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적인 영화관입니다.
005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인생> (1994)
 
#중국사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史적인 영화관>의 에디터 챙구입니다. 2022년 새해가 밝아 여러분께 인사드린 게 얼마 전이었는데 어느덧 구정이 되었네요. 다들 따뜻한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사적인 영화관에서는 지금까지 한국사와 서양사를 다룬 영화들을 소개해 드렸었는데요, 이번에는 여러분들을 중국으로 모셔볼까 합니다. 사적인 영화관에서 소개드릴 첫 번째 중국사 영화는 비로 장예모 감독의 <인생>(1994)입니다.

 

🎞 <인생> (1994)
  • 감독 : 장예모
  • 출연 : 갈우, 공리 등
  • 장르 : 드라마, 역사
  • 러닝 타임 : 2시간 13분
  • 스트리밍 : 왓챠 플레이
  • 원작 : 위화, <인생>
  • 수상 : 1994년 칸 영화제 최우수 남우주연상(갈우), 심사위원대상(장예모)
  • 네이버 평점 ⭐9.32

<인생>은 중국 현대사의 굴곡을 진솔하게 담아낸 영화입니다. 영화에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푸구이라는 주인공의 인생을 통해 현대 중국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책의 챕터처럼, 시기별로 나뉘어서 진행이 되는데요. 1940년대, 1950년대 그리고 1960년대 이후까지 긴 세월을 담고 있습니다. 각각의 챕터들은 당대 중국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반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사건들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서 직접적으로 전달되기보다는 주인공 푸구이의 인생으로 관객의 시선을 돌림으로써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영화에서 은근하게 다뤄졌던 중국 현대사의 세 가지 사건을 좀 더 자세하게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레터를 읽고 영화를 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해드리려고요.


영화에 나타나는 세 가지 사건은 바로 국공내전,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입니다. 이 중에서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은 오늘날 중국 사람들은 물론이고 당대 사람들도 인정하는 마오쩌둥의 아주 큰 실책이었어요. 그리고 영화에는 이런 면모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공산정권의 부정적인 면을 보여준다고 해서 제작 당시에 중국에서 개봉되지 못했답니다. 그리고 장예모 감독과 주연배우 두 명은 5년간 영화 제작 금지라는 제재를 받기도 했어요. 훗날 이 영화가 장예모 감독의 역작으로 평가받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죠.

🎬장예모 감독은 누구인가요?


  • 세계 3대 영화제(베니스, 베를린, 칸)에서 모두 최고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거장
  • 연출작 : <홍등>(1991), <인생>(1994), <집으로 가는 길>(1999), <그레이트 월>(2016) 등
  • <인생>에서 드러나는 사건들을 직접 경험하였고, 이런 경험 덕분인지 장예모 감독은 중국의 역사와 개인의 삶을 엮는 작품을 주로 제작하였어요. 

그런데 이런 제제는 오히려 <인생>이 1940~60년대 중국의 모습을 잘 담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개봉을 금지해야 할 정도로 당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이죠. 이런 제제들은 이 영화가 칸 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하자 곧 풀려났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세 가지 사건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부터는 영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으니 스포일러에 주의해주세요!

👩‍🏫오늘의 도우미! 중국 근현대사 연표


오늘은 여러 사건들을 위주로 설명해드릴 예정이라, 연표를 먼저 보여드릴게요. 함께 보면 더 쉽게 정리가 되지 않을까요?


  • 1932 일본 만주국 설립
  • 1937 중일 전쟁, 국공합작
  • 1946~1949 국공내전
  • 1949 중화인민공화국 설립(마오쩌둥)
  • 1958~1960 대약진 운동
  • 1966~1976 문화대혁명
  • 1976 마오쩌둥 사망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국공내전 (1940년대)

주인공 푸구이는 지주 집안 출신의 부유한 도련님으로 매일매일 도박장에 가서 허송세월하며 가족들에게 근심을 사고 있었습니다. 매일 도박을 하며 재산을 날리던 그는 결국 집 문서까지 빼앗기며 완전히 패가망신하고 마는데요. 늙고 병든 노모에 어린 자식까지 그가 먹여 살려야 할 가족들이 있기에 그는 이전에 재능을 보였던 그림자극을 하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극단을 꾸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그림자극을 선보이던 와중 그는 전쟁에 휘몰리게 됩니다.

 

이 전쟁이 바로 1946년에서 1949년까지 있었던 국공내전입니다. 국공내전은 장제스가 이끌던 국민당과 마오쩌둥이 이끌던 공산당이 중국 내륙의 정권을 두고 벌어진 전쟁이었어요.

🔍史적인 포인트! - 국공내전은 왜 일어난 건가요?

 

우선 193,40년대 중국의 국내외 정세를 살펴봅시다. 1932년 일본은 한반도 위쪽 만주에 이름만 국가인 만주국을 수립하고 1935년부터 중국 내륙으로 야금야금 진출하기 시작했어요. 한편 당시 중국의 정세는 어땠냐면요. 장제스가 이끄는 자유주의 노선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이 이끄는 사회주의 노선의 공산당이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었어요. 일본의 간섭이 점점 정도가 심해지고 결국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공산당이 국민당의 장제스에게 함께 항일투쟁을 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래서 두 당은 잠시 세력 다툼을 멈추고 함께 일본에 저항했는데요. 이것이 바로 국공합작입니다. 그러나 국공합작 과정 속에서도 둘 사이에는 여러 차례 세력 다툼이 존재했어요. 일본이 패망한 이후 1945년 양측은 서로 내전을 피하고 정치의 민주화와 함께 중국의 독립, 자유, 부강을 위해 뜻을 같이하자는 협정을 발표했어요. 그렇지만 이는 명목이었을 뿐이었고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는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 전쟁이 바로 국공내전이었어요.

 

공산당은 봉건적인 정책들을 비판하며 당시 농민들에게 토지 개혁을 약속했어요. 이 약속을 통해 이들은 민중들에게 많은 지지를 얻었고 이를 기반으로 해서 국민당을 몰아낼 수 있었습니다. 전쟁의 결과 공산당이 승리하여 마오쩌둥은 오늘날의 중국인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고 패한 장제스와 국민당은 대만으로 거점을 옮겼어요.

<인생> 중
공산군의 포로가 된 푸구이(왼쪽)

푸구이는 전쟁터에서도 자신의 생계수단이었던 그림자극 도구가 담긴 궤짝을 이리저리 들고 다니는데요. 생명이 위태한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가지고 다녔던 보람이었던 걸까요? 공산당의 포로가 된 그는 그곳에서 공산당 군인들을 위해 그림자극을 선보입니다. 그리고 낮에는 대포나 군수물품을 나르는 허드렛일을 담당했어요. 그래서 그는 귀향하기 전 공산당을 위해 복무했다는 증명서를 받아 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공산당이 정권을 차지하자 그는 이 증명서를 엄청나게 소중하게 여깁니다. 이 낡은 종이 쪼가리를 액자에 모셔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어요. 왜냐하면 푸구이는 지주 집안 출신이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정권인 공산당에서는 위험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 증명서가 푸구이와 가족들을 지켜줄 수 있는 수단이었어요. 공산당에 충성한다는 증표인 셈이죠. 이런 요소들이 당시 정권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장치라고 생각이 들어요.

약진인가 후퇴인가, 대약진 운동 (1950년대)


1950년대가 되고 푸구이는 집 안에 있는 모든 쇠붙이들을 죄다 꺼내놓습니다. 그리고 촌장님이 이걸 수거해가죠. 촌장님은 이 잡동사니들을 왜 가져간 걸까요? 바로 마을에서 농민들이 제철 작업을 했기 때문이에요.

 

마오쩌둥은 공산주의 진영의 제1 국가였던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 단기간에 급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룩하고자 했어요. 그래서 그는 일반 농민들로 하여금 마을에 작은 용광로인 토법고로를 설치하게 하고 여기서 제철 사업을 하게 했습니다. 철강은 근대화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에요. 각종 운송수단은 물론이고 물자를 생산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철강이에요. 우리나라도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던 때에 중요시되었던 사업이 바로 중화학 공업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농민들은 집안에 있는 각종 쇠붙이들을 가져와 함께 철을 만들었어요. 영화에서는 푸구이가 마을 제철소에서 그림자극을 하며 열심히 노동하는 마을 사람들의 사기를 돋우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정부는 각 마을에 할당량을 부과했는데요, 이를 채우기 위해서 노동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밤낮으로 동원되었습니다. 푸구이의 어린 아들도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어린 아들은 계속 노동에 동원되어 너무 피곤한 나머지 학교에 가지 못할 정도로 잠에 취해있기도 합니다. 

<인생> 중
수거해 온 쇠붙이들을 토법고로에 모으는 촌장님의 모습
🔍史적인 포인트! - 대약진 운동은 성공했나요?

 

결론만 말하자면 대실패였습니다. 농민들이 만들어낸 철은 정확한 공정 과정에 따른 것이 아닌 데다가 애초에 농민들은 전문 대장장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과물은 질이 매우 떨어져서 거의 쓸모가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괜히 멀쩡한 농기구와 물품들이 마오쩌둥의 헛된 이상에 희생된 것이었죠. 더불어 토법고로를 운영하기 위해 산의 나무들을 죄다 베어 땔감으로 사용해서 산사태나 홍수의 피해를 그대로 입어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어요. 또 수많은 사람들이 노동에 과도하게 동원되었고 아사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확한 수치는 파악되지 않지만 대략 3,000만 명 정도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마오쩌둥의 욕심이 불러온 참담한 결과였어요. 약진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침체되고 후퇴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대약진 운동이 참담하게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푸구이와 마을사람들이 토법고로에서 즐겁게 그림자극을 즐기며 사기를 돋우는 모습은 참 가슴 아픈 장면입니다.


모든 것을 파괴해버린 혁명, 문화대혁명 (1960년대)


1966년부터 10년간 중국은 역사상 가장 어이없는 일을 겪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자기네 문화유산을 죄다 파괴하고 엘리트들을 탄압하여 문화적으로 엄청나게 퇴보한 일이었는데요, 바로 문화대혁명입니다. 이 역시 대약진 운동에 이은 마오쩌둥의 커다란 실책 중 하나였습니다.

 

문화대혁명은 사회주의 이념에 배치되는 봉건적 사상과 문화를 타파하자는 운동이었는데, 그 실상은 마오쩌둥의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문화대혁명에 앞장섰던 것은 10대들로 구성된 홍위병이라는 집단이었는데요, 이들은 마오쩌둥에게 과도하게 충성을 맹세한 광적인 집단이었어요. 이들은 사회주의 이념이 아닌 모든 것을 배척하고 파괴했는데요, 이 때문에 중국의 오랜 전통문화유산이 죄다 파괴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공자의 무덤이 훼손되었으며 그 외에도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 등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유산이 파괴되었어요. 홍위병은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당대 지식인들까지 탄압하였는데요. 이들은 엘리트들을 낡은 사상의 소유자인데다가 자본주의 노선을 탄다는 프레임을 씌워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등 대대적으로 탄압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영화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우선 푸구이가 아끼던 그림자극 도구들은 고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불태워집니다. 단순히 그림자극 도구가 불탄 것 그 이상으로 연극이라는 무형문화도 함께 소실되어간다는 것의 증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주인공 푸구이의 딸이 출산을 위해 병원을 찾았는데 병원에는 14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여학생이 의사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 간호 학교 출신 홍위병들이 병원을 점령하고 의사들을 자본주의 엘리트로 몰아가 죄다 투옥시켜버린 것이었죠. 출산이라는 굉장히 중요한 시점에 의사가 없다니,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푸구이와 가족들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영화에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인생> 중
병원을 점령한 홍위병

한 편의 그림자극처럼…


<인생>은 푸구이가 앞서 설명드린 현대사의 여러 소용돌이에 휘몰리며 어떻게 그가 인생을 살아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한 가정의 가족으로서, 한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인생살이를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잘 표현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레터에서는 영화를 좀 더 쉽게 이해하라는 차원에서 역사적 사건에 집중해서 다루었지만, 단순히 중국 현대사의 흐름만 있는 역사적 영화라기에는 이것 외에도 영화가 담고 있는 무게가 크다고 하고 싶어요. ‘인생’이란 말은 익숙하지만 참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만 내가 정말 잘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인생>속 푸구이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고통 속에서 귀인을 만나기도 하는 우리네 삶의 여정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어요.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 푸구이도 인생의 해피엔딩을 꿈꿨습니다. 푸구이가 연기하던 그림자극의 주인공은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끝을 맞이합니다. 푸구이도 그 주인공처럼 행복하게 끝나는 삶을 원했을 것입니다. 인생이 그의 뜻대로 되지 않고 아픔을 겪고 기뻐하고 또다시 슬퍼한다고 해도요.

이번 호에서는 처음으로 중국사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역사적 사건을 위주로 설명드리다 보니 혹시 지루하지는 않으셨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렇지만 영화 자체는 어렵지 않게 보실 수 있으니 기회가 되신다면 꼭 한 번 보기를 추천드리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또, 주시는 피드백들은 모두 소중히 잘 읽고 있습니다. 천천히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구독자 여러분 모두 즐거운 설 명절 보내시고, 저희는 16일에 다시 만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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