, 공존하다가도 몰아내는 것인지, 다른 방법도 있는지는 좀더 연구해야겠지만요.(도와줘 세영)
아아 저는 캘리포니아바다사자가 되고만 싶네요. 저렇게 누워 있다가 미끄러져서 바다수영도 하고 물고기도 잡아먹고……. 인용된 문장을 읽으니 점심시간에 산책하다가 만난 얼룩고양이가 떠올라요. 도로를 가로질러 인간들 사이를 지나가던. 저도 『주폴리스』를 이제 펼쳐야겠어요.

옛날 미국 스크루볼 코미디 영화를 보면 기차에서 낯선 이들이 만나면서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지던데…… 식당칸에서는 무슨 일이? 새벽 편집자님의 기차 여행 이야기를 더 청합니다……. 한편 위의 2010년 글에 인용된, 1980년대 미국인들의 공간적 이동성에 대한 통계가 무척 놀라워요! 잦은 이사와 이직…… 저는 상상만 해도 머리가 팽팽 도는 것 같은데요. (첫 회사에 아직 다니고 있는 사람)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일단 경계하기에서 시작하는 저도 미국 공기를 마신 유럽인들처럼 "점차 자신의 스케일을 넓히""상상도 못할 규모로" 설계를 할 수 있을까요…….

'공간과 상상력'이라는 키워드는 지금 재미있게 읽고 있는 『변경의 사상』과도 통하는 것 같아요. 이 책에서는 미국이든 중국이든 세계의 절대적 중심이 없어진 지금, 모든 지역은 크든 작든 '변경'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래서 일본, 홍콩, 대만, 한국처럼 지리적으로 주변에 있었던 나라들이 키워 왔던 유연한 상상력이 더 중요한 시대라는 거예요. 일본과 홍콩의 연구자, 평론가가 역사, 문화, 정치를 가로지르며 주고받는 대화가 무척 재미있답니다. 
화제의 책 『페미사냥』 저자 이민주의 직강이 옵니다!
🌟 이렇게 답장을 드릴만큼 좋았습니다. :) 보내주신 책소개 좋았어요. 틈나는대로 읽어볼 생각이에요. 

🌟 한편의 편지 넘 사랑이에요 🥰 세 분의 이야기 각자다 소중하여요
 
🌟 크리스마스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요즘!  미리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 <재앙의 지리학>, <오늘날의 애니미즘>, <감정의 문화정치>까지... 전부 책장에 잠들어 있는 책인데 세영 편집자님의 레터를 읽고 나니 독서 욕구가 샘솟습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사랑은 낙엽을 타고>를 변주해서 '독서는 레터를 타고'라고 말하고 싶어져요 ㅎㅎ  한편 레터를 네 번, 혹은 성탄절에 휴재하게 되면 세 번만 받아 보면 올해가 저물겠네요. 올 한해 한편 레터 덕분에 수요일이 행복했어요 ^__^

🌟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다양한 책 리뷰랑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는 느낌 아닌 느낌.
한편 지리산에서는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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