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나는 6평 방에 살고 있어.
침대 옆에 흰 책상이 꼭 붙어 있고, 그 옆에는 옷장, 그 바로 옆에는 냉장고가 있지.
창이 서쪽을 향해 나 있어서, 맑은 날 오후부터는 볕이 방에 오래 머물러.
구석구석 빠지는 곳 없이 환하게.
나는 이 방에서,
글을 쓰는 책상에서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넷플릭스도 봐.
요가를 하려면 건조대를 접어야 하고, 친구가 와서 자고 가는 날이면 의자를 현관문까지 끌어다 놓아야 하지.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그래도 이 작은 방에서 하지 못 할 일은 거의 없어.
그런데 한 가지.
내가 이 방에서 하지 않는 일이 있어.
그건 바로 버거운 감정과 생각을 소화시키는 일이야.
이곳은 무언갈 숨길 여유가 있는 공간이 아니라서, 적나라해서.
그런 것들을 이 방에서 처리했다가는 오래 그 흔적에 괴롭기 때문이야.
그래서 어려운 생각과 감정이 들어차는 날이면 바로 방으로 돌아오지 않고, 동네의 작은 놀이터에 들르곤 해.
그곳 벤치에 앉아 감정과 생각이 활기를 잃길 기다려.
조곤조곤 그것들을 따져보기도 하고, 휴대폰을 붙들고 글을 쓰기도 해.
여의치 않으면 그냥 그대로 그곳에 두고 오기도 하고.
그런 후 방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내 방은 안전해.
어떤 생각과 마음을 그곳에 풀어놨든,
다음날이 되면 놀이터는 언제나 같은 표정으로 거기에 있어.
물리적으로 너른 공간은 아니지만, 그럴 때면 그 공간이 무한하게 느껴져.
그 점이 위안이 돼.
너무 기쁜 일이 있었던 날.
너무 힘든 일이 있었던 날.
어려운 말을 전해야 할 때.
어려운 말을 들어야 할 때.
감정이 휘몰아칠 때.
생각의 늪에 빠질 때.
나는 놀이터에 가.
위안을 받아보려고, 작은 방을 내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지켜내려고.
결, 너에게도 위안이 되어주는 공간이 있니?
*
요즘에는 특히 더 놀이터에 자주 들르고 있어.
요즘 나의 방은 공부하는 공간으로 주로 기능하고 있어서, 다른 자극은 줄여주어야 하거든.
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매일같이 일어나고, 그래서 놀이터에서 마음껏 기뻐하고 또 슬퍼한 후에 방으로 돌아와 소화된 마음들은 일기장에 넣어두고, 공부를 하고 있어.
놀이터에게 더욱 고마운 요즘이야.
*
곧 피어날 꽃들을 기다리고 있어.
특히 밤산책 길에 마주할 흰 목련을.
따듯해지는 날씨 속에서 이번 한 주도 편안히 지내길 바랄게.
2023.03.05. 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