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빛인. 이름이 불려서 깜짝 놀랐죠?😇 댓잎레터는 여러분들의 행복을 위해 매일 발전하고 있답니다. 혹시나 호칭을 변경하고 싶다면 여기에서 닉네임을 수정해주세요.
오늘 뉴스레터가 좀 길어요. 레터를 읽기 전 주의사항을 꼭 숙지해주세요! 오늘도 끝까지 읽어주실 거죠, 한빛인?
⚠️ 안내사항⚠️
화려한 막이 이제 곧 올라가기 전에 몇 가지만 주의해줘요😉
세상에서 제일 편한 옷을 갈아입고-🎶
제일 좋아하는 자리에 누워-🎵
배터리가 바닥나지 않게 조심하고-🎶
댓잎상태를 항상 유지해줘요-🎵
☑️ 본 레터는 이전 레터 2배 분량입니다.
☑️ 하지만 끊어 읽는 것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 마음의 준비를 하고 미리 화장실에 다녀오세요.
☑️ 눈물이 차오를 수 있으니 가급적 혼자 있는 공간을 추천합니다.
☑️ 하루를 마무리한 후, 조용히 읽으면 좋습니다.
바로 시작합니다. |
지난번, 한빛고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봤는데요. 이번에는 한빛고등학교의 매우 '초창기 모습'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기숙사가 없었던 때는 어땠고, ‘한빛’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는지 궁금하셨다면 아주 잘 오셨어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한빛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한빛고 국어 선생님 정혜영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혜영쌤은 어떻게 한빛고 교사로 오게 됐을까?
🌳 : 선생님은 한빛고가 설립된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 : 내가 97년도에 2월에 대학을 졸업했어. 그리고 3월 1일 자로 서울에 있는 한 여자실업고등학교에 취직을 한 거야, 교사로. 거기서 생활을 하다가 내가 다니는 교회 안에서 대안교육운동을 접했는데, 거창 고등학교 이야기를 딱 보는 순간 갑자기 마음속에 ‘이런 학교를 가고 싶다’ 하는 생각이 확 드는 거야!
근데 사실은 내가 처음에 취직했던 학교도 그때 당시로는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였어. 주간 야간을 같이 하는 학교였지. 주간은 청소년 학교인데, 서울에서 실업계 고등학교로 오는 아이들의 아픔들이 있어요. 주간에는 그런 아이들을 돌봤고. 야간은 엄마들 학교야. 전쟁, 가난 이런 것들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전혀 못 얻었던 80대 할머니부터 30대 아줌마인데도 검정고시가 필요했던, 학교를 못 다니고 바로 공장으로 취직했던 여성들을 위한 학교였지. 이렇게 주간 야간으로 병행하는 학교였거든.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살았는데 딱 한 가지가 문제였어. “서울”
서울이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 너무 정서적으로 힘들었는데, 내가 다녔던 교회에서 대안교육 관련 교사모임들이 있었어. 관련 이야기들을 내 고등학교 선생님하고 편지로 주고받았는데 선생님께서 ‘광주전남 지역에서 지금 새로운 학교 운동 모임을 시작하고 있다’ 알려주시는 거야.
어때, 내려오고 싶잖아. 당시에 ‘새로운 학교 설립 준비 모임’ 이렇게 한겨레 신문에 실려 있었어. 선생님께서 그걸 편지에 오려 붙여서 보내주신 거야. 사람이 어떤 순간이 되면 마음이 ‘쿵’ 하잖아. ‘설레고’.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쿵’ 했지.
좀 지나니까 ‘선생님을 모십니다’ 이렇게 오더라고? 그래서 바로 원서를 냈지. 그리고 새로운 학교의 첫 해, 여기로 시험을 보러 왔지. 아무것도 없는 학교. 여기가 허허벌판이었거든. 기숙사도 없고, 다 풀밭이고.
🌳 :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 터에?
🌿 : 본관 건물이 훨씬 낡았지. 양쪽 교실은 없었고. (볼록할 철 모양의 학교 모습을 그리며) 정말 이렇게 생겼었지.
🌳 : 진짜 딱 학교 모양이었네요. |
🌿 : 면접 보러 왔을 때 나한테 편지 보내주셨던 선생님이 광천터미널에서 만나서 학교까지 태워다 주셨어. 내가 고등학생 때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만났던 선생님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선생님이 ‘너는 서울하고 안 어울려’라고 하며 주고받았던 인연 속에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그렇게 1년 정도 한빛고를 지켜보고 기다리고 설렜던 시간들을 서울에서 보내고, 여기 딱 내려와서 새로운 학교에서 지금까지 24년을 보냈지. 98년도에 제2의 교사의 삶이 시작된 거야.
🌳 : 선생님은 왜 다른 대안학교 말고 한빛고에 오는 걸 꿈꾸셨나요?
🌿 : 일단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촌스러운 거 같아. 너무 세련되고 너무 도시적인 게 안 어울리는 거야. 이런 것보다는.. 막 시작하는 학교라는 게 일단 매력적이었어. 도시하고 좀 떨어져 있다는 것도 나한텐 매력적이었고, 또 기독교 이념을 바탕으로 시작을 하는 것도 좋았고.
그런 거 있잖아. 마음에 이렇게 딱! 꽂히는! 느낌이 딱 오는! 내가 이 학교와 얼만큼 어울릴지,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가고 싶다’라는 느낌이 들었어. 연이라는 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는 어떤 섭리적인 것 말이야.
초창기 한빛, 그리고 동문회
🌳 : 초창기에 한빛고 입학하신 분들은 어떻게 학교 소식을 접하고 입학하셨나요?
🌿 : 새로운 학교를 만들려고 준비했던 분들 중에 학부모들이 많았어. 그때 당시는 한참 광주 전남 지역에 민주화 운동 관련 활동하셨던 분들도 많았고, 5.18 관련 활동하셨던 분들도 많고, 시민 사회단체 활동하신 분들도 많았고. 그분들 자체가 ‘우리 교육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는 어떤 반성과 성찰이 있었고, ‘내 자녀들을 보낸 학교는 이제 일반 주입식 입시 위주의 학교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성장할 수 있고 또 서로가 서로를 살펴볼 수 있는 대안적인 교육을 하고 싶다’라는 열망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았어.
초창기엔 학교 설립 자금을 출자해 주셨던 분들의 자녀들도 많았고, 지역의 교사들 또 지역의 시민단체 쪽에서 활동하셨던 분들 자녀들도 많이 왔지.
우리가 초창기 100명을 모집했거든. 네 반을 25명씩. 근데 나중에 신문이나 이런 것들을 보고 또 지원해서 오는 친구들도 있는 거야. 그래서 초창기엔 학생 스펙트럼이 아주 넓~~~어. 다양한 아이들이 모였었고.. 아주 버라이어티했지.. 아주 다양했어.. 아주!!
근데 또 그게 참 밀도 있었나 봐. 1기 애들 중에 네 쌍의 부부가 탄생했어. 지금 보면 고등학교 때 사귀어서 결혼한 동문 커플도 있지만 나중에 사회생활 하다가 ‘다시 한빛’ 동문회에서 만나는 커플들도 있잖아. 같이 학교밥 먹고 살았던 가족 같은 친구들이 진짜 가족이 되는 거지.
고등학교 시기가 뭐가 안 정해져 있는 시기잖아. 대학이라는 거나, 진로가 명확하지 않은,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불안하기도 하면서도 또 가장 순수한 시기이잖아. 그러니까 같은 시기에 비슷한 고민과 비슷한 삶을 살았던 것. 또 함께 살았던 공간에 대한 어떤 추억도 있고. 서로 가식 없이 만나는 게 참 좋은가봐. |
선생님들이 사감쌤을 병행하던 시절
🌳 : 선생님은 원래 국어 교사셨나요?
🌿 : 원래 국어 교사였지.
🌳 : 초창기에 사감선생님으로 계셨다고 들었는데요.
🌿 : 병행했어. 이 학교에 국어교사로 왔는데 그때는 사감 선생님이 따로 안 계셨어. 누군가가 같이 사감일을 했어야 됐지. 그래서 배수홍 선생님, 나, 지금은 안 계시는 박정희 선생님, 최종재 선생님. 이렇게 네 명이 자원을 했어. 낮에는 교사 밤에는 사감인 거지. 애들하고 하루종일 같이 지내니까 밤낮을 알 수 있었고, 사실 그걸 꿈꾸기도 했지. 내 비전 중 하나가 가정과 일터와 개인적으로 선교지가 같이 합해지는 공간이었어. 꿈의 공간이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그렇게 3년 정도 사감일을 병행했어.
다른 선생님들도 주말에 근무를 지원해 주셨고, 그럴 때 나는 주말에 쉬었고. 다른 선생님들도 한 달씩 이렇게 있으셨어. 그게 가능했던 게 그땐 미혼이었고 아이들과 있는 게 재밌었고 또 체력이 됐어. 지금은 체력이 안되고ㅎㅎ 또 지금은 내가 키워야 되는 우리 집 애들도 있고. 어쨌든 사감 선생님이 모셔지고 나서 선생님들은 조금씩 다 기숙사에서 차츰차츰 발을 뺐지.
기숙사조차 없었던 그때 그 시절의 점호…
🌳 : 그때도 기숙사가 있었나요?
🌿 : 1회 때는 기숙사가 없었고 성암야영장에서 지냈어. (성암야영장은 삼인산 너머에 있다⛰😯) 덕분에 에피소드도 많아. 성암야영장에 가보면 새로운 건물 말고 옛날 건물이 있는데, 거기로 하교를 해서 같이 저녁밥을 먹고 그랬지.
🌳 : 혹시.. 걸어 다녔나요…?
🌿 : (웃음) 아니지! 1년 정도 버스를 임대 했지. 관광버스로 애들을 실어 나르고. 주방에서 학교까지 선생님들이 점심밥도 나르고. 먹고 치우고 그랬지. 거기가 산자락이야. 그러니까 애들이 ‘학교를 이리로 오라 그러면 안 돼요?’ 그랬어. 장소가 계곡도 있고 자연 속에서 좋으니까. |
🌿 : 밤이 되면 여기저기 숲속으로 사라지는 애들, 뛰어다니는 애들 많았지. 그때 그 자연이 줬던 아늑함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 그땐 점호를 다양하게 했거든. 예를 들어, ‘오늘은 별빛 점호야~’ 그러면 무조건 밖으로 다 나와. 점호를 누워서 해. 누워서 하늘에 떠 있는 별 보면서 점호를 하고.. ‘오늘은 노래 점호!’ 그래서 막 합창하고. 이런 형태로 1회 때는 한 학년 가지고 밤 산책도 하고 다양하게 점호를 했지. 그땐 점호 자체가 누가 있냐 없냐를 파악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그날의 어떤 감정을 나누던 시간들이었어. 대신 사건 사고도 많았지. |
한빛고 현장체험학습의 시초, 지리산 종주
🌳 : 자기자기, 제과제빵, 요리요리 등 생활예술, 생활기술, 생활교양 수업들이 있잖아요. 1기 때도 이런 특별활동 프로그램들이 있었나요?
🌿 : 그때는 오전은 주로 수업이고, 오후는 거의 일반 선택 과목들이었어. 생활교양, 생활예술 같은 수업의 비중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지.
🌳 : 섬진강 도보기행, 지리산 종주 같은 현장체험학습도 1기 때부터 있었나요?
🌿 : 있었지. 일단 1회는 입학하고 3일 동안 학교 안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했어. (우와) 우리끼리 시간을 보냈었지. 또 삼인산 등반이니 이런 것들도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지.
지리산 종주는 1기 때부터 시작됐어. 98년도 개교하고 봄에 태풍이 있었어. 그래서 봄에 못 가고 가을에 지리산 종주를 갔지. 근데 그때 우리가 얼마나 지혜롭지 못했냐면, 사전 정보가 하나도 없었던 거야. 그러니까 아이들도 막 청바지 입고 가고.(😨) 심지어 우리가 텐트를 치겠다고 그 무거운 거 짊어지고.. 또 버너도 큰 거 있잖아. 그 무거운 것들을 막 다 짊어지고 갔는데.. 지리산에선 산장에서만 자야되잖아. (😱) 다행히 그때 당시엔 당일 산장 예약이 아주 쉬웠어. 하지만 텐트 그 무거운 것까지 다 짊어지고 갔는데 결국 텐트는 못 치고 산장에서 자고, 짐도 다 다시 짊어지고 내려와야 했지. 태풍이 휩쓸고 간 계곡들도 보고 말이야.
근데 그때 좋았던 건 체력적으로는 정말 많이 힘들었는데 아무도 낙오하지 않았어. 서로 모두가 ‘끝까지 완주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먼저 올라가서 자기 배낭 내려놓고, 다시 거꾸로 하산해서 힘들어하는 친구 배낭 메고, 밀어주고 그랬지.
아, 현장체험학습을 다니면서 우리가 타협했던 부분도 있어. 지금은 물티슈를 쓰잖아. 근데 예전에는 물티슈도 못 쓰게 했어. 수건을 물에 짜가지고 그걸로 닦고 다시 쓰고 그랬지. 물티슈 자체가 오염을 시키잖아, 미세 플라스틱. 이 부분도 좀 앞으로 그렇게 가면 좋겠긴 해. 지금은 우리가 너무 편리한 일상, 일회용품에 익숙해져 있어.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리고.
|
🌳 : 처음에 지리산 종주를 추진하셨던 이유는 뭐였나요?
🌿 : 일단 우리의 현장체험학습이 일반 학교의 수학여행은 아니었기를 바랐어. 지리산이라는 곳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의미, 그곳의 생태적인 의미, 또 ‘산에서 온전히 3박 4일을 보내봤다’라는 성취감을 온전히 구현해낼 수 있는 공간이었어. 그래서 지리산 종주를 가기 한 달 전에 국어과에서는 지리산 관련 문학을 공부하고, 사회과에서는 지리산과 관련된 우리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과학과에서는 지리산의 다양한 식물들을 배우고. 모든 과목과 다 병행해서 하나의 프로젝트 형태로 진행을 했었던 거지. 한국전쟁에 관련해서 지리산 안에 있었던 아픔 현장 터도 보고, 다녀와서도 지리산과 관련된 이야기도 나누고.. 같은 지리산이더라도 주제들을 설정해서 그해 그해 갔던 것 같아.
또 1학년 때 지리산을 다녀오고 나면, 애들끼리 ‘우리가 산도 넘었는데, 그 많은 고비도 넘었는데!’ 하면서 할 얘기도 많아지지. 3박 4일 동안 산속에서 지내면서 온전히 서로 교류했던 경험들이 끈끈하게 연결되는 거고! 코로나 때문에 2년 동안 지리산 종주를 못 했는데 이제 다시 부활시킬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우리도 다시 엄청 기대가 커.
🌳 : 저희도 지리산 종주가 진짜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사실 지금 생각하면 못 할 것 같은데, 그때는 쌀부터 시작해서 김치, 캔, 냄비 같은 그 무거운 것들을 다 짊어지고 올라갔잖아요.
🌿 : 그치. 그리고 못 씻기도 하잖아 ㅎㅎ
🌳 : 맞아요😂. 근데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서로 밀어주고 그랬던 경험이 저희한테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
1기부터 24기가 되기까지
🌳 : 1기 때부터 계셨으면 학교가 제대로 된 건물과 완벽한 학교의 모습을 갖춰갈수록 일반화되어지는 느낌을 받으셨을 것 같은데요. 그런 거에 대한 아쉬움은 없으신가요?
🌿 : 내 말은 아니고 시조새급 선배들이 한 말인데.. 어느 날 선배들이 딱 와서 하는 말이 건물이 풍경을 밀어냈대. 구름다리에 앉아서 저 멀리 하늘을 보고 대나무가 살랑거리는 걸 봤는데 지금은 건물들이 그걸 가린다는 거야. 나는 이렇게 말하지. ‘이 안에서만 보려고 하지 말고 학교 주변을 산책하면서 볼 수 있는 그런 것들로, 방법을 바꿔서 얼마든지 보면 되지 않겠냐’ 그래도 아쉬운가 봐.
하지만 요즘 아이들한테는 좋은 시설이 필요하지. 사실 우리 학교가 예전에는 에어컨 들이는 거 하나만 갖고도 며칠을 토론했잖아. ‘생태 위반된다, 이거 있으면 안 된다’ 근데 요새 에어컨 없는 학교는 애들이 안 오려고 그러거든. 변화의 부분들을 너무 고지식하게 거부할 수는 없어. 일반화해 나간다기보다 우리가 얼마나 시대 정신에 맞게, 새로운 시대에 우리한테 부여된 새로운 사명들을 알아차리고 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
이제 마흔이 다 된 1회 때 아이들을 만나는 것처럼 지금 애들을 대하면 어떻게 되겠어. 안 되잖아. 교사는 변하지 않는 진리에 대한, 교육에 대한 확고한 자기 생각도 있어야겠지만 변해가는 아이들을 탓하는 게 아니라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아이들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어떻게 필요한 처방을 할 건지 생각해야 되는 사람인 것 같아. 똑같은 약으로 여기저기를 치료할 수는 없잖아. 작용이 각각 다른 것처럼. 아이들 만나는 거 하나하나에 민감해야 되는 것 같아. 끊임없이 지금 청소년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어떤 아픔이 있는지. 지금 청소년들을 어떻게 만나야 될지 이건 또 숙제야. 해마다 숙제야. 오늘 새 물이 들어오고 내일 또 나가니까.
|
🌳 이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선생님들이랑 학생들 나이 차이도 조금씩 계속 나잖아요. 그럴 때 느껴지는 어려움도 많이 있나요?
🌿 : 있지. 이제 아이들에겐 교사들이 어쩔 수 없는 '꼰대'로 보이겠지. 그리고 이제 안 하려고 해도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들이 있어. 선배들에 대한 자랑이 아이들한테 부담이 될 수도 있고. 자꾸 마음속으로 예전 친구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런 생명력들 같은 것들을 기대하는 것이 지금 아이들에겐 또 부담이 될 수도 있고.
그치만 좋은 건, 늘 10대들을 보는 거잖아. 10대의 끝자락 애들을 보는 거니까 내가 더 젊게 살아지는 거지. 이제 아이들의 생각에 맞춰서, 엄마의 마음을 가지고 더 여유는 있지만 순수함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좋아. 늘 거기에 맞춰서 얘기를 하게 되니까 서로 배우는 것 같아. 그래서 교사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지금 아이들의 어떤 모습들을 보면서 또 배우지.
그리고 사실 또 선생님들이 나이 차이로만 보면 생각의 차이가 많이 날 것 같지만 의외로 한빛고 선생님들이 철이 없거든. (ㅋㅋㅋ) 그니까 또 아이들이 교무실을 제집처럼 드나들면서 시끌벅적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그런 게 참 좋은 것 같아.
🌳 : 그래도 1기, 2기 초창기 때는 학생들이랑 같이 먹고 자고 하셨었잖아요. 지금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보고 있으면 소외감 안 드시나요…? 선생님.. 잘 안껴주자나요..
🌿 : 그치. 그땐 밤까지 같이 잠을 자고 출근을 했으니까. 심지어 기숙사에서 여학생들이랑 밤에 몰래 장난치고 그랬지. 애들이 샤워실 갈 때 발자국 소리만 듣고 몸무게가 발을 때리는 그 느낌만 보고도 ‘너 OO이지!’ 그러면 애들이 막 ‘귀신이다!!’하고 도망가고 그렇게 보냈으니까..
근데 소외감이라기보다는, 나도 한빛에서 배운 게 너무 많아. 예전에는 20대 열정으로 모든 걸 다 같이 하려고 사실 그랬어. 나도 욕심이 많고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20대 30대 40대를 보냈잖아. 근데 50이 되니까 이런 느낌이 드는 거야. 아이들을 바라봐주는 거야. 그리고 좀 더 애들을 기다리게 되니까 예전만큼 큰소리를 안 치고 그래. 여기서 보낸 24년 동안 자연체험하면서, 지리산 종주하면서, 섬진강 걸으면서, 애들을 통해서 많이 배웠어. 24년 동안 한빛에서 보내는 시간이 내 인생의 어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오는 거잖아.
‘한빛’의 의미
🌳 : 아, ‘한빛’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어요? 너무 궁금해요
🌿 : 공모로.
🌳 : 아, 공모..! 공모로 지어졌군요! 멋지다!
🌿 : 엄청난 새로운 학교를 만들기 위한 엄청난 공모 속에 그 이름이 탄생했지.
참 좋은 것 같아. 이게 ‘한빛’이라는 게 원래 ‘큰 빛’이잖아. 근데 이제 큰 빛이 ‘하나 하나 하나 의미를 가진 빛’도 되는 것이고, 또 ‘내가 하나의 빛’이고. 우리 학교 이념하고도 맞는 것 같아.
🌳 : 정말 완벽한 것 같아요! |
🌳 :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랑 이런 대화했으면 진짜 좋았을 것 같아요. 근데 그때는 대학 고민이 너무 커서 거기에 빠져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고민이 있어도 저희들끼리 이야기하고 해결하려고 했죠. 근데 또 결론적으로 막상 대학 가보니까 별거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큰가 봐요.
🌿 : 그 시기가 지나면 그 시기의 문제였던 게 해결되는 게 아니라 문제가 아닌 게 돼. 새로운 문제가 오는 거고, 이게 별 게 아닌 게 돼.
이게 그런 것 같아. 요즘에는 이제 마음의 아픔들이 다들 많고 결국은 사람, 한빛을 그리워하는 것도 그 시대 추억 속의 사람들이 그리운 거고. 사람과의 문제들이 많이 얽히고설키고 하면서 힘들어지잖아. 서로 상처받고, 일이 힘들어서 힘든 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가 꼬일 때 힘들 때가 많아. 그 속에서, 내 안에서 스스로의 빛을 발견해 내서 여기서 (한빛에서) 배웠던 것들을 자기 안에 이렇게, 가뭄 뒤에 막 싹 올라오잖아, 그런 내 스스로 나에게 따스한 힘이 있다는걸.. 난 국어 교사니까 이제 이걸 ‘내재율’이라고 표현할게. 자기 안에 있는 그것들을 틔워 올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알고 그냥 빛으로 살아가면 좋겠어. 지금 애들 고민 많잖아, 고민 속에 빠져 있을지라도 우리의 존재가 이미 빛이라는 것을. 올해 구호가 그거거든. “깜깜한 하늘에 한빛을 비추어라.” 이게 올해 슬로건이야.
우리가 ‘한 빛’이잖아. 빛이 되라고 안 그랬잖아, 이미 빛인 거야, 이미. 그러니까 그냥 빛으로 살면 돼. 자기 안의 빛을 안 꺼뜨리고 자기 안의 빛을 발견하고. 누가 나에게 빛이 돼줄까 하지 말고 그냥 빛으로 살면 돼. 나는 빛이야, 한 빛이야, 하나의 빛이야.
P.S. 학교는 기말고사 기간 끝나고 올 것..!
🌿 : 이녀석들이 꼭 대학 방학하면 학교에 오더라? 너희 종강 때면 선생님들은 다 출제 중인데.. 음미체(음악미술체육) 빼고는 다 출제해야 기말고사 출제해야 돼. 그래서 바빠. 제일 바쁠 때야.
🌳 : 아 맞다, 저희 항상 (대학교) 1학년 때 오면 거기(교무실)에 붙어 있었던 것 같아요, 기말고사 출제기간이라 출입금지라고ㅎ
🌿 : 그러니까 거기에(댓잎레터에) 써줘. “한빛인, 방학하고 바로 뛰어오지 말고 개인적인 시간 좀 보내다가 7월에 와라, 그러면 국수도 한 번 더 먹을 수 있다!” 아이들이 상처를 안 받는 방법이야. ‘우리 졸업하자마자 냉대인가?’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닌걸. (6월엔 선생님들 바쁘시니까 학교 가지 말기! 7월에 가기!) |
언제 어디서나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한빛인···💭 n년 전에도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면?
그 시절 ‘전원귀가🏠’의 추억 속으로 빠르게 모십니다.
이번 대백과와 함께 ‘제 1회 댓케이트’(댓잎 앙케이트의 줄임말로, 한빛인의 모든 것이 궁금한 댓잎레터만의 특별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요.
‘전원귀가’를 주제로 한 댓케이트 결과를 지금 바로 여러분께만 단독공개합니다! 두둥!
<제 1회 댓케이트 : 전원귀가 >
(응답자 수 : 총 46명 / 응답기간: 2022.07.11~07.23) |
1. 드디어 전원귀가다! 당신의 집은 어디였나요? |
🏆 1위 전남, 2위 광주, 3위 경기
역시 전남, 광주 지역으로 향하는 한빛인들이 가장 많았고 경기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강원부터 제주까지 여러 지역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한빛의 다양함이 느껴지네요! 아직도 같은 지역에 사는 한빛인은 얼마나 될까요? 궁금한 게 하나 더 늘었습니다 👀 |
2. 집으로 향하는 당신이 탄 주요 교통수단은? |
🏆 1위 자가용, 2위 시외버스, 3위 고속버스
자가용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편하고 빠르게 집에 갈 수 있고, 한시라도 먼저 가족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겠죠? ‘그 시절(···) 콜밴’과 ‘이종철선생님 퇴근차량ㅋㅋ’ 이라는 흥미로운 답변도 살펴볼 수 있었답니다. |
3-1. 한빛 출발부터 집에 도착하는데까지 총 얼마나 걸렸나요? |
🏆 1위 30분 이내, 2위 3시간 이내 / 그 이상
댓잎레터의 예측과는 다르게 30분 이내로 집에 도착했던 한빛인들이 많았군요! 역대 가장 빨리 걸린 사람과 가장 오래 걸린 사람의 차이는 과연 얼마일까요? 내가 가장 빨리/오래 걸렸다✋ 자신있으신 분들은 댓잎레터로 제보 바랍니다. |
3-2. 한빛 출발부터 집에 도착하는데까지 교통수단을 총 몇 번 갈아탔나요? |
🏆 1위 0번, 2위 2번, 3위 1번
자가용과 30분 이내가 1위를 차지한 것을 보아, 이번에도 역시나 댓잎레터의 예측을 벗어난 0번이 1위! 그 4번 이상 갈아타신 분들 ..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 집에 잘 도착하셨죠..? 늦게나마 박수를 보냅니다. 당신 잘 해냈어 👏 |
4. 전원귀가 때 집에 가서 제일 먹고 싶었던 음식은? |
🏆 집밥, 엄마표 OO 그리고 고기
역시나 집밥이 가장 그리웠던 한빛인들! 바로 구워먹는 고기와 매운 음식, 배달 음식처럼 학교에서 먹기 어려운 음식들이 많이 보였어요. 지금은 학교에서 먹었던 균형잡힌 영양의 급식이 그리울 때도 있는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갈(치)무(조)림 .. 이젠 몽땅 먹어줄게 .. |
5. 솔직히… 전원귀가 때 당신은? (중복투표 가능) |
‘전원귀가’ 단어에 맞게 대부분의 한빛인들이 빠른 귀가를 했군요. 그럼에도 각자의 방법으로 친구들과 더 놀고 싶은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네요! |
6. 기억나는 전원귀가 '썰'이 있다면 알려주실래요? 💬
- 기상악화로 비행기 결항돼서 귀사날 못오고 담날 수업시간에 옴 ……
- 꽤 힘든 나날들을 보내다 집에 가는데 집가는 길 풍경이 많이 바뀌어서 계절을 실감했던 기억
- 집가는데 5분이면 충분합니다👍
- 신학기 귀사 전날 몰래 들어가서 제 자리 찜해놨어용
- 집이 멀어 엄마아빠가 자주 데리러 와주셔서많이 못 다녔던 가족여행을 덕분에 짧게나마 다닐 수 있었어요 😆
- 늦은 전원귀가 날인데 2시간 일찍 도착했어요… 그래서 카페를 갔습죠! 하고잡이 최고😶🌫️
- 저는 1학년 첫 전원귀가 때 .. 집에 가려고 부모님께 전화해서 고속버스 표를 끊으려고 했더니 갑자기 다른 지역으로 오라고,,, 그 당일에 집이 이사를 갔더라고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이사간 집으로 갔어요^^
- 여자친구가 이별편지를 주고 전원귀가때 고민해보고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러고 차였음..
- 버스가 하루에 한 대 뿐이었던 데다가 기사님도 거의 항상 똑같으셔서 나중에는 기사님이랑 서로 인사도 하고 안부도 묻고 친해졌어요 ㅋㅋㅋㅋ "방학이야?" "요새 자주 보네?" 등등.
- 와 넘 오래돼서 기억도 안 나요
- 유슥헤어에서 밥 뭐 먹을지 전날부터 고민한 거 인정
- 차가 끔찍하게 막혀서 다음날 새벽에 도착했어요..
- 매주 집에 가서 전원귀가의 묘미를 몰라요.. 그냥 시끌시끌한 기숙사 앞과 중벤..?
- 살이 너무쪄서 굴러서 귀가해써요🌝
- 귀가, 귀사 모두 콜밴으로 이동하면 참 편했어요. 근데 콜밴 멤버를 모으고 기사님과 시간, 장소 약속을 하는 게 은근히 번거로웠습니다. 그걸 콜밴마스터 10기 황지성이 도맡아 해줬네요. 이제와 생각하니 고마웠고, 그렇게 함께 이동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추억이었네요!
- 집에 갔는데 배 안떠서 학교 하루 늦게 왔어요 청소 안해서 넘 좋았슴당☺️
- 집에서 학교 갈 때마다 공주 휴게소에서 갔는데 늘 엄마가 간지러운 눈으로 배웅해줬다. 애틋해하는거 넘 어색했어...
- 예술제 때 동아리연합부(라떼는 연합부였음....😅)부장을 맡아서 힘들게 공연끝내고 몸살나서 전원귀가 내내 심한 몸살걸려서 3kg 빠져서 학교 돌아온...썰...
- 1학기 전원귀가 끝나고 돌아올 때마다 커플이 정말 정말 많이 생겼던 것 같다. / 귀사날,, 찜질방 간판 보면 도망가고 싶었어요😭
- 가족들 몰래 깜짝방문 하려고 데리러 와달라는 말 없이 대중교통으로만 집에 간 적이 있는데요… 버스만 4번을 탔고요.. 배차 간격 때문에 1시에 출발해서 7시에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자가용을 타고 한빛에서 집까지는 한 시간 반이 걸린다는 것이죠
- 학교 바로 앞이 집이라 집이 먼 친구들이 전원귀가 때마다 집 안가고 저희 집에서 묵었던 기억이 있네요.
|
🧐 이렇게 ‘제 1회 댓케이트 : 전원귀가’의 결과를 살펴보았는데요. 저희도 덕분에 전원귀가를 한 번 다녀온 기분을 느꼈답니다! 여러분도 추억에 잠시 잠기셨길 바라며 응답해주신 46명의 구독자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합니다💚 |
☑️ 이달의 알림
📌 댓잎레터 [프롬한빛]에서 삶을 나눠주실 인터뷰이를 구합니다. 한빛고 졸업생이라면, 누구든지 가능합니다. 한빛고 시절의 기억을 나눠주실 분, 함께 진로를 고민하실 분, 한빛인들에게 인생경험을 들려주실 분 등등 모두 환영합니다! 언제든지 여기로 찾아와주세요.
📌 이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제보가 도착했습니다.
<5살 이름은 아리 !-! 🐶 간식 없으면 개인기 안보여주는 시크남,, 하지만 내 눈에는 세상 제일 기여워 🤍오래오래 아프지말고 같이 살자 🤍> 16기 제은님의 소중한 동생 아리! 진짜 귀여운 아리 보시고 힐링하세요 :)
|
이번 달 댓잎레터를 친구에게 전달하려면 여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