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의 안부 인사
△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2005)
파도의 시선 007
안녕하세요, 열아홉 살에서 스물 한 살이 되어 안부 전하러 온 파도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독자분들 목록을 보니 제 마지막 메일 이후에 구독해주신 분들도 몇 분 계시더라고요. 마지막 메일이 2021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즈음이었으니 우리 모두 두 살씩 컸겠네요.
여러분도 이젠 저를 기억 못하실 거고 저조차도 파도의 시선을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방금 전 우연히 아카이빙 페이지를 발견, 예전 저의 글을 읽어보고... 조금씩이지만 늘어난 구독자분들을 보고 애틋한 마음이 들어 오랜만에 와봤습니다. 돌고 돌아 또 여름이네요.

저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면요, 미대 입시를 실패하고 다시 한 번 수능을 준비하려다가 가족과 문제가 있어 그대로 집을 나왔고, 현재는 혼자 평화롭게 또 열심히 알바도 하고 디자인 학원도 다니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책을 좋아해 많이 읽고요, 옛날부터 들어온 노래들과 새로 추가된 노래들을 그러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답니다.
또 얼마 전엔 저의 생일이었는데요,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다가 오랜만에 정말 행복한 생일을 보냈습니다. 올해 생일이, 제 앞에 놓여진 많은 비생일들을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도망갔던 건 후회됩니다. 그동안 쌓였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이 아쉬워요. 혹시라도 제 글을 기다려주셨던 분들이 계신다면, 정말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제 기억으로 저에게 온 답장은 없었지만 클릭해주시는 분들 덕에 이 세상에서 열아홉 살 그리고 스무 살로 살아갈 힘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나의 글을 읽어주니까. 애틋하고 또 좋은 추억이 되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기억에서 잊혀졌겠지만, 2021년 열아홉의 제가 파도라는 이름으로 보낸 메일들을 모아 둔 아카이빙 페이지 링크를 첨부하겠습니다.


현재의 제가 궁금하시다면, 저는 아주 아주 간간히 블로그를 쓰고 있답니다. 그동안은 일기장만 써오다가 올해 만든 블로그라 별 글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첨부해봅니다.



저는 당신의 지인도, 완전한 타인도 아닌 애매한 위치지만 항상 응원할게요. 오늘 저의 새로운 원동력이 되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노래와 책 그리고 영화 한 편씩 추천해드리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어디서든, 언제나 행복하세요!

2023.06.09
파도로부터
난 어디에 있었던 걸까?
Vacations - Young

I wanted to go
(난 떠나고 싶었어)
I wanted to say
(난 말하고 싶었어)
All things come to pass with time
(모든 건 시간과 함께 지나가겠지만)
But I want everything now to be alright
(난 지금 당장 모든 게 괜찮아졌으면 해)

내 젊음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젊음들을 떠오르게 만드는 노래다. 가사도 가사지만 멜로디가 참 제목과 어울린다고 느꼈다. 최근에 많이 들었고 들을 때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지만 영원히 기억될 날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진은 데뷔 초 즈음의 샤이니 사진인데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데뷔 초 모습을 찾아보게 됐다. 10년도 더 된 날들인데도, 또 이들보다 열 살은 어린 나는 당연히 이 때를 많이 기억하지 못하는데도 묘한 향수에 젖게 됐다.
붉어진 두 눈엔 이유가 없고
나의 혼자는 자꾸 사람들과 있었다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안미옥, 2023, 문학동네)

말에도 체온이 있다면
온몸에 꽉 채우고 싶은 말이 있다

(...)

나는 바다를 통째로 머리에 쓰고
걸어다니는 사람

수척한 천사를 데리고

아슬아슬하게
대담한 사람으로 있고 싶었다

- 안미옥, 론도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중에서)

문학동네 시인선 187번째 시집. 서점 매대에 있던 이 책을 우연히 펼쳐보고 빠져 들어 읽다가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가장 가까운 자리에 두고 틈틈히 읽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안의 시들은 나에게 위로가 된다. 나이에 상관없이, 어리고 (누가 자기 자신이 다 컸다고 생각하겠어!) 불안정한 모든 이들이 사랑할 만한 문장들이 담겨 있고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읽다 보면 어느새 화자의 마음이 되어 나만의 느낌과 감정으로 시들을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좋아한다.
  "스파이 모집 자세한 사항은 면담으로"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2005)

2000년대 초반 일본 영화의 감성이 느껴지는 화면! 큰 메시지 같은 거 없이 가볍게 보기 좋은 영화이다. 좋아하는 배우 아오이 유우가 여주인공의 개성 강한 친구로 출연해서 처음 보게 됐다. 주인공 스즈메는 하루 일과 중 특별한 것이 외국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이 아끼는 거북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 뿐인 누가 봐도 평범한 젊은 주부인데, 어느 날 장을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넘어져 우연히 스파이 모집 공고를 발견하게 된다. 겉보기엔 가장 평범한 사람이 스파이에 적합하다는 걸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의 평범한 일상들을 스파이 활동이라 생각하며 웃음 짓는 순간이 생겼다. 더는 전처럼 내 어떤 평범한 부분들을 기피하지 않고 인정하게 되었다. 평범해보인다고 내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란 것은 아니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귀여운 영화다. 다만 잔잔한 영화 혹은 인디 영화의 무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비추.
혹시라도 답장을 남기고 싶으시다면 ninkia@naver.com 으로 부탁드립니다!
stibee

이 메일은 스티비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