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일흔한 번째 흄세레터

시즌 7의 마지막 레터입니다. 오늘은 그야말로 '여름'에 딱 맞는 소설이자 태양, 작열, 해수욕, 무더위, 과묵, 오후 2시, 그리고 안에서부터 불타오르는 무언가로 가득한 《이방인》을 보내드립니다.


시즌 7. '날씨와 생활'은 어떠셨나요? 님이 가진 사적인 날씨들이 생각나는 독서 경험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그럼 다음 시즌에 반갑게 다시 만나기를 바랄게요. (중간에 깜짝 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어요❤️) 더불어 레터를 더 자주 보낼 수 있고 다양한 콘텐츠로 구성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셔요.


오늘은 《이방인》을 먼저 읽은 정용준 소설가의 리뷰를 보내드립니다💌


줄거리

알제의 청년 뫼르소는 어느 날 양로원에 있던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가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다. 그는 예전 직장 동료였던 마리를 다시 만나 유쾌한 영화를 보고 해수욕을 즐기며 사랑을 나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뫼르소는 한 아파트에 사는 이웃 레몽과 친해진다. 레몽은 변심한 애인을 괴롭히려는 계획을 세우고, 뫼르소는 레몽의 뜻에 이끌려 이 계획에 동참한다. 며칠 후 뫼르소는 레몽과 함께 해변으로 놀러 갔다가 그들을 미행하던 아랍인들과 마주친다. 그 아랍인들 중에는 레몽 옛 애인의 오빠가 있다. 싸움이 벌어져 레몽이 다치고 소동이 마무리되지만 뫼르소는 답답함을 느끼며 시원한 샘 가로 간다. 그곳에서 우연히 레몽을 찔렀던 아랍인을 만난 뫼르소는 그가 꺼내는 칼의 강렬한 빛에 자극을 받아 자신도 모르게 품에 있던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데…….

뫼르소에게 묻는다



마음을 보여줄 수 없어 인간은 슬프다. 내면과 이면에 존재하는 그것들은 말해지지 않으면, 표현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게 된다. 나는 내가 복잡하다는 것을 알지만 타인의 복잡함은 이해할 수 없다는 삶의 아이러니. 이해했다는 오해와 알고 있다는 무지 속에서 인간은 소외되고 배제된다.


엄마가 죽어도 울지 않는 인간이 있다. 집단과 관계 속에서 좀처럼 웃지 않는 인간이 있다. 자신의 행동을 납득되게 설명하지 않는 인간이 있다. 법 앞에서 뉘우치지 않는 인간이 있다. 선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인간이 있다. 가족과 친구, 법과 제도가 버린 죄인. 구속되고 감금당한 채 결국 죽음에 이른 실패자. 비극 속 주인공의 결말은 처참했지만 비극에 눌리지 않은 인물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오늘의 현대인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다. 사람들은 그 눈동자를 마주하지 못한다. 부끄러운 듯 눈을 돌리고 정체불명의 감정에 휩싸여 고개를 푹 숙인다. 나는 인사이드에 있는데, 나는 집단에 속해 있는데, 나는 법과 제도의 보호 속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


불친절한 문체와 건조한 문장. 긍정적인 면을 찾을 수 없는 비사회적인 인물. 기분 나쁘고 꺼림직한 사건과 사고. ‘해피’하지 않은 ‘엔딩’. 《이방인》은 80여 년 전에 출간된 소설이다. 이야기는 오래되었고 주인공 뫼르소는 허구의 인물일 뿐이다. 하지만 독자들은 배울 점 하나 없는 건조한 이 책에 열광했고 나쁜 인간 뫼르소를 사랑했다.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은 《이방인》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나’의 이야기로 읽힌다. 읽은 자는 생각에 잠기고 이내 질문하는 마음을 갖는다.


‘울어야 할 때 울지 않는 것. 자신의 행동을 납득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 살려고 애쓰지 않는 것. 그게 나쁜가? 분명 유죄인데 죄가 아닌 것 같은 불편함의 정체는 무엇이지? 만약 세상의 법정에 선다면 나는 나를 변호할 수 있을까?’


사실을 말하는 자는 위험하고 진실을 주장하는 자는 불편하다. 웃지 않고 울지 않는 자는 어째서인지 불온하게 느껴진다. 눈물과 웃음만이 인간 됨을 증명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인간이 가장 비인간적일 때 사용하는 도구 역시 눈물과 웃음이라는 것을. 지친다. ‘소셜’이라는 공포.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고 뜻 모를 표정을 감지하느라 마음이 상한다. 관계 속에서 분투하며 애쓰지만 어떤 관계 속에서도 편치 않다. 필요 없는 것들을 배우려 노력하고 목적 없이 그저 부지런하다. 가진 것 중에 진정으로 내 취향이라고 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초라한 인식의 소유자. 홀로 되는 것은 두렵지만 함께 있는 것은 따분하다. 우리네 삶이 타인의 인정을 통해 나 자신을 구축해나가는 인정 투쟁의 역사지만, 그래서 자기 증명의 늪과 덫에 빠져 매 순간 위선과 허위와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살지만, 생각해봐야 한다. 누가 내게 증명을 요구했는지. 그런 사람이 있기는 한 건지. 내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면서 내가 되려는 서툰 연기자. 나를 보여주기 위해 보여지는 모습을 꾸며내야 하는 나와 무관한 슬픈 초상 하나. 다 관두고 싶다. 정체불명의 거룩한 본질이 아닌 내 실존으로 살고 싶은 단순한 마음. 그게 그리 나쁜 걸까.


아침마다 거울 앞에 선다. 나를 닮았지만 내가 아닌 낯선 이를 노려보는 지지부진한 일상이 또 시작됐다. 어제오늘 그리고 내일, 반복 속에 낡아가는 거울. 이방인이 되고 싶지 않아 이방인을 욕하고 따돌렸던 군중들은 은밀히 그 이름과 얼굴을 마음에 품고 동경했다. 인간들이 원하는 인간이 되려 그토록 노력했지만 사실 정말 되고 싶었던 건 인간들과 저만치 떨어져 표표한 걸음걸이로 걷는 저 이방인이 아니었을까? 속하지 않았으므로 소외될 수 없는 단독자. 지긋지긋한 관계망에서 벗어나고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를 과감히 탈출해 바깥에서 존재하는 나를 닮은 한 사람. 트랙에서 빠져 나와 유유히 스탠드에 앉는 고독한 한 사람.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그래서 있는 모습 그대로 발견되는, 진정한 자기 자신.


뫼르소에게 나는 배웠다. 타인의 인증이나 보증을 필요치 않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이해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삶에 절실하지 않는 자만이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을. 소외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소외될 수도 없지. 타인에게 신경 쓰느라 정작 나 자신을 돌보지 못했던, 남의 말을 열심히 듣느라 내면의 소리에 반응할 수 없었던, 나는 반성한다. 희미하게 다짐하며 나 자신에게 부탁해본다.


《이방인》보다 나은 자기계발서를 읽은 적 없다.

정용준 | 2009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는 짧은 소설 《저스트 키딩》, 소설집 《가나》,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선릉 산책》, 중편소설 《유령》, 《세계의 호수》, 장편소설 《바벨》, 《프롬 토니오》, 《내가 말하고 있잖아》 등이 있다. 황순원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방인
알베르 카뮈 | 박해현 옮김

세계문학사에 선명한 이정표를 세운 알베르 카뮈. ‘여름의 도시’라 불리는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성장한 카뮈의 문학에서 태양은 항상 핵심적인 장치로 기능해왔다. 《이방인》에서도 뫼르소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는 누구도 분명하게 대답할 수 없지만, 살인의 순간에 뫼르소의 뺨을 덮친 ‘태양의 불길’만큼은 우리의 머릿속에 뚜렷이 남는다. 장면마다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을 의식해서 읽었을 때 그 강렬한 소설적 감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작품.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기를 자처하는 이방인 뫼르소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누구나 어딘가로부터 이방인이다.

031 이방인 알베르 카뮈|박해현 옮김
032 루시 게이하트 윌라 캐더|임슬애 옮김 *초역
033 메마른 삶 그라실리아누 하무스|임소라 옮김 *초역, 작가도 첫 소개
034 결혼식을 위한 쾌적한 날씨 줄리아 스트레이치|공보경 옮김 *초역, 작가도 첫 소개
035 값비싼 독 메리 웨브|정소영 옮김 *초역, 작가도 첫 소개
흄세(휴머니스트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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